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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의 낮은 목소리

지구촌 시대가 되었고 재외국민의 수가 300만에 이르지만 한국은 여전히 이분법의 나라입니다. 69억에 육박하는 세계인도 한국인의 눈엔 ‘한국인’과 ‘외국인’의 조합일 뿐입니다. 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국인의 피가 섞였으면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외국인의 피가 흐르거나 생긴 게 다르면 외국인입니다.

최근 우리 언론은 한국 출신 어머니를 가진 미국의 대학생이 미스 조지아주로 뽑혀 2009년 미스 미국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큼지막하게 실었습니다. 며칠 후에는 외국에 유학한 적 없는 ‘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가 프랑스의 롱티보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고 화제가 되었습니다.

미국 대학생은 두 살 때 잠깐 한국을 다녀갔을 뿐이고, 한국의 예술학도 중엔 국내의 비싼 예능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외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도 적지 않지만 그런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성취를 강조하는데 장애가 될 테니까요.

세계는 이분법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가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얘기하는 통섭을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이 나라의 편협한 이분법은 우스꽝스러운 사대주의나 자부심을 부채질합니다. 문제는 선정적인 언론만이 아니라 정부도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 불합리한 정책을 내놓는다는 겁니다.

최근 서울시가 내놓은 외국인 전용 택시 도입 계획과 외국인 학교 증설 계획이 그 좋은 예입니다. 서울시는 택시를 이용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바가지요금,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호객행위를 불편사항으로 꼽는다며 “신뢰받는 택시서비스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외국인 전용 관광택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내년 3월부터 별도의 스티커가 부착된 외국인 전용 택시가 1천대 쯤 운영되며, 요금은 일반 택시보다 20퍼센트 가량 높을 거라고 합니다.

이 계획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기에 영문신문 코리아타임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코리아타임스를 선택한 이유는 그 신문의 댓글란이 다른 영문일간지들보다 훨씬 생동감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제이크 마스 (Jake Mars)라고 밝힌 독자의 의견이 논리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는 것 같아 번역해 옮겨봅니다.

“이 계획은 의도는 좋지만 철저한 연구 없이 수립된 것 같다… 이 계획이 왜 말이 안 되는가 얘기하자면, 첫째,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떤 택시인가 따져보지 않고 먼저 오는 택시를 탄다는 거다. 추운 겨울날엔 더욱 그렇다.

“둘째, 외국인은, 여기 사는 사람이든 여행자든 대개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즉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 평범한 택시 운전수가 중국인 관광객과 한국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겠지만 운전수는 한국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태울 것이다. 상대가 아일랜드 사람이거나 한국 사람과 다른 외모의 사람인 경우에도 그렇게 할까? 만일 그 사람을 태운다면 운전수가 벌을 받게 될까?

“셋째,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재력을 과시해야 할 특별한 경우 외에는 가능한 한 돈을 아끼려 한다. 돈을 더 내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넷째, 어떤 사람들이 한국에 오는가? 배낭여행자들은 여행 안내서를 들춰가며 낯선 곳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외국어로 소통하는 어려움을 겪는, 그 모든 모험을 즐길 것이다. 사업차 오는 사람들에겐 도움을 주는 내국인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계획을 폐기해야 할 이유를 100가지쯤 얘기할 수 있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다. 인종차별 말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면 한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하는 걸 영원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훨씬 심각한 수준의 차별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사고방식을 부추기는 대신 근절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외국인 학교 세 개를 새로 짓겠다는 서울시의 발표 또한 부정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난 서울에 외국인 학교가 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국인학교를 더 지으려는 계획은 한국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한국에 사는 익명의 외국인이 코리아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토로한 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 소재 21개 외국인학교 중엔 내국인 비율이 60.8 퍼센트나 되는 학교, 43.2 퍼센트인 학교, 36.6 퍼센트인 학교 등이 있으며, 전체로 보면 총 재학생 5,573명 중 503명이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전국적으로는 만 명의 학생이 51개 외국인 학교에 다니는데 그중 14 퍼센트가 한국인입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한국인의 외국인학교 입학을 더 쉽게 할 거라고 합니다. 현재는 해외에서 5년 이상 거주한 학생만이 외국인학교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앞으로는 3년 이상 거주자로 낮춘다는 겁니다. 서울시는 앞으로 학교당 한국인 학생 비율을 30 퍼센트로 제한할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가 외국인학교를 증설하기로 한 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때문이라고 합니다. KOTRA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외국인학교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러나 KOTRA측은 조사 보고서에 있는 ‘학교 부족’이라는 표현은 학교 수의 절대 부족이 아니고, 외국인들이 ‘자녀를 보내고 싶은 학교의 부족’을 뜻한다고 얘기합니다.

서울에서 제일 인기 있는 외국인학교인 서울외국인학교 (SFS: Seoul Foreign School)의 할란 리소 (Harlan E. Lyso) 교장은 국제학교의 특성은 다양성이지만 한국학생들이 많은 국내 외국인학교들은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한국 정부가 입학 기준을 어떻게 바꾸든 SFS는 진정한 국제학교의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처럼 외국 여권을 가진 학생만 입학시키겠다고 합니다.

정부는 한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외국인학교를 운영할 수 있게 하고, 외국인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국내 대학에 쉽게 진학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손보겠다고 하는데, 그 계획을 시행하기 전에 리소 교장의 말을 음미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정부는 현명하게도 지금까지 외국인학교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덕택에 우리는 모범적이고 국제적인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실시해왔습니다.”

정부는 한국인과 외국인의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지 말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 인(人)’에 주목하여 모두에게 도움 되는 정책을 세웠으면 합니다. 받는 사람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친절은 오해와 불쾌를 낳는 일이 많습니다. 부디 ‘비단 옷 입고 밤길 가는’ 서울시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현재의 YTN) 국제국 기자로 15년,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4년여를 보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
현재 코리아타임스, 자유칼럼,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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