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덕희망원정대장의 남해 도전기! ‘인간관계 신생아’인 중년여자와 간식말고는 도통 관심 없는 몽덕대장 과연 남해 중에서도 남쪽 끝에서 동네책방으로 안 망하고 연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몽덕 대장은 손님을 내쫓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 달에 한 번 전합니다.
안 망할지도 몰라, 남해 동네책방⑤
2014년 6월 11일, 쇠사슬을 둘러 서로 몸을 엮은 밀양 할머니들은 산속 농성장에서 끌려 나왔습니다. 천막은 부서졌습니다. 고도 400~500m 높이에 있던 그 천막에서 할머니들은 서로에게 바싹 붙어 웅크리고 잠들었습니다. 765kV 송전탑 건설에 끝까지 반대했던 할머니들입니다.
이 할머니들은 이 산의 주인이 풀이고 짐승이고, 앞으로 살아갈 아기들이라 생각했습니다. 밤이면 냉기가 굽은 척추를 타고 기어올랐고, 바람과 짐승 소리가 섞였습니다. 그런 송곳니 같은 밤엔 80년을 산 할머니들도 두려웠습니다. 그런 밤, 천막 밖에서 빛이 들어옵니다. “우리 왔어요.” 연대자들이었어요. 바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 맛있는 것은 먹어본 적이 없는 거 같은 기라.”(책 <전기, 밀양-서울> 중에서)
김영희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2014~2019년 밀양 탈송전탑·탈핵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쓴 이 책을 보면, 할머니들과 연대자들은 이 산속 천막을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이 천막에 화목난로를 놓고 양은냄비며 접시를 들였습니다. 용식이라는 개가 사는 집도 있었어요.
그 천막에서 사람들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고등어를 함께 구웠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막히게 좋았던 고등어 맛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곧 경찰이 들이닥칠 줄 알면서도 찌그러진 양은 냄비를 반짝반짝 닦았습니다. 농성장이 부서지고 난 뒤, 이 낡은 세간살이들을, 천막이 섰던 자리의 낙엽을, 할머니들의 맨살에 닿았던 쇠사슬까지 고이 모아 간직했습니다.
수도권의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전기를 올려보내려고 밀양의 100여가구는 오늘도 윙윙 울리는 송전탑 아래 삽니다. 마을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할머니들에게 모욕은 일상이 됐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연대자들은 할머니들 곁에 있습니다. 함께 바느질을 해요. 호두껍데기로 머리를 만든 밀양할매 키링, 냉이꽃을 수놓은 에코백, 벚꽃이 핀 손수건 등을 만듭니다. 이들은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돌며 <전기, 밀양-서울>을 함께 읽는 탈탈낭독회를 엽니다.

울다,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탈탈낭독회
천막농성장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다리 근육을 키운, 바느질로 손가락에 군살이 박힌 여자들이 지난 11월 은모래마을책방에 왔습니다. 남해 어린이책시민연대 사람들이에요. 남해부터 밀양 산속 농성장까지 오갔던 이 여자들은 당시 대중교통이 끊기면 ‘백악관 모텔’에서 일박하고 집에 갔다며 웃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30년지기입니다. 한 여자가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다른 여자는 꽃게를 삶았습니다. “저 언니가 그 게 다리를 자기 입으로 깨서 줬잖아.” 책을 쓴 김영희 교수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왔습니다. 남해에서 탈탈낭독회를 하러 모인 날이에요.
경기도 용인에서 올해 남해로 이사 온 은하(별명)가 먼저 낭독했습니다. 읽다 말고 자꾸 고개를 젖힙니다. 머뭇거립니다. “수도권에서 살 때, 전기 팡팡 썼어요…. 그게 죄스러운 일인지…. 몰랐어요…. 할머니들이 살던 마을을…. 파괴하는 일인지…몰랐어요.” 그가 울먹이자 옆에 앉은 콩풀(별명), 작고 동그란 여자가 따라 울고, 그 옆에 “꽃 한 송이만 봐도 행복한데 왜 꽃 한 송이 볼 여유가 없을까” 한탄했던 다른 여자가 산속 농성장에서 함께 하지 못했다며 따라 울고, 그러자 저도 울고, 다들 울기 시작했습니다. 노안에 눈물까지 고여 더듬더듬 다음 낭송을 이어가던 콩풀이 물기 어린 눈망울로 진열해 놓은 검은 원피스를 훔쳐봅니다. 검은 원피스엔 바느질연대가 수놓은 분홍색 꽃 한 송이가 피어있습니다. “남해에 내려와 소비를 줄이고 자연과 더불어 자급자족하려고(훌쩍) 했는데(훌ᄍᅠᆨ) 자꾸 저 원피스에 눈이 가고(훌쩍)”
그러자 옆에 ‘꽃 한 송이 만족’ 여자가 웃고, 그 옆에 은하가 웃고, 그 옆에 꽃게를 이로 깨는 여자가 웃고, 그 꽃게의 하얀 속살을 쏙쏙 받아먹던 여자가 웃고, 백악관 모텔을 기억하는 여자가 웃고, 다들 웃기 시작했습니다. 콩풀이 검은 원피스를 입어봤어요. 다들 “딱 네 옷이다. 진짜 예쁘다” 난리였습니다. 울음과 웃음, 입을 동그라게 오므리며 시작하는 낱말, o으로 만들어진 이 낱말들은 수평으로 사람을 잇습니다. 그 동그라미 안쪽은 이상하게 따뜻해서 11월 스산한 남해의 바닷바람마저 다정하게 만듭니다. 한 남해 여자가 할 말이 있다면서 일어섰습니다. 노래를 했어요.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 “어두운 비 내려오면/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탄핵소추안 가결된 날, 강강술래
그리고 일주일 뒤,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그 밤, 희망제작소 단톡방이 계속 울렸습니다. 처음엔 희망제작소에 비상이 생긴 건 줄 알았어요. 그 뒤 남해읍 사거리에 매일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20여 명이 사거리 네 귀퉁이에 서서 노래했어요. 저는 지드래곤 노래를 듣고 곁에 선 사람에게 ‘아이유 노래냐고’ 물으며, 속으로 ‘역시 떼창엔 소방차지’라고 생각하며, 세대를 인증했습니다.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던 날, 개표 두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읍에 모였습니다. 분홍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초등학생들이 춤을 췄어요. 같은 반 남자아이들은 놀리는 건지 응원하는 건지 여자아이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4학년 0반 0번 00!” 그리고는 쑥쓰러워 낄낄거립니다. 어묵과 계란, 떡이 돌았습니다. 탄핵 찬성, 204란 숫자를 듣고 곁에 있던 사람이 누구건 끌어안았습니다. 앞 사람 어깨에 손을 얹은 기차는 강강술래로 바뀌었습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원을 그리며 돌았습니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를, 우리는 울게 두지 않지, 그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차놀이를 하지, 칙칙폭폭 하늘에 수많은 o들을 올려보내지. 웃음의 o, 눈물의 o.

그 꿈을 처음 꾼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반복해서 꾸었어요. 어린 저는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집에 가려고 합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까 불안합니다. 이 꿈을 하도 자주 꿔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압니다. 점점 살풍경으로 변합니다. 낭떠러지에 도착합니다. 낭떠러지 저쪽 끝에 낡은 아파트가 서 있습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는 전선이 걸려있습니다. 저는 그 전선을 붙들고 낭떠러지를 건넙니다. 죽기 살기로 맞은 편 끝에 도착했는데, 우리 집이 아닙니다. 낡은 아파트는 폐가였어요.
11월 동그란 여자들과 함께 글을 읽고, 12월 타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큰 동그라미를 만들면서, 어쩌면 그 꿈에서 저는 집에 도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과 폐가에 찌그러진 양은 냄비를 들이고, 개집도 만들고, 화목난로도 세워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인다면 말입니다.
글·사진: 김소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