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희망제작소 ‘희망찾기’ 프로젝트 첫권 펴내
30명 심층면접 생활공간 속에서 변화 드러내
민주 큰진전 공감…양극화·미래에 불안감

“수영장, 거기 엄청 크고 좋거든요. 그런데 65살인가 60살 이상은 50% 할인해줘요. 그러니까 ‘할머니들만 다 온다’ 이거야. 그거 싫다고, ‘그거 하지 마라’ 이거야. 그래가지고 그 자리에서 막 싸웠죠.”(김재일(이하 구술자 가명)·ㄱ시 주민·아파트 부녀회원들의 집단이기주의를 지적하며)
“‘한판 붙고 와야 집회를 간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을, 그게 원래의 집회의 목적하고 상관없이 경찰하고 붙는 걸 집회의 목적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어요.”(최동규·농민·상당수 시위 참가자들의 폭력 지향성을 지적하며)

1987년 6월항쟁 기준으로 올해는 ‘민주화 20년의 해’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민주주의’를 경험했으나 이 추상어에 대한 실감은 천차만별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는 정의부터 제각각이기에 이런 엇갈림은 당연할지 모른다.

민간 두뇌집단인 ‘희망제작소’가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전 13권)의 첫 권으로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유시주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 이희영 성공회대 연구교수 지음, 창비 펴냄)를 냈다. 연구자들은 학교와 정당, 시민운동 등 우리 민주주의의 ‘일상적 공간’을 여과없이 보여줄 구술자 30명을 심층면접해 민주주의의 현 좌표를 점검했다. 이번 연구는 특히 기존의 거시적인 접근법 대신에, 시민들의 생생한 체험과 주장을 직접 끌어내는 구술면접 방식을 채택해 연구의 구체성과 현장성을 높였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구술자들은 한결같이 난감해 했다. 냉소적 ‘피로감’을 보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듣는 말이네요”라면서 피식 웃거나, “난해한 주제”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이런 ‘난감함’ 속에서도 구술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상당한 정도의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뤄졌다는 데 동의했다. 가장 큰 변화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이다. 구술자들이 실감한 구체적 변화는 △행정기관 민원 공무원들의 친절 △동대표·부녀회 등 풀뿌리 민주주의의 등장 △냉전 반공주의의 약화 등이다.

그렇다면 현 단계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선 양극화, 분배정의, 상대적 박탈감, 앞날에 대한 불안감 등이 많이 나왔다. 1998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지금 한 사립대 지방캠퍼스의 비정년 전임교수로 있는 서영선씨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지방대) 학생에게서 자신에게로 슬픔이 ‘전이’된다”고 말했다. “2년짜리 계약직으로 머잖아 그마저도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는 처지에 대한 좌절감과 무력감이 ‘취직을 못할 거라는 학생들의 불안’으로 투사된 것”이다.

민주적으로 바뀐 제도와 그것이 운용되는 현실과의 괴리도 지적됐다. “일단 승진을 하는데 동기가 여러 명 있잖아요. 여자들은 항상 가장 꼴찌로 해요.(중략) … 육아휴직을 일년 냈다, 그게 원래는 인사상의 불이익이 없어야거든요. 그런데 그게 있어요. (중략) 일단 근평에서 점수를 못받으니까.”(성희경, 공무원) 좋은 제도인 ‘육아휴직제’가 여성 공무원들이 받는 불이익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작용한 것이다. 관공서의 ‘순수미술’ 지원제도 등도 같은 유형이다. 심사를 맡는 위원회라는 제도가 등장했으나, “팔이 안으로 굽는” 결과까지 막지 못한다.

민주적 가치와 원리가 사회 구석구석의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민주주의의 사회화’와는 반대 방향으로 민주주의가 사유화되는 현상도 문제로 꼽혔다. 학교를 좀더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의 동기는 (자기 자녀가 특별대우받고자 한다는 점에서) 100% 사적이라고 김지수(전업주부, 2005년 학교운영위원장 경험)씨는 말한다. 아파트값 담합에 나서는 아파트 부녀회 등도 공공적 사유의 결핍을 보여주는 ‘동네정치’의 전형이다.

이런 민주주의의 취약함은 ‘권력의 핵심’을 건드리는 제도 개선 노력이 번번이 좌절되는 현실과 맞물린다. 지지부진한 교장임용제도 개선, 선거구제 개편, 사법제도 개혁, 재벌의 지배구조개선 정책 등이 그런 예들이다. 현재 학교장들은 근무평정을 무기로 학교의 ‘1인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교장 교감이 되는 유일한 길이 좋은 근무평정을 받는 것이기에 교장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 개선이 시급하지만 기득권자들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