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두 남자가 들어서자 사무실이 환해졌다. 수줍은 웃음에 잘 생긴 외모가 똑 닮은 두 사람.
훤칠한 키의 이경민씨와 그의 귀여운 조카 준우군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삼촌과 조카는 이미 희망제작소 안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스타들이다. 한 명은 재주 많은 사진가로, 또 한 명은 앙증맞은 모델로 희망제작소에 소중한 재능기부를 해준 까닭이다. 2월의 하늘은 눈을 흩뿌리며 한껏 찌푸렸지만, 빨간 티셔츠를 걸친 준우의 발걸음은 마냥 가볍다.
”?”삼촌 이경민씨는 2년 전부터 희망제작소와 인연을 맺어왔다. 전문 사진가는 아니지만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는 그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연구원이 업무에 필요한 촬영을 부탁하면서부터다.

그가 몸담고 있는 ‘대한불교청년회’의 사무실은 지금은 장충동으로 이사했지만, 최근까지 희망제작소와 이웃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씨는 “사무실이 가까운 탓에 이곳저곳 불려가 셔터를 눌렀다”며 웃는다.

각종 자료 사진에서 행사 스케치 사진에 이르기까지 희망제작소의 수많은 풍경이 그의 렌즈를 통해 세상과 만났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연구원들의 프로필 사진도 그의 작품이다.
“창립 초기에 찍은 건데 아직까지 제 사진을 쓰고 계시더라고요.”
이씨의 은근한 자랑이 밉지 않다.

희망제작소 홈페이지를 빛내고 있는 그의 사진 중 단연 으뜸은 조카 준우의 얼굴.
어느 날 이씨는 사무국으로부터 환하게 웃는 아기 모델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다.
수소문 끝에 지인으로부터 세 살짜리 아기를 소개받았지만, 과천까지 달려가 찍어온 사진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낙담한 채 서울로 돌아왔죠. 그런데 남태령을 넘어올 때쯤 갑자기 준우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의 머릿속을 스친 여섯 살 조카의 해맑은 웃음. 저녁 8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곧바로 준우가 살고 있는 방배동으로 차를 돌렸고, 아이를 렌즈 앞에 앉혔다. 깜박거리는 형광등을 조명 삼아 삼촌과 조카는 호흡을 맞췄다. 준우가 희망제작소의 대표 모델로 데뷔하는 순간이었다(희망제작소 홈페이지 왼쪽 아래 ‘희망후원 회원이 되어주세요’ 코너에서 준우의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준우의 사진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씨는 “준우 사진 덕에 형수님께 점수를 많이 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준우의 부모님도 인터넷에 올라온 예쁜 준우의 얼굴이 마음에 꼭 들었던 모양이다. 어머니 구미정씨는 “부모가 못하는 좋은 일을 아들이 대신해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희망제작소 홈페이지를 방문해본 이들이라면 환하게 웃는 준우의 사진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던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게다.

“사진 찍었던 일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제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여섯 살이 던 꼬마는 이제 여덟 살이 됐다. 3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졌고, 키도 훌쩍 자랐다. “공부가 좋아서 학교 가는 일이 기대 된다” 면서 수줍게 소감을 밝히기도 한다.

“희망제작소는 블루오션을 찾아 일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간판연구소나 해피시니어 같은 새로운 기획들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 온 거죠.”
창립 초기부터 사무국을 드나들며 꾸준한 애정을 키워 온 이경민씨다. 희망제작소에 거는 기대 역시 누구 못지않게 크다.

“최근 몇 년간 사무실도 커지고 연구원 수도 늘어나는 등 양적인 성장을 쭉 지켜봐 왔습니다. 올해부터는 질적인 성장도 보여줄 거란 기대감이 큽니다.”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에 새삼 어깨가 무거워진다.

낯을 가리던 준우가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는 자주 웃고 사진기 앞에서 제법 포즈도 잡는다. ‘전직 모델(?)’ 출신다운 끼가 서서히 드러나는 걸까. 사무실 구석에 놓인 화이트 보드를 본 준우가 펜을 잡고 무언가 끼적거리기 시작한다. 삼촌이 무엇을 그리느냐고 묻자 조카는 편지를 그리고 있단다. 엉뚱한 모습에 삼촌도 웃고 조카도 따라 웃는다. 다시 봐도 두 웃음이 닮았다. 그 닮음이 싱그럽다.(글 / 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