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나 일 그만 두고, 집에서 손주 보면서 지내면 어떨까?”
“이 할매가 무슨 소리를 하노. 그 좋은 일을 와 관둘라카나. 그만 둘 생각 하지마라.”

이경옥(64) 할머니는 친구들 모임에 갈 때마다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친구들은 다들 집에서 손주 볼 시간에 자신은 어엿한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할머니는 드라마 속 스타처럼 대리 만족할 수 있는 스타 할머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직장을 관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친구들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물론 빈말로 하는 소리다. 이 행복한 일자리를 어찌 관두겠는가.


경주에는 할머니 파티쉐가 있다

”?”

이경옥 할머니가 일하는 직장은 찰보리빵을 구워 파는 작은 가게다. 경주역에서 50미터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그 가게가 있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찰보리빵을 구워내는 소박한 공간. 그곳에는 친구 할머니들을 설레게하는 무언가 비밀이 있다.

서라벌찰보리빵은 노인복지 민간단체인 경주시니어클럽(관장 이진락)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경주시니어클럽에서 파견을 나온 간사 한 명을 제외하고 직원들은 모두 할머니뿐이다.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설립됐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10여 명의 할머니 직원들이 매일 빵을 구워내고 있다.

“가정주부로 평생을 살다가 이곳에서 처음 일을 해봐예. 이제 4년 가까이 됐는데, 처음에는 빵도 예쁘게 못 만들고 빵 디비는 것도 실수를 많이 했지만, 이제는 숙련공이 다 됐어예.”


퇴근하기 싫은 신나는 일터


할머니 얘기처럼 이곳 할머니 직원들은 빵 굽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철판에 노릇노릇 구워 나오는 빵이 꽤나 먹음직스럽다. 전문 파티쉐(Patissier) 부럽지 않을 정도로 표정도 진지하다. 그래도 저 나이에 이런 일이 고되진 않을까? 할머니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나이에는 할 게 없잖아예. 일이 안 되면 재미가 없어예. 총각도 우리 나이 되면 자연히 알게 돼. 힘들어도 보람이 되고, 내가 구운 것을 손님들이 기분 좋게 사가잖아예.”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만든 빵이 잘 팔릴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실제 가게 분위기는 그날 매상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일이 바빠지면 몸은 조금 힘들어도 신바람이 나서 일하지만, 일거리 없이 드문드문 빵을 구울 때는 할머니들끼리 서로 말이 없어진다. 요새는 경기가 나빠져 할머니들 사기가 말이 아니라고 이상운 간사가 귀띔해준다.


”?”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혼잣말로 어제 술을 먹어서 속이 쓰리다고 했나 봐요. 그랬더니 얼마 있다가 할머니가 부르시는 거에요. 해장국 끓여 놨으니, 어서 와서 속 풀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좀 감동 먹었죠.”

서라벌 찰보리빵의 청일점(?)인 이상운 간사에게 할머니 직원들은 어머니 같은 존재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할머니들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울 정도다. 자신이 막내 아들뻘이니 그럴 만도 하다. 봄철에는 직접 나물을 캐서 국을 끓여주기도 한단다.

할머니들이 빵가게에서 버는 돈은 30~50만 원 남짓. 일주일에 4번, 10명의 할머니들이 돌아가면서 가게를 지키기에 큰 돈은 안 된다. 그러나 할머니들에겐 소중한 돈이다. 돈의 액수를 떠나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땀 흘려 일한 돈이기에 그 가치는 1억 연봉 부럽지 않다.

“우리 할매들이 용돈 타다 쓰는 입장 아입니꺼? 지금도 아저씨(남편)한테 돈을 타다 쓰는데, 생활하다 보믄 모지라예. 제 번 것으로 손자 장난감도 사고, 며느리 선물도 사주지예. 나이 드니까 돈 들어가는 데가 더 많아.(웃음)”

할머니들에게 빵가게는 직장 그 이상이다. 빵을 구우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서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아쉬운 직장이다. 실제로 얼마 전 건강 문제로 그만둔 할머니 한 분이 무척이나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빵을 굽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밝다. 이 나이에도 아직 일할 수 있다는 당당한 자신감이 묻어 나온다. 그래도 가끔씩 주문이 밀려 들어 바빠지면 힘들만도 한데, 누구 하나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게가 잘 되는 게 그저 기쁘다는 게 그 이유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예. 그런데 이상한 게 힘들어도 재미있다는 거라예. 신문에 우리 가게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많이 바빴어예.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해야 주문을 맞출 수 있었지예. 그래도 우리 가게가 잘된다고 생각하니께 너무 신나는 거라예.”


노인일자리 창출하는 찰보리빵


서라벌 찰보리빵 가게는 지난 2005년 3월에 문을 열었다. 문화유산해설사, 문화유적정화 사업 등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을 하고 있던 경주시니어클럽이 새로운 사업을 찾던 중 경주의 찰보리로 빵을 만들어 팔기로 한 것. 마침 경주역 앞에 목 좋은 자리가 생겨 바로 계약에 나섰다. 빵 굽는 기계도 일본 식품박람회에 다녀온 뒤 좋은 곳으로 구비해 놓았다.


”?”그러나 문제는 빵 굽는 기술. 직원 중 누구 하나 빵 전문가는 없었다. 책보고 빵을 만들 수도 없는 일. 다행히 인근 서라벌 대학 호텔 조리학과 교수와 현대호텔 제과제빵장 등이 도움을 줘 무사히 문을 열 수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그동안 맛에 투자한 결과였다. 이 때문인지 지금 경주 역 앞에는 찰보리빵집 가게가 다섯 개나 더 생겼다.

찰보리빵은 경주 건천에서 전량 계약재배하는 찰보리로만 만든다. 찰보리 반죽에 단팥 고명을 넣어 구운 찰보리빵은 무농약 무방부제 식품이다. 찰보리의 고소함과 찰진 씹는 맛, 단팥 고명의 은근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다른데, 보통 구운 지 하루 정도 지나야 촉촉하고도 찰진 찰보리빵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방부제를 전혀 쓰지 않아서 상하기 쉬워 판매가 제한적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백화점 등에서 제품을 팔겠다는 사람이 나섰지만, 유통기한이 짧아서 성사되지는 못했다. 서라벌 찰보리빵은 인터파크 희망소기업몰과 직접 택배 주문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서라벌 찰보리빵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태어났지만, 그 방식은 좀 다르다. 지원책 중심의 일자리 늘리기 사업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고 운영을 해 나가는 자립형 사업이다. 그렇다고 이익 증대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판매가 부진해도 일손을 놀리지 않는다. 빵을 계속 구워야 할머니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팔지 못한 찰보리빵은 지역 복지시설에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수익은 노인복지와 문화사업을 위해 사용한다. 노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 기여,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경주시니어클럽은 찰보리빵 사업 외에도 문화유산해설사 등 12개 사업으로 노인 5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한 문화유산해설사는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신라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하는데, 지역 노인들을 선발해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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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언론홍보대행사 커런트코리아에서 홍보AE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