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모] 국회는 ‘유통업’이다

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흔히 제조업체라고 생각하는 나이키는 신발을 만들어 파는 기업이지만 생산은 하청을 주고 마케팅과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큰 이익을 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나이키는 신발제조업체라기보다 유행을 선도하고 브랜드를 관리하는 마케팅회사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입점한 업체에게 수수료를 받아 유지하는 한국의 백화점은 유통업이라기보다 임대업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은 과자제조회사이지만 바둑 TV, 온게임 네트워크 등을 거느리고 있는 온미디어를 가지고 있어 대형미디어그룹의 지주회사로 봐야 한다. (최준철, 한국형 가치투자전략)

그렇다면 국회 업종은 무엇일까? 국회는 누구를 상대로 영업해서 이익을 얻어야 할까?
국회가 하는 제일 중요한 임무인 입법은 결국 사회의 요구와 시대정신을 빠르고 정확하게 법으로 만들어 사회에 유통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예산 심사는 나라의 돈을 민생과 국가 경쟁력강화를 위한 사업에 적절하게 나눠주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국회는 유통업으로 볼 수 있다.

국회가 유통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왕 하는 일이니 큰 판을 벌여보면 어떨까? 작은 슈퍼마켓에 만족하지 말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좋은 생각과 정책을 모아 사고파는 큰 시장을 열어보면 어떨까?


유통업의 비법, 국회 활동 암묵지를 책으로


의원이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국회 홈페이지에 의원 보도자료실을 만든 것도 국회의원들이 이런 일을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언론과 국민에게 퍼뜨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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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자신의 생각을 유통시키는 사례 중 하나를 들면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임종인 변호사가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란 책을 낸 일이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권력이자 로비기관으로 떠오른 김앤장을 해부한 책으로, 임종인 전 의원이 17대 국회에서 낸 정책자료집 내용을 보완하고 새로 엮어 만들었다.

역시 17대 의원을 지낸 이상경 전 의원도 17대 국회에서 2005년 국정감사 자료집으로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관련 정책 자료집을 냈다. 이 자료집은 처음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환은행 부당매각이 이슈가 되면서 많은 기자들이 이상경 의원실에 가서 자료집을 구하고 인터뷰를 하는 등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이 자료집은 책으로 탄생되지 못하고 자료집에 머무르고 말았다. 자료집과 책은 차이가 크다. 앞으로 책을 낸 임종인 의원은 대형로펌의 로비문제에 관한 전문가로 대접받고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인터뷰나 대담프로에 나갈 개연성이 높다.

‘언론과 국민에게 퍼뜨리기’를 위해 의원이 한 의정활동을 가장 잘 유통시키는 방법이 바로 책이라는 의미다. 힘든 일이 아니다. 1년 동안 겪는 국정감사와 예산 그리고 법안 심사 내용을 가공해서 국회의원 본인이 집필한다든지, 직접 쓰기 어렵다면 전문작가를 고용해서 공동저자로 하여 집필한다면 4년 임기 동안 4권의 전문 서적을 낼 수 있다. 그러면 그 의원은 단숨에 해당 분야 전문가로 뛰어오르게 된다.

초선 의원이 TV 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하면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기고를 하고 인터뷰, 대담 프로에 나갈 수 있는 이점을 톡톡히 누릴 수 있는 이런 홍보야 말로 유통업의 남다른 비법이다. 물론 이 과실을 의원만 따는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얻은 암묵지를 결국 독자인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으니 유통업이 제 구실을 했다고나 할까.


국정감사 저도 질문 있습니다


포털 다음은 아고라에서 참여연대와 함께 ‘국정감사 저도 질문 있습니다’란 토론공간을 만들었다. 네티즌이 직접 국감에서 다뤄야 할 과제를 제안하고 토론하고 국감 평가도 하는 공간이다.
이 토론공간은 ‘2008 국정감사 정보’와 ‘국회의원 자료 보기’ 코너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여옥 의원을 비롯한 많은 의원들이 보도자료를 열심히 올리고 있고, 일부 의원들은 여기에 인터넷에 맞는 보도형태로 ‘소통형 게시물’을 올리기도 한다.

여기서 높은 인기를 누린 게시물을 보면 ‘고시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공간이 필요합니다’와 김진표 의원실에서 올린 ‘국립대, 이렇게만 하면 칭찬할 만하죠’란 제목의 경북대학교의 지적재산권 및 기술이전 사례, 김재균 의원실에서 올린 석유품질관리원이 검사하니 가격이 비싼 고급경유와 일반경유의 성능차이가 없다는 ‘고급 경유 넣어보셨나요’, 그리고 권영길 의원의 ‘수입축산물 급식, 어떻게 생각하세요’ 등 수많은 게시물이 1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한국판 ‘국회 월마트’를 만들어 보자


아예 이런 판을 국회가 직접 벌리면 어떨까? 국정감사 외에도 예산 결산과 입법 청원을 이렇게 크게 벌려 유통의 속도를 빨리하고 유통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즉 한국판 ‘국회 월마트’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_1C|1311500310.jpg|width=”350″ height=”233″ alt=”?”|2008 사회창안대회 수상자들_##]

희망제작소는 2008년 10월 9일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후원을 받고 포털 다음과 협력하여 사회창안대회를 열었다. ‘작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꿔라’란 주제로 다음 아고라 사회창안대회 접수페이지를 운영해서 총 763건의 시민 제안을 받았다.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뽑힌 2008 전국사회창안대회 최종 결선 진출작은 ‘싫든 좋든 급하든 말든 사람 대신 자동응답 ARS 개선’, ‘ 핸드폰 및 각종 디지털 기기의 전원 어댑터 통일’ 등 10건이었고 대회에서 1등상은 식품과 수입식품에 ‘유통기한과 함께 제조년월일을 병기해주시기 바랍니다’란 아이디어에 돌아갔다. 시간은 급한데 요금까지 계속 올라가는 ARS 자동 전화 응답을 듣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회창안대회는 이런 사회 불만을 불만으로 삭히지 말고 사회 개선을 위한 원동력으로 바꿔보는 자리였다.

이런 창안대회를 국회 차원에서 하면 어떨까? 신청하는 사람도 적고 신청해도 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있으나 마나한 국회 청원제도에 기대지 말고, 정말 국민들이 만들거나 고치고 싶었던 법률과 하고 싶은 사업과 제도 개선을 쏟아 붓는 난장을 벌여보는 것이다. ‘국민이여, 아이디어로 나라를 바꾸자’란 구호를 내걸고 포털이나 언론과 함께 포상도 하고 이들 제안을 제도화할 수 있는 지원조직과 시스템도 갖추는 것이다.

이왕 벌린 국민 생각 유통업, 대한민국과 세계가 놀랄 큰 판을 벌이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 이 칼럼은 여의도 통신에 함께 게재합니다.


[##_1L|1341837762.jpg|width=”120″ height=”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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