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오마이뉴스>는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와 공동으로 ‘재해는 再해다’란 주제의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재난관리연구소는 재난의 예방에서 복구 및 지원에 이르는 연구 및 조사를 위해 올 4월 설립된 민간 최초의 재난관련 연구소입니다. 이 글은 이번 기획의 마지막 회로 이재은 재난관리연구소 소장(충북대 교수)가 보내온 기고를 전재합니다. <편집자주>

”?”학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늘 지키려 하는 것 중 하나가 이론과 실천의 조화이다.

선행 연구 검토를 통해 문제도 제기하고, 복잡한 통계수치도 분석하고 실제 조사를 하면서 개선방향을 도출하기도 하는 연구활동은 진정 아름답다.

그러나 문제와 해결책이 함께 있는 현장, 행정과 정책의 손길이 직접 닿는 현장은 또 하나의 연구실이자 실험실이다. 또한 정부보고서나 논문·저서·통계수치들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현장에서 찾는 것도 중요한 연구 활동임에 틀림없다.

이는 연구자 뿐 아니라 정책 입안자나 정책 결정자도 마찬가지. 재난관리 분야는 특히 더 그러하다.

차마 눈뜨고 보기에 참혹한 재해 현장,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발만 동동 구르는 이재민들…. 그러나 허술한 방재 대책을 내놓고 그러면서도 빈틈없는 재난관리를 약속하는 관계 기관의 보고서는 연구자에게 혼란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연구원들과 함께 찾아다닌 현장에서 알게 된 우리나라 재난관리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책상과 현장의 괴리였다. 현장에서 본 책상 정책은 허구였고, 불신이었다.

‘책상 공무원’들은 “아직도 그런 곳이 있는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라며 “현장을 잘못 보았거나 왜곡한다”고 항변한다. 정책 담당자들은 상부 보고는 외면하고 현장을 체험해 보지 않거나, 현장에 가더라도 공무원이나 관련 기업체의 의견만 듣고 온다. 이들의 무사안일이 두렵다.

책상과 현장의 괴리, 이것이 재난의 시작

이와 함께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지역주민을 배제하고 무시하는 정책 담당자들의 태도다.

주민들은 전문 용어도 모르고 공법도 모르지만, 한 지역에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어느 곳이 문제인지, 언제 시설이 무너질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이같은 현실 앞에서 연구진들은 힘없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곤 하였다.

예를 들어 하천 폭이 좁아 물이 넘치고 인근 논과 밭이 유실·매몰되는데도, 하천은 내버려둔 채 논밭 복구 예산만 내려온다.

하천 폭을 당장 넓혀달라는 것도 아니다. 매년 예산을 조금씩이라도 들여 장기적으로 넓혀야 하는데 계속 땜질하는 예산이 내려오는 것이다. 이처럼 복구업체만 신바람 나는 방재대책에 주민들은 비만 오면 불안해 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 재해 현장을 보면, 아예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공법의 실험실이 되어버린 것 같다. 복구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제방이나 옹벽이 다시 무너지고 터진 모습에 공학에 문외한인 주민이나 참관 연구자들도 할 말을 잃곤 했다.

적은 비에도 무너진 복구 현장을 망연자실하여 바라보는 이재민들에게 복구업체나 정부의 담당자는 “이건 결코 부실공사 때문이 아니다”는 주장을 하고는 “다시 고쳐주겠다”는 다짐을 해주고 돌아간다. 세금 내는 사람 따로 있고 거둬가는 사람 따로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땜질식 처방… 재난관리, ‘참여형’으로 바꿔라

이런 복구정책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연구자들도 의아하다. 분명한 것은 이런 논의가 쟁점이 되면 쇼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어느 기관에선가 예전과 같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획단을 만들고,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별다를 바 없는 방안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는 예산을 타내고 힘을 과시할 것이다.

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무엇을 잘하고 잘못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잘못되면 지자체나 복구업체 탓이고 잘 되면 내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정부가 하면 ‘올바른 것’으로 믿고,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면 ‘현실을 모르고 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대안을 제시하면 ‘해 보려면 해봐라’는 막무가내식의 오만을 부린다.

결국 그 앞에 이재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무릎을 꿇고 만다. 심지어는 이같은 상황을 전해온 피해자들이 나중에 연구진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라도 관계기관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 시대의 재난관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우리 시대의 재난관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재난관리의 문화·방식·시스템·참여의 틀, 필요하다면 사람이나 조직도 바꿔야 한다. 이름만 바뀌고 다른 모든 것이 그대로인 시스템, 바꾸자고 하면 바뀌어야 할 사람들이 나서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 명칭만 바꿀까봐 걱정된다.

새로운 사회 운영 시스템의 도입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재난관리 또한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부가 어떤 정부이든지 간에 관계없이, 시민사회의 힘을 모아 건의도 하고 문제도 제기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반영한 정책대안도 만들면서 새로운 재난관리 운영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2007.10.09 09:30 ⓒ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