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지금, ‘SDS 인물열전’이 펼쳐집니다. 소셜디자이너스쿨(이하 SDS) 동문으로 구성된 취재단이 500여 명이 넘는 SDS 동문 중 교육 수료 후 활발하게 소셜디자이너로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부터 사회혁신을 위한 원대한 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이번 SDS 인물열전은 SDS와 인연을 맺은 희망제작소 연구원을 만나보는 1+1 특집(?)입니다^^ 9기 SDS 수료 후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변신한 장우연 동문과 함께 향긋한 차를 나누며 SDS, 그리고 희망제작소와의 인연을 들어보았습니다. 그의 부끄러운 고백(?) 속으로 빠져들어 보시죠~
 
”사용자이름도, 얼굴도 희미한 동문이 희망제작소에 입사했다는 소식에 그를 꼭 한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필자도 과거에 희망제작소에 입사지원을 했고, 최종 후보에도 못 오른 끔찍한 경험이 있다. 그 기억이 부끄러워서 한 번도 입밖에 못 내고 끙끙대며 9기 SDS 수업을 마쳤는데, 이후 반갑지만 부러운 소식을 접한 것이다. “9기 장우연씨가 희망제작소에 들어갔대~”

회사원 장씨는 왜?

장우연 동문은 현재 희망제작소 뿌리센터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전에는 건축 전공자로 건축설계 사무소, 대학원, 건축 관련 연구소에 근무하며 5~ 6년의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왔다. 그러던 중 방향을 틀어 일반 기업이 아닌 비영리단체에 입사한 것이다. “친구들은 대부분 건설회사와 같은 대기업에 갔지만, 저는 처음부터 생각이 좀 달랐고요. 설계사무소에서 2년정도 일했지만 제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뿌리센터? 이름이 생소하지만 왠지 정이 가는 느낌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뿌리센터에서는 농촌과 도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을만들기 · 커뮤니티비즈니스 · 사회적기업 · 로컬푸드와 관련된 일을 해요. 예를 들어 마을만들기는 마을 전체를 부수고 새로 지어 기존의 주민이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재건축이나 재개발과는 달리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자기가 사는 곳에 계속 살면서 마을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해 나감으로써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현재 장 동문이 뿌리센터에서 하는 일은 그가 몸 담았던 건축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늘 관심을 가져왔던 일이라고 한다. 요즘엔 울산에 자주 내려간다.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도농복합형 도시인 울산에서 마을 활성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그는 지역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학교 친환경 급식 식자재로 공급하고, 지역 기업이나 기관 등 공급처를 확대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이러한 마을만들기는 자칫 지역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사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서울 중구를 포함해 수원, 시흥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주민과 함께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을 연구원 여럿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 보람되고, 또 그 결과가 사회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면 더욱 어깨가 무겁다고 말하는 순간, 그의 눈은 열정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면서 비교적 젊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본인이 진정 원하는 걸 깨닫고, 일을 찾았다는 점에서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SDS 첫 날의 기억

필자가 사실 인터뷰 중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의 입사 과정이다. “한 번에 붙었다” 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을 건넨다. “올 1월에 한번 고배를 마셨어요.“ 그도 필자처럼 올해(2011년) 초 희망제작소에 입사 지원을 했고 보기 좋게 미끄러진 경험이 있다고 한다.
 
“준비를 많이 못했어요. 희망제작소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박원순 전 상임이사만 겨우 아는 정도였어요. 면접을 보고 나서 깨달았죠. 준비가 부족했고 희망제작소에 대해 잘 모르고 지원한 것이 문제였구나. 그 이후에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찾아 봤지요.”

면접을 거친 후 오히려 희망제작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알기 위한 실천의 하나로 9기 SDS 과정(2011년 4월 개강)을 수강하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이가 돈을 쫒아 성공을 꿈꿀 때 사람들의 꿈을 함께 현실로 만들어가고자 비영리의 영역으로 들어온 그. 경제적인 부분은 조금 손해를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이해해 준 아내의 배려 덕에 지금은 매우 만족하며 직장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질문으로 장우연 연구원에게 SDS란, 그리고 소셜 디자이너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직장 생활의 따분함을 날릴 수 있는 활력소였어요. 9기 강연 중에는 특히 국민대학교 윤호섭 교수님, 유창복 성미산 마을극장 대표님, 박원순 전 상임이사님의 강의가 인상 깊었어요. 강의를 들을 때마다 깨우치는 게 있었죠.”
 
특히 첫날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단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라는 사실에서 오는 놀라움, 예전 회사에선 사회에 대한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눌 곳이 없었는데 함께 나눌 사람들이 생겼다는 기쁨, 거기에 아무 이야기나 던지면 호응해주는 동료들까지. “그 호응이 참 놀라웠어요. 뭔가 하나를 던지면 반응이 막 오니깐 더 하고 싶었고, 함께 고민하고 들어주는 분위기에 빠져든 거죠.”

장우연 동문이 생각하는 소셜 디자이너란 무엇일지 사뭇 궁금해졌다. 그는 “수업 한 번 들었다고 다 알 수는 없다”며  굉장히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거창한 의미나 비전이 아니더라도 열정을 갖고 긍정적으로, 주변의 작은 일부터 사람들과 같이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9기 수료일에 수업을 빠지는 바람에 9기 SDS 수료증도 못 받았다는 그. 9기 수료 후 수강생에서 연구원으로 변신해 희망제작소와 함께한 지도 벌써 5개월이 되었다고 한다. 과묵하고, 조금은 수줍어하는 그였지만 눈빛과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강렬하고 뜨겁게 느껴졌다.

터뷰를 마치고 보니 희망제작소가 원하는 인재상은 많은 걸 요구하는게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사회와 세상에 대한 고민, 일에 대한 열정, 하고 싶은 바를 위해서는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 정도가 아닐까?
 
[새해 기념 별책부록 사족 인터뷰]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되려면?

개인적인 궁금함과 재미로 시작한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서는 필자와 같은 시기에 희망제작소에 지원해서 현재 SDS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양소연 연구원이 답해주었습니다.

Q. 도대체 희망제작소의 채용 기준은 무엇인가요?
A: 글쎄요 뭐 일반 회사처럼 엄청난 기준은 없는 듯한데…다만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정말 솔직한 ‘자기소개서’를 썼어요. 뽑든 말든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을 토해내다시피(?) 썼으니까요. 이전의 경우엔 뽑히기 위해 얼마나 내가 능력이 있는지 적당히 부풀리기도 한, 조금은 작위적인 자기소개서를 썼다면 희망제작소에 지원할 때는 나의 솔직한 심정을 죽 썼어요. 다시 생각하니 엄청 부끄럽네요(웃음).  여기 오기 전에 IT 업계와 리서치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그런 영리 부문에서의 경력을 인정해 준 것 같기도 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할 때 인터넷 문화 관련 연구단체 같은 걸 만들어 활동했었는데, 그 경험도 도움이 된 것 같구요. 마지막으로 제가 나이가 많잖아요.(편집자 주: 그의 나이는 30대 후반 언저리다) 그런데도 경제적 처우 등 모든 것을 다 포기한 무모함을 높이 평가해 준 게 아닐까 싶네요.
 
Q. 기습 질문입니다. 후회는 없으세요?
A: 후회라기 보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라면…사회혁신센터는 주말 근무가 많은 편이예요. 한달 평균 1~2번은 주말 출근을 하니 집에 조금 눈치가 보이기도 하구요(웃음). 그래도 제작소는 3년 근무에 1개월 안식월 등 제도가 잘 갖춰진 편이예요. 토요일 근무하면 월요일에 쉬기도 하구요. 그런데 일이 많으면 그렇게 쉴 수 있나요? 시민과 함께 하는 게 일인데 시민이 쉴 때 일 해야 하는 점이 공교롭게도 제일 힘든 점이 되어 버렸네요.

Q. 제일 기억에 남는 SDS 수강생이 있다면요.
A: 젊은이들 틈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신 연세 많은 수강생 분들이 우선 기억에 남아요. 무엇보다도 열심히 참여해주신 분들이 기억에 남네요. 수업 중에 열심히 질문하고, SDS 카페에 글 열심히 남기시는 분들이요. 그분들에게서 는 정말 하고 싶어하는 열망 같은 게 많이 느껴졌어요. SDS를 연결 고리로 정말 무엇인가 하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들이요. 저 역시 이쪽에 발을 담근지 얼마 안되어서 그러한 열정과 꿈을 제대로 발휘하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죄송하죠. 그 열정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기획_ 인물열전 취재단 (SDS 9기 오호진, 양수진, 이재은, 김웅, 김남희)
취재_오호진ㆍ양수진
글_ 오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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