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 두한이는 지난 여름 인드라망 지리산어린이계절학교 모둠교사를 하며 알게 된 친구랍니다.

밖에는 비가 내리는구나. 비를 보고 있으면 스페인에서 도보여행을 하던 때가 떠오른단다. 내가 있었던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은 비가 참 많이 내리는 지역이었어. 우비를 입고 질퍽해진 길을 걸으며 친구들과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농부들밖에 없을 거야.”하고 떠들어대곤 했었는데. 그곳 산내면에도 지금 우리가 있는 서울처럼 비가 내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곳 분들은 정말 비를 반가워할까?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니 잠시 감상에 젖게 되는구나.

네가 부러워했던 것처럼 나는 얼마 전 다시 인드라망에 다녀왔단다. 너를 만났던 때는 지리산교육원의 계절학교 모둠교사로 갔었고, 이번에는 내가 다니는 대학의 생활협동조합에서 준비한 생명평화청년농활단원으로 다녀왔지. 너희들과 헤어지던 날, “선생님 꼭 다시 올게.”라고 했던 말을 정말 지킬 수 있을까 혼자서 끙끙거렸는데, 과연 이게 약속을 지킨 건지는 몰라도 해탈교 앞에 다시 설 때 감회가 새롭더구나. 어쩌면 인드라망이 말하는 인연이란 게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조화로운 삶,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

”?”너와는 달팽이놀이와 공기를 하며 놀았지만 이번에는 고추밭과 옥수수밭의 김을 매고 호박 모종을 심었단다. 우리가 산책하던 그 길옆의 논밭에서 일하시던 분들 기억나니? 바로 그분들과 함께 한 거야.

이번엔 사단법인 한생명 사무실 옆에서 묵었는데 한생명의 왕용술 사무국장님께서 오셔서 이곳 설명을 해주셨어. 한생명은 인드라망 공동체가 가진 정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웃과 더불어 터전을 가꾸고, 농촌과 도시가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곳이래. 생태귀농으로 느슨하게 만들어진 공동체인 이 곳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320여명 가량의 구성원 중 250여명이 귀농인이라더구나. 그만큼 자기 뜻으로 이곳에 찾아온 사람이 많은 것은 한생명이 노력한 덕이겠지.

8,90년대만 해도 귀농은 ‘이념적 귀농’이 많았대. 두한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일지도 모르겠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던 사람들(흔히 ‘운동권’이라고 부른단다.)이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자고 마음먹은 것이었지.

그러다가 1998년 외환위기 때 잠시 생계형 귀농 붐이 일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의 만족을 찾아 귀농을 하신다고 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초기 귀농을 시작하던 분들이 뿌린 씨가 이제 싹을 틔우는 게 보인다고 사무국장님께서 자평하시더라고.

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삶터

”?”그밖에도 한생명에서는 여성들이 농업을 하면서 겪는 가사나 자녀교육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내여성농업인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여성농업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고충상담실을 열고 생산자모임을 결성해 천연염색이나 차 모임을 하기도하고.

우리와 같은 모둠이었던 고은별의 어머니께서 산내들 어린이집의 선생님이셨던 거 기억하지? 그 배움터도 바로 한생명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야. 그 외에도 자연치유학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함께 돌보는 요양원과 자연건강생협을 설립하는 사업도 하고 있어. 우리가 계절학교에서 했던 뜸도 그 중 하나지. 너와 내가 만났던 계절학교도 한생명의 사업 중 하나인 인드라망 지리산교육원 생명문화학교의 일환이었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지난 여름에 했던 모든 것들이 한생명의 활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네.

내가 찾아갔던 시기에 우연히 20기 귀농학교 졸업식이 있어 교육원에 가게 되었어. 우리가 있을 때 짓고 있던 작은 학교는 이미 완성되어 학생들이 쓰고 있더라. 네가 질리도록 피아노를 쳐대던 그 방 그 자리엔 여전히 피아노가 놓여 있어. 그땐 텅 비어 있던 교실엔 이제 칠판과 책상이 가득 들어차있고. 학생들이 놓아둔 필기구며 책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동령이며 형준이며 같이 하던 친구들 생각이 나더라.

아참, 노을 쌤도 빼먹으면 안 되지. 그렇게 넋을 놓고 구경을 하고 있다 졸업식에서 여러 곳에서 참석해주신 분들의 말씀을 들었단다. 이번 기수 졸업생이라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은 농사꾼의 말투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살며시 웃었단다.
”?”
“자넨 여기에 왜 왔어?”

졸업식이 끝나고 공양간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법인 스님이 내게 물어보셨어. “자넨 여기에 왜 왔어?”하고 말야. “농사가 좋아서 왔나, 아니면 시골이라 놀러온 건가.”하고 말을 붙이시며 내 하얀 얼굴과 손등을 흘끗 보곤 지나가시는데 괜히 마음이 저릿하더라. 난 누가 보아도 도시를 벗어나본 적 없이 곱게 자라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하고 있을, 사람들이 ‘요즘 대학생’이라고 싸잡아 이야기하는 인물군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질문인지 알 것도 같았지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 다만 ‘내가 나에게 아직 당당하지 못한 걸까’ 하는 질문부터 여러 가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이 잠시 심란하더라.

두한아. 계란찜 만들기가 어렵다고 투정부리던 너는 어느덧 졸업논문도 쓰고 중학생이 되었다고 내게 자랑하는데, 그리고 하루빨리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너를 어찌 봐야할지 잘 모르겠다. 고랑마다 깊게 뿌리내린 잡초들을 뽑아내면서 내가 언제 이토록 질기도록 삶에 애착해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부끄러웠단다. 또 언제 비 내리면 모종보다 높게 자랄 잡초들을 투정도 없이 뽑아내는 농부처럼 성실해보았나 싶어 창피했구. 그래서 널 만날 날을 자꾸만 미루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람들의 꿈은 그저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데,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겠니? 난 자랑스러운 “쌤”이 되고 싶구나. 그런데 아직은 아니야. 네게 요즘의 내 갈지자걸음을 보여주기가 겸연쩍단다. 지리산을 등 뒤에 두고 네가 조심스럽게 내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그 날처럼, 나도 언젠가 ‘그땐 그랬어.’ 하고 네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게 지금은 기다려주지 않겠니?

이제 여름이 다가오는구나. 여름철의 농사꾼처럼, 그것도 함께 살기 위해선 번거롭더라도 생명농업을 선택한 이곳의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농사꾼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볼게. 그리고 다음엔 내가 먼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할게. 그래도 괜찮겠지?

[글, 사진_ 이민영/ 해피리포터]

한생명

전화 : 063-636-5388
e-mail : hanlife@hanlife.or.kr
홈페이지 : www.indramang.org/hanlife
자원활동참여 : 590-853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345-3

‘해피시니어’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은퇴자들이 인생의 후반부를 NPO(비영리기구 : Non-Profit Organization) 또는 NGO(비정부기구 : Non-Government Organization)에 참여해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NPO·NGO에게는 은퇴자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연결해주는 희망제작소의 대표적인 대안 프로젝트입니다.

본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는 ‘해피리포터’는 NPO,NGO들을 직접 발굴 취재해, 은퇴자를 비롯한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대학생 시민기자단입니다. <편집자 주>

★행복발전소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