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중국 정부의 이례적인 조전 행렬이 의미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비보를 접하게 된 곳은 한 여름 더위를 피해 찾아 간 중국의 연변지역(조선족 자치구)이었다….
연변의 중심지 연길 시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간 한 외곽에서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의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내가 찾아 나선 천년송은 마침 그 분들이 계신 곳을 지나 저 앞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부득불 그 분들 앞을 지나려는데, 그 분들이 나와 한 피를 나눈 한민족임을 알게 되었고 반갑게 인사하였다. 그러면서 그 분들의 권유로 술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아니 어떻게,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셨는데 한국 분들이 어찌 비통해 하지 않습니까? 혹시 이명박 편…?”
반갑게 맞아주시며 술 잔을 건네주시던 분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사실 저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매우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어르신들을 처음 만났는데, 울상을 지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요….”
“…. ….”
“…. ….”
한 순간의 침묵. 이어서 이미 얼큰하게 되신 한 분이 침묵을 깨트리고 나섰고 그 뒤를 이어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우리 비록, ‘타국’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같은 민족이지 않습니까. 두 대통령께서…. 음,…(잠긴 목소리를 가다듬듯 하더니) 우리는 두 대통령께서 우리 민족 모두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잘 압니다….”
“정말이지, 두 분께서 애쓰신 덕에 중국 속에서 우리의 삶과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맞습네다. 두 분 덕에 한국과 중국 관계도 훨씬 좋아져서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얼마나 좋게 보고 부러워하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한국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중국의 주류 민족 “한족” 촌로들의 반응에서도 거의 다를 바가 거의 없었다.
“두 대통령이 무척 소탈하고 일반 인민들의 생활 발전을 위해 진력하셨다는데,,, 정말 안 되었습니다….”
“아니 이 어떻게 한국 역사상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가장 큰 기여를 하신 두 분이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실 수 있는가….”
[##_1C|1367040380.jpg|width=”500″ height=”37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소식을 1면 톱기사로 보도한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 (사진출처:연합뉴스)_##]
연변 지역 외곽 이곳 저곳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접하게 된 중국 촌로들, 즉 중국 민심의 최저변에 있는 사람들도, 이처럼, 남의 나라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를 깊이 애도하며 한-중 관계의 지대한 발전이라는 두 분의 업적을 칭송하였다.
한국의 전ㆍ현직 대통령에 대한 상반된 인식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중국 촌로들, 즉 중국 민심의 이와 같은 모습은 중국 정부의 인식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사회주의 국가 중국, 더욱이 자신의 의중을 알기 쉽게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는 중국 정부라지만, 정부 당국과 최고위층의 반응 속에서는 우리의 두 전직 대통령의 연이은 서거에 애도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이례적인, 극히 이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애도를 담은 중국 정부의 공식 조의 표명으로는 부족해서 인지, 장쩌민 전 국가 주석과 중국의 외교부문 국무위원 또한 따로 조전을 보냈는가 하면, 이 역시 이례적으로 대규모 조문단을 파견할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측의 이와 같은 조전행렬 속에는, 그 서술방법이야 다소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들어 있다. 다름 아닌, 조전은 모두 “한-중 관계 발전”을 강조하듯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이례적인 조전 속에 포함된 이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두 분 생전의 업적을 다시 한번 칭송하려는 의미에 국한되는 것일까? 영어 서적이나 영어 논문 등을 토대로 중국을 파악하고 바라봐야 하는 청와대나 외교통상부의 미국유학 출신 중국 전문가들은 과연 이와 같은 중국식 함의, 중국식 조문 외교의 메시지를 얼마나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이 정도 이야기한다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비로소 눈치챌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사실, 연변 지역을 돌아다니며 만난 조선족들과 한족들, 즉 중국 시골 마을의 민심에게 한국의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넌지시 물어보았었다.
“두 대통령께서, 급작스럽게 서거하신 이면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겠지…” (한족)
“이명박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런답니까? 한-중 관계의 앞날이 걱정되기만 합니다.”(한족)
“한-중 관계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우리 조선족들의 위상도 실추시키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한다는 말입니까”(조선족)
“우리는 지금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비통한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끝나는 그 날이 오면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조선족)
“맞아요, 중국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하루 빨리 떨어지기를 두 손 모아 빌고 있습니다!”(조선족)
까먹기로만 일관하는 이명박 정부의 중국 외교
방학을 맞아 찾아간 중국의 산간벽지 오지에서 접한 한국의 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이처럼 극명히 다른 중국 민심을 접하며 실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중 관계 등에 대해서는 중국 경제의 중심지 상하이를 중심으로 정치 수도 베이징이나 다른 대도시의 민심 등을 위주로 하며 여타의 작은 지방이나 시골 마을에서의 그것들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전역에 한국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을 줄이야, 중국의 촌로들조차도 한국의 전 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을 줄이야….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 방식으로 한국이 미국 등과는 더 좋아질지 몰라도, 적어도 중국에 대해서는 차마 ‘외교’라 할 수 없어요. 아니, 이렇게 까먹기만 하는 것이 이 어찌 외교란 말입니까!”
상하이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지인인 한 조선족 열혈 학자의 이명박 정부의 대중 외교에 대한 성토가 뇌리에서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뜨거운 고언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현 정부는 더더욱 귀를 틀어막고만 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외교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이 없이 균형외교를 근저로 해야 한다. 그런데 한 쪽으로 기울어 그 곳으로부터는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취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그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잃고만 있으니,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외교라 할 수 있을까? 이 넓은 중국 땅, 그것도 우리와 가장 인접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 이에 대해 우리 국익 최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 정권의 무능함에 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와 동시에 이 답답함을 고작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해야 하는 나 자신의 무능함에 더 더욱 많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글 / 우수근 중국 상하이 동화대학 교수(woosuke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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