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회적 책임, 빛 좋은 개살구인가

베를린에서 개최된 CSR 일ㆍ독 공동포럼 참관기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강조는 학술적, 정책적, 실천적, 사회운동적인 측면 등 그야말로 가히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전세계적인 화두로 급부상해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초래하는 기업중심적 사회로의 재편 과정에서 사회 공공 영역의 약화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CSR의 부상은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기업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유ㆍ무형의 자원을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고, 그러했을 때 종래의 행정이나 운동이 가졌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많다.

이는 더욱 적극적으로 기업적 수단의 기능상의 의미를 찾으려는 입장으로, 이러한 사고를 발전시킨 실천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기업이 사회적 기업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분명 기업들이 경제적인 성장을 거두는 만큼 사회적 책임의식과 공익적 실천을 강화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자각이나 정부의 정책도 중요하겠지만, 사회 전체적인 가치개혁과 압력행사의 수단을 키우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CSR, 빛 좋은 개살구?

사실 대체로 길게는 약 10년, 짧게는 지난 4,5년 새에 급격히 증대된 CSR 논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해 보인다. 솔직히 ‘기업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 좀 적극적으로 해야하는 시대가 왔다’는 점에 대해 보편적으로 동의하고, 그러한 수준에서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평한다면 너무나 야박한 것일까? 

가장 결정적으로는 여전히 국가 간에 CSR을 정의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것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수준도 다르다. 마치 UN 인권헌장이 인권의 실현을 모든 헌장비준 국가들에게 권고함에도 그것의 실제 실현은 나라마다 상이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국제적인 기초규범을 구축하려는 노력들이 국제기구나 국제NGO 등의 주도로 존재하긴 하지만, 정작 그것이 경제적인 이득과 연결되지 않는 한, 기업들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CSR과 관련한 흥미로운 행사가 베를린에서 개최되어 흥미를 갖고 참석하게 되었다. 지난 2월 19일 베를린 일본-독일센터(JDZB: Japanisches-Deutsches Zentrum in Berlin)에서 열린 CSR 일ㆍ독 공동포럼이다.

[##_1C|1162334500.jpg|width=”450″ height=”25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독일 보훔대학 홀트슈나이더 연구원의 발표모습 _##]
베를린자유대학의 일본학 연구소와 일본-독일센터, 그리고 일본재단(Japan Foundation)이 함께 주관한 이 행사에서는 근래 이 주제와 관련해 연구와 실천활동을 벌이고 있는 여러 인사들이 참여해 다채로운 논의를 전개했다. 주로 일본과 독일의 학계 및 재계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미국과 영국의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포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평가(1부)와 경제위기가 CSR에 끼친 영향(2부)의 두 가지 대주제를 내걸고 진행됐다.
 
1부에서는 사회적 책임 기업에 순위를 부여하는 문제, 소비자들의 의식에 대한 국가별 차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끌어 내는 데 있어 투자기관들의 역할 등 다채롭고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뤘다.

경제위기가 CSR에 끼친 영향을 다루는 2부 시간에는 독일 뒤스부르크 대학의 연구자인 우베 홀트슈나이더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일본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번 경제위기가 이들의 CSR에 끼친 영향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위기의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며, 이는 그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종래의 담론이 상당히 깊숙이 기업들에 유포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존재했다. 이번 행사의 일본측 주관자인 도쿄 히토츠바시대학 다니모토 간지 교수는 그간 자신이 수행한 일본 주요 기업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데이터를 토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담론과 상징적인 이야기들은 무성하지만, 실제적인 실천은 그것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점을 비판했다. 그의 지적이 필자에게는 마치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 같이 들렸다. 

일본의 글로벌 대기업 소니(SONY)를 대표해 참석한 사회적 책임부장(Department of CSR) 도미타 히데미의 발표는 우베 홀트슈나이더의 거시적 비교연구의 테제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소니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두는 강조는 그다지 수그러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_1C|1150199915.jpg|width=”450″ height=”25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소니의 도미타 히데미 CSR 부장 _##]
다소 선전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그의 발표에 의하면, 소니가 현재 벌이고 있는 사회적 책임의 실천영역은 신기술을 친소비자적 방식으로 적용해 제품을 개발하는 것에서부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후원하면서 사회적 프로젝트 지원에 가담하는 것 등 그 스팩트럼이 매우 넓었다.

사실 경제위기의 타격이 클 경우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간 마지못해 인정하고 수동적으로 벌여 왔던 사회적 책임 활동을 가장 먼저 줄일 터인데, 실제 연구에 그러한 현실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은 다소 의심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해서 필자는 토론이 끝나고 도미타씨를 찾아가 과연 정말 그러한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대기업의 경우 재정적인 기반도 튼튼하지만, 이번 경제위기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지는 반응(사회적 책임 활동 축소 등)을 보일 경우 닥칠 후폭풍을 염려해 과감한 축소를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중소기업들의 경우까지 이러한 정황이 보편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날 1부와 2부 사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필자는 일부러 다니모토 교수의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사회적 기업에 대해 매우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얼마 전 희망제작소가 한국에서 주최한 한일 사회적 기업 포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나,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 지원제도가 법제화되었고, 그것을 노동부가 주관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필자에게 사회적 기업의 성공열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필자는 분명 제도적인 기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기업가들 개인의 창의적이고 과감한 실천도 중요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고용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기업들이 일정한 수익을 창출하고,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기반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주었다. 특히 그것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시민사회와 파트너십을 이루는 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다니모토 교수는 사회적 기업을 ‘사회 문제를 기업적인 수단을 동원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해결하려는 활동’이라고 정의하면서, 그것을 노동시장의 영역에만 협소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우 사회적 기업을 노동부가 주관하고, 주로 고용문제에 국한해서 논의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지적키도 했다.

그는 자신의 현재 관심은 ‘어떻게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이 가능한가’에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그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혁신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슘페터가 자본주의 기업가들의 창조적 파괴의 역량에 주목하면서 경제적 혁신에 천착했다면, 우리는 서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사회적 혁신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니모토 교수는 다음 학기 베를린자유대학 일본학과에 교환교수로 와서 한 학기동안 ‘기업과 사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했다. 세미나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비즈니스가 각각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이 날 행사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문제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술적, 실천적으로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그것을 내면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다양한 수단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 걸쳐 진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 소비자, 생산기지의 지역사회에 대한 다차원적인 책임을 간과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_1C|1362276630.jpg|width=”450″ height=”25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2부 발표 이후의 토론 모습_##]
더불어 이러한 행사를 독일과 일본이 함께 베를린에서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함께 논할 만큼 두 나라 사이 교류의 정도는 깊고, 이 주제에 대한 접근도 진지해 보였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이런 행사를 국내외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미 콘라트아데나워재단(KAS)이 주도해 서울에서도 한국과 독일이 함께 이런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다.  더불어 한국의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에 열과 성을 다하고 혁신적으로 실천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논의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를 고대해 본다.

CSR 일ㆍ독 공동포럼 관련 웹사이트

베를린=희망제작소 박명준 객원연구위원 (mj.park@makehope.org)

유럽희망통신은 유럽 주요 국가의 시민사회ㆍ사회적기업ㆍ사회자본ㆍ싱크탱크들이 추구하는 사회혁신 실천사례를 소개합니다.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 국가들의 소식에 중점을 두고, 부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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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기업 사회적 책임, 빛 좋은 개살구인가” 에 하나의 답글

  1. 곽호준 아바타
    곽호준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활기찬 한 주 시작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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