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준] 권력에 길들여진 싱크탱크가 위험한 이유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

최근 우리나라 금융 연구 최고의 싱크탱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국책연구소의 수장이 사임을 하면서, 자신의 “연구원을 정부의 싱크탱크(Think Tank : 두뇌)가 아니라 마우스탱크(Mouth Tank : 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고 밝히면서, 사회적인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발언으로부터 우리는 지금 정부출연 연구 기관들이 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길들여지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선진화를 외치면서 실상은 이 나라를 후진국화 하고 있구나, 하는 걸 다시금 소스라치게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나는 국책연구소들을 특정 정부의 정책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 그것에 부합하는 연구만을 수행하는 현 정부의 철학은 매우 위험하고 후진적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이 글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려고 한다. 상식과 같은 일이지만 바야흐로 지금 한국인들은 상식이 몰상식에 의해 멱살 잡히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선택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국책연구소가 제도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현실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를 읽으면 보다 명확해진다.

재작년 뜻하지 않은 기회에 국내의 모 연구 기관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독일의 싱크탱크 15개 기관들을 방문하는 흥미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이른바 ‘국책연구소’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곳들이 한 절반쯤 포함되어 있었다. 그곳들을 방문하면서 받았던 가장 주요한 인상은 그곳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강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아마도 기존의 한국적 풍토를 당연시하는 사람, 특히 현 정부의 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사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허나 사실이 그러하다. 그들이 처해 있는 제도적 환경이 그러하며, 그러한 환경 하에서 그들은 열과 성을 다해 기관의 수준을 전 유럽, 전 세계적 수준에서 버금가도록 경주를 하고 있었다.

독일의 국책연구소는 소위 ‘비대학 연구소(Außeruniversit?tsforschungsinstitute)’라고 하는 상당히 광범위하고 독특한 제도적인 범주 안에 속해 있다. 독일은 대학과 더불어 이러한 비대학 연구소 체제가 매우 발전한 나라이다. 비대학 연구소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 사회에서 대학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할 필요가 있다.

독일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문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대학 공부를 하려는 의사만 있다면, 전부 다 대학에 진학해 수업을 듣고 학점을 따고 하는 일이 가능하다. 우리와 같이 대학이 서열화 돼 있고 서열이 높은 엘리트 대학에 진입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도 아니다. 적지 않은 대학들은 특정한 담장도 없이 그냥 해당 도시의 일부분으로 평범하게 존재한다.

이러한 대중화되고 비엘리트적인 대학 시스템을 보완해 주는 것이 바로 비대학 연구 기관이다. 그곳은 한편으로는 일종의 엘리트 교육 기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정책 개발을 위한 전략적인 지식을 생산해 내는 역할도 한다.

비대학 연구 기관은 학위를 주는 권한은 없다. 연구는 비대학 연구 기관에서 하면서 학위는 대학에서 따는 일종의 분업화된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비대학 연구 기관의 연구원이 되는 일은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일이고 또 그만큼 역량을 발휘해야하는 책임이 있다.

[##_1L|1334081599.jpg|width=”250″ height=”200″ alt=”?”|쾰른에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_##]
비대학 연구 기관은 구체적으로 몇 가지로 나뉜다. 소위 막스플랑크협회, 라이프니츠협회, 헬름홀츠협회, 프라운호퍼 등 4대 연구협회로 불리는 조직체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각 그 기원도 상이하고 저마다의 특성들도 다소 상이하다. 정부가 재정을 담당하는 정도도 다르고, 포괄하는 분과 학문적인 특성에 있어서도 각기 개성이 존재한다.

아주 단순히 정리해서 말한다면 막스플랑크협회가 가장 순수 기초과학에 가깝고 프라운호퍼가 가장 응용과학적이며, 그 중간의 영역에 다른 두 협회가 존재한다고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비대학 연구기관 안에는 이들 네 협회 이외에 또 다른 범주의 중요한 기관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소관 연구 기관(Ressortsforschungssinstiut)’이라고 명명되는 곳들로 상대적으로 정부의 특정 부처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정책 생산을 위하여 4대 연구협회에 비해서 더 직접적인 역할을 행하는 연구 기관들이다. 정부와의 자율성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4대 연구협회에 속한 기관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독일의 비대학 연구 기관을 운영하는 핵심 원리는 정부가 그 재정의 절대적인 부분을 감당하는 것과 운영 자체를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어떤 곳들은 연방정부에서 어떤 곳들은 주정부에서 재원의 기초를 마련한다. 즉 정부는 돈만 대주고 실제 연구 주제의 선택이나 연구의 질의 관리는 모두 권위 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평가단위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독일 사회의 학술공동체가 지향하는 ‘자율 행정의 원리(Selbstverwaltungsprinzip)’를 따르는 것이다. 원장들은 보통 정권 교체를 불문하고 몇 차례씩 연임을 하는 것이 관행이다. 어떤 곳은 아예 세계 최고의 인물을 원장으로 신중하게 임명하여, 종신제로 운영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독일의 비대학 연구소 체제와 우리나라의 국책연구소를 대비시키는 일은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우리의 국책연구소의 모델링에 독일의 이러한 제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국책연구소는 독일의 비대학 연구소 체제의 어떤 곳과 유사할까?

매년 주요 분과의 노벨상을 배출할 정도의 역량을 갖추며 해당 분과학문의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향하는 막스플랑크협회는 우리의 국책연구소가 아직 범접하지 못할 것 같다. 라이프니츠협회나 헬름홀츠협회 역시 대부분 독일을 넘어 유럽과 세계적인 선도 연구소로서 큰 손색이 없으므로, 우리의 국책연구소가 아직 이들의 수준에 다가가기는 힘들다고 보이지만 그래도 막스플랑크협회에 비해서는 조금 더 가까울 것 같다. 프라운호퍼는 매우 응용지향적인 곳이며 산학협동을 강하게 지향하고 지식의 상업화까지 추구하기 때문에 국책연구소의 기능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_1C|1105948981.jpg|width=”500″ height=”217″ alt=”?”|포스텍에서 막스플랑크 한국 연구소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_##]

결국 우리의 국책연구소는 독일의 소관 연구 기관들과 매우 흡사하다고 본다. 그 기능에서도 그렇고 역량으로도 그렇다. 그렇지만 제도적으로 우리의 정부 출연연구소는 오히려 막스플랑크협회와 유사한 얼개를 띄고 있다. 즉, 제도적으로는 막스플랑크협회의 모습을 하지만 실제 역량과 기능에 있어서는 소관 연구 기관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보인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우리의 국책연구소를 발전적으로 육성하는 길은 그것이 갖는 소관연구기관적 성격을 약화시키고 4대 연구협회가 갖는 높은 학술 역량과 자율성을 겸비시키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명목적으로만 막스플랑크협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그러한 전략적 목표를 갖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소관 연구 기관들은 그러한 지향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필자는 재작년에 소관 연구 기관에 속하는 두 곳들을 방문해서 기관의 주요 관계자들과 그 기관의 운영 방식과 미래의 지향에 대해서 직접 들은 바 있다. 두 곳 모두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전해 주었다.

하나는 지금까지 그곳은 소관 연구 기관의 기능을 담당하여 왔지만 그 해당 부처의 ‘개’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일정하게 정부 부처로부터 정책의 주문을 받지만, 연구의 주제를 결정하고 수행하는 것에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자율성의 영역을 확실히 보장받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들 소관 연구 기관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라이프니츠협회나 막스플랑크협회와 같이 점점 더 학술적인 경쟁력을 갖는 기관으로 변모하려고 모색하는 점이었다. 어떤 기관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기존의 비학술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들을 대대적으로 정돈하고 보다 자율적이고 학술 경쟁력이 높은 기관으로 탈바꿈하려고 했다. 그것은 소관 연구소가 갖는 종속적이고 위축된 모습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독일의 미래지향적인 걸음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현 정부의 국책연구소에 대한 접근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한다는 것이 명확하다. 제도적으로도 아예 소관 연구소 내지 그 이하의 모습으로 체제를 전환하려 하고 있고, 기능상으로도 자율적인 학술 연구 기관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하기는커녕, 정부 부처를 위한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

국책연구소의 소장을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사퇴시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물갈이를 하고, 연구원들이 자신들의 학술 연구의 성과를 통해 자율적으로 공론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차단하며, 연구의 방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현 정부의 정책 지향을 정당화하는 연구를 강요하는 행위는 후진적이다 못해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유의미한 정책 지식의 생산은 현실을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국책연구소가 진정 경쟁력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바로 그러한 원리를 내적으로 체득하도록 체질개선을 해야 옳다.

그러나 현 정부가 자행하는 지금의 모습은 국책연구소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자율적인 학술 연구 기관이자 국가 정책의 샘솟는 우물을 파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전략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국책연구소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존심을 갖는 전문 연구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들이 현실을 현대화된 기제를 통해 날카롭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상을 지배하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정책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들로 하여금 ‘연구의 주권’을 확보하도록 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보인다.

글_ 박명준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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