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정착하려는 게 아닙니다, 내 성장의 끈 찾아갑니다”

농촌으로 가는 2030세대

산나물이 많이 나는 경북 청송에서는 ‘시니어 산채해설사’를 양성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산나물에 얽힌 이야기와 조리법을 잘 모르는 도시인에게 잘 설명하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하는 ‘빈집 해비타트’가 진행중이고, 국내외 도농 교류 활동가들의 포럼도 열린다.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채집하고 청송 농산물을 홍보하는 기획단도 운영중이다. 기획단은 청송에서 나는 쌀과 산나물, 고춧가루와 간장 등을 한 세트로 구성한 ‘산나물 레시피 박스’를 만들어 서울에 내다판다. 이 모든 일들은 1년 전 청송에 내려간 도시 청년 세 명이 일군 변화다.

청년들이 농촌을 찾아가고 있다. 농촌이나 농업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취지가 아니다. 더 나은 자신의 삶을 위해서다. 새로운 삶을 실험해보며 기회를 찾기 위해서다.

희망제작소, 청년 귀농 실태 연구

희망제작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6개 시민사회연구소와 공동으로 청년 귀농·귀촌 실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만난 귀촌 청년 커뮤니티만 해도 서른 곳이 넘는다. 유기농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장곡면의 ‘젊은협업농장’도 그중 하나다. 쌈채소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7개동에서 청년들이 일한다. 보름여 머물기도 하고 1년 넘게 일하는 이도 있다. 이곳은 도시 청년이 내려와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과 궁합이 맞는지 스스로 확인해보는 일종의 베이스캠프이자, 자립하기엔 자본도 인맥도 부족한 귀촌 청년들이 농촌 생활을 시작하는 인큐베이터다. 장곡면 옆 홍동마을에는 역사가 오랜 농업 대안학교인 풀무학교와 풀무 전공부가 있다. 지역에 정착한 졸업생들의 활동 덕분에 이 마을에는 농업과 교육을 통합해가는 ‘교육농연구소’, 동네를 공부하고 외부에 소개하는 ‘마실이학교’ 등 다양한 협동조합과 소모임이 생겼다.

전남 해남에는 여섯 명의 청년들이 함께 먹고 자며 농사짓는 ‘미세(아름다운세상)마을’이 있다. 전북 완주는 ‘문화예술협동조합씨앗’을 중심으로 청년 귀촌자 모임이 열리고 있고, 전북 진안에서는 청년귀농귀촌센터를 만들려는 참이다. 귀촌 공동체인 변산공동체나 민들레공동체에도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간디학교가 있는 충북 제천과 충남 금산엔 졸업생과 젊은 교사들이 모여 산다. 시골 청년들의 네트워크인 ‘명랑시대’에서 1년에 한번씩 여는 귀촌 청년 캠프에 100여명이 모이는 것을 보면,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전국 곳곳에서 많은 청년들이 ‘시골살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희망제작소 연구팀은 청년들의 지역 진입이나 정착에 도움을 주는 어른들, 청년 귀촌자의 ‘멘토’ 18명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했다. 멘토들은 지역 공동체 대표, 농촌 대안학교 교사, 지원센터 관계자 등이다. 이들은 “요즘 시골로 내려오는 청년들은 선배 귀농자들과는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1970~80년대엔 사회운동을 위해, 1998년 외환위기 땐 농업으로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귀농했다면, 지금의 20~30 세대는 자신의 성장을 모색할 새로운 계기를 찾고자 시골로 온다. 농사로 돈을 벌겠다거나 한 지역에 정착해서 성공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다. 당연히 모아놓은 돈도 없고 집이나 땅도 없다.

시골로 가는 청년들이 지역에 끼치는 영향도 과거와는 다르다.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멘토들은 농촌의 문화·교육·복지 영역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청년들은 도시에서 가져온 재능을 농촌에서 펼쳐보기도 하고, 농업에 접목시켜보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촌에 부족한 서비스를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는 청년 귀농·귀촌 지원을 올해 주요 추진 업무로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귀농·귀촌 통계로는 시골로 가는 청년이 확인조차 되지 않는다. 여전히 일정 규모 이상의 농지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청년 귀농·귀촌자를 농업 후계자로 보거나 ‘농업으로 부자 되기’ 같은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얘기다. 정부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귀촌 청년이 지역과 융화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전업농보다 자기 재능 결합한 일 적합

청년들의 귀촌을 무조건 환영하기도 조심스럽다. 멘토들은 시골에 내려온 요즘 청년들이 생존하려는 애착이 덜하고, 공동체보다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강하다고 답했다. 도시의 생활방식을 버리지 않고 시골살이를 ‘소비’하고 떠나버리는 일부 청년들은 따스하게 이들을 맞았던 지역 주민들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지역은 청년들이 도시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지역에 적응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본 경험도 없고, 지역에 헌신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옅은 이들에게 이런 요구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시골에서도 도시 못지않게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청년들은 지역에 오랫동안 남아 지역과 자신을 맞춰갈 것이다.

지난해 11월 희망제작소에서 주최한 한일포럼 ‘도시와 농촌, 같이하는 매력’에 참석한 다니 노리오(귀농지원 사회적기업 마이팜 부대표)는 “일본에서는 일자리가 없으니까 농촌에서 일한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지속하지 못한다. 청년들이 농촌에 들어올 입구를 크게 만듦으로써 농촌의 현실을 알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정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새겨들을 말이다.

‘비빌 언덕’ 노릇 할 중간지원조직 필요

멘토들은 청년 귀농·귀촌자에게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빌 언덕은 청년들이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시골살이에 적응하도록 돕는 중간지원조직, 함께 모여서 지역에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낼 공간일 수 있다. 처음 귀촌했을 때 머물 수 있는 숙소나 최소한의 땅,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가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도 좋겠다. 이런 것들이 청년들의 시골 진입을 촉진하는 ‘넓은 입구’일 것이다.

청송의 변화를 일군 도시 청년들도 ‘청송창조지역사업단’이 있었기에 지역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 사업단은 청송군과 청송시니어클럽, 생생농업유통이 협력해 만들었다. 청송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지역 단체이고, 생생농업유통은 청년들이 만든 농업유통회사다. 청송군이 재정을 댔다. 군의 공신력과 지역 단체가 다져온 신뢰 덕분에 연고도 없는 도시 청년들이 새로운 일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빌 언덕은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희망제작소·녹색사회연구소 등 6개 시민사회연구소가 삼선배움과나눔재단의 후원으로 진행중인 청년 귀농귀촌에 대한 연구 결과는 올 상반기 발표될 예정이다.)

[ 한겨레 / 2015.3.31/ 우성희 희망제작소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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