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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SIX sense : 행동하는 개인들은 위대하다

글 : 김연희(희망제작소 기획실 선임연구원)

시민들로부터 헌 물건을 기증받아 판매하고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에 쓰는 아름다운가게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무엇일까? 바로 자원봉사자이다. 물류센터에서 정리된 기증상품이 전국 80여개 재활용매장으로 배송되는데, 물건정리 뿐 아니라 매장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자원봉사자들이이다. 현재 활동하는 자원봉사자 수만 5천여명,한 달 평균 4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폭발적인 참여가 없었더라면 아름다운가게가 수익을 내고, 이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쓰는 것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전국 248개 자원봉사센터에 등록된 사람만 260만 명으로 이들이 창출한 연간 부가가치는 물질적으로만 따져도 3조2천억원이다.(2006년 기준) 여기에다 자원봉사자 본인과 수혜자들이 느끼는 감동의 가치는 훨씬 더 크다.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태안 기름 유출사고 당시 123만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의 물결은 가히 기적이라고 불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정부와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과제들은 자선의 영역, 혹은 개인적 활동 등에 의지해왔다. 얼핏 개인적인 수준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사회에 혁신적 결과를 가져다줄까 싶지만 개인의 힘이 모이면 그 또한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개인의 참여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경우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정국 때 그랬다. 수많은 이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의견을 표출하고 급기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행동하는 주체가 되어 뛰쳐나왔다. 거리를 메운 것은 소위 운동하는 사람들만이 아닌 직장인, 촛불소녀로 대표되는 교복 입은 학생, 유모차를 끌고 나온 유모차 부대까지 새로운 주체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이 팽배한 이 시대에, 생활인들이 삶의 정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변화의 중요한 기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도 이렇게 개인의 생각이 집단이 되고, 전국,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적 운동을 만들어낸 사례들이 있다. 앞서 촛불정국에서 보듯 인터넷 등 매체의 발달로 정보는 순식간에 공유되며 상호간에 학습되고 전파된다.

프랑스 서부 한 항구도시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인 캠페인으로 확대된 카프리데이(car free day)는 일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자가용을 타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캠페인이다. 자가용 이용을 줄임으로써 대기오염, 소음, 교통체증을 줄이고 자전거 혹은 보행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자는 취지이다. 차 없는 날 캠페인은 1997년 프랑스 서부 항구도시인 라로쉐에서 처음 시작되어 1998년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2000년에는 유럽연합을 비롯한 세계 각국(30여개국 818개 도시)이 참여하여 제 1회 유럽 차 없는 날 행사가 벌어졌다. 2001년 9월 22일 ‘세계 차 없는 날’로 정해져 전세계 1천 3백여 도시에서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으며, 2002년에도 유럽지역 30여개국 1천 300여개 도시 및 마을들이 9월 22일 ‘차 없는 날’을 맞아 거리에서 자동차를 추방하는 환경캠페인에 동참했다. 우리나라도 환경, 에너지, 소비자단체들의 주도 아래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서울시가 ‘차 없는 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출근시간대의 지하철과 버스를 모두 무료로 운행하면서 출근 시간대 평균 교통량이 11% 정도 줄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은 획일화된 공공정원이나 화단에 대한 반기로, 도시의 버려진 땅이나 자투리 공간(교통섬 같은)에 잡초나 정원용 꽃이 아닌 야생화나 먹을 것을 게릴라처럼 심는 운동이다. 보통 당국의 허가 없이 개인이 기습적으로 정원을 꾸미기 때문에 ‘게릴라’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이런 운동은 비단 도심의 버려진 땅을 재활용한다거나, 미화 및 경관 개선만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다. 바로 도시민들의 자급적인 경작, 다시 말해 ‘도시농업’으로서의 의미도 있다.

이 문제를 사회운동으로 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밴쿠버식량정책협의회(Vancouver Food Policy Council)의 ‘공공텃밭(Community Garden)’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밴쿠버올림픽이 열리는 2010년까지 시내에 2010개의 공공텃밭을 가꾼다는 것이 계획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잔디를 심고 가꾸는데 돈과 환경을 낭비하지 말고, 또한 세계 경제 논리 속 수입 농산물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지역에서 스스로 먹거리를 길러내자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아울러 저소득층의 먹거리 공급에도 일조할 수 있고, 공공텃밭을 가꾸며 지역 커뮤니티가 조성되기 때문에 서로 친분이 쌓여 범죄도 예방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처음 구상된 불만합창단(Complaints Choirs)은 영국 버밍엄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만에 대해서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가사로 바꿔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일이다. 올 10월 희망제작소에서도 불만합창단 대회가 있었다.‘불만’이라는 부정적 단어 때문에 행사개최에 필요한 기업의 협찬이나 후원을 받아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불만’은 염려할 만한, 그리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불만이 지하로 스며들면 분열의 요소가 되지만 함께 나누면 솔직한 소통과 적극적인 참여로 치환되는 역설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불만합창단은 주민참여의 새로운 방법이고 즐거운 사회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시간은행(Time Bank)은 공동체 내에서 기술과 지식과 자원을 나누는 한 가지 방법이다. 시간은행에서는 ‘돈’이 아닌 ‘시간’을 주고 기술, 지식, 자원을 사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시간은행은 미국에서 고안됐다. 미국의 에다가 칸(Kahn)교수는 시간은행과 시간달러(Time Dollar)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고, 1990년대 후반 스스로 은행을 만들었다. 서울 동작구에는 ‘동작 자원봉사 은행’이 있다. 통장에는 봉사한 날짜, 봉사내용, 봉사한 시간, 봉사 받은 시간, 그리고 남은 시간을 기록할 수 있다. 돈 내신 봉사 거래내역과 잔액을 표기하는 것이 일반 통장과 비슷하다. 이처럼 자신이 봉사한 시간을 예치해 나중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은행’이라고 부른다.

시간은행은 그 용어를 쓰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있었다. 바로 농촌에서 서로 협력하여 공동 작업을 하는 풍습, 또는 이를 위해 부락이나 리(里)단위로 구성한 조직을 두레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노동 교환형식인 품앗이라는 것도 있다. 두레, 품앗이, 시간은행 모두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 즉 나눔과 도움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는 공동체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일종의 ‘사회변화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시간은행은 전 세계 22개국에서 사회운동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다.

대안적인 경제활동을 위한 대안으로 1980년대 초 지역화폐운동(LETS :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이 등장하였다. 지역화폐운동은 말 그대로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 대신 지역 내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주민 간에 물품과 서비스를 거래할 수 있는 교환제도이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고,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기술과 자원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화폐 제도의 시작은 1983년 캐나다 밴쿠버 코목스 밸리. 공군기지 이전과 목재산업 침체로 지역 실업률이 18%에 이르자 주민인 마이클 린튼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녹색달러’를 제안했다.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 지역주민들 사이에 물품과 서비스를 서로 교환하게 하고 모든 거래내역을 공개했다. 6명의 회원으로 시작, 4년 만에 거래총액 35만달러로 급성장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85년 ‘TOES'(새로운 경제를 위한 국제적 이론가들의 모임)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영국.뉴질랜드.호주 및 유럽 각지에서 수백여 단체가 이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대전 한밭레츠의 ‘두루’를 비롯하여 30여개의 지역화폐가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폐제도는 단순한 교환의 차원을 넘어 상호신뢰와 지역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키워가며 지역 내의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은 개인의 열정과 참여로 사회 혁신이 이뤄진다. 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 동물보호론가, 환경보호론가, 평화운동가 등 라이프스타일에 근거한 사회운동들도 점차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행동하는 개인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개개인의 사랑과 열정, 참여와 행동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바로가기] How to Innovate:The tools for social innovation, Robin Murray, Geoff Mulgan & Julie Caulier-Grice, The Young Foundation

1. 사회혁신의 세계적 동향
2. 사회혁신의 세계적 네트워크 SIX(Social Innovation Exchange)와 만나다.
3. 우리는 더 많은 사회혁신을 원한다.
4. 사회혁신에도 방법이 있다.
5.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은 자선사업일까? 시장에서의 사회혁신(The market economy).
6. 행동하는 개인들은 위대하다(The Household Economy)
7. 사회의 빈틈을 메우는 보이지 않는 손(The Grant Economy)
8.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사회혁신: 사회혁신과 시민의 참여(Public Participation)
9. 사회혁신과 사회적기업(social entrepreneurship)
10. 기술과 사회혁신도 어깨동무: 사회혁신캠프(Social Innovation Camp) 소개와 활동
11. 우리나라의 사회혁신 주소와 희망제작소
그 외 사회혁신과 관련된 단체들 소개와 탐방이 이어질 계획입니다.

*[기획연재]SIX Sense는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다음은 ‘사회의 빈틈을 메우는 보이지 않는 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