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박원순의 희망탐사 41>

이장(里長)

마을마다 ‘이장’이 있다.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농사를 짓는 일이나 마을에 길을 놓는 일처럼 큰일까지 이장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순희네 집에서 개가 새끼를 낳아도, 철수네 집에서 사람이 들고 나도 이 모든 걸 꿰뚫어보는 사람이 바로 이장이다.

지금은 도시화의 물결 속에 농촌에만 남아 있지만 도시에서도 통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장이나 통장의 다름없는 역할은 바로 주민들의 의사를 한 곳에 묶어내어 이를 통해 마을을 더 좋게, 더 새롭게 바꾸는 일이다. 이는 모두 주민들 하나하나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의사를 전제로 마을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미 그 이장이라는 직책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주식회사 이장은 마을의 한 사람에게 주어졌던 그 이장의 역할을 심화, 확대한 말 그대로의 주식회사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마을의 이장이 되어 한 지역 주민의 의견을 모두 듣고, 그들의 의견을 토대로 그 지역을 새롭게 바꾸어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그 역할의 중심에는 ‘생태’라는 가치가 당당히 놓여있다.

마을을 관장하는 이장을 이름으로 둔 회사, 그네들이 하는 일을, 일의 성격에 대해 들으며 고개가 절로 주억거렸다. 그네들은 우리네 마을들의 이장이었다. 마을 일을 관장하는, 우리네 마을을 풍요롭게 하는 진정한 그 이장 말이다.

주식회사 ‘이장’을 만든 사연
”?” ‘주식회사 이장’을 설립한 이는 임경수 박사다. 환경운동에 관심이 있던 그는 ‘이장’을 통해 농촌과 도시가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주식회사 이장을 설립했다.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임경수 박사의 이력은 ‘이장’과 딱 어울린다.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 끝에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특히 유기농업에 집중하게 돼서 박사논문도 유기농을 주제로 쓰게 됐죠. 처음에는 기술에 관심을 가졌지만 유기농 생산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유기농산물 팔아주는 것이 농민들을 도와주는 일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보생명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유기농생산자정보시스템을 만들어주게 되었습니다. 3000만 원을 받아 100여 명의 유기농사꾼들을 조사해서 유기농철학과 생산특징 등을 조사하며 서울대에 벤처기업으로 등록했습니다. 그것이 인터넷 이장이 된 거죠. 이장이 전국 유기농 생산자 정보를 모아서 이장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주식회사 이장은 시작됐다. 환경에 대한 소박한 관심에서 시작된 이장은 전국적인 사업체로 발돋움했다. 환경과 유기농에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레 귀농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농촌에서 생산하는 유기농산물을 도시에서 소비시키는 일에 집중하게 됐다.

그 결과 농촌의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환경 지킴이로서의 역할이 농촌에 국한된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의 소비 시스템을 바꿔야, 지역사회가 바뀌어야 환경운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단순히 농촌이 유기농을 생산하는 곳에 그치지 않고 유통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바뀌어야 합니다. 고품질의 기술로서만 유기농을 바라보는데 사회자체가 유기농적 삶으로 바뀌어야 했습니다. 유기농을 하는 동네도 세제를 쓰는 걸 지켜보면서 결국 생태마을이 주관심이 되었습니다. 호주 크리스털워트스 생태마을에 한 달 동안 머무르면서 퍼머컬쳐(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연수를 받았고 그 공부를 하면서 마을단위지원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주식회사 이장’의 일은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사단법인으로도, 또는 재단법인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장은 주식회사의 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고민을 했습니다. 공익적인 일인데 주식회사로 해도 되느냐 논의가 있었죠. 그런데 환경운동연합 일도 해 보니까 의사결정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의사결정이 빠른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어 나쁘게만 쓰지 않으면 다른 좋은 일에 투자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사단법인이 오히려 그것을 어렵게 만드리라 생각을 하게 됐고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지 않으면 발전이 없겠다, 그런 전형을 만들어보자고 하여 주식회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결정이 참 잘 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주식회사의 틀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주고 급여도 제대로 주어야 되니까 더욱 운영이 잘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사회적 기업의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100개 마을의 기본계획을 수립하다

주식회사 이장이 설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었지만 과연 이장이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는 아직 의문이 남았다. 과연 이장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일까? 크게 보면 이장은 마을 컨설팅과 유기농산물의 유통, 그리고 공동체로서의 생태마을 건설, 귀농지원 활동 등을 한다. 그러나 역시 구체적으로 이장이 하고 있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조급한 궁금증이 또아리를 틀고 있던 찰나에 임경수 대표의 대답이 나왔다.

“초창기에는 마을단위의 사업을 하려 했는데 컨설팅을 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농산물 직거래를 하는 중간매개 역할을 하려 했을 뿐이죠. 그런데 정부의 마을단위 사업이 많아졌기 때문에 컨설팅이 주력사업이 되었습니다. 사실 용역으로 보면 별로 수익이 나지 않는 게 컨설팅 사업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회사재정상황을 고려해 마을사업을 계속해야 하느냐 토론도 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마을 컨설팅만큼 지역사회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없습니다. 마을의 권력구조, 관청과의 관계 등을 현장에서부터 잘 배울 수 있는 게 컨설팅 과정에 다 들어가 있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100여개 마을의 기본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저희가 중점을 두는 것은 보고서의 질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보고서가 나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주민들을 준비시켰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발한 아이디어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는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충실한 준비단계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컨설팅을 잔치처럼 재미있게 합니다. 마을주민들에게 마을계획도 어떻게 하는지 알려드리고 조별로 그분들이 정하게 합니다. 비전만들기, 전략만들기 등을 나눠주고 그분들이 찾아내도록 도와줍니다.”
”?” ‘이장’은 주민들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모르긴 몰라도 이장의 사업은 마을 주민들의 참여가 없으면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참여가 가장 절실하다.

“지자체에서 사업계획 내고 중앙에서 좋다고 하며 예산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먼저 주민들이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이렇게 체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행자부에서 주도해서 국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살기좋은지역사회국 이런 것인데 제 생각에는 오히려 민간위원회 만들고 행자부 직원 몇 명 파견하는 게 훨씬 효과가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간위원회는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역에서 하는 일은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시스템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지역의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부러라도 사람 끌어오는 일도 해야 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지역사회에 그물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민은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다 -활동가들의 역할이 바뀌어야

사실 공동체 문제를 생각하는 시민단체는 많다. YMCA, 열린사회시민연합, 주민자치센터, 대화아카데미, 의제21 등이 마을만들기를 고민해 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문제에 집중하는 편이다. 농촌공동체와 도시공동체를 동시에 생각하는 곳은 적다. 이장은 그걸 지향한다.

“대화아카데미가 대화를 제의해서 몇 차례 만난 결과 마을만들기네트워크가 탄생했습니다. 주관하는 단체를 정하는데 올해(2006년)는 우리단체가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사업 중의 하나가 마을만들기 대학입니다. 한달에 한번 토요일 6시간쯤 강의도 듣고 공부도 하는 모임을 진행 중인데 첫 강의는 도시마을만들기, 2강은 농촌마을만들기, 3강은 퍼머컬쳐(세 번에 걸쳐 1박2일로 진행), 4강은 지자체와의 파트너십, 5강은 문화만들기 등입니다. 맨 마지막에 하는 프로그램이 마을만들기 과제를 지역활동가와 나누는 토론입니다. 이런 활동가들이 지역에 내려가 그런 대학을 만들라는 의미에서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도시만들기가 주로 공간을 가지고 일했는데 쌈지공원, 안전한 통학로, 공부방 등이 그 예입니다.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은 활동가들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씻고 보면 주민을 대상이 아니고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원의 대상으로 보면 공허하게 됩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마을만들기의 지향이 뭐냐 하면 지역사회의 그물코 만들기입니다.”

주식회사 이장이 서천에서 도모하는 일
”?” 크게는 지역공동체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는 ‘이장’에서는 지역에 대한 관심과 철학이 남다르다. 임경수 대표는 큰 개발에만 집중하는 지역사업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그것이 지역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지역사업하면 첫째는 큰 개발을 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개발은 지역경제에 도움을 안 줍니다. 일례로 온천을 개발한다고 하면 땅을 사고, 그 땅을 온천으로 지정합니다. 토공에서 분양해주고 나가는 것이죠. 그런데 분양받은 사람이 외지인입니다. 돈은 다른 곳에서 쓰게 되는 것이죠. 큰 단지가 개발되면 작은 단지는 묻히게 마련입니다. 지역차원에 이런 것들을 묶어내야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장’이 서천에 내려와 있는 것은 지역공동체간에 연계 고리가 확실한, 그래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그런 모델을 서천에 만들어보아야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깨져있는 지역공동체의 고리를 연결시키는 일을 서천에서 해보이겠다는 것이다.

“서천에서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아니라 내부경제를 원활하게 돌아가는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천에서 신활력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공무원 3~4분과 깊은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은 거버넌스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카페, ‘우리동네 청파’를 만들다-서천에 공동체를 만드는 비전

‘이장’은 원래 춘천에 기반을 갖고 있다. 2006년 현재 본사 직원 대부분은 춘천에 머무르고 4명 정도가 서천지점에 파견 나와 일을 하고 있다.(2007년 1월에 경기 안성시 금강면으로 본사 이전) 이들이 서천에서 중점을 두고 하는 일은 공동체 만들기이다.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서천에서의 공동체 만들기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나름의 방식대로 서천에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 공동체의 중심이 서천 지역에 있던 다방 ‘청파’였다. 임경수 대표는 서천지역의 젊은이들과 함께 원래 다방이었던 ‘청파’를 인수하여 ‘우리동네 청파’란 이름을 붙여 서천지역의 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했다. 이곳에서는 공동체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방과 후 교육이나 공동육아도 가능할 것으로 임경수 대표는 보고 있다.

“가게세 보증금이 1000만 원입니댜. 카페 만드는 비용은 30만 원씩 30명이 모아서 만들었습니다. 이 카페를 만들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서천지역에는 아이들 보낼 학원이 없습니다. 방과후 학교나 공동육아시설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카페에 모이는 사람들 중심으로 공동육아를 해볼 작정입니다. 교사만 한 분 있으면 학부모들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천에는 농촌체험 갈 곳이 많습니다. 유기농 딸기밭도 있는데 거기 가 보았더니 지역주민들도 그런 좋은 곳이 있느냐고들 했습니다.”

지역에 있는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사회적인 일자리 창출은 요원하다. 이 지역의 자원을 살려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귀농인구를 늘려 생태적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주식회사 이장’의 꿈이다. 아직은 요원하지만 이장은 그 일을 조금씩 실현시키고 있다. 때로는 마을 컨설팅으로, 때로는 직접 현장에 뛰어들면서 그들은 이 일을 조금씩 실현시키고 있는 중이다.
”?” ‘우리동네 청파’는 사실 어느 시골마을에서도 가능한 공동체다. 또 어느 마을이든 사람을 필요로 하며 어느 마을이든 경쟁력 있는 사업을 꾸리길 원하고, 또 어느 마을이든 부가가치 높고 생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유기농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느 마을이든 농촌공동체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모든 마을이 이 꿈을 실현시킨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장’은 그 꿈을 오늘도 꾼다. 그리고 그 꿈은 그리 먼 것도 아니다. 이장이 하고 있는 일은 모두 ‘생태’라는 한 고리에 연결되어 있다. 그 고리가 제대로 연결되는 날, 우리네 마을에 공동체는 살아날 것이고, 그 공동체가 살아나는 날, 우리의 생태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좋아질 것이다. 주식회사 이장은 지금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 실험 자체가 우리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이장의 성공이 우리 모두의 성공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면담일시 – 2006년 6월 5일

면담장소 – 서천군 서천읍 군사1리 이장 사무실)

면담인사 – 임경수(주식회사 이장 대표이사. 한국퍼머컬쳐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