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시사IN 기자들이 희망제작소가 제안한 천개의 직업 중 일부를 직접 체험하고 작성한 기사를 시사IN과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동시에 연재합니다. 본 연재기사는 격주로 소개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현장의 직업인이 직접 자신의 직업을 소개합니다.
 
체험, 1000개의 직업 (13)  공정여행 기획자


정말로, ‘관광은 굴뚝 없는 청정한 산업’일까요? 아름다운 태평양의 섬. 숲을 밀고 해변을 정비하며 대규모 리조트와 호텔이 들어섭니다. 농사짓고 고기 잡던 주민은 삶의 터전을 잃고, 관광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여행자들이 지불하는 숙박비는 대부분 건물 소유주가 있는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현지인들은 저임금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갈 뿐입니다. 예전보다 수입은 늘었지만, 관광지화되면서 치솟은 물가 때문에 삶의 질은 오히려 더 떨어졌습니다. 여행자들이 늘어나니 마을에는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지고, 해변과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게다가 젊은 세대는 여행자들의 소비력과 대중문화를 동경하며 전통문화를 경시하고, 이 섬을 떠나는 것이 꿈이라 말합니다.

우리의 여행이 의도치 않게 여행지의 경제와 환경, 문화에 이러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반성’,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러한 소비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 그렇지만 여행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모여서 대안적인 여행문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여행, 책임 여행, 윤리적 여행 등 그 이름은 다양하지만 사람·자연·문화를 존중하자는 지향점은 모두 같지요. 한국에서는 ‘공정여행’이 포괄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정여행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트래블러스맵(www.travelersmap.co.kr)에서 2009년부터 ‘공정여행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_1C|1109812672.jpg|width=”500″ height=”21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공정여행은 국내외에서 모두 가능하다. 지난해 가을 트래블러스맵은 지리산 도보여행을 기획했다._##]
공정여행은 여행의 방식이자 문화

공정여행은 엄격한 규정이나 특정 여행지 혹은 특정 여행 상품을 말하는 것이 아닌, 여행의 방식이자 문화입니다. 실제로 공정여행을 지향하거나 연구하는 기업·단체에 따라 공정여행에 대한 의미와 원칙이 조금씩 다르고, 트래블러스맵의 여행 상품군 내에서도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아래는 트래블러스맵의 ‘공정여행 기획 원칙’입니다.

첫째,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박업소·식당을 이용하며 현지 인력에게 노동에 합당한 임금을 지불한다.

둘째, 환경영향 최소화를 위해 대중교통이나 도보를 이용하고, 현지의 에코투어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여행자에게는 일회용품, 과도한 물 사용, 폐기물 발생 자제를 권유한다.

셋째, 문화 존중·보전을 위해 여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고 현지 음식·생활 등을 체험하거나 현지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지역 경제와 자연·문화를 존중하는 이러한 원칙들을 염두에 두고 여행을 실천한다면 스스로 준비해서 배낭을 메고 떠나는 것도,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는 것도 멋진 공정여행이 될 수 있겠죠. 즉, 공정여행 기획자는 사람들이 완성된 여행 상품을 구매하여 편하게 공정여행을 경험하거나, 스스로 공정여행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저 같은 공정여행 기획자나 트래블러스맵 같은 공정여행 전문 여행사가 없이도, 모두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스스로 여행하는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저는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겠지만요.   

[##_1C|1361433325.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해 1월, 박병은씨와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한 가수 이한철씨(왼쪽 두 번째 기타 치는 이)._##]


공정여행 루트를 개발하고 상품화하는 일은 재미있지만 힘든 점도 많습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식당·여행업체를 찾아내고 섭외하는 일은 정보가 부족해서 직접 찾아가 확인하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특히 상업화한 현지의 전통문화 공연이나 상품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친구로서 만날 수 있는 교류의 시간을 만드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곳 문화에 대한 이해와 대화가 필요한 과정이어서 시간과 노력이 필수적이죠. 또한 컨베이어벨트처럼 업무가 정확히 분화되어 있는 기존 여행업 관례와 달리 사전조사, 현지 연락, 답사, 콘텐츠 제작, 상담, 현장 인솔, 정산까지 한 가지 상품의 모든 것을 소화해야 하는 다양한 재주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공산품이 아닌 핸드메이드 제품을 만든다는 느낌이랄까요?  

[##_1L|1272741213.jpg|width=”25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올 1월 잠비아 여행 중에 꼬마를 숙소로 초대한 박병은씨. _##]
공정여행은 힘든 여행이다?    

사실, 공정여행 기획자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공정여행은 힘든 여행일 것이다’라는 일반의 인식입니다. 이러한 벽을 허물기 위해 트래블러스맵에서는 지리산 길을 걸으며 마을에서 숙박하는 도보여행, 여성 셰르파와 함께하는 네팔 트레킹, 해변의 에코 리조트에서 유기농 음식을 먹으며 휴식하는 여행, 트럭을 타고 다니며 장기간 캠핑하는 아프리카 여행, 캄보디아에서의 홈스테이 등 취향이나 체력·예산 등에 따른 선택의 폭이 넓은 여행들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예산 배낭여행을 하든 럭셔리한 에코 리조트에 머물든 공정여행은 그 장소나 숙소의 형태가 아니라 여행자의 인식과 실천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문화’이니까요.

공정여행 기획자는 준비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조심할 것도 많은 어려운 직업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의 재미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대안적인 여행 문화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즐겁습니다. ‘취미=특기=직업=여행’인 공정여행 기획자, 어떠세요?



이 직업은 여행을 좋아하는 건 기본, 일반 여행사에서 하는 실무를 두루 하기 때문에 관련 경력이 있다면 도움이 된다. 박병은씨는 영화 촬영 장소를 헌팅하는 로케이션 매니저를 준비하다 공정여행 기획자가 된 경우다.

어떻게 시작할까 트래블러스맵은 비정기적으로 인턴 및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공정여행 맛을 보려면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스스로 기획해 훌쩍 떠나면 된다.


글_박병은 (사회적 기업 ‘트래블러스맵’ 여행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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