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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37>

여성과 정치의 거리

여성과 정치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져 왔다.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대권 도전에 실패한 세골렌 루아얄의 경우처럼 어느 나라건 여성의 정계 진출은 크고 작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물론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처럼 그런 난관을 잘 헤쳐 나가 한 나라의 수장이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여성과 정치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세계로 눈을 돌리면 유명한 여성정치인을 만날 수 있고, 국회의원들과 행정 관료들 중 여성비율이 높지만 한국 정치계에서 정치적 업적을 이룬 여성 정치인이나 행정 관료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과거와는 달리 여성 정치인이 대권에 도전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정계 진출은 여전히 어려운 일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일례로 제17대 국회의원 299명 중 여성 국회의원은 39명에 불과했다. 여성의원 비율이 13.4%로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원 비율이 10%를 넘어 한국 정치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지만 이는 세계 77위에 불과하다. 더구나 39명 중 비례대표로 선출된 이가 29명이고, 지역구에서 선출된 이가 10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여성이 국회의원 후보가 되는 것도 힘들고, 일반 유권자들이 여성정치인 선출에 인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 광역의회나 기초의회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서울시의 경우 2006년 5월 31일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광역의회 의원 중 여성의원 비율은 전체 106명 중 7.8%인 13명에 불과했고, 기초의회 의원인 구의원의 경우 전체 419명 중 19.3%인 81명이었다. 선거 당시 ‘여풍’ 거셌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전보다 높아진 비율을 기록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여성의원 비율은 조금씩 늘고 있다. 그리고 여성 정치인의 위상도 과거와 비교해볼 때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대선을 위한 경선에 참여하는 여성 정치인이 생기기 시작했고, 여성 구청장도 선출됐으며, 여성 총리도 배출됐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정치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지고 있는 중이다.

여성의 정치참여는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상에 불과했지만, ‘여성과 정치’는 더 이상 아주 낯선 관계가 아니다. 충남 청양군의회에서 여성 군의원으로 최초로 당선된 김명숙 의원도 여성과 정치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한몫한 여성정치인이다.

초유의 40대 초반의 여성 군의원

“그동안 여성 군의원은 없었습니다. 후보자도 없었죠. 더구나 40대 초반에 군의원이 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40대 초반인 여성 군의원은 완전히 새로운 신기록을 만든 것입니다.”

김명숙 의원은 청양군의회에서 최초로 탄생한 40대 초반의 여성 군의원이다. 그 자신의 말처럼 여성의원도, 후보자도 없던 때 그는 여성으로 군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군의원에 당선되기까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김 의원의 평처럼 “청양군민의 정치의식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혼 이력이 있는 40대 초반의 여성이 보수적인 풍토에서 군의원으로 당선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그 험난한 길을 몸으로 뛰며 헤쳐 나갔다.

“출발하면서 중학교 선배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동네가 보수적이고, 이혼까지 한 이력이 문제일 것이라고 이야기했죠. 돈은 안 쓰고 2000만 원만 쓰겠다고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출마를 결심할 당시에 예비 후보자가 19명이었습니다. 선거는 돈과 조직이라고 하는데 군의원의 경우 출마자가 워낙 많아 서로 다 연결되어 조직이 중요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신문기자 출신이니 지리를 잘 알고 평범한 마을 주민들을 제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로가 잘못 되었다면 기자가 한번 나가기만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속상해하는 주민들의 민원을 많이 해결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몸으로 뛰면 된다는 분석을 하게 되었죠.”

김 의원은 이런 전략을 세운 뒤 행동으로 실천했다. 선거기간 동안 관광을 떠나는 군민들이 많았기에 그는 관광버스를 돌며 선거운동을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나가 2시간 동안 관광버스에 나가서 인사를 했고, 운전할 사람도 없어 93년형 엑셀 자동차를 직접 몰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일정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부녀회장이나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관광버스가 떠납니다”라는 정보를 주기도 했다.

몸으로 뛰면 된다는 전략은 주민들에게 통했다. 김 의원은 “워낙 열심히 발로 뛰고, 주민들의 생각을 잘 대변하다보니 사람들이 이심전심으로 지지하는 마음이 모아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쟁’과 ‘중앙’ 대신 ‘군민의 이익’과 ‘지역문제’로 맞장 연설

그가 단순히 몸으로만 뛰어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역과 밀착된 사람임을 내세웠다. 지역에서 일할 일꾼이라는 것을, 또 의회에 나가서 똑바로 말할 사람이라는 것을 군민들에게 알려 나갔다. 군민들을 위해 일할 사람은 군의원이라는 것을 그는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 “한나라당이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유세를 장날마다 했습니다. 투표일이 이틀 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서울에서 유명 의원 20여명이 온다고 하더군요. 그때 누군가가 ‘김명숙이 맞장 떠 볼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원유세장에 나갔더니 지원유세를 나온 국회의원들이 청양군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욕만 하더군요. 그래서 마이크 끌고 나가서 사거리에서 10분만 쓰겠다고 했더니 한나라당 측에서 우리 끝나면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들어서 결국 ‘맞장연설’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왜 당싸움을 하느냐, 누가 우리의 입장을 대변할 것이냐, 저렇게 높은 분들 와서 지금 10분이라도 우리 군민들 이야기를 들어주느냐, 조금 끝나면 다른 지역으로 갈 것이다’란 식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한나라당 지지자들도 제 말을 듣고 차마 겉으로 지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옳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우스꽝스런 정책부터 바꿔야-여성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일들

김 의원이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신문기자를 하며 느꼈던 한계 때문이었다.

“기자로서 기사를 쓸 때는 이미 정책이 결정되어 있는 것을 쓰기만 하는 것인데 사전에 입안단계에서 알게 되면 훨씬 더 정책을 견제하기가 쉽고, 정책이 잘 진행될 수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출마의 변은 곧 군의 정책에 대한 견제와 비판으로 이어졌다. 특히 그는 행정자치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그리고 농림부가 공동으로 선정해 국고를 지원하는 신활력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청양군이) 신활력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300억 원이 연차적으로 지원되는데 그 돈이 모두 고추 생산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청양은 고추 생산량이 전국의 1.2%에 불과할뿐더러 괴산, 영양, 청송 등에서는 몇 십 억짜리 공장도 세우고 투자도 이미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청양에서는 고추에만 매달려 다른 특산품인 구기자는 소외되어 있습니다. 구기자 생산을 특화하고, 구기자 돼지고기나 구기자 닭백숙 등 음식개발도 가능할 터인데 말이죠. 국가재정을 좀더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크기만 크고,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문예회관에 대해서도 그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문예회관을 짓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공간을 넘어서 너무 크게 지어 운영비만 많이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을 사용하려면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합니다. 야외공연장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조명이 필요함에도 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마이크도 못쓰게 만들어 그것을 지적하니 콘센트를 설치했다고 보고를 하더군요. 작은 일이지만 금방 변화가 있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전시행정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 군민의 삶에 이익이 되는 시설을 만들고 그것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청양군의 전시행정에, 또 모양만 그럴싸하게 꾸미는 토목공사를 비판한다.

“하천의 일부를 가지고 백세공원을 만들었는데 토목공사에 불과합니다. 외국의 자연석을 사다가 심어놓고 환경은 오히려 파괴해 버렸죠. 캐나다의 어마어마한 부차드가든(Butchart Gardens)을 보고 와서 손바닥만한 공원을 읍사무소 빈 공터에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앉을 공간은 없고 꽃만 일회용으로 매번 뽑아서 심는 곳이 되었습니다. 같은 돈을 들여도 군민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군의원이 되고, 군정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는 공무원과의 인식차이를 실감해야 했다. 그리고 공직자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 “군정에 관해서 실ㆍ과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인식의 차이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청양군에서 추진해온 농공단지도 공장 유치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군에서 고용효과가 크기 때문에 공단 기반시설도 다 해주고 보완시설도 해 주는데도 어렵습니다. 반면 어떤 개인이 운영하는 식물원이 있는데, 화장실이 부족하다고 하여 지원해주자고 했더니 개인이 하는 것에 왜 해 주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식물원은 공공적 성격이 크고 30명이나 고용하고 있다면서 농공단지 지원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는데 담당 공무원이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식물원과 같이 생태적인 사업도 잘 육성하면 산업의 하나일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벽창호입니다. 공직자의 인식변화가 중요합니다.”

작디작은 곳에 신경을 쓰는 군의원이 되겠다

여성 군의원으로서 그는 청양군의 여성농업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도 관심이 남다르다. 남자들은 사고가 날 경우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만 여성농민들은 수입을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성농민들에 대한 법적 지위가 형편없습니다. 남자들은 사고가 날 경우 통장명의가 되어 있고 수입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보상을 받지만 여성농업인의 경우 수입을 입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성농업인의 법적지위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일용노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인데 이를 반드시 수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조례로 가능하다면 제정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여성 정치인이다 보니 여성의 현실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또 그는 여성으로서, 또 학부모로서 자녀교육이나 출산 등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65세 노인들이 전액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영아들에게도 무료로 진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분만료를 일정 정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또 외국인 주부들을 위한 정책도 고민 중이다. 여성정치인으로서 그는 할 일이 많다.

그가 고민하는 또 하나의 일은 청소년과 아이들, 여성들에 대한 정책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청년들이 떠나는 지역사회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통감한다.
”?” 여성정치인으로서 그는 실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수행하길 원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작고 소소한 일이지만 군민들에게는 꼭 필요한 민원을 해결해주는 일을 그는 소중히 여긴다.

“마을마다 200만 원 범위 안에서 지원해주는 생활민원사업 제도가 있습니다. 이번에 어느 마을의 마을회관에 가서 보니 싱크대에서 물이 튀어 옷이 다 젖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업무 보고 중에 생활민원사업이 있다고 하면서 담당 계장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처음에는 그런 곳에 예산을 지원해준 전례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담당계장이 읍사무소 직원에게 가보라고 하고, 가능하면 도와주라고 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성의원이니까 이런 작은 일들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과 정치는 그동안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김 의원 같은 이가 계속 나와 줄 때, 그리고 남성 정치인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그것을 정책화시킬 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을 때, 작지만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때, 좀더 사람들의 일상에 천착해 들어갈 때, 사람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여성과 정치의 영역은 더욱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면담일시 – 2006년 8월 23일

면담인사 – 김명숙(청양군 의원)

면담장소 – 청양군 청양읍 함지박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