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가 맞닥뜨린 크고 작은 사회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혁신’ 활동이 시민들의 참여와 아이디어를 모아, 섹터를 넘나드는 실험과 협업의 방식으로 펼쳐진 지 10년이 넘어서고 있다. 사회혁신의 깃발 아래 이루어졌던 시민들의 실천활동과 프로그램이 민간의 다양한 사업, 지방과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점차 확산되면서 사회혁신 담론이 형성되었고 이론으로 체계화되는 작업 또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회혁신으로 도시와 지역의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활력과 기대, 낙관과 성취의 이야기들이 싹트고 자라났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부터 불평등, 빈부격차, 환경문제와 같은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난제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시장의 이윤추구를 위한 혁신이나 정부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을 촉진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마을에서, 도시재생의 현장에서, 복지서비스와 돌봄서비스에서, 사회적기업 활동과 주민참여의 과정에서 그 시도들은 활짝 만개했다.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털어놓은 뼈아픈 고백
그러나 한편으론 좌절과 실망, 근심 또한 쌓여갔다. 사회혁신의 현실을 진단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희망제작소가 만난 사회혁신의 분야별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다양한 지점에서 뼈아픈 성찰과 진단을 내놓았다.
“사회혁신이 특정 정치세력이 권력을 획득했을 때 따라가는 방법론처럼 된 게 아닐까‧‧‧.”
“실제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시민들에게 사회혁신 방법론에 대한 효능감을 가져다 주었는지 의문이 든다.”
“인물로 상징되던 사회혁신의 성과와 의미가 한 인물의 퇴장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경제, 사회혁신이 행정의 파트너 역할에 치중해 시민을 위한 활성화보다 기능적 기능적 역할만 해온 것은 아닐까‧‧‧.”
“전문성, 경험, 열정, 의지와 같은 사회혁신 주체들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있을지 확신이 없을 때가 있다.”
사회혁신의 미래를 위한 3가지 제언
그렇다면 앞으로 사회혁신의 전망은 어떠한가. 그 누구도 섣불리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혁신의 핵심적인 지점들은 자연스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첫째, 사회혁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사회혁신 자체를 도그마로 받아들인 것인 아닌지, 사회혁신 프로세스에 대한 지나친 집중이 오히려 사회문제를 중심에 놓고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해야만, 시장의 혁신이나 발명으로서의 혁신이 아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회혁신을 할 것인지에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행정과의 협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에게 인정받고, 시민에게 효능감을 주는 사회혁신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경우 실물경제의 한 축으로서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시민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시민참여사업의 경우라면 ‘좋은 일인 건 알겠는데 전혀 체감이 안 된다’는 시민들의 냉정한 평가에 답을 내놓아야 마땅하다. 이처럼 시민에 응답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연대의 감각을 키우는 것은, 기존의 사회혁신이 지나치게 너른 영역을 포괄하거나 개별 프로젝트 위주로 작동해왔기 때문에 고유한 자기 성과를 가지기 어렵다는 비판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사회혁신의 핵심가치, 목표와 방법을 지금의 현실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되, 다양한 혁신 활동의 주체들이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혁신이 단번에 완성되는 해답이 아니라 무수한 실험을 거쳐 발견하는 해결의 과정이라면, 그 방법의 핵심은 ‘실패’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회혁신은 이러한 특정한 실험공간, 즉 ‘실패의 현장’을 어떻게 만들고 보장하고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수고했어, 그동안
그러나, 성찰과 회고, 전망에 앞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달려온 사회혁신의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는 격려를 먼저 보내는 일이다. 어쩌면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만큼의 피로와 혼란에 빠져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따뜻한 인정과 격려를 통해 사회혁신의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좀 더 나은 해답이 아닌, 좀 더 나은 ‘질문’을 하는 사회혁신의 새 버전, ‘사회혁신2.0’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좀 더 나은 질문을 하려면 축적된 지식, 단단한 경험, 그리고 질문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 지난 10년은 우리에게 소중한 지식과 경험, 사람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 속에, 사회혁신2.0은 이미 가까이 와 있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위험하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대와 실험으로 시민의 삶을 바꿔낼 수 있는 진정으로 ‘사회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으로.
글: 연구사업본부 이은경 연구위원(eklee@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