‘안은행’으로 세상의 빛을 나누다

희망제작소 1004클럽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즐거운 방법,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세상을 바꾸는 가장 매력적인 기부를 실천하기 위해 기부자가 모금 방법을 결정하는 맞춤형 기부 커뮤니티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기부 천사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의사의 첫 번째 임무는 공익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다’

정영택 후원회원은(전주 온누리 안과 원장) 의대에 다니던 시절부터 이 한마디를 가슴에 품었다. 전북대 교수를 거쳐서 개인병원을 개원하면서도 늘 이 다짐을 잊지 않고 실천해 왔다.

“환자를 연구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합니다. 환자를 장악하려고 하기 보다는 존중하고 치유를 위한 조력자로서 정서적으로 교감하려고 해요. 때로는 최선의 치료를 했는데도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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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병원으로는 국내 최초로 안(眼)은행 개설

정 후원회원이 온누리 안과를 개원하면서 ‘안은행’을 만든 것도 이런 신념 때문이다. 안은행은 전국적으로 대형 종합병원이나 일부 대학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방에 있는 개인병원에서 전문적인 각막이식수술이 가능한 ‘안은행’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서 시작했고 헌신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3명의 직원을 미국 안은행에 파견해서 시스템을 익히도록 했으며, 다른 병원에서 보기 힘든 각막이식수술을 위한 장비와 임상병리 시설, 기증된 안구를 검사하는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다. 여기에 각막이식수술에 탁월한 정 후원회원의 능력이 더해져서 온누리 안은행은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장기이식기관으로 등록했다.

“온누리 안과는 지방병원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안은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년에 약 80여 개 안구가 기증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절반 정도는 직접 이식수술을 하고 나머지는 전국에 필요한 기관으로 보냅니다. 안타까운 점은 안구기증자수가 필요 환자에 훨씬 못 미쳐서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연간 안구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1만 명에 달하지만 1천여 명 정도만 수혜를 받고 있어요. 그나마 이마저도 해마다 기증자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온누리 안과는 전주뿐 아니라 전북 지역에서 가장 라식과 라섹 수술을 잘 하는 병원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굳이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타고 환자가 줄을 잇는 병원에서 돈이 되는 편한 수술만 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으로 수익도 없는 안은행을 고집스럽게 운영하고, 어려운 각막이식수술을 하고 있다.

안구 기증자가 나오면 전국 어디든 가리지 않고 직접 나선다. 해마다 기증자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안구기증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아름다운 세상의 빛을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소방관들에게는 무료로 라식 수술을

의사로서 그의 나눔은 단순히 능력과 돈,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신념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누구나 잘 보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각막기증자가 더 늘어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각막기증은 사후 기증이 가능하고 기술이 발달해서 한 명의 각막기증으로 4명까지도 이식수술이 가능하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사신 분이 있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집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어요. 그 분이 각막이식수술을 받고 첫 내원 치료를 받으러 오셨는데, 진료실 문을 벌컥 열더니 ‘선생님, 저 혼자 버스 타고 왔어요’ 그러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그때 다시 깨달았어요.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건 꿈이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 회원은 지난 10년 동안 매월 2~3명씩 화재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에게 무료로 라식 수술을 해주고 있기도 하다. 2001년에 서울 홍제동에서 주택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 6명이 순직한 사고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시작한 일이다.

“시력이 낮은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에 나설 때는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할 수가 없어요. 방호복을 입더라도 김이 서려서 시야를 가리거나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시야가 흐리면 그만큼 사고 위험도 높아지지 않겠어요. 늘 목숨이 위태로운 화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는 또한 2006년부터 스리랑카 등 해외 의료 봉사도 하고 있다. 도저히 직접 참여할 일정이 안 될 때에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의료 빈곤 지역에 희망의 빛을 전해주고 있다.

성직자의 마음을 가진 의사가 되고자

그가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데는 병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을 놀이터 삼으면서 만났던 의사라는 직업은 ‘좋은 일을 하면서 대접받는 훌륭한 일’이었다. 어린 마음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어서 막연한 동경과 경외심을 품었다. 전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안과 전문의가 되었고, 2001년까지 전북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이후에 개원을 했다.

그는 의사는 성직자 다음으로 좋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라고 믿기에, 그는 의대 시절부터 돈을 벌면 소외계층을 위한 공익진료에 쓰기로 작정했다.

희망제작소 1004클럽을 알게 된 것은 선배인 김주형 후원회원(전북의사회장)을 통해서였다. 존경하는 선배의 권유도 있었지만, 시민의 힘과 뜻을 모아 작은 부분부터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희망제작소 같은 곳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1004클럽에 가입을 했다.

그가 하고 있는 일들도 결국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의 의료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제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마 의사들만큼 봉사와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의료 환경은 개원 의사들이 병원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열악해지고 있어요. 의사들이 권익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욕만 할 게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더 좋은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하는 게 아니라 의사들도 환자를 위해서 더 헌신하게 만들 겁니다.”

정영택 후원회원은 앞으로 같은 뜻을 가진 의사들과 함께 저시력 환자들을 위한 ‘저시력센터’ 등 공익 의료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 더욱 노력할 계획이다.

글_ 시민사업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