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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한창인 인하대는 온통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경상대 건물 맨 꼭대기에 위치한 연구실 복도는 너무나 고요하다. 우리나라 재벌연구의 권위자인 김진방 교수를 만나기 위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연구실 안쪽도 역시나 고요하다. ‘권위자’라는 수식어는 왠지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일까? 기자는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5분 쯤 지났을 때, 멀리 계단 너머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김진방 교수다. 기자가 고개를 숙이자 환한 미소가 건너왔다.

“희망제작소에서 왔습니다. 약속했던 인터뷰 때문에요.”

“아~ 그래요. 어서 들어와요. 빨리 왔네.”
”?”
김 교수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연구 권위자’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좀 과한 표현이죠. 1995년부터 재벌지배구조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12년 정도를 했으니 전문가라고 할 수는 있어도 권위자까지는…”

조금은 부담을 느끼는 듯 김 교수는 “한국은 한 분야를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드문 현실이 아쉽다” 라고 말한다.

경제권력을 감시한다 –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김 교수는 현재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 최대 시민단체의 경제부문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얼마 전까지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삼성특검은 김 교수의 전문인 재벌 지배구조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하지만 쟁점들은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다. 이어 삼성의 경영쇄신안이 발표되고 또 다른 사회 이슈들이 부각되면서 삼성 사태는 점점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김 교수에게 삼성 경영쇄신안에 대한 견해를 물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 삼성이 내높은 경영쇄신안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쇄신이라 보기에는 미흡합니다. 그래도 그 중 평가할 만한 것은 전략기획실 해체인데요. 이에 의미를 두는 것은 회사 정관에도 없는 비공식 기구에 의한 지배를 공식기구에 의한 지배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거죠. 지배주주가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서만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소액주주들에 대한 책임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닌 실질적인 해체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겠죠.”

– 삼성 경영쇄신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죠?

“불법?탈법적인 경영권 승계에 대한 반성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거죠. 이재용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는 이재용을 전혀 흠집 내지 않고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는 욕심 때문이라고 봅니다. 현재 삼성은 이건희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경제 권력입니다. 참여연대는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지만, 그중에서도 저희 시민경제위원회는 경제 권력을 지속적으로 감시해 경제 권력의 남용을 막는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친시장주의 정권, 실상은 ‘반 시장주의’

–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정부의 친기업주의는 사실상 ‘ 반시장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소비자, 노동자 등과 함께 시장 경제를 구성하는 한 주체입니다. 하지만 기업은 다른 주체들과 달리 실질적인 존재가 없는 계약의 결정체죠. 오직 일반주주, 노동자, 납품업체들간의 계약관계를 통해서만 존재가능한 ‘법인격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현 정권의 친기업주의는 지배주주의 지배권만을 강화하는 ‘친 지배주주, 반 일반주주’의 성격이 강합니다.

또한 “노동과의 관계에서 질서유지를 강화한다”는 주장의 맥락을 짚어 보면 ‘반 노동성향’도 읽히죠. 인수위 시절 “기업조사를 품격 있게 하라”라는 말 속에는 “소비자의 권익이 어느 정도 침해 되더라도 눈감아줘라”라는 진의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구요.

이렇게 시장 주체들 중에서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은 엄연한 ‘반 시장주의’이며, 결국 시장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

– 경제성장을 위한 친기업주의에는 실용주의라는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요?

“사실 저는 현 정권의 철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용주의가 철학이라고 하는데. 지금 보면 무엇을 하겠다는 실용주의가 아니라,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 부정적 의미의 실용주의로 보입니다. 전혀 원칙이 없고 소극적일 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현 정권에 철학이 없다고 할 수 있죠”

이청준 그리고 리영희

– 현재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활동은 무엇입니까?

“저희 위원회가 ‘시민’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인 이유는 경제 권력으로부터 일반 시민들이 보는 피해를 줄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시민은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소비자로서 시민’과 ‘중소기업인으로서 시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영역들에서 재벌로부터 받는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대신 소송을 하든지, 거래 권익을 지키도록 하는 법률 제정을 시도하든지, 나아가 여러 정책들을 제안 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자체 역량이 부족하고 주변의 사회적인 환경들도 별로 호의적이지 못한 편입니다. 그래서 현재 여러 대안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 김교수는 감기 기운이 있다며 감기약을 먹었다. 한 시간 가까이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김 교수의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기자의 질문마다 차근차근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김 교수에게서 친근한 학교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김 교수의 점점 가라앉는 목소리에 다급해진 기자는 ‘마지막 질문입니다’라며 물었다.

– 살아오면서 본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있다면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딱히 하나를 꼽기는 힘든데요. 소설로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들 수 있고요. 사회 과학서적으로는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그리고 <전환시대의 논리>를 들 수 있겠네요. 어떤 특정한 책 한 권이라기보다 이런 여러 가지 책들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글,사진_이승환/해피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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