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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51>

모든 게 얼어붙는 추위 한 가운데 톡톡 얼음을 깨고, 그 속에 낚시대를 드리우는 손맛을 아는 사람은 안다. 차가운 얼음구멍위에 내놓은 찌 올림과 손맛은 여는 계절보다 코끝이 찡한 추위를 만나야만 제 맛을 낸다.

그래서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이 되도 강태공들의 발길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빙어낚시와 산천어 낚시에 비하면 추위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이 되면 이 얼음낚시의 재미로 전국이 떠들썩하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 뿐 아니라 색다른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마음이 들뜬다. 한 겨울이면 어김없이 얼음낚시로 떠들썩하게 언론을 장식하는 곳이 바로 강원도 두메산골의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 축제’다.

산천어는 연어과로 물이 맑은 1급수에만 서식하는 냉수성 토종 민물고기다. 잡는 맛도 잡는 맛이려니와 민물회 중에서도 고급어족에 속하는 산천어회의 쫀득쫀득 부드럽게 씹히는 고소한 맛 또한 한번 맛본 사람을 다시 찾게 만드는 매력 중의 일품이다. 그런 매력까지 더해서 화천 산천어 축제는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을 통해 전국 최고 수준의 축제로 꼽히게 되었다. 문화관광부는 지난 2005년에 열린 전국 40개 지방축제를 평가한 결과 화천 산천어 축제는 전체 지방축제 방문객 가운데 외지인의 비율이 95.6%로 전국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는 게 세상만사 아닌가.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 축제 또한 마찬가지다. 잘하고자 하는 열의, 어느 정도의 호응으로 일정 성공을 거뒀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은 높고, 계곡은 깊다.

강원도 화천군 나라축제조직위원회 장석범 운영본부장을 만나 화천 산천어 축제의 성공과 앞으로 가야할 그 먼 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단단한 얼음이 언다
– 냉천얼음축제가 시작되다

강원도 화천은 추운 고장이다. 그 추위 때문에 외부방문객의 발길이 뜸했던 곳이기도 하고, 겨울이면 추위에 파묻혀 겨울잠을 자듯 지내던 고장이기도 했다.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파로호에 찾아오는 낚시꾼이나 군부대 면회객들의 발길이 이따금 이어질 뿐이었다.

그런 강원도 두메산골을 깊은 겨울잠에서 깨운 것은 화천군 나라축제위원회 장석범 운영본부장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과 지역주민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단단한 얼음이 어는 화천군의 겨울 혹한이 오히려 매력 요인이 되는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었다.

“화천군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얼음이 어는 곳입니다. 12월 중순이면 결빙이 시작되어 12월 말이 되면 탱크가 올라가도 될 정도로 자연적인 결빙조건이 좋지요. 1960년대부터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가 제방을 막아 그 위에서 겨울마당에 잔치를 열었었으니 지역사람들이 얼음위에서 하는 놀이에 익숙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어요. 저의 경우 축구에 관심이 많다 보니 1998년에 원래 없던 얼음축구 규정을 만들기도 했었죠. 아이스하키, 풋살 등을 참고하여 경기장 규격도 만들고 경기규칙도 만들었는데 다들 이색적이라면서 관심을 가지더군요.”

추운 날씨는 사람들의 발길도 얼려 장사하는 사람들은 개점휴업과 다름없고 시설재배조차 하기 힘들었던 화천군이었음을 감안할 때 새로운 시도였고, 이는 새로운 길에 대한 제시였다. 얼음축구로 가능성을 발견한 장석범 본부장은 화천의 옛 지명 ‘낭천’을 따서 1998년 첫 얼음축제인 ‘낭천얼음축제’를 개최했다. 축구동호회, 번영회가 주최였고 아주 작은 소규모였다.
”?” 낭천얼음축제로 시작한 얼음축제가 ‘얼음나라 산천어 축제’로 확대 발전한 것은 2002년이다. 화천군은 고등학교가 한 곳밖에 없어 대부분이 학교 선후배 사이이기 쉽고 이는 군수와 주민들 간에도 마찬가지여서 동네일을 손쉽게 의논하고 의기투합할 수 있다. 얼음축제를 전국축제로 만드는 것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자연스러웠다.

“화천군의 특징을 살려서 어떻게 매력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화천군수와 하게 됐어요.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기존의 얼음축구, 얼음썰매는 있는데 그 외에도 얼음낚시였죠. 얼음낚시는 가족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이니 가족이 즐길 수도 있고요. 그런데 화천 인근지역의 파로호, 춘천호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빙어, 피라미낚시가 이뤄졌는데 이것만으로는 낚시꾼의 손맛을 충족시켜 줄 수 없잖아요. 더구나 빙어나 피라미는 낮에는 잘 잡히지 않으니까. 그래서 얼음낚시를 좀더 체계화해 보자고 했고, 그 가운데 도출된 것이 바로 산천어였죠. 크기도 30센티미터 정도 되고 냉수어이기 때문에 겨울에도 입질이 활발합니다. 곧바로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직접 얼음 속에 풀어 넣어 실험도 해봤는데 산천어가 지역 이미지에 가장 맞아서 잘 됐어요.”

그렇게 시작된 산천어 축제는 단박에 전 국민의 축제가 됐다.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첫해 2만 명 목표에 22만 명이 오다
”?” 2003년 1월에 첫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 축제’를 개최했다. 목표가 2만이었는데 축제기간 중에 22만 명이 화천을 찾았다. 2만의 목표가 너무 적었던 것도 아니었다. 축제기간 9일 가운데 주말에 화천을 찾는 인구를 계산한 것이었다. 목표보다 10배가 넘는 호황, 대 성공이었다.

“첫째 주에 이미 목표 2만을 넘었어요. 축제가 끝날 무렵에는 방송을 타면서 계속 외부손님들이 많이 몰려왔지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긴급회의를 열어 군수님과 더불어 토론을 해 얼음판도 문제가 없으니 구정 때까지 하자고 결론이 났고 기간이 조금 연장됐습니다.”

첫해 22만 명으로 시작한 산천어 축제는 그 다음 해 54만, 78만, 103만, 125만으로 매년 참여객이 크게 늘었다.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축제기간도 23일로 길어졌다. 하지만 외연만 늘린 것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안을 더욱 탄탄히 해야 한다는 것을 장석범 운영본부장은 잊지 않았다.

“처음부터 주민과 함께 했어요. 매일 저녁 회의를 했죠. 모든 개선사항을 가지고 와 모두 기록에 남겼고, 그 자료를 가지고 민관이 함께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예컨대 주차장에 문제가 있다면 군부대 연병장을 사용하자는 식으로 말이죠.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겨졌습니다. 축제가 끝난 뒤에는 주민들을 상대로 보고회를 했고, 그 보고회 자리는 내년도 축제를 위한 브레인스토밍의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민들 사이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어요. 그런 것들을 모두 정리해 반영했습니다.”

그야말로 주민과 공무원의 협력체제가 만들어낸 완벽한 하모니였다.

“주민이 함께 했죠. 자영업, 건설업, 농업하는 분들이 모두 모였어요. 여긴 도시와는 달리 모두 선후배 사이이고 서로 자주 만나다 보니 대화가 잘 되었죠. 공무원의 결합도도 높았어요. 보통 첫 행사 때는 기획을 전문 기획사에 주기 마련인데 저희는 처음부터 자체 기획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오히려 좋더군요. 지역의 특성을 잘 아는 사람이 기획하고 운영하다보니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살릴 수 있었던 거죠. 처음에는 예산문제 때문에 그랬는데 결과적으로 오히려 장점이 됐어요.”

깨인 지역 주민들이 좋은 축제를 만든다

산천어 축제의 성공원인은 ‘주민평가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민평가단은 축제기간동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부족한 점, 고칠 점 등을 모두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들에게 주는 메리트도 있다. 이들은 어디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ID카드가 있으며, 식권을 통해 모든 식당의 음식 맛을 보고 서비스를 점검한다. 발로 뛰고 직접 체험하니 그들의 기록이 생생한 것은 당연하다.

또한 자원활동가들의 활동도 눈에 띈다. 농한기인 1월에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원활동가로 활동할 수 있다. 이들을 일컬어 ‘얼곰이 부대’라고 호칭한다. “대장 얼곰이는 군수님이고 저는 본부장 얼곰이입니다.”라는 장 본부장의 설명에 웃음이 삐져나올 만큼 얼곰이라는 표현이 친숙하고 재미있다.

주민들이 뛰는데 공무원이 가만히 있다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이곳은 민관의 협력체계가 장점이다.

“군청 직원들도 고생을 많이 해요. 털 점퍼 입고, 장화 신고 여기저기 뛰어다니죠. 자연스레 신뢰가 쌓입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군청의 계장, 과장들이 손님들에게 접대하느라 월급을 다 쓸 정도죠. 다들 열심히 하는 것을 아니, 주민들과 공무원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다들 더욱 열심히 하게 됩니다.”

장 운영본부장은 이런 경험을 통해 깨인 지역의 주민들이 좋은 축제를 만든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방자치 출범 이후 많은 축제들이 생겼는데 대부분 차별화하지 못하고 자치단체장 얼굴내밀기의 축제가 되기 일쑤였죠. 그래서 우리는 그러지 말자, 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했어요. 벤치마킹을 위해 여러 축제를 둘러보았는데 다른 축제의 장단점이 보이더군요. 2박3일동안 다섯 곳의 축제를 다 보기도 했죠. 그래서 장점을 우리 축제에 모두 반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러 타 지역의 축제를 둘러보면서 바가지요금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산천어 축제는 바자기 요금을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도입했다. 사회단체에게 매점을 위탁시킨 것이다.

“첫해 예산이 7000만원이었고 그 다음해에 2억으로 올랐고 지금은 4억입니다. 경제파급효과를 조사해보니 1인당 소비지출이 4만 원 가량 되더군요. 올해 125만 명이면 합계 545억 원이 되는 것인데 그 중에서 조금은 허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비용의 문제로 시작했는데 매점 운영권을 아예 시민사회단체에게 주었어요. 자체기금도 되고 운영비도 확보될 수 있으니 그들 스스로 열심히 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말구가 잡혔어요. 바가지요금은 사라지고 적어도 소매점 비용 정도로 낮춰졌죠. 바가지요금이 없으니 관광객들도 힘들여 서울에서 식료품 등을 싸가지고 올 이유가 없어졌지요. 시내음식점에서 관광객과 군장병에게 10% 할인하는 업소도 생겨났고요.”

농민들의 농산물을 파는 방법을 강구하다

축제가 축제로만 끝나면 그 효과가 미비하다. 경제적 파급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장 운영본부장을 비롯한 축제조직위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농촌사랑나눔권’이다. 재래시장 상품권 등을 활용한 아이디어다.

“축제터에서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해 농산물 판매장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잘 안됐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농촌사랑나눔권입니다. 어차피 입장료 없고 공짜인데 얼음썰매를 빌려가면서 5000원 보증금 예치금제도를 만들었고 이 금액을 돌려드릴 때 5000원 권의 농촌사랑나눔권을 나눠드리면 그 돈으로 우리 농산물을 사가도록 한 것이죠. 이 사이에서 처음에는 농민과 지역상인의 갈등이 있었어요. ‘화천사랑상품권’이라는 게 있었는데 지역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상품권이었거든요. 그래서 갈등을 줄이기 위해 눈얼음체험의 경우에는 화천사랑상품권을 주고, 비중이 있는 산천어얼음축제, 얼음낚시, 루어낚시, 맨손잡기 등은 농촌사랑나눔권을 주는 이원화 정책을 폈습니다. 2006년, 2007년 2년동안 두 상품권의 판매규모가 8억5800만 원 규모였는데 그 중에 농촌사랑나눔권이 4억5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난상토론 끝에 합의가 되어 농촌사랑나눔권으로 통합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효과보다 더 큰 소득은 생각의 전환이다. 청정지역 화천은 ‘청정’이라는 테두리 속에 갇힌 지역이기도 했다. 청정지역이다 보니 자연스레 규제면적이 넓어 의도하지 않게 청정한 지역에서 ‘개발’을 하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축제를 통해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어느 날 보니 그것이 자산이 되어있던 것이다.

“규제면적이 그 외 면적보다 더 많을 만큼 어쩔 수 없이 청정한 지역에서 억울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게 사실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그것이 자산이 되고 보물이 되어 있더군요. 축제 후 보고회에서 경제파급효과에 대해 논의하니까 번영회장이 그런 것보다는 4차선 없는 유일한 동네인 우리 화천군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결실을 맺은 것, 몰려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동의했습니다.”

재단법인이 된 축제위원회
-수익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

성공의 뒷면에는 항상 어려움도 있고, 개선할 사항들도 있게 마련이다.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 축제’ 또한 그렇다. 장 운영본부위원장은 축제위원회의 위상부터 이야기 한다.

“자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군에서 지원을 받다보니 그렇게 되는 거죠. 입장료도 무료입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수익사업을 할 수 있으면 하고 바라지만, 축제위원회 자체가 재단법인으로 되어 있고 재단운영비나 행사비를 모두 군에서 지원받다보니 그런 수익사업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 축제를 두 차례 마치고 나서 상설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래서 축제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재단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비영리재단법인으로 만들어졌으니 수익사업을 할 수 없었고, 자체수익을 없으니 군에서 보조를 받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축제 기획하는 사람들은 축제에 쓰이는 개최보조금이 한 푼이라도 더 많길 바라게 마련이죠.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은 게 사람심리이니까요. 이벤트를 하나 해도 좀 더 멋있게 해 보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현실입니다. 예컨대 화천의 청정지역 홍보를 위해 체험전시관을 만들고 싶은데 비용이 무척 셉니다. 또 체험프로그램이 많은 대신 공연이나 전시, 야간 프로그램이 적다는 지적도 받고 있고요. 하지만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바로 예산의 문제입니다. 자체수익이 전무하다보니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없는 거죠.”

우리나라에 소위 “지방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행사가 1200회 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지방축제가 난무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네 전통과 지방색을 보여주는 콘텐츠는 거의 없다는 것일 것이다. 비슷비슷한 이벤트와 행사들이 줄지어 판박이 축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화천 산천어 축제는 지역축제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이 중심이 된다면 축제의 지역적 특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천 두메산골이 낙후의 상징이 아닌 새로운 축제의 성공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멋진 일이다. 올 겨울 화천에서 또 신나는 축제의 한판이 전개될 것이다. 이전보다 더욱 발전된 멋진 축제의 전형을 계속 보여주길 기대한다.

면담일시 – 2007년 5월 31일

면담인사 – 장석범(화천군 나라축제조직위원회 운영본부장)

면담장소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상1리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