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 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시골 도로를 지나 도착한 마을 공터엔 도시에서 온 차들로 빼곡했다. 마을 입구부터 하나 둘 모습이 보이던 사람들은 마을회관 주변에 이르자 짝을 지어 모여 있었다. 어른들을 따라 온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마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은 들떠 보였고, 도시에서 늘 보아오던 그것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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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골마을을 도시민들이 찾게 된 이유

한적한 시골마을의 풍경을 여기서는 찾을 수 없다. 생의 활력이 사라진 적막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란스럽고, 북적거리는 사람 냄새가 정겹다. 마을 주민 상당수가 노인들로 구성된 평범한 시골마을이지만 연일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길을 걷는 노인들도, 밭일 나가는 아낙들도 이러한 소란이 싫지 않은 눈치다.

충청북도 음성군에 맞닿은 경기도 이천의 작은 마을 ‘부래미’는 농촌체험으로 특화된 조금은 독특한 시골 마을이다. 마을을 찾는 도시민들이 주민들의 논과 밭을 자신의 땅처럼 일구고, 수확의 기쁨을 얻어가는 곳이다. 그러나 기쁨을 얻는 이들은 도시 사람들만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 역시 쉴새 없이 마을을 찾는 도시민들을 맞아 함께 사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어르신들이 이제 사는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예요. 처음엔 주민들이 소득 증대에 관심이 높았는데, 이제는 농촌체험 사업을 하면서 사는 재미가 생겼다고들 하세요. 농사만 짓고 사는 것보다 도시민들과 같이 일하고 이야기 나누는 게 좋다는 거죠. 처음에 비해 주민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어요. 수입을 따지기 보다 보람을 가지고 하는 것 같아요.”

부래미마을의 총무 이상택씨는 농촌체험을 통해 주민들이 사는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분들이 도시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일상 속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농촌체험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시켜 나가는 큰 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부래미마을 역시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지역에 특별한 관광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도시민들의 발걸음은 거의 없었다. 명절 때가 돼야 고향을 찾는 이들이 있을 뿐, 평소에는 주민들끼리만 서로 왕래하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또 농민들 대부분이 벼농사를 짓는 터라 특별히 농가소득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시작된 농촌체험 사업을 통해 마을의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부래미마을의 농촌체험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마을을 찾는 도시민들의 수가 늘어난 것. 주말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마을 곳곳의 논밭에서 도시에서 온 어른들과 아이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농사 짓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제는 농촌체험을 하지 않는 월요일의 한적한 마을 풍경이 오히려 어색해졌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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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1,000여 명의 도시민들이 찾는 마을

농촌체험 사업의 시작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에 ‘부래미’라는 마을의 지명을 상표 등록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주민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브랜드화해서 판매하면 좀 더 잘 팔릴 것이란 생각에서 상표 등록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도시 사람들을 마을로 불러모아 농촌체험을 하게 하자란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농산물을 먹어주는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 아니겠어요? 도시민들을 우리 마을에 직접 오게 해 ‘부래미’ 농산물을 판매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농촌체험을 통해 직접 농산물을 경작하고 수확하게 되면 우리 농산물을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될 거란 판단에서죠.”

마을 주민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평생 농사만 짓던 농민들에게 농촌체험 사업이란 매우 생소한 일로 느껴졌던 것. 과연 그런 것이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또한 도시민들의 잦은 왕래가 평온한 마을의 풍경을 해치지는 않을까, 농사 짓는데 방해는 되지 않을까란 걱정도 앞섰다.

“마을 공동으로 사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강제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마을 주민들 각자가 선뜻 동의하지 않으면 시작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농촌체험 사업을 시작한 2003년에는 1년 동안 마을회관에서 매주 모였어요. 사업구상을 해보자는 차원이었죠.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회의가 열리는 날엔 함께 풍물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어요.”

마을 공동의 이익을 위한 일이기에 주민들의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농촌체험 사업이 초기인지라 아직 마을을 찾는 도시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 안 되고,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아 혼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농촌체험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수도 늘어나게 됐다.

지금은 대략 일주일에 천명 이상이 마을을 찾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요새 같은 수확철에는 평일 200여 명, 주말 300여 명의 사람들이 농촌체험을 다녀 간다.
”?”입소문으로 시작된 부래미 농촌체험

사업 초기에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마을 내에 농촌체험을 경험해 본 사람도 없었고, 누구 하나 선뜻 명확한 길을 제시하는 이도 없었다. 그래도 일단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체험사업이 훌륭해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면 찾아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우선 마을 알리기에 주력하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일은 ‘고향방문 행사’였다.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사는 출향 인사들을 불러모아 농촌체험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다. 자신들의 터전에 사는 지인들에게 마을의 사업을 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출향 인사들은 흔쾌히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자신들의 몸은 비록 고향을 떠나 있지만, 마을을 위한 일이기에 자신의 일처럼 나섰다.

“그 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자신들의 직장에 가서 부래미 마을을 알리고, 직접 직장 동료들을 우리 마을로 모시고 오실 정도였어요. 그러면서 한 가족, 두 가족 늘어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온 거에요. 그분들이 부래미 마을 전도사 역할을 하신 거죠.”

부래미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 늘어나는 방문객 수에 크게 고무됐다. 그러나 농촌체험 그 자체가 방문객들에게 매력적으로 인식되지 않으면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을 찾는 도시민들이 체험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한번 찾은 방문객들은 놓치지 않고 부래미 마을의 매력을 알리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은 방문객 증대로 이어졌다. 마을 주민들의 환대를 받은 방문객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낸 덕분이다. 지금의 방문객 현황을 보면 다른 사람의 소개를 받아서 마을을 찾는 경우가 많다. 마을에 찾아온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부래미 마을 홍보에 나선 결과다.

주민 70여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농촌체험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주민들이 농가 소득 외에 추가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생겼다. 농사 체험 참여를 통한 수익이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민박이나 공동 식당, 공동 숙소 등 다양한 공간에서 수익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소득도 예전보다 늘어났다. 대략 4~50%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기존의 소득이 워낙 낮은 터라 아직 많은 돈은 안 된다. 그래도 우울한 소식만 들려오는 농촌의 현실을 생각하면 앞날은 밝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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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고 아름다운 부래미(富來美) 마을

부래미마을의 옛 지명은 불암리(弗巖里)이다. 마을에 부처 모양에 돌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오랜 세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부래미’라는 이름으로 변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농촌체험을 시작하고 나서 ‘부래미’의 한자 이름을 부자 ‘富(부)’ 올 ‘來(래)’ 아름다울 ‘美(미)’로 지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 됐으면 하는 소망에서 지은 것이다.

부래미 마을의 새로운 한자 이름처럼 마을 풍경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마을을 찾는 도시민들의 수가 늘어나자, 방문객들의 체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주민들이 다양한 농작물 경작에 나섰기 때문이다. 벼농사와 일부 과수 농사 외에 별다를 게 없었던 예전의 마을 풍경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계절별로 진행되는 농사체험은 딸기와 감자, 옥수수, 고구마, 포도, 배 등 다채롭다. 3~5월에는 딸기, 7월에는 옥수수, 8~9월에는 포도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모내기와 야생화 심기 체험도 있다. 마을 식당에서 함께 하는 식사시간에는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한 시골 밥상에 자신이 직접 수확한 쌈채소를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체험은 당일 코스는 물론 마을 민박과 연계한 1박2일 코스도 가능하다. 참가비는 1인당 2만원(어린이 1만9천원)이며, 자신이 직접 수확한 농작물은 마을에서 준비한 포장용기에 담아갈 수 있다. 농사체험 외에도 인절미 만들기, 계란 꾸러미 만들기 농촌에서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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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농민들과 도시민들이 함께 가꾸는 공간

농촌체험 사업의 시작은 농가소득 증대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주민들이 느끼는 이익은 그 이상이다. 도시민들이 마을에서 느끼는 행복이 그들에게 그대로 전염됐기 때문일까? 농촌체험이 몰고 온 마을 모습의 변화처럼 주민들 역시 변화하고 있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다들 자신의 농사에만 관심이 많았는데, 요새는 마을을 먼저 생각하는 게 커졌어요. 그게 이 사업을 통해 얻은 큰 성과라고 봐요. 마을 사업이란 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힘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마을 총무 이상택씨의 말이다. 사무장 최형두씨도 이러한 변화에 동감한다. 그는 아울러 현재 마을의 달라진 모습은 부래미 마을이 농민과 도시민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화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제 부래미 마을은 주민들만의 공간이 아니에요. 도시민들과 농민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내내 마을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부래미는 이제 더 이상 마을 주민들만의 공간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농민들과 도시민들이 공존하는 공간. 그 공간에 대한 책임을 이제 마을 주민뿐 아니라 이 곳을 찾는 모든 방문객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농민들은 도시민들이 계속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방문객들 역시 농민들이 마음껏 농사 지을 수 있도록 환경을 아껴줬으면 합니다. 마을 지킴이의 역할은 이제 주민들만의 몫은 아닌 것 같아요. 마을을 찾아주시는 모든 방문객들이 우리 마을을 자신들이 살아가는 터전처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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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현재 IR 대행사 아이피알파트너즈에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