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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서울의 25개 구(區)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곳은 어디일까. 나도 며칠 전에야 그게 서초구라는 걸 알았다. 관선 서초 구청장에 이어 민선 3기를 마치고 지난 2006년 퇴임한 조남호씨가 희망제작소 포럼 강연에서 그 연유를 말하는 것을 듣고 웃음이 나왔다.

서초구는 원래 경기도 과천군 땅이었으나 서울에 편입되면서 강남구의 일부가 됐다. 1988년 강남구를 분할하는 서초구 창설 작업이 시작됐는데 서울시 고위간부였던 조남호씨가 창설준비단장에 임명되었다.

그때 강남구청에서는 평지는 자기네 구에 존치시키고 산지는 떼어내어 서초구로 떠넘기려했다. 조씨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산을 기꺼이 받았다. 그는 스스로 산을 좋아했고 또 내심 ‘서울의 생명은 산’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왜 강남구청은 산을 버리려 했을까. 1980년대 산은 공직자들에게 골치 아픈 존재였다. 산불 때문이다. 산불을 잘못 처리하면 구청장 목이 달아나던 시절이었다. 분구된 후 “강남구와 서초구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서초구청 직원들은 “강남구청은 주말에 쉬고 서초구청은 주말에 산으로 출근한다”는 대답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우면산 90%가 사유지


그는 관선 민선 합쳐 15년을 서초구청장으로 일했고, 그 제일의 업적을 ‘우면산 지키기’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면산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환경보전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나도 구청장이 그 중심에서 서 있었다는 것은 이번 강연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그의 우면산 사랑은 거의 열성 환경운동 수준이었다고 할만하다.

면적 100만평의 우면산은 약수터가 25개가 산재한 시민의 휴식처인데, 문제는 꼭대기의 군사시설을 제외한 90%의 땅이 사유지라는 사실이다. 그가 1994년 관선 구청장으로 부임하자 책상에 수북이 쌓인 서류 중에 우면산에 유류저장시설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의 정유사 신청서가 있었다. 전임 구청장이 이미 사업 인가를 내어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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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우면산 남부순환로 근처에 약 1000평의 부지를 가진 이 정유회사가 유류저장시설을 지으면 유조차가 밤낮없이 예술의전당 인근에 장사진을 칠 것이고, 더욱이 약수터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

조씨는 본인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거대 정유회사를 상대로 도전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법적으로도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조씨는 한 가닥 희망을 주민에게서 찾았다. 그는 부임한 후 주민들의 욕구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우면산과 청계산이 있어 서초구에 산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정유회사는 곧바로 구청의 조처가 부당하다며 ‘신청반려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에서 서초구청은 모두 패소했다. 아무도 대법원에서 이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씨는 변호사를 통해 주민 7000명의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조씨가 민선구청장에 당선된 얼마 후 대법원은 주민의 환경권을 인정하는 서초구청의 승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두 번째 우면산의 위기가 찾아왔다. 정유사가 다른 지주를 움직여 유류저장소의 꿈을 이루려고 했다. 지주는 법적하자가 없는 토지거래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그 허가를 내주면 정유사가 유류저장소를 건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조씨는 그 지주를 설득하고 감복케하여 결국 지주의 마음을 자연보전 쪽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세 번째 위기는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관련법 개정이었다. 법이 개정되면 우면산은 언제고 건축이 가능한 곳으로 될 판이었다. 정유사가 노리는 호기였다. 조씨는 우면산을 영구보전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착안한 것이다. 시민들이 돈을 모아 보호하고자 하는 지역의 요지를 사들임으로써 개발을 막는 시민운동이 내셔널트러스트다. 그는 법조계 학계 종교계 교육계 예술계 등 지역내 각계 인사들을 접촉하여 재단법인 ‘우면산 내셔널트러스트’ 기구를 만들었다.


관청이 시민운동 지원·주도


원래 자연보전운동은 관청이 개발을 허용하고 시민단체가 이를 반대하는 것인데, 우면산 보호는 아주 색다른 접근이었다. 관청이 시민운동을 지원하여 자연을 보전했다. 회원 1만8000명이 15억원을 모았고 결국 정유사도 우면산 살리기에 협조하고 기여함으로써 사태를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했다.

조씨는 이렇게 말했다. “15억원 중에는 코묻은 돈도 많았다. 우면산 내셔널트러스트가 생긴 후 아주 달라진 현상 중 하나가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이 우면산에서 꽃을 꺾는 행위를 못하도록 앞장선다는 것이다. 일종의 주인의식이다.”
경제를 살리는 길이 환경규제를 풀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드는 시점에서 조남호 전 구청장의 ‘우면산 보전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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