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7월부터 새롭게 ‘희망소기업 이야기’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여보. 요새 된장이나 간장이 일본에서 역수입 된다고 하는디, 이게 무신 말이나 되는 소리여? 수출을 못할 망정, 왜 우리가 장류를 수입해야 돼?”

어느 날 갑자기 역정을 내는 남편이 의아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이해가 되었다. 농자재 도소매사업으로 적잖은 돈을 번 남편에게 농민들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입 농산물로 힘들어하는 농민들의 마음이 아프면 남편의 마음도 아팠다. 그러나 오늘은 여느 날과는 좀 달라 보인다.

“내가 그것을 한번 해볼까 하는디…”
“그것? 그것이 뭔 소리라요?”

남편은 우리 전통 장류를 일본에 수출하고 싶다고 했다. 비록 일본 장류의 수입이 늘고 있지만, 우리 전통 장류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리면 일본인들의 입맛을 쉽게 사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정부에서 수출 지원책까지 내놓아, 사업하기에 좋은 여건이라 생각했다.


일본인들 밥상에 우리 된장 올려보고자

그렇게 한솔영농조합(대표 조영식)이 시작됐다. 96년의 일이다. 잘 나가던 농자재 사업을 접고, 광주에 있는 집까지 팔아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부푼 꿈을 안고 순천으로 향했고, 처음에는 모든 게 잘 될 것처럼 보였다.

조영식 대표의 아내인 양 이사는 남편과 함께 장류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나름 사업계획도 완벽해 보였다. 시골 마을에 보면 장 잘 담그는 할머니 한 분은 꼭 계시는데, 이 분들을 모아 전통적인 방식으로 된장이니 고추장을 담근다는 것이다. 또 그 노하우를 체계화해서 규모를 확대시킨다는 게 계획의 골자였다.

하지만 사업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어르신들이 담근 메주가 다 상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콩 백 가마니가 넘는 양이었다. 고추장도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청국장도 짜거나 싱겁다면서 반품이 속출했다. 분명 지역에서 장 담그기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규모의 차이였다. 그 분들이 평소에 이렇게 많은 양의 메주를 한꺼번에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였다. 집에서 먹을 만큼 조금씩 담글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규모가 커지자 염도 조절이 안 된 것이다. 방부제를 쓰지 않았기에 염도의 미세한 차이가 제품의 품질과 직결됐다.

“지금 저희 청국장이 매장에서 인기가 많아요. 바실리스균이 많아서 그라지요. 그란디 처음에는 실패투성이였어요. 집 아랫목에서는 그러코롬 그 균이 잘 나오는디, 공장에서는 안 되는거요. 그때 느꼈지요. 아~ 감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그래서 염도 연구를 했어요. 콩 40킬로에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되는지. 이제는 그 비결을 밝혔죠잉. 이거 해결하는데 한 3~4년 정도 걸렸어요.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을 정도요.”


실패에서 찾은 자연의 조화가 맛의 비결

콩나물과 두부를 만들 때도 실패를 거듭했다. 콩나물이야 그냥 물만 주면 잘 자랄 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방부제나 성장 촉진제를 쓰지 않다 보니, 조금만 관리를 못해줘도 상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솔잎, 황토, 재이다. 솔잎과 황토, 재를 혼합해서 물을 줬고, 이것이 소독 역할을 했다. 이렇게 만든 콩나물은 일반 콩나물처럼 통통하진 않지만, 삶으면 고소한 맛이 난다.

두부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으니, 모든 것을 자연의 조화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노하우는 어디 가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다양한 배합을 통해 알아내야만 했다. 처음엔 두부도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지 않았고, 많은 양의 두부를 팔지도 못하고 내다 버렸다. 다행히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 끝에 제대로 된 두부를 만들게 됐다.

두부 포장 기계. 한솔 두부는 몇몇 공정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에 의존한다. 기계로는 고소한 두부 맛을 내기 힘들어서다

한번은 두부 만드는 기계를 사기도 했다. 대형 두부 공장에서나 쓰는 것인데, 고소한 맛이 나지 않고 싱거운 맛이 났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기계를 철수시켰다. 이 때문에 1억 원의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이 같은 결정에 후회는 없다. 지금 한솔의 두부는 거의 대부분 사람의 손을 거쳐 나온다. 덕분에 고소한 맛의 한솔 두부를 많이 생산하기는 힘들다.

한솔의 제품들에는 일체의 인공물질이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 재료도 100% 순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만을 고집한다. 콩은 계약 재배하는 순천 농가에서 전량 공급받고 있으며, 여기에 지하 120m 암반수를 사용한다. 하지만 국산 만을 고집하다 보니, 원가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사업 초기에는 IMF 한파까지 맞는 바람에 판로가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저러다 얼마 못 가고 완전 망할 거라고 했죠잉. 국산콩과 수입콩의 가격 차이가 3배에서 5배까지 나는디, 콩 작황마저 안 좋으면 원가 부담이 상당하니께. 그런데 우리 애 아빠가 고집이 엄청 나부러요. 누가 아무리 뭐라 해도 무조건 국산만을 고집했죠잉.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알아주대요. 저 집은 절대 국산밖에 안 쓴다, 저 집만 가면 진짜 두부, 진짜 콩나물을 먹을 수 있다고. ”


무조건 우리 농산물! 고집스러움이 통하다

한솔의 고집이 통했는지, 어려움을 겪던 한솔에 주문이 하나 둘 들어왔다. 전라남도 장성의 유기농업 단체인 한마음공동체에서 한솔의 문을 두드린 것. 처음엔 콩나물만 납품했지만, 반응이 좋자 된장과 고추장 등 대부분의 제품을 공급하게 됐다. 아들 학비가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다.

2년 전에는 ICOOP생협연대에 된장과 고추장을 납품하게 됐다. 몇 년 동안 순천 생협 회원들이 한솔의 장류를 생협연대에 추천한 게 계기가 됐다. 4년 전에는 순천지역 학교 급식 식자재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순천 지역은 시가 급식 보조금을 지원해 학교 급식에 국산 농산물만을 쓰게 됐는데, 한솔의 단감 고추장 등이 학생들의 급식 재료로 쓰이게 된 것이다.

한솔영농조합은 우리 아이들이 전통을 맛보고 경험할 수 있게 체험학교인 교육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입소문과 웰빙 바람으로 한솔의 경영은 이제 숨을 돌릴 정도가 됐다. 직원도 12명까지 늘어났고, 메주 생산에 바쁜 겨울철에는 일손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와중에 한솔은 몇 년 전부터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교육농장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전통 장류를 만들어 먹이는 것은 물론 만드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것을 알게 하고 싶어서다.

교육농장은 겨울철에 주로 열린다. 아이들 손을 잡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석자들은 전통 방식으로 메주 만드는 법 등을 체험하고, 자기가 만든 메주나 간장, 된장 등을 가져간다. 뿐만 아니라 ‘친환경 농산물과 GMO(유전자 조작 농산물)’나 ‘콩으로 만들 수 있는 우리 음식’ 같은 교육을 함께 진행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조영식 대표와 양정님 관리이사. 서로가 한솔영농조합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처음에는 정신 없이 일하기에만 바빴어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을 정도로 힘들었죠잉.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이제는 무슨 일이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없을 정도에요. 그래서 그동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는디, 이제는 더불어 사는 재미를 느끼려 합니다. 더불어 사는 장을 만들고 그들과 호흡하고 거기에서 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지요.”

한솔영농조합의 조영식, 양정님 부부가 꿈꾸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장학재단을 만드는 일이다. 시골에는 결손 가정이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런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는 것이다. 작은 돈이지만 인근 지역 초등학교 2곳에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다. 앞으로 중고등학교까지 장학금 후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언론홍보대행사 커런트코리아에서 홍보AE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