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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31)
체험농장으로 도시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도쿄 네리마 구 시라이시 농장의 도전-

‘도심 주택가에 이렇게 넓은 농장이 있다니…’
도쿄 네리마 구에 있는 시라이시 농장을 찾았을 때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농촌에서 조차 후계자 부족으로 휴경지가 늘어나고 농업 생산이 쇠퇴해 가고 있는 요즘, 도심 주택가 한가운데서 농사를 계속 짓는다는 것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심 주택 사이사이에 남아 있는 텃밭 정도려니 생각했는데, 총 1.4헥타르에 이르는 넓은 밭에 갖가지 야채를 심은 본격적인 농장이었다. 도착하니 바비큐 파티가 한창이다. 시라이시 농장에서 지도를 받으며 야채를 재배하고 있는 지역주민이 가을 수확을 축하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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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도시 농부라고 부르는 사람
 
농장주 시라이시 요시타카(白石好孝) 씨는 마이크를 들고 스스로 도시 농부라고 소개했다. 그는 바로 이 자리에서 300년 동안 농사를 지어 온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네리마 구(練馬?)는 지금은 인구 74만 명으로 세타가야 구에 이어 도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기초 자치단체이지만, 시라이시 씨가 태어난 1954년만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 본 듯한, 논둑길 위로 삼륜차가 덜컥덜컥 소리 내며 달리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당시 네리마 구 인구는 약 1만 5500명, 농가 수는 약 2천350호였다. 그가 성장하는 동안 농지 사이사이에는 주택이 줄지어 들어섰다. 농가에 퇴비를 실어 나르던 세이부 이케부크로선은 출퇴근하는 시민을 실어 나르게 됐으며, 농가들은 농지를 팔아 목돈을 손에 쥐거나 아파트를 지어 운영하면서 농업을 접었다.

그는 이런 시대적 변화에 휩쓸리며 20대에 잠깐 방황하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농가를 잇는 것이 타고난 운명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란 터라 어느새 농부가 되어 있었다.

농부가 되었다고는 하나 그가 이어받은 농장은 이미 ‘도심 속 섬’이었다. 지금은 도시 농업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주변 시선은 차가웠다. 택지도 부족한데 무슨 농사를 짓느냐며 마뜩치 않게 바라봤다.

한때는 여기서 농사를 짓기는 힘들 것 같았다. 지방으로 가서 대규모 농업을 하던가, 근교에서 집약형의 시설 재배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35년 농부 생활은 ‘도시 농업이 왜 필요한가?’ ‘어떻게 하면 도시 농업이 경영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안고 씨름 해 온 세월이었다.

직매로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도시 농업의 참맛을 느끼다

새로운 판로를 열 아이디어를 준 것은 어머니였다. 집에서 먹으려고 키운 토마토와 오이를 어머니가 이웃에 팔려고 수레에 싣고 나갔는데, 잠깐 사이에 1만 엔 이상의 매상을 올렸다. 그는 시장에만 출하하던 농작물을 직접 판매하기로 했다.

근처 슈퍼마켓과 농협 직매소에 농작물을 직접 들고 나갔다. 자신의 얼굴 사진을 넣은 야채가 팔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진한 감동을 받았다. 신선도 관리, 핵가족용 소량 포장, 뿌리가 달린 시금치 등 소비자의 반응을 바로바로 접하면서 이런 저런 시도들을 자유롭게 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도시 농업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를 느꼈다.

농장 앞에 직매장을 설치했고, 지역의 초등학교 급식에도 야채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농장 에 있는 농가 레스토랑 ‘La 모리’에서는 그날 딴 신선한 야채를 요리했다. 시장에 출하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생동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그는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는 농업에서 도시 농업의 가능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시라이시 농장 앞에 설치한 직매소

시라이시 농장 앞에 설치한 직매소

농장에 있는 농가레스토랑 La모리

농장에 있는 농가레스토랑 La모리

농가가 경영하고 시민이 체험하는 농업 체험농장

1991년 생산 녹지법이 개정되면서 도시 농업의 전망을 두고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반 택지와 같은 세율로 재산세와 상속세를 부과하던 도시 시가지 농지에 대해 30년간 농업을 지속한다는 조건으로 생산 녹지 적용을 받으면 재산세와 상속세를 유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농가의 청년 후계자들과 함께 도시 농업 연구회를 조직해, 30년간 지속할 수 있는 농업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마침 버블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으며 시민농원과 구르메 붐으로 농업이 재평가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때 함께 네리마 구에서 도시 농업을 하고 있던 지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
“야채를 파는 것보다 야채 재배 노하우를 파는 농업이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시민이 참가하는 농업을 항상 머릿속에 그려오던 시라이시 씨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지역의 농협 청년회와 네리마 구 시민농원 담당자들과 함께 농업 체험농장 연구회를 발족했다.

기존의 시민농원 실태와 법률적인 문제 등을 먼저 조사하고 검토했다. 이 내용을 가지고 계획을 구체화하면서 농업 체험농장이 탄생했다. 기존의 시민농원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였다.

시민농원은 유휴 농지 등을 자치단체가 사들여 농업을 희망하는 시민에게 임대해주는 시스템으로 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농장이다. 월 사용료는 저렴하지만 농업의 지도와 관리 등은 일체 개인에게 맡긴다.

이에 반해 농업 체험농장은 농장주가 밭의 일정 구획을 이용자와 계약하여, 밭 일구기, 이랑 만들기, 파종하기, 풀 뽑기, 수확하기 등 일체의 과정을 지도하면서, 야채를 재배하고 수확한 야채는 이용자가 소비하는 제도다. 또한 토양의 관리, 비료 등 기본적인 관리는 농장주가 한다. 이용자는 농장주에게 이용료를 내는데, 이용료에는 야채값, 종자값, 비료값, 자재비, 지도료 등이 포함되는 것이다.

현재 시라이시 농장에는 약 55아르의 밭에 125가족이 방문해 시라이시 씨의 지도를 받으며 계절마다 다른 야채를 재배하고 있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풀을 뽑기도 하고, 흙을 일구기도 하며 피망, 무 등 농작물을 수확해 간다.

가끔 농장에서 바비큐 파티나 작은 음악회 등도 개최하여 농장주를 둘러싸고 이용자들이 서로 어울려 교류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1인당 30평방미터의 구획을 이용하면서 연간 4만 3000엔(구보조비 1만 엔 포함)의 이용료를 지불한다. 시민농원에 비해 이용료가 비싸지만 농장주의 지도와 관리로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으며 이용자들이 함께 교류하며 야채를 수확하는 즐거움이 있어 경쟁률은 매우 높다고 한다.

시민 참가형 농업 체험농장, 도시 농업의 새로운 비젼 제시

시라이시 씨 등이 개발한 농업 체험농장 시스템은 농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직접 야채를 재배해서, 이용자들이 ‘농(農)’이 있는 도시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농가에는 농사 수입 외에 이용료로 일정한 수익을 확보해 줘 안정적인 농장 경영을 가능하게 해주며 노동력을 반 이상 줄일 수 있게 해준다.

지자체에는 지자체 개설형의 시민농원에 비해 관리 운영에 대한 행정적 부담을 줄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 장점은 농가와 지역주민이 교류하고, 도시 생활과 자연친화적인 생활의 조화를 이루며 공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체험 농장에 대한 이용자의 만족도는 매우 높아 현재 네리마 구에는 17개 농장주들이 농업체험농장을 개설하고 있다. 네리마 구도 체험농장에 시설 설비비와 관리 운영비를 보조하고 있으며 이용자 모집을 지원하면서 도시농업을 이용한 마을만들기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덕분에 네리마 구는 도쿄 농지 면적의 40% 정도를 보유하고 약 500여 농가와 약 100여 호의 전업농가가 농업 활동을 하면서 ‘도쿄의 밭’으로 불리고 있다.

네리마 구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체험농장은 도쿄도 및 수도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돼 도시 농업의 주요 형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현재 도쿄 도에는 90여 개 농업 체험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농장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과 장애인

구내의 몇몇 학교 급식에 야채를 제공하면서 학교와 관계가 깊어졌다. 이를 인연으로 시내 초?중학교 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시라이시 농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지역 농가와 교사들과 함께 NPO 법인 논밭의 교실을 만들어 농업 체험교육을 본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이 9월에 농장을 찾아와 네리마 특산인 무를 심고 11월 하순에 수확하러 온다. 또 5월에 농장을 방문해 밀을 추수하고, 다시 9월에 그 밀가루로 우동을 만든다. 밭이 교실이 되고 지역의 농가가 선생님이 되어 지역 학생들에게 지산지소와 식생활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 농업이 있기에 가능한 교육이며 지역 공헌 활동인 셈이다.

네리마 구 중학교의 농업 체험 수업

네리마 구 중학교의 농업 체험 수업

시라이시 농원의 또 하나의 지역 공헌은 정신장애인들에게 사회 적응 훈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소에서 일하는 체험농장의 이용자가 보건소에서 돌보는 정신장애인들을 데리고 농장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4명의 남성이 정기적으로 농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농장 생활이 그들의 사회 적응에 매우 효과를 보여, 3년간 적응 과정을 거쳐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을 계기로 장애인 사회 적응훈련 협력 사업장으로 등록해 그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35년간 도심 한가운데서 농사를 계속 지어 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우문을 던졌다. 시라이시 씨는 다음과 같이 현답으로 취재를 정리해줬다.

“버블 시기만 해도 도시에 농업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 지역일수록 자연에 대한 니즈가 크며 도시 농가들은 다면적으로 지역에 공헌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요.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주민이 자연과 농업에 접하는 공간을 제공하며, 아동의 교육과 복지 농장으로서 역할도 확대되고 있다고 봅니다. 농업에 대한 장기적인 불안으로 농사를 접는 농가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지역 주민과 생산자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심에 녹지를 보전해 가는 것이 도시 농업의 주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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