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임경환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의 ‘절대 신뢰’ 실험
완벽한 타인을 향한 절대적 신뢰는 가능할까요? 먹고살기 바쁜데 이런 질문은 왜 하는 거야? 몽덕대장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짜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나 따져 물었습니다. 멍멍멍.
2017년 전남 순천에 이상한 집이 생겼습니다. 파란 대문을 단 24평 가정집인데 오만 사람들이 맘대로 드나듭니다. 이 ‘공유공간 너머’는 임경환(46)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의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모두의 집은 가능할까?” 임 이사장은 개인 연구실로 빌린 이 집 문을 모두에게 열었습니다. 규칙은 없어요. 아무나 머물고 싶은 만큼 머뭅니다. 청소도 빨래도 하고 싶은 사람이 합니다. 엉망진창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무나 가져가도 비지 않는 ‘돈통’
“신뢰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질문은 곧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너머’에는 ‘모두의 냉장고’, ‘모두의 서랍’, ‘모두의 돈통’이 있습니다. 음식, 물건, 돈을 넣고 싶은 사람이 넣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습니다.(몽덕대장은 묻습니다. 왜 모두의 간식통은 없는 거야!) 누군가 청소를, 누군가 빨래를 했고, 누군가 공과금을 냈습니다. 돈통에 돈이 빈 적이 없답니다. 지난 4월 ‘너머’는 이사했는데 폐기물 처리는 돈통에 남아있던 7만 원으로 했습니다. 초기엔 월세를 임 이사장이 냈는데 누군가 나눔장터를 열어 수익금을 보탰고 이어 기부자들이 나섰습니다.
‘너머’는 임 이사장에겐 ‘자기 관찰’ 프로그램입니다. ‘모두의 돈통’에서 한 청년이 옷을 산다고 10만 원을 가져간 적이 있어요. 400여 명이 모인 ‘너머’ 온라인 밴드에서 토론이 일었습니다. “모두의 돈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어떻게 쓰든 상관없지 않나? 넣은 사람 돈이라고 생각하니 그 사람 취지에 맞게 썼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 아닐까?” 그래서, ‘너머’엔 계속 아무런 규칙이 없습니다. 한 동네책방 사장은 ‘너머’에 이런 후기를 남겼습니다. “이 공간에 오면 자유로워요.”
이사한 ‘너머’ 아래층 ‘재미난가게’에서 지난 7일에 만난 임 이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악당 한 사람 나타나면 다 깨지는 거 아닌가요? “미리 그런 사람을 상정하면 계속 그 상태를 경험하잖아요. 완전히 다 풀어놔도 별문제가 없다는 걸 경험할 수 없죠. 질문하고 큰 고민 없이 가볍게 해보는 거예요.”
‘완벽한 타인’을 향한 마음을 실험하기에 ‘너머’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온라인 밴드에 들어와야 대문 비밀번호를 알 수 있어요. 밴드 가입 조건은 없지만, 밴드의 존재는 누군가의 소개로 알 수밖에 없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신뢰를 경험할 수는 없을까요? 재미난협동조합이 카페 ‘재미난가게’를 2023년에 연 이유입니다. 10평 남짓한 이 공간의 한쪽 벽면엔 “맡겨놓은” 포스트잇이 빼곡합니다. “에이드 한 잔, 실수해도 괜찮아.” 하고 싶은 만큼 선결제하고 포스트잇을 붙여놓으면 순천 청소년 누구나 그 포스트잇을 떼 내 쓸 수 있습니다.
동네책방 사장님은 ‘맡겨놓은 책 10권’을 고를 수 있는 쿠폰을 내놨습니다. 다른 가게로도 옮겨 갑니다. 임 이사장이 동네 닭갈비집에서 2만5천원어치 선결제하고 “제일 먼저 들어온 청소년에게 주라”고 “맡겨놓는” 식입니다.(몽덕대장은 ‘맡겨놓은’ 간식 포스트잇이 있는지 찾고 있습니다.)
완벽한 타인에게 쏘는 이상한 가게
재미난가게는 후원금으로 빵을 만들어 매주 100원에 아이들에게 나눠줍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의심했습니다. “마약 탄 거 아니에요? 마케팅이에요?” 요즘엔 매주 줄을 섭니다. 한 초등학생은 재미난가게 ‘맡겨놓은’ 게시판에 “빵 사 먹고 싶은데 100원이 없을 때만 가져가면 굿”라는 메시지와 함께 100원을 붙여놨습니다. 그 100원을 쓴 청소년은 “네 덕분에 굶주린 학생 살맛 난다”라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아이들한테 보통 뭘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잖아요. 다 교환이죠. 그걸 깨고 싶었어요. 뭘 해서가 아니라 순천 청소년이니까 주는 거예요. 저는 이런 게 환대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그런 느낌을 한 번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화폐란 무엇일까?” 재미난가게의 ‘이로운 이용권’은 이 질문에서 탄생했습니다. 이용권 뒷면엔 이걸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적혀있습니다. ‘김성근 님에게 비폭력대화법 배우기’ ‘박혜성 님과 핸드드립커피 마시며 이야기하기’ 등입니다. 1만 원을 낸 사람이 이용권으로 박혜성 씨와 이야기 나누면, 혜성 씨는 받은 이용권을 들고 다른 사람에게 갑니다. “이 이용권이 돌면서 사람을 연결하죠. 소개팅하는 기분이에요.”
“은행의 역할은 뭐지?” 공유공간 ‘너머’의 두 번째 확대 버전은 공동체은행입니다. 2022년 ‘너머’의 집주인이 전세 전환을 요구했어요.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30만원 씩 내왔는데 목돈 8천만 원이 필요해진 겁니다. ‘너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았습니다. 전세금 내고도 269만 원이 남았습니다. 공동체은행을 실험할 종잣돈입니다. 이자 없습니다. 상환 기한도 빌려 간 사람이 정합니다. 대출 조건은 딱 하나입니다. ‘너머’ 온라인 밴드에 들어와 있는 400여 명이 대출이 필요한 사람의 사연을 읽고 반대만 안 하면 됩니다. 핸드폰 요금, 식비… 첫 대출 60만원으로 시작해 지난 3월까지 13명이 빌려갔습니다. 돈을 보태서 갚기도 합니다. 사연을 읽고 자기 돈으로 빌려주라며 공동체은행에 송금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 은행의 잔고는 965만원으로 늘었습니다.
이자도 담보도 안따지고 빌려주는 은행
“나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지난 3월 공동체은행이 한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이제까지 알음알음 밴드에 들어왔던 사람들을 넘어 완벽한 타인들에게서 사연이 몰렸습니다. “카카오톡 연결 계좌로 입금하려 했는데 그 사람 프로필과 사연이 너무 다른 거예요. 결국 돈을 안 보냈어요.” 그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자기 마음을 봤습니다. “난 진짜 사람을 믿나? 믿는다는 건 뭐지? 제 신뢰의 범위를 점검하게 되죠. 제게 엄청나게 큰 공부인 거 같아요.” 차용증이나 담보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온라인 모임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왜 이걸 하지?” 공동체은행은 일단 멈추고 의견을 모으는 중입니다.
그는 왜 신뢰의 경계를 탐색할까요? 왜 연결이 중요할까요? 전북 완주가 고향인 그는 8살 때 부산으로 이사했습니다. “완주에선 만날 애들하고 냇가에서 놀았어요. 마을에서 보살펴 줬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어릴 때 그 마을을 떠나면서 근원적 그리움이 남았던 거 같아요.”
대학에서 야학 활동하다 학교밖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대안학교에서도 거절당한 애들도 있었어요. 어떻게 야학이 아이들을 품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죠.” 그 아이들이 삶의 방향타가 됐습니다. 신문사, 출판사 등을 거치고 국어교사로 일한 뒤 학교밖청소년 네트워크인 ‘학교너머’에서 활동했습니다.
“왜 학교는 학생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우리가 가면 안 되나?” 2011년 그는 낡은 경찰버스를 샀습니다. 그 차에 학교밖아이들 18명과 그를 포함한 선생님 3명이 타고 300일 동안 전국을 돌았습니다. ‘공감유랑’입니다. 가는 곳마다 숙소와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고생길이기도 했습니다. “돈 있는 집안 아이들이 며칠 누리고 가는 캠프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매일 밤 날 선 말이 오고 가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제가 많이 깨지는 과정이었어요. 처음엔 저한테 뭔가 교사스러운 게 있었죠. 동등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거죠. 아무리 헐거운 규칙이라도 규칙이 있으면 메이게 되더라고요. 여행 마지막엔 아이들이 그러더라고요. ‘선생님도 많이 컸네요.’”
이 규칙을 파괴하는 질문자에게 2018년 행정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중간지원조직인 순천시마을교육지원센터(현 순천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를 맡아달라고 제안했어요. “행정하고 일해본 적도 없고 중간지원조직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까지 해왔던 공동체와 교육 활동이 연결되겠더라고요.”
학교밖아이들과 전국 유랑…주민과 행정 만나 교육 바꿔가
순천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에 가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타임라인이 있습니다. 2018년부터 이제까지 매월 벌여온 ‘정담회’와 거기서 다룬 주제들입니다. 지역주민, 교사, 교육지원청과 지자체, 시의원 등이 만나 토론하는 자리입니다. 보통 공공기관에서 민의를 모을 때 주민 가운데 몇몇을 위원으로 위촉하는데 이 정담회에는 멤버십 제한이 없습니다. 아무나 들어와 하고 싶은 말 하면 됩니다. 공유공간 ‘너머’와 ‘공감버스’의 행정 버전이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누가 올까요? 욕먹을 일밖에 없을 거 같은데 공무원들이 참여할까요?
그런데 주민이며 공무원이며 20~30명씩 꼬박꼬박 모입니다. 변화를 체감하기 때문이죠. 주제 가운데 하나는 ‘교육경비보조금’이었습니다. 주로 성적 좋은 아이들에게 돌아갔던 보조금이 ‘정담회’에서 나온 의견에 따라 2020년부터 ‘보통의 지역 아이들’ 용으로 바뀌었습니다. 균형발전을 위한 학교혁신 프로젝트, 장애 학생 교육프로그램 지원 사업 등이 생겼습니다. 스터디그룹 같은 소규모 마을정담회들도 생겼어요. 순천마을배움터는 23곳으로 늘었습니다.
“잘 연결되면 기분 좋잖아요. 누구나 좋은 일을 하고 싶은 진짜 마음이 있거든요. 상대의 그 마음을 인정하면 이어져요.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 같은 재미난 일이 일어나요.”
어떻게 사람이 선하다고 확신할까요? “글쎄, 뒤통수 맞아 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자꾸 돈을 줘요.” 재미난가게에서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공짜로 돌릴 머핀을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341명에게 1천원씩만 기부받는 프로젝트는 하루 만에 마감됐어요. “그냥 믿어버리는 거예요. ‘아, 별일 없네’ 그러면 더 믿게 되고요. 믿는 만큼 이뤄지는 거 같아요.”
3년 전엔 ‘임경환의 허리’ 프로젝트가 벌어졌습니다. 공감유랑하며 대형버스를 몬 뒤 그의 척추측만증이 심해졌어요. 누군가는 그를 위해 통성기도를 올렸고, 누군가는 한약을 지어왔습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구나. 모두가 돌보는 몸이구나. 이래서 공동체가 필요하구나. 이런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했으면 좋겠어요. 한 사람을 위한 공동체, 그 한 사람이 공동체로부터 돌봄 받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해요.”
공동체를 경험하는 순간은 조건 없는 환대를 받았을 때죠. 돈이 신인 한국에서 그런 환대가 가능할까요? “한계가 있겠죠.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그 경험을 잠깐이라도 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의 꿈은 “(완벽한 타인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물하는) ‘맡겨놓은 가게’를 100개 만드는 것”입니다.(‘맡겨놓은 간식’을 마련하라고 몽덕대장은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몽덕대장은 지난 4월 말부터 남해군‘견’이 됐습니다. 몽덕대장의 남해살이 프로젝트 커밍순~ (feat. 해변의 고양이들)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 사진: 희망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