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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우리나라는 역동적인 나라답게 뉴스가 넘쳐난다. 뉴스가 사회생활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따라 국민 모두 뉴스 용어를 학습할 때도 있는데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사건이나 미국 쇠고기 광우병 파동과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면 국민들이 생물학과 의학 전문 용어를 줄줄 말하는가 하면 전문가들이 일반 국민의 순도 높은 학습에 밀려 답변을 못하고 쩔쩔매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 사회는 이처럼 특유한 형태로 지식정보를 유통하고 소비한다.

한나라당이 2008년 9월 12일 자정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해당 상임위 소속이 아닌 다른 의원을 교체 투입하는 ‘사 ? 보임’이라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는 바람에 의결 정족수가 모자라 예결위 표결이 무효가 됐다. 뉴스는 예결위 표결을 해설하면서 국회 상임위나 특위 위원을 교체하는 절차를 말하는 특이한 국회 용어인 사 ? 보임’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사 ? 보임’은 사임과 보임을 줄인 말로 위원이 선임된 후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위원회를 교체하거나 변경하는 것으로 국회법 48조 1항에 규정하고 있는데 정확한 국회법 용어는 ‘위원의 개선(改選)’이다.


‘사 ? 보임’은 의원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국회의원이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사임한 횟수는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15대 국회의 전반기와 후반기에 사임한 횟수는 440건과 584건이다. 16대 국회에서도 전반기 820건에 후반기 339건이고, 제 17대 국회에서는 전반기 250건이고 후반기에 243건이다. 보임한 횟수는 사임한 횟수와 비슷하다. 가장 ‘사 ? 보임’이 적은 17대 국회에서도 모두 493건의 사임과 같은 수의 보임을 하였다.

이번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추경안 투표처럼 국회의원이 자기가 소속하지 않은 위원회에 갑자기 ‘사 ? 보임’절차를 밟아 들어가면 업무를 파악하기 어려우니 거수기 일만 하게 된다. 이런 ‘사 ? 보임’은 정당의 지도부가 정치 현안이 걸려 있는 위원회로 저격수 의원을 보낼 때도 자주 쓴다. 헌법기관이라고 하는 국회의원이 거수기에다 저격수나 방패막이로 동원되고 있으니 국회의 수준이 높아질래야 높아질 수 가 없다.

‘사 ? 보임’만 문제가 아니다. 국회는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눠 2년마다 상임위원회 위원을 변경한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원하는 상임위원회는 국토해양위원회(17대 국회의 건설교통위원회)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토건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건설 산업의 비중이 크고 지역구의 건설민원도 많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서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변경을 보면 전반기에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원 13명 중 하반기에 계속 건교위를 한 의원은 4명이고, 한나라당은 11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의원들이 너도 나도 건설교통위원회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바람에 전반기에 있던 의원이 계속 눌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서 나름 인기 있는 문화관광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를 비롯한 다른 위원회들은 건설교통위원회보다 사정이 나으나 후반기 들어 계속 같은 상임위원회를 하는 의원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인기 상임위는 2년 이상 하기 어려워


국정을 다루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국토해양위원회를 보면 소관부처가 국토해양부를 비롯한 3곳, 시장형 공기업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비롯한 4곳, 준시장형 공기업이 한국토지공사를 비롯해 9곳,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 한국철도시설공단을 비롯한 7곳, 기타공공기관이 울산항만공사를 비롯한 17곳으로 모두 40곳이다. 어느 곳 하나 덩치가 작지 않고 조직과 업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국토해양위원회가 맡고 있는 법률도 묵직하다. 국토기본법을 비롯한 국토정책 관련 법률이 24개, 주택법을 비롯한 주택토지 관련 법률이 20개이고, 건설수자원 관련법률이 12개에 해양정책 관련법률은 공유수면관리법을 비롯해 16개, 물류항만 관련 법률이 33개, 교통정책 관련 법률이 도시교통정비촉진법을 비롯한 19개, 항공철도 관련 법률은 항공법을 비롯해 17개다. 모두 141개 법률이고 국민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어느 법 하나 소홀하게 볼 수 없다.



”?”이처럼 상임위 안에 많은 기관과 복잡한 법을 두고 있으니 4년 동안 같은 상임위원회를 해도 업무에 정통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의원이 한 상임위에서 2년만 있게 된다면 업무보고를 받고 국정감사와 예산결산업무를 치러 일을 할 만하면 자리를 옮기게 된다. 위원이 2년마다 대폭 바뀐 17대 국회의 건설교통위원회가 아파트값 폭등 같은 민생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의정보고서에 지역구 민원 조금 처리한 일들을 올리는 정도로 상임위 활동을 마치게 된다.


‘보좌관의 질’이 ‘의원의 질’이다


사정이 이러니 국회에는 ‘보좌관의 질이 의원의 질이다’란 말이 돌게 된다. 한 상임위 업무에 정통한 보좌관이 의원을 잘 보좌하면 그 의원의 질의나 정책이 살게 되고, 그렇지 않고 보좌관의 수준이 떨어지면 의원의 의정활동도 빛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정말 의원으로서는 듣기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이다.

의원이 업무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상임위 질의를 하면서 머뭇대거나 얼굴에 진땀을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렇게 의원이 업무를 잘 모르면 장관과 차관을 비롯한 관료들은 태연하게 사실을 숨기거나 왜곡해서 말하기도 한다. 관료들이 답변을 틀리게 하거나 잘못 답변해도 의원의 송곳 같은 추궁이 뒤따르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관료들이 국회를 겁낼 리 없다. 그렇게 되면 관료들에게 의원들은 민원 몇 개 해결해주고 지역구 사업에 예산 몇 푼 집어주는 것으로 무사통과하는 간편한 검문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잠시 있더라도 국토해양위원회 같은 위원회를 좋아하고 환경노동위원회와 같은 상임위는 피하고 피하다 마지못해 일한다. 18대 국회에서 희망상임위 1지망으로 환경노동위원회를 택한 의원은 299명 중 강성천, 이화수, 박준선(한나라당), 김상희(민주당), 홍희덕(민주노동당) 5명에 불과하다.


피하고 싶은 상임위가 ‘정치 블루오션’이다


영화 ‘자이언트’에서 텍사스의 가난한 일꾼인 제트(제임스 딘)는 물려받은 작은 땅을 두 배에 사겠다는 대농장주의 제안을 뿌리치고 묵묵히 일하다 그 땅에서 기름이 터지면서 마침내 인생 역전을 맞는다.
이처럼 상임위를 정할 때도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서 성공한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환경노동위원회에는 훌륭한 국정과제가 많다. 지금 대기와 수질, 폐기물을 비롯한 환경산업은 새로운 변화 코드로 뜨고 있다.

다국적 에너지기업인 로열더치셀은 2005년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향후 5년 안에 전 세계 환경사업 시장 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환경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선정해서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비등점에 달한 900만 명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부가 추구하는 선진통상국가나 성숙한 세계국가 같은 목표는 공염불이다. 국제경쟁력은 국내경쟁력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나라 안의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는데 국제경쟁력을 키운다고 하는 한미 FTA와 한-EU FTA가 무슨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의원이 피하고 싶은 환경노동위원회와 같은 상임위가 경쟁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정치 ‘블루오션’이고 무궁무진한 정치 경제 아젠다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상임위에서 오랫동안 다듬은 의원의 경쟁력이 곧 나라의 경쟁력이다.


*이 칼럼은 여의도 통신에 함께 게재합니다.


”사용자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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