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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가끔 서울 사대문 안의 고층 건물 꼭대기에 올라갈 때면 눈길이 가는 곳이 북악입니다. 그곳엔 조선 500년의 정궁인 경복궁이 있고, 대한민국 60년의 권부 청와대가 있습니다. 양지바른 산 아래 위치한 청와대가 참 명당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무학대사가 에너지 흐름을 잘 포착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현직 대통령이 살고 있는 청와대를 보면서 그곳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과문해서 청와대에 그런 시설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없다면 말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할 정도로 에너지 자원 확보와 기후변화 문제가 국가적 의제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재생 에너지에 관심도 갖고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태양열 청와대’는 그 상징적 의미가 클 것입니다.

청와대의 위치를 보면, 그곳에서 무슨 다른 에너지 자원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지하로 파고 들어가 봐야 석유가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 바람도 잘 불지 않아 풍력발전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햇볕 하나는 서울의 어느 곳보다 잘 쏟아지는 곳으로 보입니다.

태양광은 에너지 밀도가 낮아 아직 우리나라 기술로는 경제성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근래의 고유가 추세와 기후변화 우려는 우리가 옛날처럼 석유를 물 쓰듯 할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에너지 효율성 및 재생 에너지 기술에서 혁신적인 발전이 나와야 하고 획기적인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또 국민이 고통과 불편을 감수할 자세를 점차 익혀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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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풍력과 태양열 시설은 에너지 문제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지혜와 자세를 가다듬는 상징성과 교육성이 클 것입니다. 청와대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면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의지가 뚜렷해지면서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질 것이고, 연구기관이나 기업들의 기술개발 의욕을 자극할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지미 카터대통령은 1970년대 후반 석유파동과 이란인질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지도자였습니다. 고유가로 난관에 봉착하자 그는 백악관 지붕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고, 텔레비전 연설을 하면서도 가디건을 입었습니다. 석유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상징적 제스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란인질 구출작전을 벌이다 실패함으로써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백악관에 입성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카터의 흔적 지우기에 나섰는데, 제일 먼저 내린 조치가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시설을 철거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풍력발전에 대한 보조금을 없애버렸습니다. 보조금을 믿고 풍력발전에 투자했던 많은 사람들이 손실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미국인들은 레이건 집권 후 석유 값이 안정세로 회복되면서 장기간 저유가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저유가에 너무 깊숙이 빠져버렸습니다. 유럽과 일본이 저탄소 기술개발에 몰두할 때도 미국의 기업은 저유가 기조 위에 고에너지 산업에 매달렸습니다. 그 상징적 결과가 이번 금융위기로 몰락한 자동차 3사의 몰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오바마 정권은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고, 그런 선택이 전 세계의 경제와 무역에 새로운 규제와 관행을 낳을 것입니다. 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외교안보팀과 경제팀에 이어 새 정부의 에너지 환경 팀을 인선했습니다. 에너지 장관에 발탁된 스티븐 추는 노벨상 수상자로 태양열을 비롯해 대체에너지 개발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년 1월 들어설 미국 정부는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일대 정책 전환을 시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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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값싼 중동석유만 생각하고 거기 매달려서 그렇지, 정책전환만 이뤄진다면 태양열과 같은 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가 가해질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아리조나주는 연중 햇볕이 쏟아지는 사막으로 태양열의 잠재적 보고입니다. 미국은 풍력에너지 분야에서도 그 잠재 자원이 어마어마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이런 미국의 사치스런 게으름에 편승해서 준비를 소홀히 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엔가 우리나라 조선소 도크에서 35만 톤짜리 유조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화물 취급하면 이 배는 서울시민의 절반인 500만 명을 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배 한 척이 실어오는 원유가 우리나라 하루 소비량에 해당하고 쿠웨이트의 하루 생산량 정도입니다.

한국은 태양열 이용에서도 대단히 불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리하기에 ‘태양열 청와대’는 더욱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청와대와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이 수시로 이 시설을 보며 에너지의 중요성과 효율적 이용을 자극받는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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