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주택시장 규제완화 정책으로 아파트 시장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뚝 끊겼던 거래가 슬슬 시작되면서 언론에서는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최 부총리는 ‘아파트 신화’를 다시 살리려고 하는 것일까?

아파트 신화는 지금의 기성세대 내면에 들어앉은 오랜 도그마다. 그럴 법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무일푼으로 사회에 던져진 개인이 안정적인 중산층에 진입하는 지렛대 역할을 꾸준히 했다. 월급을 모아 아파트를 사는 일은 한국 어른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입증하는 일반적 경로였다. 그 세대에게 아파트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파트 게임>(박해천)은 이런 경로를 각 세대가 겪은 경험과 맞물려 충실하게 설명한다.

4·19 세대는 20대에 4·19혁명을 겪으며 거리에 나섰지만, 이어 여의도와 강남 개발의 수혜자가 되기도 했다. 20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구집권 체제를 구축하는 장면을 목격한 유신 세대가 중견 회사원이 될 때쯤에는, 군사정권의 주택 500만호 건설 정책과 함께 과천, 개포, 목동, 상계 신시가지에 아파트가 올라왔다. 1987년의 민주화는 이들에게 이중의 축복이었다. 3저 호황을 업고 강남과 신시가지 아파트 값이 3~4년 만에 두세배씩 뛰었다. 386세대는 분당, 일산, 평촌 등에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숲에 한 칸씩을 차지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도 큰 힘이 됐다. 아파트는 이들 중 상당수를 중산층으로 밀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기성세대는 사실 모두 ‘아파트 세대’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에게 아파트는 복지였다. 월급 안정적으로 받는 직장만 들어가면, 분양가 상한제와 청약통장 제도와 저금리 대출을 이용해 싸게 산 뒤 비싸게 팔아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아파트는 경제 교육의 산실이기도 했다. 빚과 전세금을 끼고 한 채 값으로 여러 채를 소유하는 자본주의의 레버리지를 배웠다.

그 시절 아파트는 낙수효과의 통로이기도 했다. 아파트가 무언가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얻은 모든 것은 수출 제조업 중심 고도성장의 과실로부터 흘러내려온 낙수였다. 광고에 목마른 언론도 복지정책 없는 정부도 그 물에 기꺼이 영혼을 담갔다.

9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부터는 달라졌다. 취업이나 결혼과 동시에 아파트를 가질 수 있던 소수만이 거품의 끝자락을 잡았다. 부모의 자산을 물려받았거나, 큰 빚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세대 대부분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뒤는 더하다. 2000년대 20대를 맞은 이들은 그런 기회를 꿈꾸기조차 어렵다. 이미 너무 비싸고, 진입을 쉽게 해주던 제도적 지원이 사라졌으며, 앞으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정부가 권하는 것처럼 빚내서 샀다가는 아파트에 매여 추락하는 인생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정부는 국민의 소득을 늘려 성장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꾸만 아파트를 떠올린다. 아마도 기성세대가 경험한 강렬했던 한 시대에 대한 추억 때문이리라. 그런데 과거 아파트가 신화가 된 이유는 그것이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복지정책이자 분배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고령화를 지나 인구 감소를 앞두고 있는 사회에서 아파트가 그런 위상을 갖는 일은 불가능하다.

최경환 경제팀의 목표가 낡은 추억을 다시 현실로 불러오려는 것이라면, 아직 아파트 한 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 미래세대는 아파트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아파트를 살리려는 정책이 오히려 이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미래마저 갉아먹지 않을지 걱정이다.

[ 한겨레 / 2014.09.09 / 이원재 희망제작소 부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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