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본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방안

[##_1C|1252682209.jpg|width=”590″ height=”388″ alt=”?”|_##]2008 문화도시 국제컨퍼런스 :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과 문화도시 간 연대

문화체육관광부와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은 5월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2008 문화도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것으로 광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의 학문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주최측은 밝혔다.

본격적인 세션을 시작하기 전 축사와 기조발제를 통해 유인촌 장관과 까트리나 스테뉴(Katrina Stenou) 유네스코 문화정책 국장은 ‘도시의 매력은 다양성’이라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 특히 까트리나 스테뉴 국장은 문화가 상업화, 물화(物化)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광주가 진정한 문화도시가 되려면 미래에도 문화가 생성되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 문화도시 국제컨퍼런스는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과 문화도시 간 연대’를 큰 주제로 삼았고 두 개의 세부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세션1 ‘건축가가 본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방안’에서는 일본의 건축가 이토 도요와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설계공모 당선자인 우규승(재미 건축가)이 각각 일본에서 건축물을 통해 문화도시를 조성한 사례와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의 설계 취지에 대해 발표했다.

세션2 ‘해외 문화도시 조성사례’에서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국제협력 부학장인 로베르토 그란디와 창조도시에 관해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오사카대학(경제학)의 사사키 마사유키가 유럽과 일본의 문화도시 사례와 도시 간 네트워크 사례를 중심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1세션이 건축물에서 시작해 도시로 관점을 넓혀간 주제발표와 토론이었다면, 2세션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도시 또는 문화도시 프로그램(ex. 유럽 문화수도 프로그램)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사회적,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다뤘다.
[##_1C|1339048244.jpg|width=”598″ height=”371″ alt=”?”|_##]Session1. 건축가가 본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방안

1세션의 첫 번째 발제자인 일본의 건축가 이토 도요는 전 세계 도시가 개발의 여파로 획일적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그 가장 큰 이유를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끊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건축이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직접 관여한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첫 번째 예는 구마모토현의 공공건축 프로젝트(구마모토 아트폴리스)였다.
구마모토는 규슈에 속하는 현으로 인구 약 120만 명이고 녹지가 풍부한 지역이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공공 건축 설계자를 임명하는 커미셔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년간 시립박물관, 경찰서 등 8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토 도요는 3대 커미셔너로 일하고 있다. ‘실천을 통해 젊은 건축가를 양성한다’는 취지 아래 젊은 건축가들이 공모에 활발하게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 자연환경과 건축의 관계를 고민한 공모작을 최우수 안으로 선정해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라남도 무주군에서 건축가 정기용이 ‘보살핌의 건축’을 모토로 10년간 30여 개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정기용은 ‘건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조직하고 사회를 다루는 분야’라고 늘 말해왔는데, 이토 도요가 두 번째로 제시한 센다이 미디어테크(2001)나 마쓰모토 시민예술관(2004)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에서 이와 일맥상통하는 뒷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_1C|1333990410.jpg|width=”438″ height=”477″ alt=”?”|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 결과물들 _##]                  

노인들의 패션을 바꾼, 벽 없는 미디어테크                                       [##_1R|1041512987.jpg|width=”250″ height=”188″ alt=”?”|실내 광장처럼 보이는 센다이 미디어테크_##]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벽이나 기둥을 거의 없애 가구의 레이아웃만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이들이나 고령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을 산책하듯이 이용할 수 있었다고.

“센다이 미디어테크 개관 1년 후에 노인들의 옷차림이 달라졌다.”는 이토 도요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축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느끼게 한 말이었다. 벽이 없는 건물인 이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에는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오픈 후에는 센다이 전체 인구 수와 맞먹는 100만 명 정도가 방문해서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마쓰모토 시민예술관의 경우도 처음에는 인구 20만 명의 지방도시에 1800석의 대형 홀을 갖춘 복합공간을 만들 이유가 있느냐는 비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쓰모토 시민예술관은 2년 후까지 예약돼 있을 정도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동률을 보이고 있고, 이는 시에서 운영하면서 입장료를 싸게 책정하는 등 주민들을 끌어들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토 도요는 “사람들이 ‘나도 여기서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창조성(creativity)이 아닌가 싶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토 도요는 공공건축 프로젝트는 특히 설계 단계에서 주민들에게 지탄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세션1의 토론자로 나선 김상호 광주 문화수도 정책관은 그 점에 대해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랜드마크 논쟁’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반발이 예상되어도 실험적인 건물을 마음대로 지어도 되는 것인지,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어떻게 무마시켰는지 궁금하다.”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곤혹스럽다는 것을 일선공무원의 입장에서 전하며, 주민설득의 노하우를 듣고 싶어 한 질문이었다.

이토 도요는 “과정이야 말로 건축의 디자인인 것 같다”고 답하며 주민설득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 설계를 두고 ‘벽이 없는 건축은 본 적이 없다’는 지역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튜브 크기, 간격, 벽 없는 공간에 대한 워크숍을 하고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차츰 의견을 취합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발주자-설계자-이용자들이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노력이 창조의 기반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밖으로 향한 안뜰

뒤이어 이번 컨퍼런스의 중심 화두인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건축설계안을 주제로 재미건축가 우규승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우규승은 ‘빛의 숲’(Forest of Light)이라는 설계안에 대해 광주 도심의 물리적 켜와 역사성을 재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문화전당의 구상 컨셉은 ‘밖으로 향한 안뜰’, 즉 기존 도심의 거리 및 지하층과 연계된 반지하의 중심 광장이다. 옛 도청 부지와 그 주변일대에 들어설 예정인 아시아 문화전당은 문화중심도시의 상징적인 핵심시설이다.

자연과의 접촉을 늘리기 위해 자연채광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40%의 연료를 절감하는 지하전당을, 지상에는 무등산까지 연결되는 녹지공간 ‘open space network’을 구상했다. 설계를 맡은 우규승은 이 프로젝트가 다른 도시의 1/2(12m²)에도 못 미치는 녹지를 가진 광주에 허파 역할을 하며, 광주만의 랜드마크인 무등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의 설계당선작은 전 세계 33개국에서 모인 124개 작품 가운데 국제적 건축가들이 참여한 심사위원회에서 엄정한 심사를 거쳐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설계에 대해 몇 가지 논쟁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앞에서 언급한 ‘랜드마크’ 논쟁이다.

논란의 내용은 ‘문화전당 설계안이 지하전당을 지향하고 있어 국내외 건축물과는 달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조형미를 살리지 못해 도시의 Mark 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조형미를 갖추도록 설계변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부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와 광주 문화도시(수도)추진단은 물론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도 그와 관련한 의견이 오갔으며 김상호 광주시 문화수도 정책관은 계속 문광부와 보완책을 논의해갈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앞서 발제자로 나섰던 이토 도요도 이와 관련, 건축프로그램이 정해지면 주민들과 다각도로 소통해야 하지만 설계안 자체가 변경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래야 재미있는 공공건축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온 연세대 도시공학과 김홍규 교수는 헤이리 아트 밸리 마스터플랜 경험을 언급하며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보통 건물부터 만들고 개발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의 건축물은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수용하는 형태로 기획되어야 하며 도시재생, 문화생성, 상업분산 등에 기여해야 한다.”
그는 이런 점에서 아시아 문화전당 설계안이 역사와 문화를 수렴하면서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구성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또한 문화(창조)도시의 지향을 제시하면서 공공성, 개방성, 문화예술 수용성, 환경·생태적 수용성, 여성친화성을 강조했다.

발제자 우규승도 공감을 표하면서 이제 도시와 생태를 연결해서 볼 때가 되었고 도시 설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함께 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광주의 경우도 건축이 앞서 가고 있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이 함께 나와야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축을 통한 도시의 문화적 재생 vs 건축이 도시의 문화적 재생에 기여하는 방법

서울 시정개발 연구원의 라도삼 연구위원은 세션1의 주제 “건축가가 본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방안”에서 유일하게 ‘문화적 재생방안’이라는 목적에 방점을 둔 토론자였다. 주제 발표자와 다른 토론자들이 주로 건축물을 통해 도시의 맥락을 구성하는 적극적인 건축 프로그램의 실행자이거나 행정담당자이기에 토론은 ‘건축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를 재생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자연히 전제는 ‘대규모 건축 프로그램이 도시를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토론도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건축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라도삼 연구위원은 건축을 통해 도시를 살린다는 사고의 위험성을 언급해 다른 토론자들과 구별되었다. 그는 건축을 통해 도시를 살리는 것은 강력하나 동시에 두렵기도 한 일이라고 말하며, 건축은 도시의 구조와 생존형태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대규모 건축 프로그램이 도시와 조화되면 좋지만 완전히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스페인 빌바오의 예처럼 강력한 랜드마크를 통해 도시를 재생하려 한다고 지적하고, 건축을 통한 문화적 재생은 건축 프로그램이 도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최소화하면서 도시와 조화를 이루고 동시에 문화적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게 된 거리가 삼청동이라고 언급하며, 삼청동처럼 자연스럽게 시간을 두고 미학적으로 변화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 건축물이 지어지면서 주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축이 도시의 문화적 재생’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1세션의 주제가 “건축가가 본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방안”이었지만 전체적으로 건축 프로젝트 사례/계획 발표의 비중이 컸다. 도시라는 큰 그림을 조망하면서 건축이라는 ‘수단’을 통해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이라는 목적을 달성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주제와는 달리, 컨퍼런스는 건축 프로젝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대도시의 문화적 재생방안을 건축을 통해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강구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건축 프로그램만이 아닌 여타 다른 단위, 즉 문화프로그램을 만드는 단위, 도시 인프라를 만드는 단위, 주민 단위 등의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영감을 준 자리였다.

* <문화도시 국제 컨퍼런스> 세션 2에 대한 내용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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