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발로 뛰어 만든 네트워크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색깔별로 잘 정돈된 자료파일로 빼곡한 통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회의실에는 후덕한 인상의 요시후미 타지리 국장이 방문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한 사람씩 악수를 하며 명함을 교환하는데, 신발코가 마모돼 하얗게 반짝거리고 있는 그의 낡은 구두에 시선이 가 멎는다.

”?”족히 20년은 더 돼 보이는 신발상태로 미루어 짐작컨대, 어지간히 차림새에 무신경한 사람이거나 ‘지독하게’ 활동적인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이겠거니 싶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동안이나 진행된 인터뷰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드디어 타지리 국장이 낡은 신발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3만여 개에 이르는 전국의 NPO(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단체)들과 활발한 네트워킹을 펼치고 있는 비결이요? 비결이랄 것도 없어요. 무조건 ‘많이 걷는 것’ 뿐입니다. 어제도 나가노현까지 출장을 다녀왔어요. 현지 NPO들에게 우리 센터에 회원 가입하시라고, 정보 올리시라고 부탁드리러요. 전국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느라 연간 100일 정도는 집에 못 들어갑니다. 현재 우리가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는 그야말로 온전히 ‘발로 뛰어 만든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지요.”

모이자, NPO라는 이름으로!

“한두 사람의 리더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활동가들이 자발적인 필요에 의해 만든 ‘네트워크형 조직’이라는 것이 일본NPO센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회원단체들간의 결속력이 강해 연대사업이나 협력사업을 큰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었지요.

그동안 일본에서는 환경이나 복지 등 분야별 네트워크는 강했지만, ‘NPO’를 공통분모로 하는 네트워크는 형성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느슨한 형태일지라도 다종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계속 유지하고 확대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지리 국장은 인터뷰 내내 NPO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는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NPO에 대한 그의 애착이 참으로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사실 이는 오랫동안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성장해 온 일본시민사회의 지난했던 행로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일본정부는 민간단체들의 응집력을 분산시키고 감독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로, 활동분야별로 단체를 구분해 각각의 해당 주무관청이 설립허가와 감독 권한을 나누어 갖는 체제를 메이지유신 때부터 줄곧 고수해 왔다.

일본시민사회는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맞서 1994년부터 ‘시민활동을 뒷받침하는 제도를 만드는 모임(일명 ‘씨즈’ – C’s)’을 발족시켜 민간단체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새로운 NPO법 제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씨즈’는 전국단위의 포럼을 연이어 개최하는 한편, 회원단체들을 조직해 외연을 넓히는 등의 활동을 꾸준히 펼쳤는데, 활로를 뚫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일명 고베대지진)’이 발생했다. 역사상 최악의 피해가 열도를 덮쳤는데, 다행히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NPO들이 헌신적인 구호활동을 펼친 결과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복구가 완료되었다.

이는 NPO와 NPO법제정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을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데모단체’ 쯤으로만 알고 있던 NPO들이, 실제로는 정부나 기업보다 지역사회와 이웃을 살리는 데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1998년, 우호적 국민여론을 등에 업은 일본시민사회는 시민발의의 NPO법(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제정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NPO를 지원하는 NPO

요시후미 타지리 국장을 비롯한 일본NPO센터의 활동가들은 ‘씨즈’ 설립초기부터 법제정운동에 참여해, 모임의 주축멤버로 활동했다. 이들은 씨즈에서의 활동과 고민, 그리고 당시 형성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1996년 일본NPO센터를 설립해, 이제는 ‘NPO를 지원하는 NPO’ 라는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센터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은 NPO들의 정보를 수집, 등록하는 ‘정보발신사업’. 바로 타지리 국장의 신발코를 하얗게 마모시킨 ‘주범’이다.

단체정보는 기입한 항목 수에 따라 ‘기초정보 – 부가정보 – 세부정보’ 3단계로 분류되는데, 세부정보를 공개한 단체에게는 더 많은 홍보 기회가 제공된다. 기업이나 재단의 후원금이나 공모사업도 세부정보를 제공한 단체들에게 몰리기 때문에, 이 또한 큰 인센티브가 된다고 타지리 국장은 전했다.
”?”사실 NPO정보를 수집하는 사업은 일본내각부도 똑같이 펼치고 있는데, 아무래도 정부주도이다 보니 NPO들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은 편이다. 반면 일본NPO센터는 NPO법 제정운동 때부터 여러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터라, 단체들이 적극 협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발적으로 ‘업데이트’까지 해 주고 있어 정보의 질과 효용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사실 이제까지는 각 단체들이 ‘주체’가 되어 정보를 올리는 방식에 대해서만 고민을 집중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기부자의 욕구를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조사를 해보니, 기부자가 받아보길 원하는 정보와 단체가 제공하려는 정보가 꽤 차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둘의 욕구를 최대한 조율해, 가능하면 많은 단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NPO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항상 일순위에 오르는 현안이 자금문제입니다. 때문에 저희도 ‘어떻게 하면 자금이 원활히 순환되고 지원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지’가 늘 고민이에요. 아직 공개하긴 조금 이르긴 하지만, 주식투자 등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 중 NPO에 기부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도 조만간 마련할 생각입니다.”

신발코 닳는 그 날까지

타지리 국장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정신없이 타이핑하는데, 자꾸만 ‘그리운 얼굴’들이 떠올라 콧날이 시큰거렸다.

몇 날 며칠 대자보를 붙이고 홍보물을 나눠줘도 신입회원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아 한숨 짓던 자원봉사단 사무장형, 동포재단의 지원금이 끊겨 러시아에서 밤잠을 설치시던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거뭇한 곰팡이 꽃이 가득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연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시던 어느 지역시민단체 대표님…. ‘그분들이 만일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역과 언어, 분야, 이해, 경계를 넘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NPO의 수가 우리나라에서도 2만3천 개가 넘었다고 한다.(한국민간단체총람, 2006) 수로만 본다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NPO센터를 비롯해 300개가 넘는 ‘NPO지원센터’들이 촘촘히 네트워크를 형성해 교류하며 NPO의 설립과 운영을 돕고 있는 일본, 약 900여 개에 이르는 중간지원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과 비교한다면, 질적인 면에서는 아직 우리네 시민사회가 가야할 길이 아득히 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병아리 연구원’ 딱지를 달고 희망제작소에 합류한 지 이제 3달 남짓. 짧은 기간이었지만, 열정과 진심으로 중무장한 이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기에 거의 매일이 ‘충격과 감동’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이번 일본방문기간 중 만났던 타지리씨와 그의 낡은 신발은 단연 으뜸이었다. 앞으로 타지리씨를 활동의 모범으로 삼아 ‘신발코가 닳도록’ 열심히 달려야겠다. 행복발전소가 힘차게 가동되는 그 날까지.
”?”

<편집자 주> 해피시니어팀은 지난 2월 26일부터 5일간의 일정으로 일본 NPO지원센터 현황을 방문조사하고 돌아왔습니다. 현재 구상중인 NPO센터, ‘행복발전소’의 밑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전국의 모든 NPO들이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 행복발전소가 힘차게 가동될 그 날을 위해, 앞으로도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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