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와 기업을 연결해 운용하며 고졸자도 안정된 취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독일 직업교육 시스템이 주목을 받고 있다.

독일 중앙정부 직업교육정책 책임을 맡았던 베로니카 팔(사진) 전 독일 교육연구부 직업교육국장을 서울시청에서 만나 독일 직업교육 시스템의 한국 적용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부에서 일하기 전 독일사무직노동조합 중앙집행위원을 지낸 그는 현재 직업교육정책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그는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희망제작소·서울시청년허브가 지난 10~12일 공동주최한 ‘2014 한독도시교류포럼’에 참석했다.

독일 학생들은 4년의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대학 진학 여부를 사실상 정하게 된다. 그리고 빠르면 10대 후반부터 기업과 학교를 오가며 직업교육을 받고, 상당수가 교육받은 현장에 취업한다. 한국 학생들이 20대 중반까지도 학교에 머물며 취업 준비에 몰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팔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난 뒤 직업을 위한 학교로 진학하면 산업과 연계된 직업교육을 받는다. 1969년에 제정된 독일 직업교육법이 그 체계의 중심에 있다”고 소개했다.

사실 독일의 성공적인 고용 및 산업정책은 산업·교육·노동을 연결시킨 직업교육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직업교육법이 그 근간인 셈이다. 어떻게 성공시켰을까? “직업인이 가져야 할 역량을 폭넓고 상세히 배운다는 점이 강점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구매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협력업체와 어떻게 대화하고 계약해야 하는지까지 교과서에 쓰여 있다. 정책운용 체계도 성공 요인이다. 노동조합·사용자·지방정부 등이 함께 위원회를 구성해 이 교육과정을 운용하며 자격시험도 관장한다.”
69년 이전과 이후, 독일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왔을까. “독일은 전통적으로 중세 길드의 장인-도제에서 이어진 ‘견습생’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직업교육법 제정 이전에는 ‘견습생’은 단순히 저임금 노동자로 여겨졌다. 그를 일컫는 용어도 ‘견습공’-독일어로 ‘레얼링’(Lehrling)-이었다. 그런데 직업교육법 제정 이후 용어 자체가 ‘직업교육생’-독일어로 ‘아우스추빌덴데’(Auszubildende)-으로 바뀌었다. 노동하며 전문지식을 배우는 사람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직업교육이 단순히 일자리와 학생을 매칭해주는 교육이라는 오해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일과 지식을 결합해 전문성을 높이는 교육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에서도 마이스터고교와 일·학습 병행제도 등을 통해 직업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나치게 기능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많다. 청년 시기엔 지식 욕구나 성장 욕구가 큰데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 교육연구부에서 일하던 시절 노조와 사용자가 함께 직업교육 콘텐츠를 요청해 받아들였다. 화물차 운전기사에 대한 교육에 물류기획 및 관리과정을 보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과거에는 운전만 하면 되던 화물차 기사들이 이제 물류를 알아야 한다는 산업적 배경이 있었다. 이렇게 직업교육도 지식을 더해가며 진화한다. 독일에서는 이런 진화가 노동조합의 강력한 요구로 이뤄질 때가 많다.”

독일 노조가 이런 역량 강화에 관심을 갖는 배경에는 공동결정제도가 있다. 독일에서는 단위노조, 노조연합, 경영자가 함께 참여해 중요한 경영의사 결정을 하는 제도와 문화가 있다. 한국은 이런 제도나 문화가 없으므로 노조가 경영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책임감을 갖기보다는 단기적 임금 인상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결정을 같이 하면 책임감도 공유하기 마련이다. 더 인상적인 점은 직업교육에서 사회적 책임도 배운다는 것이다.

“노동법, 인권 등에 대해 배우고 시험도 치러야 졸업할 수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건 이후에는 생태교육도 강화됐다. 판매직이든 운전기사든 모든 직종에서 이런 과목을 배워야 한다.”

한국인은 유교의 ‘사농공상’ 의식 때문인지 대학 진학에 큰 가치를 둔다. 또한 일자리 대다수를 제공하는 중소기업들의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 이런 이유로 직업교육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슈뢰더 정부 당시 에델가르트 불만 교육부 장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불만 장관은 당시 교수 연봉이 기술자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점, 그리고 좋은 기술을 가진 수공업자의 사회적 지위가 초등학교 교사보다 높게 여겨진다는 두 가지 예를 들며 40%대인 독일 대학진학률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오히려 30%대에 이르는 대학 중퇴자 문제가 심각하다. 거의 무상교육인데도 그렇다. 이 청년들을 직업교육으로 돌리려고 노력 중이다.”

팔은 대담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직업교육이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사회 시스템이 공평하게 바뀌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시사해줬다. 또 직업교육을 단순기능 습득만이 아니라 혁신적 지식과 사회적 책임을 얻는 교육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결국 제도가 삶 속에 녹아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다양한 가치를 지향한다. 사람은 학문을 좋아할 수도, 장사를 좋아할 수도 있다. 좋은 노동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는 통로다. 직업교육은 이런 좋은 노동이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다. 이런 이상을 한국에 맞는 옷으로 잘 적용시키면 좋겠다.”

[ 한겨레 / 2014.11.16 / 이원재 희망제작소 부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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