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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3월 중순에 무슨 한파가 그렇게 심술이었을까. 벼르고 벼르다 천리포를 찾아간 날이 영하의 날씨에 바람마저 거셌다. 저녁 바닷가에서 회 한 접시를 먹으려고 앉아있는데 유리창을 통해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파도가 식당을 한순간에 삼킬 듯이 덤벼들었다.

하룻밤 유숙하는 천리포 해안은 이중창으로 된 방에 누웠는데도 밤새 파도소리와 소나무 우는 소리로 진동했다. 심야에 잠 못이뤄 문을 여니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별들도 흔들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을 지낸 집이 모래언덕(砂丘)위에 서있다. 유리창은 온통 소금물 흔적이다. 방파제가 없었다면 그날 밤 파도에 남아나지 못했을 집이다.

충남 태안반도에서도 제일 서쪽으로 돌출된 해안 중간에 위치한 천리포는 모래사장이 작지만 아름다운 섬과 절벽과 사구로 그 경치가 아기자기하다. 이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나무 종류, 약 1만5000종을 보유한 ‘천리포수목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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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에서 귀화한 민병갈 선생(2002년 작고)이 30년간에 걸쳐 18만평에 자신의 재산과 몸과 마음을 다 털어서 만든 수목원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평범한 송림 같은데, 가까이서 보니 온갖 나무가 봄을 숨 쉰다.


호랑가시나무·목련의 축제


동백꽃이 빨간 마지막 꽃잎을 내밀고, 풍년화 산수유 매화 능수버들 같은 봄꽃이 봉오리를 활짝 피웠다가 뜻하지 않는 한파에 시달린다. 이 수목원이 자랑하는 양대 수종, 호랑가시나무와 목련이 돋보인다. 곳곳에 350여종의 호랑가시나무가 산재해 자란다. 목련은 450여종이나 된다. 세계에 현존하는 호랑가시나무와 목련의 종류는 이곳에 거의 다 있다고 한다.

뒤늦은 한파로 호랑가시나무의 잎사귀가 쌩쌩하다. 같은 나무에 모두 다른 모양의 잎이 가득하고 그 사이로 빨간 열매가 고개를 내미니 십대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크리스마스카드가 떠오른다.

이곳의 봄은 목련의 축제다. 수천평의 목련 동산에 서면 서울 가정의 정원에 한 두 그루 키우는 목련과는 기상이 다른 나무를 보게 된다. 자연 상태의 나무에서 꽃봉오리가 마치 털이 보송보송 돋아난 타조 대가리처럼 기묘하다.

목련나무 하나에 이름표가 달려 있다. ‘어머니 목련’(Mother-magnolia)이라고. 효성은 지극했으면서도 효자노릇을 할 수 없었던 민병갈씨가 매일 이 목련나무 앞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어머니를 불렀다고 한다.

그는 말년에 이 목련동산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정말 멋있고 큰 한옥을 지어 어머니에게 바쳤다. 마루문을 열면 목련동산 뒤로 마을과 바다가 보이고 그 너머에 섬이 떠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곳에서 하루 밤을 묵고는 고향 펜실베니아로 돌아갔다고 한다.

식목의 계절에 천리포 수목원에서 민병갈 선생의 나무사랑을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1945년 미 점령군의 요원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딘 칼 페리스 밀러 미 해군 중령. 그가 한국을 왜 그렇게 사랑하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처음부터 한국의 나무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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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그 자체를 사랑한 사람이다. 한국의 초가집과 순박한 사람의 모습을 좋아했고, 특히 한국의 산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제대 후 한국은행에 다녔고 증권업에 종사하면서 돈을 모았다. 1960년대 초 지인들과 만리포를 자주 갔다가 그곳 사람들이 땅을 사달라는 종용에 못 이겨 6000평의 바닷가 모래땅을 샀다. 이게 인연이 되어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나이 50이 넘은 1970년대이며,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이름도 여흥 민씨의 본관을 얻어 민병갈이라고 고쳐 호적에 올렸다.

뒤늦게 시작한 그의 나무사랑은 천리포를 세계 수목학계가 주목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한국식물도감이 다 헤지도록 나무를 공부했고, 세계를 뒤지며 씨앗과 묘목을 들여왔다. 그는 유전자 유출의 장본인으로 욕을 먹기도 했고, 외래수종 도입으로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2002년 별세하면서 한국사회에 ‘독특한 수목원’을 남겼다. 큰 유산이다.



사람 아닌 나무를 위한 숲


근래 숲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수목원도 많이 생긴다. 그러나 천리포수목원은 독특하다. 사람을 위한 숲이 아니라 나무를 위한 숲이다. 아름답게 조경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무를 자라게 하는 숲, 그게 민병갈 선생이 만들고자 했던 숲이다.

고향에 돌아와 기독교를 믿으며 아내와 자녀를 두고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해버린 민병갈 선생은 전생에 한국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기독교보다는 불교사상에 더 관심을 가졌던 그는 수목원 사무실 앞 호숫가에 청개구리상을 만들어놓고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내가 죽은 후 다시 태어나면 청개구리가 될 거야.”
미국인 청년 칼 밀러, 그가 민병갈이라는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천리포는 아름다운 숲과 전설을 갖게 되었다.


*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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