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모] 국민에게 추경예산은 없다

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정부가 올해 6월 추경 예산으로 편성한 돈은 4조 9000억 원이다. 49라는 숫자 뒤에 0이 11개 붙는 큰돈이다. 기획재정부의 보도자료 제목이 ‘고유가 극복을 위한 민생안정 추경예산 편성’이다. 이에 따르면 최근 기름값이 급등하여 우리경제 여건이 급속히 악화됨에 따라 저소득층과 농어민 그리고 중소계층 등 서민계층의 어려움을 조속히 완화할 필요가 있어서 추경을 편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이렇게 서민계층의 어려움을 풀겠다고 밝힌 추경예산안 자료는 보도자료가 전부다. 일반 국민이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배포한 ‘2008년도 제 1회 추가경정예산안 개요’를 비롯한 자료를 구하려면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 자료에 자세한 사업내역이 있는 것도 아니다. 추경예산 2050억을 배정한 ‘국도대체 우회도로건설’항목의 경우 혼잡한 국도 구간을 우회하는 도로를 건설한다는 사업내용 몇 줄과 금액이 적혀 있을 뿐이고 다른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추경예산의 상세 내역을 밝히지 않아

추경예산에서 국토해양부는 도로와 건설 등에 1조 300억을 배정받았다. 국토해양부에 이들 예산을 어떻게 쓰는지 자세한 사업내역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도로 (34건)에 3561억 원, 철도(11건)에 3650억 원 식으로 사업이름과 금액을 쓴 2쪽 짜리 내역서를 보내준다.

추경예산에 2조 6000억을 쓰는 지식경제부 역시 추경예산 각목명세서와 상세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사업명과 비목, 금액이 적힌 2쪽의 검소한 서류를 보내준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홈페이지에 정부가 낸 추경예산 자료를 올리지 않는다. 예결특위는 추경 자료를 만든 곳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결국 정부가 6월 17일 추경을 쓰겠다고 발표한 후 공개한 추경자료는 정부의 보도자료와 국회예산정책처가 7월 10일 발간한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자료뿐이다.

국민이 낸 돈으로 나라가 민생을 안정시키겠다고 추경 예산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 혜택을 보는 국민은 상세한 내역을 알 수 없다. 이런 비밀주의를 바라보면 뭔가 추경예산에 국가재정법에 맞지 않는 어두침침한 구석이 많지 않을까 의심이 간다.

예컨대 지식경제부 추경을 보면 유전개발 사업출자금이 8500억, 해외자원 개발융자에 1000억이 들어있다. 유전개발과 해외자원개발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 추경을 편성할 만큼 시급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연 ‘민생 안정’ 추경 예산인가


국토해양부 추경예산 1조 300억은 철도와 도로, 지하철 사업에 쓴다. 국도대체 우회도로 사업은 2008년도 본예산이 7935억인데 추경예산안에 2050억 원이 올라왔다. 본예산 대비 25.8% 금액이다.
국가지원 지방도 건설사업은 2008년도 본예산액은 5889억인데 추경예산안에 1193억을 올려 본예산 대비 20%에 달한다. 우회도로 사업은 ‘2차 국도건설 5개년 계획'(’06~’10)에 따라 하는 사업으로 갑작스런 추경의 필요성도 의심스럽지만, 이처럼 본예산 대비 20%가 넘는 금액을 추경으로 편성한다면 본예산 심의는 의미가 없어진다.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들 사업은 유류비용을 절감하고 교통혼잡을 해소하기 위한 ‘민생안정 대상사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렇게 넉넉한 상상력을 발휘하면 정부 사업에서 민생안정이란 큰 그물을 벗어날 사업은 없을 것 같다.

사실 ‘민생 안정’이란 구호는 정부나 국회 모두에게 달콤하다. 4조 9000억이란 돈은 정부가 만든 돈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이다. 그러니 민생 안정이란 나팔을 부는 정부만 생색내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그래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게 부탁하고 싶다. 정부가 낸 추경 예산이 과연 정부 말대로 ‘고유가 극복을 위한 민생안정 예산’이 맞는지, 추경을 편성해야할 만큼 절실한 사업인지 철저하게 검증하고, 새로운 ‘대안 추경예산’을 제출해 달라는 것이다.

‘야당판 대안 추경’이 필요하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추경이 서민경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항목별로 따져 선심성 예산과 필요 없는 것을 다 빼겠다고 한다. 국회에서 추경예산액을 삭감하면 삭감된 돈은 내년 세입예산으로 넘어간다. 그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정부가 낸 예산에서 민생안정이 아닌 예산을 추려내고, 야당이 밑바닥 민심을 들어 정말 국민이 공감할 ‘야당판 민생안정’ 추경을 만들고 양쪽을 비교하는 기자회견을 열자고 제안하고 싶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구호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추경예산 경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야당이 장밋빛 공약이 아니라 바로 올해 거리와 시장에서 ‘민생 안정’을 위해 쓸 수 있는 4조 9000억 이란 엄청난 돈에 대해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데 어떤 정책에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_1L|1241957657.jpg|width=”120″ height=”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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