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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14>

장흥문화마당은 “삶의 문화와 지역문화를 소중히 여기며 창의적으로 만들어갑니다. 탐진강과 마을공동체의 생태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고 표현합니다. 옛집과 같은 자연과 문화의 행복한 만남을 꿈꿉니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출범한 지역문화단체다. 그들은 지역의 문화인들과 지역주민의 새로운 문화공간인 ‘오래된 숲’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장흥을 찾았다. 장흥으로 가는 길가의 손들이 아름답고, 해질녘의 윤곽은 그림 같았다. 황혼이 물들면서 더욱 아름다워졌다. 큰 도로를 지나 작은 길로 들어서니 개구리 울음소리가 합창이다.

지역주민과 지역문화인들의 문화공간인 한옥 ‘오래된 숲’과 옛 것 그대로의 자연, 점잖으면서도 경제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당당함을 갖춘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흥문화마당의 대표이자 ‘오래된 숲’의 지킴이 문충선 씨, 장흥환경연합의 김규탁ㆍ김권 공동의장, 천승용 사무국장, 어린이도서관건립추진위원회 이창우 위원장, 문충선 씨와 함께 장흥문화마당을 이끌고 있는 박형무 총무, 공공미술단체 ‘You Are Art’의 조연희 회장, 그리고 전교조장흥지부장 김종명 교사 등이다.

그들 모두는 장흥에 사는 생활인인 동시에 장흥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각자 그리고 함께 힘을 모으는 이들이다. 이 시골마을에 이렇게 훌륭한 문제의식과 프로젝트를 가진 단체를 만나는 것은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이들과 새벽 3시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즐겼다.

“장흥은 길게 오래갈 것이니 걱정이 없다. 전국에서 몇 번째 낙후되었고 개발이 되지 않아도 느긋하다.” 환경운동연합 천승용 사무국장은 이런 말도 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이 있어서 유지될 수 있는 자연에 대한 보상금을 농촌에 지불해야 한다.”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왜냐면 장흥에서 나는 값진 휴식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장흥문화마당과 ‘오래된 숲’

장흥문화마당은 2002년에 창립했다. 장흥댐을 지으면서 수몰민이 발생했는데 수몰되기 직전 마을에서 진혼굿을 했다. 죽어가는, 사라지는 생명을 위해, 그리고 사라지는 추억을 그들 스스로 위로하기 위한 행사였다. 그 행사를 치르면서 주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지역문화 활동의 필요성이 부각됐고 그래서 만들어진 게 장흥문화마당이다.

문화마당의 대표를 맡고 있는 문충선 씨는 어렵게 모은 1억 원을 쏟아 붓고 때마침 1억 원의 정부지원도 받으면서 80년 동안 잠든 오래된 고가를 매입했다. 그 고가는 장흥의 문화공간 ‘오래된 숲’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난 2005년 새로운 형태의 문화공간 ‘오래된 숲’은 그렇게 개관했다. 서울에서 어엿한 아파트 한 채도 구하기 어려운 그 돈이 지역에서는 그렇게 값지게 쓰인다.

문충선 씨는 “오래된 숲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전문 예술인이라기 보다는 생활인에 가까워요. 생업을 따로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생계와 상관없이 지역문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존의 예술장르 중심으로 지역 활동을 벌입니다. 재생산이 끊기고 위기에 처해 있는 농촌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실낱같은 문화와 전통을 복원, 회생시키고자 하는 거죠”라고 설명한다.
”?”최근에 문충선 씨와 장흥문화마당이 주목하는 것은 ‘탐진강 마을프로젝트’다. 탐진강 프로젝트는 장흥댐 건설로 물속으로 사라지는 마을을 중심으로 탐진강을 따라 형성된 영암, 장흥, 강진의 지역활동가들이 팀을 이뤄 탐진강과 마을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대장정이다.

고단한 농촌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 댐으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과 삶의 자리를 사진과 영상, 그림으로 담아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 지도를 그리게 된다. 이것들을 오래된 숲의 ‘곳간 전시관’에 전시해 사람들이 자기 삶의 뿌리를 확인하고 삶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계획이다.

“강 주변의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어 급속히 해체되고 있어요 . 2005년부터 탐진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지요. 예컨대 송산마을을 택해 화가는 당산나무를 그리고, 환경운동가가 돌담이나 비석을 촬영, 조사해 이것을 전시하는 형식입니다. 일종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씨의 설명이다. 문화마당은 이와 더불어 지역인을 대상으로 한 장흥문화강좌도 펼치고 있다. 지역문화 담론과 생태, 지역현안에 관한 토론이 ‘오래된 숲’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진다. 모든 곳이 모인다는 서울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 장흥에서 펼쳐지고 있다.

문화시설 위탁관리의 가능성과 위험성

15년째 고향인 장흥에서 문화 활동을 하며 공공미술단체 ‘You Are Art’를 이끌고 있는 조연희 씨는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지역문화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는 “이곳에 다시 돌아왔을 때 처음에는 하다못해 공공기관에 빨간 색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였어요. 꽃을 그려도 빨간색을 못 썼으니 말 다했죠. 그래서 싸워야 하던 시대였는데 지금은 웃으며 이런 얘기할 수 있다는 게 나아졌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적어도 색깔은 괜찮아졌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 관(官)은 관이고, 민(民)은 여전히 목마르다.

장흥문화마당의 박형무 총무는 장흥문화예술회관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흥문화예술회관은 499석이나 되는 대공연장, 40여 평의 그림전시장, 연습장실 등 일반인을 위한 교육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요. 왜 499석인 줄 아세요? 500석이 되면 전문운영자가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하나 모자라는 499석으로 했어요. 그러니 전문운영가가 없어요. 만약에 전문가가 있으면 지역주민을 위한 참여광장이 활발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저 임대해주는 기능이 주예요. 일정한 대여료를 지급해야 하는데 장기간의 리허설이 필요한 경우는 문제가 더욱 크죠.”

박형무 총무는 이어 “이런 시설이 지어지면 활동가들이 자동적으로 관여를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와 마인드가 너무 달라서 다들 가지 않으려 해요. 가봤자 결국 땜질 형태로 운영이 되거든요. 차라리 민간위탁을 통해 자율적인 경영,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라며 묻는다. 그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관과 민의 신뢰가 구축이 되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역문화에 파고들어가 그들 수준에 맞게, 그들이 원하는 형태의 다양한 문화공연을 펼치려면 관보다는 민이 더 제격이다.

하지만 민간위탁도 제대로 맞는 민간위탁이 이뤄져야 한다. 장흥환경운동연합 김권 의장은 “장흥문화예술회관에 한 달 들어가는 돈이 1000만 원이 넘는데 수익창출하고 돈 내라는 방식으로 민간 위탁하는 건 사실상 어렵죠. 이런 식으로는 사실상 민간위탁이 불가능하고 차라리 공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하고 그 비용을 받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탁기관의 자체 준비능력과 역량이다. “스스로 역량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탁을 맡으면 그나마 역량마저 소진될 우려가 크죠. 30억 내지 40억 원을 들여 청소년수련관을 지어 위탁한다고 해요. 복지회관, 유림회관, 문예회관들이 앞서 만들어졌는데 지어놓고 활용을 못하고 있는데 낭비죠. 거기에서 펼쳐지는 공연도 서울에서 내려오는 공연들이 대부분이고 지역에서 창작해서 하는 공연이 많지 않은 형편이에요. 어린이날 지역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직접 공연을 준비하고 펼치는 그런 세심함이 더욱 필요한 것 같아요.” 문충선 씨의 말이다.

삶에 기반한 문화, 그게 진짜다.

문화는 생활에 기반을 둔다. 창의적이지만 그것들이 생활과 완전히 동떨어져 혼자 고고히 존재하는 건 살아 있는 문화가 아니다. 사람의 삶에서 나와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야 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게 진짜 문화다. “지역의 생활세계를 온 몸으로 통과해 온 삶이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게 진짜 지역문화”라는 문충선 씨의 말처럼 말이다.
”?”어린이도서관건립추진위원회 이창우 사무국장은 “옛날 농촌에서 농악이나 풍물은 옛 사람들의 생활에서 기반한 하나의 표현양식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문화라고 봐요. 현재의 문화 활동가들도 그런 것을 발굴하고 발전시켜 지역사회의 원동력을 만들어내야 하죠”라고 덧붙인다.

장흥문화마당도 그러한 것을 꾸준히 관찰하고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생계에 대한 부담을 갖고 문화활동을 해야 하니 실제로 닥친 일들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문충선씨의 답은 여느 지역에서 만난 문화인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라도 뭉쳐서 함께 해보자 하고, 실제로 하고 있기도 하지만 다들 상황이 비슷하니 쉽지만은 않아요. 문화 쪽에서 희망을 이야기하자면 안정적인 인적자원,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야 해요. 지역문화시설들은 위에서 내려온 프로그램을 전달하는 기능만 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생산하고 창조하는 기능, 이를 돕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구요.”
”?”매번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참 답답하다. 너무 당연한 원인과 결과, 이를 왜 관에서는 모르는 걸까. 수백억을 들여 좋은 문화시설을 전국 각지에 짓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대한민국은 전국 각 지역들로 구성된 하나의 퍼즐이다. 각 퍼즐 조각들이 똑같은 색일 때 그 퍼즐은 전혀 의미가 없다. 다른 색과 무늬의 퍼즐조각이 만나 하나가 되어 완벽한 그림을 이룰 때 퍼즐은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고 차별화가 된다.

그래도 당당함을 갖춘 그들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문턱을 넘어서 더 큰 고민의 장으로 나서고 있다. 처음에는 장흥민주단체협의회나 전교조, 농민회 등 이념적, 정치적 활동이 시민사회의 주류를 이뤘다면 이제 그들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으며 문제의식도 다양해졌다.

13개의 문화단체가 생겼고 주부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동아리도 있다. ‘어린이날 차 없는 거리를 만들기’ 등 어린이들도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등장했다.

“장흥은 여러 단체가 있는 각 단체들이 어떤 행사를 할 때마다 거의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일을 합니다. 그러니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좀 더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는 거죠. 미래의 비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곧 지역의 활성화로 연결되겠지 하는 희망도 품고 삽니다.”
”?”이들이 품고 있는 깊은 고민들, 지역에 대한 그들의 마음, 문화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장흥지역을 남다른 지역으로 만들리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 그들과 이야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장흥의 밤은 깊고도 어두웠다. 이른 아침에는 문충선 씨와 함께 탐진강을 한 바퀴 돌았다. 물은 넉넉히 흐르고, 하천은 아직 손대지 않아 자연스런 굴곡을 이루었고 수풀도 그득히 강변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장흥은 천천히 길게 흐르고 있었다.

”?”면담일시 : 2006년 5월 8일 7시
면담장소 : 장흥 문화공간 ‘오래된숲’
면담인사 :
김규탁 장흥환경연합 공동의장. 우리병원 이사장
김 권 장흥환경연합 공동의장. 관산중학교 교사
이창우 군청공무원. 어린이도서관건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
/ 작은 학교 신나는 놀이터(유치원) 사무장
문충선 장흥문화마당 대표. 오래된숲
천승용 장흥환경연합 사무국장
박형무 장흥문화마당 총무.남도문화광장 사무국장
조연희 한국화가.미술학원운영.구매구매(화가모임)회장.
공공미술단체 ‘You Are Art'(나눔누리)회장
김종명 전교조 장흥지부장. 대덕종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