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적 가치에 투자한다.’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청년 소셜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에 시민이 응원의 의미로 모의투자하는 ‘2024 사회적가치투자(Social Investor Relations) 대회’가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시 카카오 AI 캠퍼스에서 열렸습니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은 사회적가치투자대회는 지역의 혁신가인 청년 소셜디자이너를 발굴, 소개하고 그들의 활동을 응원하는 자리입니다. 200여명 청중심사단이 함께 했습니다.
이은경 희망제작소 소장은 “소셜디자이너는 지역의 문제을 탐구하는 연구자,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촉진자, 다른 플레이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을 고민하는 설계자“라며 “소셜디자이너가 임팩트를 확대해 가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역사회 문제 해결하는 청년 소셜디자이너 10명 피칭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청중심사단은 지지와 격려를 담아 모의투자의형서를 꼼꼼히 작성했는데요. 모의투자비율대로 실제 상금 2천만 원을 피칭한 소셜디자이너들에게 나눴습니다.
환경문제는 소셜디자이너들이 해결에 골몰하고 있는 대표적인 열쇳말이었습니다. 첫번째로 발표한 정대웅 플로깅울릉 대표는 쓰레기를 함께 줍는 ‘플로깅’을 관광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쓰레기 활용 콘텐츠 시리즈 ‘울릉정크’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2020년 울릉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주한 그는 “2021년 사명감보다는 플로깅 기록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 이듬해 전시회, 여러 콘텐츠로 확대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닮은 “환경크리에이터를 육성하고 울릉도로 들어오는 모든 배에서 상영할 울릉도 전용 환경 보호 영상을 제작할 계획”이라며 투자를 호소했습니다.
최재엽 예그린애드 대표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천으로 현수막을 제작하고, 다 쓴 현수막을 업사이클 디자인해 패션 소품을 만들고 있어 청중심사단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소셜디자이너들은 환경과 돌봄, 일자리 문제를 함께 푸는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종건 오롯컴퍼니 대표는 ‘도시 쓰레기에서 탄소를 캐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찹찹레볼루션’이라는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습니다. 버려진 나무젓가락을 수집해 인테리어 자재로 재생하는 기술을 느린학습자 일자리 사업과 연계하고 있습니다.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는 150가구가 사는 강원도 홍천 물건리에서 쓰레기 분리수거 시스템을 구축하며 이를 노인 일자리와 연결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마을의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어르신 ‘모아지기’들이 홀로 사는 마을 어르신들의 집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쓰레기를 거두고 돌봄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돌봄을 키워드로 삼은 소셜디자이너들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강원도 영월에서 온 김가현 스튜디오어중간 대표는 2030 젊은 투병인들을 인터뷰해 잡지 <병맛>을 만들고, 이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30은 생산성이 높고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몸이길 기대받기에 젋은 투병인들은 자신을 모순적 존재로 느끼고 고립되기 마련입니다. 고혈압, 당뇨가 더 이상 노인성 질병이 아닐 정도로 젊은 투병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 여전히 투병은 개인이 혼자 감당해야 할 일로 여겨집니다. 청년 투병인의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야기에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그는 투자를 받으면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병맛> 3호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재신 내마음은콩밭협동조합 대표는 대구에서 뇌전증 환우 모임을 꾸리고 인식 캠페인, 콘텐츠 제작 등을 하고 있습니다. 우동준 일종의 격려 대표는 1인가구 고립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수프 등 먹거리를 매개로 관계망을 단단히 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워크숍 도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초고령화 사회와 지역소멸 문제에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응하고 있는 소셜디자이너도 있었습니다.
강민서 비유니크 대표는 충남 천안의 남산마을을 향초 전문가들의 ‘집성촌’으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그는 “단순 반복적인 노인 일자리가 아니라 7080 할머니들을 향초 전문가로 육성해 브랜드를 런칭했다”며 “공동체 붕괴를 막으면서 지역 자원에 기반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발표했습니다.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은 충북 옥천에서 콘텐츠로 농촌 공동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농촌의 삶을 폄하하는 한국 사회와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에 맞서” 2017년부터 종이매체 <월간 옥이네>를 펴내며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배준호 BCY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부산에서 ‘풀뿌리’ 동네 연예인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들고 공연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시민 모의투자 비율 따라 상금 나눠…“지역 삶의 질 제고” 첫손 꼽혀
7분 내외 짧은 피칭으로 부족한 정보는 ‘라운드테이블’ 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피칭을 들은 청중심사단은 관심 있는 소셜디자이너의 테이블로 찾아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업에 여러 목표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사업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마케팅은 어떻게 하는가” 등 구체적이고 뾰족한 질문을 내놓았고, 협업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라운드테이블까지 마친 청중심사단은 신중하게 투자의향서를 작성했습니다. 한 청중은 “사회적 가치 투자에 관심이 있고 영감을 얻으려고 이 자리에 왔다”며 “프로젝트 진행률과 소신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청중심사단의 투자 이유를 항목별로 분석해 보니, 지역공동체 삶의 질 향상이 가장 많이 꼽혔습니다. 이어 지역 자원 활용, 새로운 문제 발견, 혁신적 해결 방안, 구매 협업 확대 가능성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청중심사단은 소셜디자이너들에게 정성을 담은 심사평도 남겼습니다.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가 벌이는 쓰레기 분리시스템에 대해서는 “지역의 고질적인 쓰레기 문제를 의제로 만들어 주민 의식을 바꾸어가고 있다”며 ”다른 지역에도 확산이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날 가장 많은 투자자의 지지를 받은 김가현 스튜디오어중간 대표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임팩트가 뭔지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였고, 청중심사단의 코멘트도 큰 도움이 됐다”며 “투자금으로 <병맛 3호>를 제작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소셜디자이너이자 전북 완도읍 용암마을에서 전국 최연소 이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유솔(27) 씨는 “우리 지역에서도 어르신들과 함께 실현해 볼 만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청중심사단으로 참여한 정현진 씨(레인코리아 4학년)는 “경제 논리를 넘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평가했습니다. SIR대회 이후 소셜디자이너들은 지역의 여러 이슈들과 처한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며 네트워크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행사는 재단법인 희망제작소(이사장 윤석인)가 주최‧주관하며 카카오, 아산나눔재단, 서울경제진흥원, 임팩트스퀘어, 임팩트얼라이언스, 명랑캠페인이 파트너로 함께 했습니다.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사진: 희망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