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선생님 강의 재밌고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거 다행입니다. 그럼 전 천당 갈 수 있겠네요”

2기 소셜 디자이너 스쿨의 4번째 강연 시간에는 노래도 있었고, 영상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 강호동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유재석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한순간도 눈을 뗄 수도 귀를 닫을 수도 없었다. 신의 뜻으로 4번이나 직업을 바꾸었다는 사람, 재미와 감동이 자신의 인생의 화두라는 이 사람. 오늘의 강연자는 변화를 즐기는 주철환 OBS경인방송 사장이었다.

긴 시간 강의할 테니 자유롭게 하겠다며 대뜸 웃옷도 벗고, 마이크 받침대도 치웠다. 그는 나이보다 10살은 어려보이는 대표적인 동안이다. 하지만 거침없는 화법으로 지나온 삶을 풀어놓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수강생들은 모두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열중했다. 주철환 사장은 그동안 살면서 직업을 4번이나 바꿨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에서 잘나가는 국민 PD로, 그리고 이화여대 교수가 되었다가 이번엔 아예 방송국 사장으로 변신했다.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순 없어요. 그때그때 즐길 뿐이죠.”
변화는 신의 뜻, 그는 그저 그것을 즐길 뿐이다.
”?”
첫 직업은 국어교사, “이 길을 10년 준비 했어요”

교사를 꿈꿨던 건 좋은 교사를 만났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자신을 알아주는 국어 선생님을 만나면서 그 같은 국어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국어의 달인이 되기 위해 국어교과서를 줄줄 외우다시피 했다. 학창시절 동안 ‘국어 왕’으로 군림한 그는 자연스럽게 국문과에 지원했고, 운 좋게도 딱 커트라인으로 합격했다. 꼴찌로 입학했지만, 학기 동안 늘 3등 안에 들고, 교직과목도 거의 A+일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다. 지난 10년 동안 국어교사만을 바라보고 준비해온 그는 임용고시에도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합격 하고 얼마 후 모교에서 전화가 왔다. “국어교사에 빈자리가 났으니 빨리 오라”는 은사님의 전화였다. 군대 가기 전까지 모교에서 2년 6개월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가르치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방학이 되면 개학이 기다려지고, 주말이면 월요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는 학생들을 만날 때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하늘나라에 가는 데에도 내신 성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신 성적에는 단계가 있어요. 제가 만약 학생들에게 ‘선생님 수업 어때?’하고 물었는데. 학생들이 ‘재미있어요→ 즐거워요→ 기뻐요→ 감동이에요!’라고 한다면 플러스 점수를 받는 거예요. 반대로 지루해요→ 괴로워요→ 그런 선생님 있는 게 슬퍼요→ 상처를 받아요’라고 한다면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 거죠.”

군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주철환 사장은 약한 체질과 불규칙한 생활로 26살 때까지 키 170cm에 몸무게가 겨우 47킬로였다. 대학 4년까지 징집보류였다가 덜컥 신검에 합격됐다. 대학원 진학으로 잠시 미루다 결국 군대에 갔다. 그는 허약한 몸 때문에 다소 편하다는 카투사로 배정받았다. 휴직을 하고 입대하려던 그를 선생님이 말렸다.

“넌 대학원도 마쳤고, 국어 교사도 이만큼 잘했는데, 사직 했다고 너 다시 안 받아주겠니? 또, 퇴직금도 있는데, 그거 가지고 맥주라도 마실 수 있잖아.”

그 말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
신이 내린 길, 방송국 PD

카투사에 복무하면서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를 공부하며 국방부 시계가 굴러가길 기다렸다. 제대 즈음 또 다시 은사가 교사 대신 교수가 되라며 복직을 말렸다. 국어는 좋아도 연구는 싫었던지라 은사의 권유에 방황하다가 우연히 MBC앞을 지나게 됐다. 거기서 ‘미래의 방송인을 찾습니다’ 란 채용모집공고를 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PD, 기자, 아나운서를 뽑는 시험과목이 국어, 영어, 상식, 작문, 모두 자신 있는 것들뿐이었다. 자신 있게 응시했지만 최종면접에서 아쉽게 떨어지고 결국 은사의 권유대로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그런데 신의 뜻은 달랐다. 83년 3월 MBC에서 전화가 왔다. 결원이 생겨서 추가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이번엔 면접에 대비해 100가지 예상 질문을 뽑아 갈 정도로 철저히 준비했다. 과연 그의 예상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는 자신 있게 면접에 응했다.

“너는 왜 피디가 되려하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피디는 나의 기쁨이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는 다음날 바로 방송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우정의 무대>, <퀴즈 아카데미>,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학가요제> 같은 숱한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며 대표적 국민 PD로 자리매김 했다.

“재밌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

그의 인생 화두는 재미. 평탄한 것보다 울퉁불퉁한 게 재밌는 것이다. 20년 전 ‘재밌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는 인생관을 만들었다. 지금이야 잘 나가지만 어린 시절 그리 평탄치 않았다.

몸이 약해서 운동을 못했다. 친구들은 열심히 축구할 때 그는 그늘에서 앉아 노래를 지어 부르곤 했다. 그늘에서 놀았던 게 자신의 동안의 비결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당시 친구들과 비교하면, 그는 항상 열등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여자 같다고 ‘계집애’, ‘미스 주’, ‘주 마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때부터 그늘의 삶이 시작되었지만, 그는 무척이나 긍정적이었다. 다만 자신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잔데, 너희들보다 조금 다른 특성을 한 가지 더 갖고 있는 거야. 예를 들면, 섬세함?’

그는 언어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언어는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다리역할을 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언어의 핏줄을 찾아주는 놀이를 하며 상상력을 길렀다. 예를 들면, 주전자, ‘주’체성, ‘전’문성. ‘자’신감을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식이다. ‘성공하려면 ‘꿈, 꼴, 꾀, 깡, 끼, 끈’이 있어야한다’ 이건 10년 전에 그가 만든 말이다. 그는 그야말로 말을 가지고 놀며 강연 중에 ‘젋은이의 특성은 호기심, 늙은이의 특성은 의심’ 과 같은 재밌는 어록을 많이 남겼다. 좋은 말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라며 정채봉 시인의 ‘콩씨네 자녀교육’이란 시를 예로 들었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


언어에 깃들어 있는 운율은 그를 음악세계로 이끌었다. 그는 그늘에서 혼자 놀며 키워온 작곡실력으로 후에 PD가 되었을 때 ‘모여라 꿈동산’, ‘장학퀴즈’ 로고송 같은 불후의 명곡을 만들기도 했다. 노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에는 ‘꿈, 친구’ 같은 그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주철환 사장은 강의 중간에 자신이 만든 노래들을 계속 불러주었다. 산울림 노래처럼 무척 친숙한 리듬으로 수강생들을 흥겹게 하기도 했고, 분위기 있게 깔려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전 직원들에게 그래요. ‘비교하지 말고, 비유를 합시다!’ 비교는 너무너무 불행한 거예요. 친구 아들은 코끼리이고 우리 아들은 사슴인데 무엇 하러 비교를 해요? 박원순은 박원순, 주철환은 주철환인거죠. 각자의 삶이 있고, 선택했으면, 그대로 노력하며 살면 되는 거예요.”
”?”
어려운 문제일수록 푸는 재미가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 경인방송 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즘, 그는 지금처럼 삶이 힘들었을 때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PD로 일할 땐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일하면 됐지만 리더는 달랐다. 리더는 멤버들의 꿈을 이루도록 살신성인해야하고 직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한다. 싫어하는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콩나물에서 콩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해요. 제가 좀 성장하는 거 같아요.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어요. 세상은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고 있구나 깨달았고요. 실패해도 좋다. 경험으로 단련되는 거죠. 그래서 더 멋져지는 거예요.”

문제와 문제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주철환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문제지만, 문제집은 해답이 뒤에 있는 것이 차이다. 답이 있기는 하지만, 답을 먼저 들춰보면, 실력이 절대 늘 수 없죠.”

어려움을 통해 단련이 되고 그러면서 멋져진다. 여기서 그의 긍정성을 다시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방송사 사장일을 하면서 ‘경험, 교훈, 친구’ 이 3가지를 얻었다고 했다. 고별사도 벌써 써두었다. 자신이 적재적소라면 계속 있을 것이지만, 자신보다 잘 하는 누군가가 오면 언제든지 자리를 비켜줄 요량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성공해야 방송이 성공하는 거고,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깊이 고민한다. 시청률에 목말라 하지만, 그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고자 한다.

“초창기는 어려운거에요. 박원순 변호사도 처음에는 시시하게 시작했을 거예요. 미약했을 거예요. 6개월, 8개월, 10개월 된 아이한테 ‘쟤 왜 말 못해요?’하고 물으면 저주를 퍼붓는 거죠. 때가 되면 걷고, 걷게 되면 달리게 되는 거예요. 가만있는 게 아니잖아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조금 더 지켜보세요.”

희망은 젊다는 것, 그리고 긍정적 마인드!

주철환 사장의 목표는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는 것. 그는 아들 친구들과도 친구로 지낼 정도로 격의 없다. 자신의 동안 비결을 동심에 뿌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사장이 되어서 권력을 누리기보다는 피디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주고,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한다. 스스로 아직 청년정신을 아직 가지고 있고,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 경인 방송국 표어인 ‘희망과 나눔과 빛’을 방송으로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는 좋은 방송을 자신의 이름 이니셜 ‘CH’로 정의했다. C는 Creativity, Communication, H는 Harmony, Humanity를 각각 뜻한다. ‘인간성을 잃지 않고, 희망과 나눔을 실천하고 두루 소통하며 창의적인 방송’이라는 의미다. 또 처음에는 짱, 끝나면 찡한 것이 좋은 프로그램이다.

대학교 수업에서 어떤 친구가 ‘최고는 어떻게 되요?’라고 묻기에,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면, 죽는 날 최고가 되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최고는 재능과 적성과 열정을 다하는 것. 내가가진 재능과 적성과 열정을 다하면 그게 최고라는 것이다.

주철환 사장은 살아가면서 잘할 수 있는 일로 꼽는 건 방송과 교육, 2가지였다. 지루하게 강연하는 건 시간 도둑질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을 자신의 달란트라고 여긴다. 초년에는 고생을 좀 했지만 대학 때부터 승승장구해서 국어교사에서 PD, 다시 교수에서 사장이 되었다. 그는 이런 표현에 손사래 쳤지만 그의 달란트를 최대한 살려온 여정이 어쩌면 진짜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젊은이들을 만나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다.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하고 즐길 것이다. 지금처럼 변화를 즐기고 있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된 강연이 끝나자 수강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에 이런 질문도 있었다.
“‘OBS’는 무엇의 약자인가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게 가장 좋은 약자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이다. 주철환 사장은 “여러분이 대한민국 희망을 업그레이드 시켜주세요!”로 강연을 끝맺었다. 소셜 디자이너들이 꿈꾸며 그리고 싶어 하는 사회, 그게 바로 대한민국의 희망이 아닐까. 강연 후 강연자, 수강생 모두 파김치가 되었지만 강의실의 열기만은 생생했다.

제2기 소셜 디자이너 스쿨이 벌써 반을 지나왔다. 회가 거듭될수록 강연에 대한 수강생들의 열의도 높아진다. 다음 5번째 강의는 백경학 푸르메 재단 상임이사가 ‘나눔의 가치를 바탕으로 재활의 희망을 일군다’는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다.


[소셜디자이너스쿨 2기 이야기]

1. 희망바이러스에 감염될 각오를 하다
2. 오늘도 진주조개는 생생한 심장을 가진 어부를 기다린다
3. 소셜 디자이너, 지역희망의 현장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