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매년 태풍 및 장마로 인해 재난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재난 피해지역에 대한 복구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복구 지연’ ‘부실 공사’ 등으로 인한 2·3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재)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소장 이재은 http://61.78.56.123/disaster/)와 공동으로 재난피해 현장을 조사해 분석한 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해구조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 모델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 지난해 700mm의 폭우가 쏟아진 인제군 덕적리에 쌓아올린 제방은 150mm의 폭우에 주저앉았다
ⓒ 정민규

또다시 터졌다. 지난 8일과 9일에 걸쳐 내린 집중호우로 강원도 일대는 또 다시 피해를 입었다.
희망제작소의 재난관리연구소 인사들과 함께 지난 11일 강원도 양양과 인제의 수해 현장을 찾았다. 상상했던 것 이상의 장면이 펼쳐졌다. 폭우가 쏟아지면 피해를 입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지는 몰라도 복구를 해놓았다고 하는 곳까지 맥없이 쓸려 내려간 광경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비가 얼마나 내렸던 것일까? 기상청, 주민, 전문가, 공무원들은 “지난해에 비하면 그다지 많이 온 것이 아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인제군 덕적리에서 만난 마을주민 정아무개씨는 “이건 온 것도 아니래요”라고 손사래쳤다. 그는 “작년에 비하면 비 몇 방울 왔다고 이리 다 쓸리 내리갔는지”라며 한숨 쉬었다.
실제 덕적리는 지난해 7월 11일부터 28일까지 무려 70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작년 7월 15일에는 시간당 무려 122mm, 옆 사람의 말 소리 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다. 그에 비하면 올해는 이틀 동안 내린 비는 150mm.

▲ [재해는 再해다] 2번째 기사에서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유형의 사방댐 측면에 위치한 제방. 역시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았다
ⓒ 정민규

“우리나라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지는 몰랐다”는 정씨는 “복구공사 관계자에게 말하면, 무너지면 나라에서 또 돈 주는데 우리도 장사 좀 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씨는 “업자, 감리단, 공무원 3박자가 맞아들어간 거 아니냐”고 울분을 터트렸다.
정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인근을 지나던 또 다른 정아무개씨가 가던 길을 멈췄다. 그 역시 “봅슬레이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위태롭게 공사를 해놓았다”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해도 설계대로만 한다며 무시하더라”고 토로했다. 수해는 순박한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 국가에 대한 실망감까지 안겨준 모양이었다.
이어 정씨의 안내를 받아 따라간 제방은 맥없이 주저 앉아있었다.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 이재은 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찢어진 것”이라고 표현해야할 지경이었다. 무너진 제방을 살펴보자면 한 눈에도 엉성하다고 느낄 수 있을 지경이었다. 무너지지 않으면 이 곳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추가해야 할 판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 한계령에는 이같이 무너진 수해 복구 현장이 널려있었다. 원주국토관리청은 “공사가 끝나지 않아 그런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 정민규

인제군 덕적리에만 총 3곳의 제방이 무너져있었다. 모두가 지난해 피해를 입은 곳을 복구하겠다면서 새롭게 쌓아올린 제방들이었다. 그런데 인제군 재난방재과는 제방이 무너진 곳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고 들어온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인제를 떠나며 군청에 신고나 해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던 순간, 다행히 하천계에서는 제방이 유실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제군청 하천계 김영수 계장은 “부분적으로 무너진 곳이 있지만 다른 곳의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부분적인 상황만을 보고 부실공사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휩쓸려간 제방은 있고, 관할하는 관청은 없다?
강원도 양양과 인제를 잇는 한계령 역시 복구공사 중 비 피해를 입었다. 늑장공사가 불러온 인재였다. 40시간이 넘게 전면통제된 한계령 구간은 여기저기서 제방이 뜯겨나가고 철골구조물이 휘어져있었다. 제방의 하단부를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하는 하상보호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맥없이 무너진 제방틀을 손보는 인부들의 손길이 부지런했다.
현장을 돌아보다 우연히 만난 한계령국도보전주민감시단 이태희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이 회장은 “항구 복구를 하겠다며 최신 장비와 공법을 사용한다더니 이 정도 비에 다시 쓸려 내려갔다”며 “이렇게 할 거면 매년 새로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은 “기초도 제대로 쌓지 않고 돌을 쌓으니 그 제방이 견딜 수 있겠느냐”며 “이렇게 해도 되냐고 말해도 들은 체도 안하다가 이제야 말을 들어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겉만 번지르르해서 믿었더니 속은 텅 비었다”며 “차라리 비가 내려줘서 고맙다”고까지 말했다.

누가 이 제방을 모르시나요?앞에 있는 제방이 본청의 관할이라고 생각되시는 기관은 힘차게 손들고 나와주시길 바란다
ⓒ 정민규

그런데 한계령 일대의 공사를 맡고 있는 자치단체들은 서로 자신들은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제방이 유실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원주국토관리청의 한 담당자는 “오색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양양군청의 관할”이라고 했고 “우리가 담당하는 쪽이 무너진 것은 공사가 끝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양양군청 건설방재과의 담당자는 “우리는 보상만 할 뿐, 강원도에서 발주한 공사”라고 모르쇠했다. 그러자 강원도 건설방재국 담당자는 “상류는 양양군청 관할이며 우리가 담당하는 곳은 무너진 곳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의 눈의로 목격한 무너진 제방. 하지만 자치단체들은 서로 자신의 관할 지역에는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날 함께 동행했던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 박창근 재난피해복구팀장(관동대 교수, 토목공학 박사)은 “지난해의 1/2 수준에 불과한 비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은 설계나 시공의 잘못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산지는 평지와 달라 공법을 시공할 때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기존의 국내에서는 크게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 팀장은 “제방을 쌓아 보호해야할 가치가 없는 곳에도 제방을 쌓는 곳도 있고 이마저도 유실되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잘못을 따져 추가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부실·늑장 공사와 재난, 그리고 이재민들의 고통. 그 속에서 업자들의 주머니는 갈수록 불룩해지고, 국민의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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