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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19>

제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꽃을 꺾어 아무리 예쁜 꽃병에 담아둔다고 해도 땅에 뿌리를 둔 꽃보다 아름다울 수 없고, 어항에 담긴 물고기보다는 자유로이 물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물고기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공공작업소 심심’의 소장 김병수 씨(39)를 만난 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전주에서 본 그의 얼굴에는 깊은 고민이 묻어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 웃음은 그가 부닥쳐온 어려움, 고민이 적거나 가벼워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서 자신이 지고 있는 달콤쌉싸름 한 고민들을 그저 묵묵히 감내해내고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꿈꿀 줄 아는 젊은 그를 만났다.
”?” 이방인으로서 다시 고향 전주에 서다

그는 2001년 전주로 내려왔다. 한참 만에 돌아온 정다운 고향이지만 그에게 고향은 이미 낯선 곳이 되어있었다. 사람들의 잣대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내려온 그에게 고향은 정겹지 않았다. 서울에서 이방인이었던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서 다시 이방인이 되었다.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기도 했다. 지방인이었던 그가 그러한 심리에 대해 모를리 없다.

“고향에 내려오기 전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에서 일을 했어요. 그만두기 직전에 인천국제공항 양심사건,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용적률 낮추는 문제, 연천댐 붕괴 문제 등을 다뤘어요. 그러면서 약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결국 부서를 이동했어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굴욕감이 들더군요. 고민이 깊어졌지요. 우리나라의 지식구조와 시민운동 참여의 방식, 어디까지 함께할 것인지 등등. 결국 경실련을 그만두고 무작정 인도로 가 6개월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죠. 손에 잡힐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한국에 온 후 고향인 전주에 왔다가 ‘다문’이라는 찻집에 들렀는데 ‘전주 산조예술제’를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그 과정이 재미있고 매력적이어서 그대로 3개월간 ‘다문’에 머물게 됐어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대로 전주에 머물게 됐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차 한잔 하다가 자연스레 창을 나누며 판이 벌어진다는 찻집 다문에서, 그리고 전주에서 그는 놀면서 일하는 법을 배웠다. 투쟁하듯 일한 그는 놀면서 일하는 새 세상을 경험을 했고 이는 그에게 치유의 과정이 됐다.

공공작업소 심심(心心)을 만들다
”?” 2002년 가을 그는 문화게릴라들의 집합체인 공공작업소 심심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뛰어든다.

“‘심심’은 마음 심(心)을 의미해요. 거리에 전봇대를 보면 무슨 생각을 떠올려요? 어렸을 때 전봇대를 기둥삼아 놀았던 말뚝박기, 나이먹기 등 경험에서 우러난 다양한 이야기가 샘솟잖아요. 전봇대가 그냥 시설을 넘어서서 일상에서 사람들과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되는 거죠. 그렇듯 규정된 틀 속에서 진정한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10여 평의 원룸형 사무실에서 몇몇의 활동가들이 함께 하고 있는 공공작업소 심심은 쇠락한 지방의 도심지를 대상으로 공공디자인과 문화적 공간구성에 대한 노력을 통해 공공공 간의 탈바꿈을 추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앙에 비해 낙후한 지방이지만 지방에서도 중앙과 주변부는 있고, 중앙 도심은 변하기 마련이어서 구도심의 쇠락화 문제가 불거진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전라도에서, 광역시가 없는 전북의 전주에서 그는 구도심의 활성화와 전주의 한옥 문화를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 도심 상가지역을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는데, 쇠락한 도심 상가지역을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ㆍ예술 갤러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역 시장 상인들과 인터뷰도 하고 학생들과 지역 신문도 만들면서 지역 마을의 역사와 자원,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고요. 또 농촌지역 주민들과 함께 흙가마도 만들고 찾아오는 시민과 학생들이 가마에서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도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지역공동체의 역사를 찾고 시민공감대를 넓어지는 거죠.”

공공제작소 심심이 설립된 후부터 시작해 매년 사력을 다하는 사업이 ‘동문축제’다. 한때 전주의 동문사거리 일대주변엔 서점이 즐비했다. 작가 최명희와 양귀자, 은희경 등이 문학소녀 시절 자주 들락거렸던 곳이 바로 이 거리다. 하지만 전주 구도심에서 한옥마을로 향하는 이 거리는 쇠락을 거듭해 그날의 영광을 이제는 추억할 뿐이었다. 그곳에 다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 ‘동문축제’다.

“한옥마을을 위해 경계지역에 있는 기존의 상업가를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동문사거리 일대에 동문축제를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600m의 동문거리를 시민과 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생활공간으로 되살리자는 거죠. 문광부와 전주시의 후원을 받아서 우선 점포의 외관을 산뜻하게 바꾸는데 이 일에는 미술가와 서예가 등이 함께 합니다. 또 거리 내 자투리땅과 주차장에 목책과 생울타리를 두르고 시민을 위한 쉼터로 제공하기도 하고요. 동문 사거리의 바닥면을 교체하고 주변에 설치물도 세웁니다. 결과적으로 도심에서 한옥마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예술인과 시민들이 즐겁게 걷는 거리를 만드는 일이죠.”

이 동문축제를 통해 공공작업소 심심은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구도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데 일조했고, 구도심 활성화를 지원하는 조례도 만들어졌다.

“구도심 문제를 몇 년 붙잡고 있었더니 이제는 이를 제도적으로 접근해 시민과 함께 하는 연구를 하고 싶은데 아직 여건이 안 되었어요. 금전적인 문제도 있는데, 최근에 전주시의 정책공모에 당선되어 300만 원을 받았거든요. 그걸 기반으로 시작해볼까 해요.”
”?” 재래시장인 남부시장에 손을 대다

축제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제대로 연구하고자 하는 김병수 소장의 나이는 젊다. 게다가 그의 생각은 더욱 젊다. 만족하고 머무르기보다는 더 나아갈 길을 생각하는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더욱 많다. 그가 최근 주목하는 것은 전주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남부시장’이다. 대형할인점의 등장으로 재래시장이 어려워진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전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서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재래시장에 대한 현대화가 추진되고 있다. 전주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김병수 소장은 재래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물건을 파는 시장으로만은 안돼요. 대형할인점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까 그들만의 장점을 발굴해내야 하잖아요. 박람회 등 다른 기능을 결합시켜보고자 하는데 마땅한 프로젝트의 기반이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우선 문광부의 청소년 문화예술 프로젝트와 관련해 남부시장을 청소년의 교육공간으로 제안해 승인을 받았어요. 공간을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공간으로 체득하는 과정,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기반을 감성적으로 이해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아직 많이 어려워요. 학교 아이들도, 선생들도, 작가들도 어려워요. 전주시내의 11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 동문거리와 남부시장으로 이어진 그의 관심은 궁극적으로 구도심에 대한 대책으로 연결된다. 재래시장이나 구도심의 문제는 전국이 앓고 있는 문제다. 택지는 일방적으로 조성되기 마련이고 자본은 금세 빠져나간다. 그동안 택지를 외연적으로 확장해나가는 방식에 대한 안티이고 어느 지역이나 이 문제는 중요하다. 그 문제를 풀다보면 종합적인 지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전주의 경우 도청이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구도심의 중심상권이 몰락했어요. 초기 500억 원이 투자됐는데 최종적으로는 1000억 원도 더 소요될 거예요. 인근에 비어있는 건물 100개는 살 수 있는 돈이에요. 구도심이 공동화되고 새로운 도심이 또 만들어지는 거예요. 개발된 지 20년 만에 슬럼이 진행되는데 그건 서민의 삶을 엄청 핍박하는 거죠. 이제 개별상가로는 안돼요. 특정구역의 상가시민들이 공동브랜드를 구축하는 게 필요해요. 남부시장에서도 4층에 상가번영회가 있는데 3층은 비어있어요. 한층 덜 지었다면 그 비용으로 1500만 원짜리 인력 한명을 고용할 수 있거든요.”

결과적으로 그의 관심은 지구단위계획으로 치닫는다. 도시계획제도에 있어서 주거지역, 상업지역 등으로 나누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것을 지구단위계획이라고 한다. 2000년 초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일본이나 유럽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시민과 지도자, 전문가들이 모여 그랜드디자인을 구성하는 거죠. 태백시의 철암지역에서 낸 철암백서가 그 예일 수 있는데 결국 시의 완고한 도시계획에 부딪혀 실패했지만, 좋은 경험이라고 봐요. 이 과정에서 소지역계획이 중요해요. 그런저런 마을, 거리를 포괄하는 소지역단위의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거죠. 전주와 규모가 비슷한 일본의 가나자와시에서는 67개의 지구단위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관해 조례에 준하는 주민과 공공기관의 협약을 체결해 둔 것을 볼 수 있어요. 반면 우리는 지역활동가들을 활용해본 경험이 없고 이슈파이팅 중심으로 해왔기에 계획적 합의를 해야 탄력을 받아 큰 방향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고 전문지식과 시간도 필요하죠.”

전통문화를 살려내기 위한 작은 프로젝트들
”?” 그는 심심의 소장이기도 하지만 전주한옥생활체험관의 관장이기도 하다. 솔직히 그가 이러한 관장직을 수락한 것은 ‘사심’이 작용했다. 그가 관장이 된 2004년 심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기에 관장으로 나오는 월급이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락했다. 그는 처음 월드컵 이후 국비지원 형태로 이러한 문화시설이 지어지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사심에 앞서 2002년 문화시설 운영에 관련한 기획서를 만들면서 이왕 들어온 거라면 잘해보자는 마음이 커졌다.

한옥생활체험관은 기존에 숙박중심의 운영체계에서 다양한 공연기획을 보태어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자 했다. ‘지역의 전통문화를 풀어먹으려면 탯줄같은 라인이 있어야한다’는 게 김병수 씨의 생각이다. 서로 양분을 주고받으며 이뤄지는 상생네트워크 말이다.

그래서 한옥체험관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옴니버스3미3색’ 프로젝트다. 한옥마을, 하늘소마을, 진안의 한마을, 임실 치즈마을 등을 엮어 똥을 테마로 한 순환농법에 관하여 캠프를 여는 문화상품을 만들었다.

또 한옥의 개보수와 관련해 세미나를 열어 한옥의 재해석, 한옥도면의 재해석 등에 대해 전문가 토크쇼를 진행해 이를 녹화하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영화감독 등을 불러 대담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독립영화도 진행하고 있다.

“한옥마을을 지역에서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이 상품입니다. 결국 관심을 끌어야 하잖아요. 한옥마을을 소개하는 지도인 ‘한옥이야기’가 그 중요한 소재의 하나였습니다. 해남 대흥사와 한옥체험관이 외국인들만 상대로 하는 6박7일의 체험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는데 절반씩 체류하면서 프로그램을 겹치지 않게 해 전통문화를 많이 팔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김 소장은 한옥생활체험관과 함께 술박물관 관장도 맡았는데 술박물관에 ‘연구사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에서 트레이닝을 시켜 농촌으로 파견하는데 농촌지도소와 더불어 순창, 부안 등으로 가서 전통주 교육을 받는다. 농촌지도소 지원과 도청지원, 녹색농촌마을 사람들을 모아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옥마을에 대한 접근을 그냥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만 해서는 안돼요. 어떤 방식으로 문화적 감수성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한옥을 개발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옥생활체험관에 오기 전부터 교동 한옥마을프로젝트를 함께 했었는데 이건 일종의 의무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도시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전주에서 한옥마을은 그 중심에 있거든요. 나중에 ‘한옥마을 자서전’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어요.”

공공제작소 심심, 한옥생활체험관의 모든 경험은 그에게 지역운동으로 귀속된다. 지역을 통해 대안을 만들고 다른 지역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그는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전주에서 이름을 얻었고, 많은 활동을 펼쳐왔고 가시적 성과도 얻었지만 아직도 지역에서 운동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인력풀이 적거나 아예 없고, 업무방식도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민관협력이 있어야 해요. 당장 문화, 환경, 교육 등 여러 컨텐츠를 가지고 지역을 뜯어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도 저희는 재정적 한계가 있어요. 우리식의 주거단위계획,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야 하는데 관에서는 일방적으로 다 만들어놓고 그 후에 알아듣기도 어려운 용어로 공청회라는 걸 진행하지요. 북촌마을 등의 사례가 그렇죠. 당연히 후유증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축제도 하고 토론도 하고 교육도 하고 매체도 개발해 꾸준히 소통을 이뤄야 해요. 그래서 관과 민이 만나야 하는 거죠. 하지만 지방의제21처럼 단편적이고 나열적이기 보다는 민관협력의 팀 체제가 필요한 겁니다.”

내가 지금 옮긴 것보다 그는 훨씬 넓은 스펙트럼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한참동안 했다. 지방에서 지방을 고민하는 김병수 소장과 같은 사람들이 진정 지역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는 곧잘 중앙의 시선으로 지방을 보고, 나름의 잣대로 평가하고, 대안이라는 것을 던져주었고, 지방에서는 이에 의존하는 방식에 너무 익숙해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그 곳에 문제의 답도 있다. 구도심을 살리고, 그 안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은 그의 말처럼 중앙과 지방이 아닌 한 지역으로서 지방을 바라보고, 기본에서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

면담일시: 2006년 6월19일

면담자 : 공공작업소 심심 김병수 소장 (전주한옥생활체험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