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희망제작소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공공 부문의 리더를 양성 발굴하기 위한 소셜디자이너스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 7월 소셜디자이너스쿨 4기의 개강을 맞이하여 한국 최고의 소셜디자이너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모시고 <자 이제, 우리 세상을 한번 바꿔보자!>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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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에는 빈 곳이 있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꿈과 열정이 있다면, 그래서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당신도 세상의 좋은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우리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7월 13일 ‘4기 소셜 디자이너 스쿨’ 첫 번째 강사로 나섰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마주앉은 예비 소셜 디자이너들에게 박원순 상임이사는 자칭 ‘잘 나가는 변호사’에서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가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희망제작소를 연달아 탄생시킨 ‘소셜 디자이너’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찬찬히 풀어냈다.

이날 강연장에는 변호사 시절 ‘사건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꾸고, 데모가 아닌 대안운동을 꿈꾸며 ‘참여연대’를 만들고, 누구나 돈 걱정 없이 꿈꿀 수 있기를 바라며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희망제작소’를 세운 박원순 상임이사의 삶이 여과 없이 펼쳐졌다.

사건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그는 공부벌레다. 하버드 법대 객원교수 시절 법대 도서관 지하 3층부터 지상 7층까지 (비즈니스 법률 분야는 제외하고)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었다. 세상을 바꾸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모조리 복사해 모았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1994년 귀국하자마자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을 맡았다. 성희롱이 문제인 건 맞는데 그 누구도 법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스크랩북을 펼쳤다. 그리고 고된 법정 싸움 끝에 대한민국 법을 바꿨다. 99년 성희롱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이 사건을 맡기 전에 일본 변호사협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성희롱 법률상담센터란 것이 있더군요. 하지만 일본에는 지금도 성희롱 법이 없어요. 저는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다이내믹하게 바뀌고 있고, 또 바뀌어갈 거니까요. 사건 하나가 세상을 바꿉니다.”

그의 신념은 9년 후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2003년 어느 달에 사법연수원에서 강의를 했어요. ‘돈과 명예만 버리면 세상에 할 일이 정말 많다’고 대놓고 꼬셨죠. 아름다운 재단 모금액으로 월급을 주고 365일 공익 변론을 맡아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꺼벙한 친구 하나가 진짜 따라왔어요.(웃음) 그해 12월 임형국 변호사 1명으로 시작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이제는 7명으로 늘었습니다. 월급은 적고 일은 고된데도 서로 오려고 난리예요.” 박원순 상임이사는 오는 10월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을 아름다운 재단에서 독립시킬 계획이다.

외국에서 모아온 스크랩북은 그의 삶을 뒤바꿨다. 그의 머릿속엔 대한민국을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 데모 말고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대안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94년 당시엔 돈 잘 버는 변호사였어요. 그런데 학생운동 출신 사람들의 꼬임에 넘어가 빌딩 몇 채를 살 수 있는 돈이 홀라당 날아갔죠.(웃음) 그렇게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게 됐습니다.” 시민운동단체라고 하면 거리 집회가 전부로 여겨졌던 시절, 박원순 상임이사는 새로운 운동을 떠올렸다. 우선 국회의원의 모든 것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국회 출석률, 재산 규모, 어떤 법안을 발의했는지, 혹은 반대했는지 등을 수시로 업데이트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2000년 총선 때 낙선운동을 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낙선운동이 과연 정치판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방법이었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뭉치면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변화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97년에는 대기업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소액주주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어떤 단체가, 어떤 검사가 삼성을 상대로 싸울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작은 힘들이 모이니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고, 재벌들이 경영구조를 투명하게 바꾸기 시작했어요. 우리 사회에도 거버넌스가 자리 잡게 된 거죠.” 최근에는 휴대폰 전파사용료가 위법이라는 승소 판결도 얻어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일 년에 1만4000원의 전파사용료를 냈어요. 그런데 하늘에 날아다니는 전파에 누가 사용료를 낸답니까. 결국 승소했고 이제는 아무도 내지 않게 됐죠. 참여연대가 그동안 국민들에게 돌려준 돈을 계산해보니까 3조원이 넘더라고요.”

박원순 상임이사는 최근 참여연대와 같은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방콕에 다녀왔다. “그들의 열정에 정말 탄복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을지 모를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움이 그들에겐 있더군요. 거의 고문하다시피 질문을 쏟아내는데 한 번도 하지 않은 깊숙한 얘기까지 다 토해내고 왔습니다. 우리가 먼저 이룬 지식과 경험은 함께 나눠야 가치가 있는 거니까요.”

돈 걱정 없이 꿈꾸고 싶다

참여연대 활동 7년. 박원순 상임이사는 돌연 사표를 던졌다. “92년 하버드대에 있을 때 우연히 대학신문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check inclosed다’. 우리말로 옮기면 ‘이 돈을 기부금으로 낸다’입니다. 스크랩해두었던 그 단어 하나가 내내 마음속을 맴돌더니 2002년 아름다운 재단 설립으로 이어진 거죠.” 우리나라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려면 별개로 돈을 벌어야 하는 이중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돈 걱정 없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려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싶었다. 한국에 재단은 무수히 많지만 온전히 개인의 목적에 맞춰 후원을 하는 곳은 아름다운 재단이 유일하다. 아름다운 재단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지난해 모은 돈만 145억을 넘는다.

그는 올해 4월 모금전문가학교도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 창출이 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모금액의 15%를 자기 소득으로 할 수 있어요. 100억을 모금하면 15억이 내 돈이 되는 거죠.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가 수천 개 만들어지는 거예요. 곧 2기가 시작될 텐데 정말 농담이 아니고요, 저한테 줄을 서면 일자리가 생깁니다.(웃음)”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박원순 상임이사의 아이디어는 온라인으로 이어졌다. 기부자의 90% 이상이 온라인으로 기부한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네이버와 함께 하는 ‘해피빈’은 그렇게 탄생했다. “카피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해요. 해피빈이 대표적이죠. 최근에 네이버가 해피빈을 단독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해서 브랜드 가치를 계산 중이예요. 일단 팔고, 우리는 다시 다른 더 재미있는 것을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박원순 상임이사는 2002년 같은 해 아름다운가게도 함께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헌 물건이 지천인데 왜 모두 버려야 하는 걸까’라는 단순한 궁금증이 발단이 됐다. “아름다운가게는 물건을 많이 팔고 또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나눔을 누구나 쉽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죠. 고도성장 속에서 브랜드만 고집하는 문화 대신 헌 물건을 다시 쓴다는 건 일종의 정신적 혁명입니다.” 그는 2년 후 공정무역에도 눈을 돌렸다. 외국에선 활성화됐는데 우리나라에만 없다는 게 이상해서다. 처음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생산한 공예품을 팔았는데 여러 차례 실패하고, 커피에서 대박이 터졌다. 스타벅스보다 3배 더 비싼 돈을 주고 사오는데도 올해 매출 예상액이 30억 원이고, 내년 목표액은 100억 원에 달한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조만간 커피 사업만 따로 독립시킬 생각이다. 소년원 아이들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지원해 일자리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박원순 상임이사의 아이디어 샘은 도대체 언제 그치는 걸까. 그는 2007년 민간 씽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세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회창안센터는 사회를 바꿀 아이디어를 모아 직접 현실에 옮기는 행동부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동안 사회창안센터는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수영장 할인제도를 도입시켰고, 유통기한만 표기되던 과자류에 제조일도 적도록 했으며, 시민 아이디어를 법에 반영시키기 위해 국회의원 40명을 모아 호민관 클럽도 발족했다. “사실 사회창안센터는 ‘글로벌 아이디어 뱅크’라는 곳을 벤치마킹한 거예요.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온라인으로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우리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직접 현실을 바꾼다는 거죠. 조만간 사회창안 모델을 해외에 역수출할 생각입니다.”

최근 박원순 상임이사는 소기업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밥과 차와 국악 한가락이 어우러진 민박 프로그램이 대기업을 이기는 희망 소기업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대기업이 만드는 대량상품이 아니에요. 작은 브랜드, 얼굴이 보이는 브랜드가 성공합니다. 찰보리빵, 수제비누, 문경의 막사발이 대표적이죠.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산골마을이 많습니다. 이곳에 문화 프로그램을 엮으면 그것만으로 훌륭한 소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거죠.”

박원순 상임이사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의 10계명’을 소개했다. 그대로 옮긴다.
1. 모든 것을 버려라. 그러면 다 얻게 될 것이니.(버림의 미학, 희생의 리더십)
2. 지옥에 가서라도 아이디어를 얻으라. 그리고 현장을 누벼라.(비전·현장주의·실천)< 3. 사람을 얻으라. 팀웍이 세상을 구한다. (주체·사람·우정) 4. 가서 두드려라. 그리고 요청하라.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말라. (모금·돈) 5. 카피가 세상을 바꾼다. (카피·슬로건) 6. 매일 공부하고 스스로를 혁신하라. (창조와 혁신) 7.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섬세의 리더십) 8. 혼자서 되는 일은 없다. 사람들을 모으고 포용하라. (감투의 미학) 9. 쉬운 일은 없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시지푸스의 운명이다. (고난을 즐기는 마음) 10. 인생은 끝없는 방황이고 여행이다. 늘 떠나라. (사랑과 이별의 인생관) 글_권지희(여성신문 기자 rubberhee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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