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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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일본의 싱크탱크를 가다” 기획 연재가 이번 주부터 격주 월요일 게재됩니다. 희망제작소에서 기획한 세계의 싱크탱크 조사는 2006년부터 일본, 미국, 독일에서 동시에 시작ㆍ진행되었습니다. 현재 미래자원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인 이영근 박사는 당시 츠쿠바대학(University of Tsukuba)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1996년 일본에 발을 디딘 후 일본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본사회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아왔습니다. 앞으로 본 연재는 일본 싱크탱크들을 소개하는 차원 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정보와 분석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일본의 싱크탱크를 가다 – 연재에 들어가며

사람이 어떤 중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그 사람의 위기관리능력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떻게 하면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하는 주제는 하나의 학문체계를 이룰 정도로 그 깊이는 심오하고 폭도 그만큼 넓다. 일반인들의 경우는 가까운 지인의 지혜를 빌리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는 점쟁이를 의지함으로써 판단이라는 무거운 짐을 전가하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결정된 사항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고,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생각(think)을 가장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

싱크탱크(think-tank)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문제에 대해 개개인의 깊은 사고(tank)를 결집하여(tank)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조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그만큼 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의 싱크탱크, 뭐하는 녀석들인가?

흔히 첫머리에서는 싱크탱크란 무엇이고, 어떤 사업을 행하는가 하는 등의 총괄적인 설명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일본의 싱크탱크와 관련해서는 싱크탱크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항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싱크탱크란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하고, 어떤 사업을 수행해야 하며, 또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논의가 일본의 싱크탱크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점들은 이른바 1차 싱크탱크 설립 붐이 일어난 지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일본 싱크탱크를 정면에서 분석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것은 이 연구가 얼마나 큰 어려움을 동반하는 일인지 짐작하게 한다.

필자는 1996년 일본에 발을 디딘 후 일본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사회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아왔다. 그들의 움직임은 결코 민첩하지 못했다. 서둘러 결과물을 내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 왔던 우리들의 생리에서 지켜본다면 일본의 대응이란 거북이 등에 커다란 수레를 지게하고 끌고 가는 것과 같았다. 일본의 번영과 일본인의 선택은 어떠한 상관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필자의 고민이 깊어간 것은 그 이후였던 것 같다.

희망제작소에서 기획한 세계의 싱크탱크에 관한 조사는 필자가 츠쿠바대학(University of Tsukuba)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200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일본 싱크탱크에 관한 연구는 미국, 독일 싱크탱크 연구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일본의 경우는 지리적으로 근접하다는 점 외에 다른 국가들과 달리 많은 측면에서 문화적 그리고 제도적으로 유사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에 관한 아무런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싱크탱크는 정치, 외교 등의 고차원의 정책만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다. 특히 일본 싱크탱크의 경우 이러한 고차원의 정치문제에 접근하는 싱크탱크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으며, 그 대부분은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영세적이라는 것은 사회적 영향력의 강약 측면에서 파악할 수도 있지만, 재정 확보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이른바 고차원의 정책을 취급하지 않는 싱크탱크가 존재하는데, 이는 대부분 종합연구소라 불리는 대기업 계열의 싱크탱크이다. 이들의 재정 규모는 수백억 엔에서 수천억 엔에 이르며, 정부로부터 많은 위탁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대체로 중앙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는 취급하려 하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한편 재단법인이나 독립행정법인 등과 같은 비영리 법인의 경우는 관료와 강한 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당 혹은 관료와 같은 방향성을 가진 정책을 연구 및 수립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의 싱크탱크가 이와 같은 설립형태에 따른 단순분류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이고, 여기에 본 기획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즉, 일본의 싱크탱크가 행하는 정책제언의 분야는 다양하며, 각 기관은 서로 강한 분야를 특화함으로써 질적으로 수준 높은 연구물을 창출해내고 있다. 고차원의 정책연구를 수행하지 않는 싱크탱크는 복지정책, 교육정책 혹은 국토개발정책 등에 강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으며, 그러한 연구의 축적으로 인하여 양질의 연구물을 담보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싱크탱크는 국책 연구기관이나 대기업 관련의 연구소, 그리고 대학부설 연구기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민간 싱크탱크는 여전히 위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민간 싱크탱크가 생존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부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부금에 대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민간 싱크탱크는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바탕으로 일본의 발전 및 민주주의에 상당히 기여해 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지금까지 4차례의 싱크탱크 설립 붐이 있었다. 1차 설립 붐은 1970년 전후, 설립 목표는 고도성장과 열도 개조, 2차가 1980년대 중반, 주된 주제는 금융계의 생존전략, 3차가 1980년 말경부터 1990년 초반, 주요 의제는 자치단체의 비약이었다. 그리고 4차가 1997년 전후, 민간 비영리 법인 독립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의 싱크탱크는 무엇이 다른가?

일본 싱크탱크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일본의 싱크탱크를 카테고리화하려 하고, 또 개념화하려 노력한다. 필자 자신도 그러한 노력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지만, 싱크탱크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싱크탱크를 연구하는 싱크탱크 종합연구개발기구(NIRA)의 조사보고서에도 여실히 나타나 있다. NIRA는 다음과 같이 정책연구기관을 파악하고 있다. (1) 정책과학, 사회ㆍ인문과학 등의 분야에서 정책연구를 실시하고 있을 것, (2) 원칙적으로 일본의 법인격을 가진 대상기관일 것. 이러한 기관을 NIRA는 ‘싱크탱크’로 보고 있지만, 일본에 존재하는 싱크탱크 전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사전에 NIRA와의 전화통화를 통해서 확인을 한 바가 있지만 여전히 석연치 못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NIRA가 어느 정도의 기간을 두고 일본 싱크탱크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를 진행해 왔는가 하는 점인데, 그들의 연구방법은 주로 앙케트에 의존하고 있는 바 연구의 치밀성을 놓고 볼 때 많은 부분에서 추가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은 1970년대 초반 싱크탱크가 장래 일본의 주요한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하고 민간의 발기와 정부출자를 통해 NIRA를 설립(1974)하였으며, NIRA는 30년 이상 일본의 싱크탱크 자체에 관한 연구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NIRA는 매년 ‘싱크탱크 연보’라는 이름으로 일본 싱크탱크 기관의 정보(연락처, 대표자, 설립경위, 연구자의 채용실적, 주된 연구분야 등) 등에 관해 조사한 내용을 단행본 형식으로 출판하고 있는데 이것이 일본의 싱크탱크를 파악할 수 있는 1차 자료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조사에 지나지 않으며 각 싱크탱크의 성격 및 연구동향은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는 각 기관들의 움직임을 적확(的確)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NIRA의 조사결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외에 달리 조사한 케이스가 없다는 점에 있으며, 이는 일본 싱크탱크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불모상태에 놓여있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싱크탱크 일반론’으로서 일본의 싱크탱크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싱크탱크 일반론에 관해서는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풍부한 연구실적이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이론적 토대는 일본의 싱크탱크를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미국과 일본 혹은 한국과 일본의 각 싱크탱크를 비교 연구하는 점에 있어서도 대단히 유효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풍부한 연결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익한 면이 있지만 정확한 조사와 자료를 토대를 근거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하나의 이론적 가설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선행연구는 비교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싱크탱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이론적 토대로서의 중요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싱크탱크, 고난의 연속

일본의 싱크탱크는 수많은 비난의 화살을 감수해야만 했다. 특히 경제 및 금융에 관해서는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지표의 움직임에 비례하여 비난의 강도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비판의 이유들이 열거되지만 진정한 싱크탱커(think-tanker)로서 행동할 수 없는 그네들만의 고뇌가 있다.

일본의 싱크탱크가 사용하는 돈의 99%는 카스미가세키(霞ヶ?)라고 하는 거대한 관료 싱크탱크가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자금력과 인적 네트워크에 대항할 수 있는 민간 싱크탱크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노무라 종합연구소나 미쯔비시 종합연구소와 같은 연간 예산이 수천억 엔에 이르는 싱크탱크조차도 그들의 그늘 속에서 생존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55년 체제’라고 불리는 자민당 지배가 시작된 지 반세기. 자민당의 ‘힘’과 관료의 ‘두뇌’가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일본의 번영을 지켜왔으며, 이익도 양자가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논객들은 오랜 기간 계속된 그런 불합리한 구도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지만, 관료기구에 필적할 만한 두뇌집단은 찾을 수 없다. 정책은 ‘상전’의 일이라는 전통적인 사회의식에 힘입어, 자금도 정보도 언제까지고 관료가 움켜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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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연구로서의 곤란

일본 내에서 일본 싱크탱크 전반에 관한 연구는 찾기 힘들고 오히려 미국의 싱크탱크를 연구한 문헌이 더 많은 것이 실정이다. 이는 영리적, 비독립적 싱크탱크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영리성 기관은 클라이언트와의 계약을 중시하는 나머지 연구성과의 대부분을 비공개로 처리하며, 조직 자체가 높은 보안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보의 유출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 비영리 법인은 정부관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본 관료 특유의 성질이라 보여지는 정보독점에 집착한다.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하여 일본 싱크탱크에 관한 연구는 피상적인 조사에 그치게 되지만 실제로 그러한 조사가 행해진 경우조차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싱크탱크란 단어가 일본 사회에서 상당한 정도 정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연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고민의 여정은 시작되고…

모두(冒頭)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본의 싱크탱크를 연구한 국내 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며 그러한 상황은 일본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즉 일본에서조차 자국의 싱크탱크를 정면에서 조사/분석한 문헌이나 보고서를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희망제작소의 도움으로 실시한 일본 싱크탱크 조사는 그러한 점에서 대단히 유익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짧은 조사기간과 한정된 연구인원 등으로 인하여 일본 싱크탱크 전체를 망라하는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의 싱크탱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일본에는 진정한 싱크탱크가 없다”, 혹은 그러한 환경이 성숙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식 사고에서 본다면 이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본의 싱크탱크는 미래를 만드는 주식회사”라고 단언하는 미쯔비시 종합연구소 노구찌(野口) 연구이사의 자신에 찬 얼굴에서, 진정한 싱크탱크란 도대체 무엇이며, 일본의 싱크탱크는 어디로 가야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겨우 파악한 단계에 불과하며, 지금까지의 일본 싱크탱크에 관한 조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도 존재조차 불분명한 싱크탱크가 일본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그 조사는 책상 앞에 앉아서 행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분명한 것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대사회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변함없이 힘차게 고동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싱크탱크를 가다’는 이번 회를 포함해서 총 13번의 연재를 계획하고 있는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획에 준해서 종료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13년을 일본에서 살아온 필자가 바라본 일본식 스타일이라는 점이라 넉넉한 감이 든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그들의 눈(眼) 안에는 치밀한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 그들이 그려온, 그리고 그려가고 있는 미래상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정확하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미국 혹은 독일의 시각에서 바라본 싱크탱크라는 존재가 반드시 일본의 싱크탱크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미국, 독일에 이어 3번째로 연재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번 연재를 통해서 독자들이 그네들의 모습 속에서 또 다른 하나의 문화창출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필자로서의 사명은 다한 것이 아닐까…

● 연재순서

0. [공지]기획연재 & 필자 소개(2/2)
1. 일본 싱크탱크 – 연재를 시작하며(2/2)
2. 미쯔비시종합연구소(2/16)
3. 일본종합연구소(3/2)
4. 東京재단(3/16)
5. 구상일본(3/30)
6. PHP종합연구소(4/6)
7. 공공정책플랫폼(4/20)
8. 싱크탱크2005일본(5/11)
9. 종합연구개발기구(5/25)
10. 지방자치연구기구(6/8)
11. 일본국제교류센터(6/22)
12. 가계경제연구소(7/13)
13. 유타카론(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