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시원하게 팍팍! 토끼 시리즈를 선보이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네요.
약속한 대로 오늘은 첫번째 토끼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제 지난 이야기를 못 들으신 분은 우선 여기부터 클릭!)

작년 10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서는 사회창안주간(2008 Social Innovation Week)을 개최했었죠. 매체를 통한 시민참여에 주목하고 있는 열정적인 독일의 젊은 단체 ‘제브라로그’의 공동창립자 마티아스 트레넬이 사회창안주간에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했답니다.

마티아스는 한국의 온라인을 통한 뜨거운 시민참여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해 배우고자 했답니다. 이후 제가 국민제안 포탈 신문고에 대한 간단한 조사에 도움을 주게 되면서 이번에 열린 워크숍에 대해 함께 논의하게 되었답니다.

“선경, 우리는  네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어”

워크숍의 주제는 ‘인터넷을 통한 시민들의 불만과 아이디어에 귀기울이기(Listening to citizen’s complaints and ideas via the internet)‘ 였습니다. 저를 포함해 총 4명의 발표자가 각기 다른 프로젝트를 소개했답니다.


무엇보다 이번 워크숍의 핵심은 한국의 국민제안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이었답니다. 저에게 2시간이 할당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죠. 너무 긴 시간이 아닐까 우려했는데, 사람들이 질문을 많이 하는 통에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답니다.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하는 토론의 자리도 아니었지만, 상당히 긴장했던 게 사실입니다. 마티아스 또한 너무 부담느끼지 말라고 거듭 얘기했지만,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보시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제가 느낀 부담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발표자:
브란덴부르크 주 내무부의 프랑크 쉬어즈너(Frank Schiersner)
독일 하원 국민제안 담당의 어빈 루드비히(Erwin Ludwig)
제브라로그의 올리버 매르커(Oliver Maerker)

참석자:
독일 하원의 기술평가원 울리히 림(Ulrich Riehm)
독일 하원 국민제안 담당 크리스챤 프리드리히(Christian Friedrich)
브란덴부르크주 국민제안 담당 토마스 돔레스(Thomas Domres), 산드라 랑에(Sandra Lange)
작센안할트주 의원 브리짓  푓츠쉬(Birgitt P?tzsch)
브레멘 정보관리연구소 바바라 리파(Barbara Lippa)


인터넷을 통해 시민의 의견을 모으는 시스템을 만들고, 평가하고 연구하는 정부기관, 연구자, 비영리기구 활동가들이 모두 참가한 거죠. 제가 왜 긴장했는지 이해하시겠죠? 발표에 앞서 긴장된 얼굴로 앉아 있는 저를 보고 제브라로그의 다른 친구는 이렇게 위로해주더군요.

“선경,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우리는 믿을 수 밖에 없어. 더군다나 나중에 확인해볼 길도 없잖아.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해.”

긴장과 기대감 사이에서 저는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름의 시나리오를 준비했었는데요. (물론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두 가지 제안을 미리 준비했었답니다. 즉석에서 준비할 수도 있지만, 좀 더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면 더 재밌어하리라 생각했거든요.

제가 준비한 아이디어는 (1) 평창동 버스 노선 확충과 (2) 독일과 한국간의 활발한 문화예술 교류를 위해 예술가들에게 체류 비자를 제공하는 문제 두 가지였죠. 어떤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은지 물어봤더니 역시나 두 나라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두번째 아이디어를 선택하더군요.

그들은 세 번 놀랐다

신문고를 이용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자신의 제안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문자(SMS), 이메일, 우편으로 통보 받을 수 있답니다.

저는 워크숍 자리에서 문자와 이메일을 선택했는데요.(사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 서비스에서는 아주 당연한 기능이지요) 작성을 끝내고, 화면을 통해 ‘제안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오자 마자 테이블에 놓인 제 핸드폰이 “띠리링”하며 문자 수신음을 냈답니다.

다들 어리둥절해 있다가 제가 제안 완료 안내 문자라고 알리자 아주 놀라워했죠. 사실 이 발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과의 연락을 좀 더 편하게 하고자 로밍 서비스를 신청했던 것인데 이처럼 발표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문자 해프닝 뒤에도 모두들 놀라움을 표시한 두 개의 요소가 더 있었는데요.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자동분류시스템입니다.

단순히 편리함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인증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를 편리하게 만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의 생명은익명성이지만, 서비스를 하는 입장에서 고려해보면 제안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물론 주민등록번호가 가진 폭력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잊어선 안되겠지요. 

또, 우리나라의 국민제안 시스템은 시민이 제안을 올리면 답을 들려줄 수 있는 담당 부서를 자동으로 분류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시스템의 경우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그 제안의 주제를 선택합니다.)
 
저는 이 자동분류시스템이 신문고가 가진 최고의 기술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시민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해당 부서를 연결해줌으로써 담당자가 시민의 아이디어를 가깝게 듣게 하고, 또 시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전달하고 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이죠.

위에서 제가 제안한 의견을 넣었더니 자동 분류시스템이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부서를 추천해주더군요. 이 순간 정말 어쩌나 싶었답니다. 하지만, 이후 수동으로 제가 부서를 수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기능을 보여주게 되었지요. 외교통상부로 제가 다시 선정을 했는데요. 처음에 상관없는 부서가 선택되어 ‘아차’ 했지만, 그 후 제가 다시 수동으로 선택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시스템의 정교함을 보여준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시 발표를 하면서 강조했던 신문고의 단점은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시민의 불만을 얼마나 신속하게 처리해주는가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디어 하나하나를 해당 부서와 1대1로 연결시킴으로써 신속한 답변으로 연결되긴 하지만, 아이디어가 자라게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해당 부서의 답변을 들으려고만 하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해결책이나 대안을 찾으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죠. 불만이 신속하게 해결되는 한편, 새로운 정치적인 행동이나 대안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불만이 그런 씨앗이 될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여겨야 하는 것이죠. 이 날 독일인들의 발표 사례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을 찾아볼 수 있었답니다.

식사 시간에도 열띤 토론은 계속 되었습니다. 워크숍 안내에 따르면 점심은 제브라로그가 아니라 각자가 내는 방식이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 어색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태도가 전혀 아쉬워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마지막에 가서는 올리버가 모두를 위해 기분좋게 식사비를 냈죠. 어쨌든 “우리는 커피와 디저트를 제공하지만, 식사는 각자 내라”는 그 당당함이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 같기도 해 보기 좋았답니다.

”사용자
우리는 빠르고, 독일은 키우고

식사 시간이 끝난 후 다들 케익과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 앉았답니다. 이후 진행된 발표의 주제는 브란덴부르크 주 내무부의 프랑크 쉬어즈너씨가 직접 만든 사이트였습니다. ☞ 클릭

영국의 영파운데이션마이소사이어티가 진행하는 ‘내 거리를 고쳐줘(fix my street)’ 프로젝트와도 유사한데요. 한 지역주민이 집 앞 거리에 대해 이웃들과 공공기관이 응당 맡아야 할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불평을 하자, 이를 본 프랑크 쉬어즈너씨가 혼자서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쓰레기 수거라던지, 가로등 보수와 같은 거리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상적인 문제와 관련해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지요. 이 사이트에서는 신호등의 색깔 변화를 통해 접수된 문제의 해결 과정을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더디긴 하지만 꾸준히 성공적인 사례가  나오고 있어 다들 격려해 주었지요. 작센안할트 주에서 온 비르짓트 푀쯔쉬(Birgitt P?tzsch)씨는 자신도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한다며 기술적인 내용을 질문하기도 했답니다. 

독일 하원에서 만든 국민제안 프로그램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문고와 유사한 점도 있었지만,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독일 사람들이 신문고 사이트가 가진 편리함과 신속함에 놀랐다면, 저는 독일 사이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발전적 의견 형성 과정에 놀랐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앞에서 제가 신문고에 대해 아쉬워했던 대목입니다.
 
독일인들은 성장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탄탄한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 시민교육)을 받게 됩니다. 또 토론에 참여하는 독일인들은 하나의 의견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고, 발전적으로 만드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익숙하죠.

이러한 성숙한 토론 문화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하나의 대안으로 까지 키워내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런 변화는 하드웨어적인 시스템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겠죠.

아쉬운 점이라면, 독일 하원의 제안시스템에는 의견의 현실화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었죠. 담당자가 몇 가지 이유를 대기는 했으나 아주 관료적인 대답이었답니다. 저는 사람들의 의견을 해당 부서나 하원에서 정책화 하는 과정이라든가 혹은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점을 고려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의 사업은 사람들의 욕구를 잘 읽어낸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시민 혹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창발의 주역이 되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제브라로그 본(Bonn) 사무실에 있는 올리버 매르커 박사의 프로젝트는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지난 2006년에 진행한  쾰른시의 ‘참여예산 계획과정’ 과 관련된 프로젝트입니다. 시의 예산 편성과정에 직접 시민들이 손쉽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죠.

‘당신의 도시, 당신의 돈(Dein Geld, Dein Stadt)’라는 모토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아주 성공적이었답니다. 예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로 유엔 공공서비스상 결승에 진출하더니 이번에도 유럽 전자정부상(European eGovernment Awards)  결승에 진출했고, 수상의 영예를 얻었답니다.
 
지난 사회창안 국제 컨퍼런스에서 마티아스는 “쾰른시 정부는 이 프로젝트 덕분에 복잡한 예산 계획을 더 많은 대중에게 설명하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시민과 정부의 관계에서 신뢰를 재건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여긴다”고 발표했었죠. 

관료적인 것과 혁신적인 것


끝으로 다음날 참여했던 ‘Gov 2.0‘ 에 대해 잠깐 알려드릴께요.

독일 하원에서 진행한 일종의 바캠프( Barcamp, 여러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이 만나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교류의 장. 미리 발표 내용과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랍니다.

얼마 전 희망제작소 박명준 객원연구위원이 시민들이 주축이 된 소셜 캠프(Sozial Camp) 에 대해서 알려주셨는데요. (☞ 클릭 )  ‘Gov 2.0’은 소셜캠프가 열리기 전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후원을 받아 독일 하원에서 진행한 캠프였죠. 저는 오전에 미팅이 있어 오후에 참석을 했는데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참가 신청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답니다. 이때 본인이 발표자가 되고 싶다면 미리 말을 해놓는답니다.  그런데 본인이 발표자가 될 지 여부와 발표시간 등은 행사 당일 아침에 정해진다고 해서 함께 간 독일 친구들도 모두 의아해했죠.

오후에 행사장에 도착해 마티아스의 얘기를 들으니 행사의 진행방식이 참 흥미로웠답니다. 우선 행사 시작과 함께 참가자들이  큰 홀에 모두 모인 가운데, 발표 신청자들이 앞으로 나와 2, 3분 정도 자신의 주제에 대해 얘기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주제의 발표자에게 손을 들어 의사를 표시하고, 손을 든 사람들의 숫자를 센 후 여기에 근거해 20분 후 행사 스케쥴이 나왔다고 합니다.

”사용자저는 마티아스와 바바라가 발표하는 곳에 들어가 참관을 했는데요. 상당히 열띤 토론이 벌여졌습니다. 단, 마티아스는 자유로운 것과 기획이 없는 것은 다른 것이라며 진행과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예를 들면 분명 아침에 나타나지 않은 발표자가 발표 시간을 얻은 경우라든지, 회의실 배정에 있어 그다지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지 못한 발표자가 아주 좋은 회의실을 차지한 경우라든지요.

마티아스의 문제제기에 저는 독일 하원에서 주관했으니 분명 정치적인 모양세에 더 신경을 썼을거라고 코멘트를 했답니다.
이번 독일 출장에서 느낀 점이지만, 관료적인 것과 혁신적인 것이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인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박명준 연구위원이 소개한 소셜 캠프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더군요. 기회가 있다면 참여한 사람에게 그 차이점을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저의 첫번째 토끼 이야기입니다. 어떠신가요? 제가 첫번째 토끼를 제대로 잡은 걸까요?

시민의 불만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해결의 씨앗으로 키워가야 할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불만을 긍정의 씨앗’으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겠죠. 그 다음 긍정의 씨앗인 불만을 혁신적인 기술과 기획을 통해 하나의 건전한 정치적 행동이나 대안, 혹은 정책으로 갈 수 있도록 키워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문고가 가진 적극적인 서비스 정신과 더불어 독일의 시민제안시스템이 가진 성숙한 토론 문화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국민신문고를 담당하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요즘 새로운 위원장을 맞이해 자주 언론에 노출되고 있더군요. 작은 소리도 크게 듣겠다는 모토와 달리 큰 소리를 내느라 자주 노출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되네요.

※  독일어 해석이 가능한 분들은 제브라로그의 다음 소식도 참고해주세요. ☞ 링크

글 ㆍ 사진_ 뿌리센터 한선경 연구원(alreadyi@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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