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만들어진 독일 공원의 묘미

희망제작소 뿌리센터는 현재 역사ㆍ문화자원을 활용한 목포 원도심 재생 방안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뿌리센터 김준호 연구원은 해외 사례수집을 위해 독일ㆍ영국 ㆍ 아일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관련 내용을 여러분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독일 베를린의 안개가 자욱한 아침, 난 익숙치 않은 베를린 지하철을 이용해 프라이스테르베그(Preisterweg)역에 있는 쥬츠게뢴데 자연공원(S?dgel?nde Natur Park)으로 갔다. 중심지가 아니고, 또 업무지구가 아니어서 아침에 그 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 그리고 그 날은 평일이었다.

역의 한 편은 단층의 주말농장 형식의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고, 다른 한 편에는 바로 쥬츠게뢴데 자연공원(S?dgel?nde Natur Park)이 있었다. 공원의 입구는 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공원이 굳게 닫혀 있었다. 헉! 오늘 쉬는 날인가? 당황한 우리 일행은 자세히 입구를 살폈다. 알고 보니 쉬는 날이 아니라 1유로를 내고 입장하는 공원이었던 것이었다. 근데 이번에는 기계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는 인자한 독일인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드디어 공원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 분이 우리의 멋진 가이드라는 것을 그 땐 몰랐다!)

[##_1C|1403750837.jpg|width=”450″ height=”252″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쥬츠게뢴데 자연공원 입구_##]

입구에는 다소 넓은 잔디가 가꿔져 있었고, 노란색 벽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노란색 벽 뒤로는 물탱크 탑이 보였다. 안내해 주신 분의 말씀으로는 입구 공간만이 유일하게 공원을 조성하면서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 노란색 벽은 극적 효과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 같았다. 그 노란색 벽을 지나자마자 우리의 눈 앞엔 커다란 창고와 탑, 그리고 과거 조차장 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녹슬어버린 모습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이 중단되었음을 금새 알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만난 친절한 산타

갑자기 잡힌 일정이라 가이드나 인터뷰 신청을 미처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갈 수는 없는 노릇…

우리 일행은 사무실 간판을 찾아 들어갔다. 사무실도 과거 조차장 건물로 사용되었던 것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었다. 마침 그 사무실엔 좀 전에 입구에서 우릴 도와준 착한 할아버지도 계셨다. 우린 상황을 설명하고 이 공원에 관한 자료 요청과 동시에 공원 가이드가 가능하겠느냐 물었다.

우리의 정성이 갸륵했는지 아니면 동양에서 온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 대견했는지 그 할아버지께서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선뜻 나서는 것이 아닌가?

마침 그 분의 전공은 생물학으로 이 공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었고, 이 공원의 생태적 다양성에 매료되어 일주일에 두세 번은 공원을 찾으시는 분이었다. 또한 간혹 자원봉사로 가이드도 하신다고 했다. 그 분의 이름은 비덴만 씨(Dr. Gottfried Wiedenmann)였다.

[##_Gallery|1368343341.jpg|친절한 비덴만씨!|1353149108.jpg|공원 관리사무소 내부 |width=”400″ height=”300″_##]

“사람이 심은 것은 없다”

사무실을 나와 가장 먼저 간 곳은 예술품이 전시된 야외공원이었다. 이 공원의 작품들은 모두 과거 기차에 사용되었던 철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과거의 기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런 작품들은 공원관리회사의 의뢰를 통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놀이터도, 화장실도 모두 과거의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언제 멈췄는지 모를 열차도 있었다.

[##_Gallery|1289987256.jpg|멈춘 기관차|1125529603.jpg|야외예술공원의 작품|1152455582.jpg|야외예술공원의 작품 |1382800277.jpg|어린이 놀이터 |width=”400″ height=”300″_##]

멈춰있는 기관차를 뒤로하고 산책길이 기차레일을 따라 계속된다. 기차레일 외엔 모두가 나무나 이끼 등 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용어라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비덴만 씨의 설명에 따르면 인근에서 찾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사과나무까지도 말이다.

이것들 중에 사람들이 직접 심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말 그대로 씨앗이 옮겨져 와 스스로 만들어진 숲인 셈이다. 인공물 사이에서 자생하는 나무나 생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공원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_Gallery|1155294053.jpg|나무를 피해 조성한 산책로|1213421438.jpg|땅에서 20~30cm 가량 띄워서 만든 산책로 |1262864608.jpg|레일 사이에서 자라는 나무 |width=”400″ height=”300″_##]

거기에 묘미를 배가시켜 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다. 생물이 자라고 이동하는 공간을 지켜주기 위해서 산책로는 땅에서 20~30cm 띄워서 만들었다. 또한 길 중간에 나무가 있으면 비켜서 길을 만들었다.

또한 과거 기차부품들도 따로 모아서 전시하거나 건물을 보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놓아두었다. 어떻게 보면 방치해 놓은 것이고, 어떻게 보면 보존하는 것인데, 공원을 걷다보니 방치로 보이기보다는 보존해 놓았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_Gallery|1394883438.jpg|과거 기숙사 건물|1250562694.jpg|기차 부품들|width=”400″ height=”300″_##]

정말이지 걷는 것 자체만으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대부분 인공적으로 조성되는 공원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공원 끝까지 걷진 못했지만 아주 상쾌한 경험이었다. 설명을 들으며 걷느라 원래 사무실까지 돌아오는데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전망대가 된 물탱크

우린 미안함을 무릅 쓰고 물탱크 탑을 보고 싶다고 했다. 물탱크의 내부도 궁금했지만, 10층 정도의 높이에서 공원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비덴만 씨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물탱크의 경우는 관리가 어렵고, 사고의 위험이 있어 잠겨있었다. 사무실에서 열쇠를 받아 우린 물탱크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었다.

안개가 많이 낀 흐린 날이었지만 공원을 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공원은 길쭉하게 생겼고 우리가 걸었던 길은 숲으로 가려져 있었다. 공원을 중간에 두고 한 편은 공장지대였다. 전망대로서 손색이 없었다. 물탱크의 벽 곳곳은 전쟁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총알 구멍이 나 있었다.

[##_Gallery|1032160066.jpg|물탱크 입구|1048404439.jpg|물탱크 |1124058135.jpg|물탱크 위에서 바라본 전경|width=”400″ height=”400″_##]
물탱크 구경을 마친 후 우린 비덴만씨와 헤어져야 했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 날따라 적당한 선물이 없어 우린 짧은 영어로 “very”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감사의 크기를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비덴만씨와 헤어진 우린 물탱크 앞에 있는 창고로 갔다. 창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연장이나 작품을 만드는 공간으로 쓰이다 현재는 리모델링 중이라고 했다.

[##_1C|1364542559.jpg|width=”400″ height=”22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리모델링중인 창고내부 _##]

‘다른 길도 있겠구나’

쥬츠게뢴데 자연공원을 나오면서 마음이 묘했다.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항상 ‘계획’이라는 단어와 살면서 ‘계획’에 대한 한계를 느끼곤 했는데, 사람이 계획하지 않은 공원을 보니까 ‘다른 길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사람의 계획을 자연이 완성시켜주는 모델이라고나 할까?

사람의 계획이 완벽하지 못한 것은 예측의 한계에서 비롯되고, 또한 욕심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자연처럼 겨울이 되면 잎이 떨어지고 봄이 되면 싹이 나와야 하는데, 사람은 항상 열매만 맺는 계획을 원한다.

사람의 예측과 생각 때문에 쓸모없이 보이는 시설과 공간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그런 시설이나 공간 중에는 자본에 밀려 한 순간 사라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흉물스럽게 버려지는 것들도 있다.

많은 계획가나 자본가의 눈엔 더 이상 필요 없는 공간이거나 돈이 되지 않는 공간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억지스레 집어넣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잠시 비워두어야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의 필요를 들어보기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고민한다면, 우리의 공간도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ㆍ사진_ 뿌리센터 김준호 연구원(dasan@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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