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찾은 생명과 평화

희망제작소는 2009년을 맞아 진보와 보수를 넘어 행동하는 우리시대 공공리더들이 전망을 나누는 강연회를 마련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험난한 길이 예고되고 있는 2009년 신년에 한국사회의 근원적인 성찰과 물음,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는 취지에서 여는 신년강연회입니다. 그 두 번째 시간으로 5년 간의 탁발 순례를 마친 도법 스님의 강연이 진행됐습니다. 오는 22일(목)에는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재벌개혁에 앞장섰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2009년 한국경제 전망과 희망의 조건은’이란 주제 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1월 16일 희망제작소 희망모울에서 도법스님의 신년특별강연이 열렸다. 강연은 ‘길 위에서 찾은 생명과 평화’라는 주제로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스님은 자기정체성을 깨닫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아야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다고 여겼다.

5년, 3만리, 8만명

“화엄경에 보면 선재동자라는 한 젊은 구도자가 53명의 스승을 찾아 온 천하를 순례합니다. 그런데 그 순례를 통해 결국 만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최종적으로 만난 자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결론이 그런 얘기지요”

스님은 화엄경이 자신으로 하여금 순례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하고 실행에 옮기는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짜여진 체계 속에서 움직이기는 했지만 얻어 먹고, 얻어 자고, 얻어 쓰고 순례하는 사람끼리 마주서서 백 번 절하고, 침묵 속에 3~40리 정도 걷고, 또 백 번 절하고, 지역 사람들 만나서 저녁에는 대화하고…”

지난 2004년 시작한 ‘생명평화탁발순례’는 지난 해 12월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그동안 걸어온 거리는 3만리, 그리고 8만여 명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스님은 “선재동자가 53명의 스승을 만나면서 자기 존재에 대해 눈을 뜬 것처럼, 나도 해보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법스님은 순례하면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굉장히 무지하다는 것을 가장 많이 느꼈다며 안타까워했다. 개인적으로 그렇다면 사회적으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무지함의 결과는 모든 것을 함부로 다루게 되는 것, 즉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했다는 말로 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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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는 자기자신을 바로 알아가는 과정

“정체성에 대해 눈을 뜨고 제대로 확립하려면 자기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자기시간을 갖다 보면 있지도 않은 환상들을 쫓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눈뜰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삶이 더욱 더 단촐해지고 홀가분해질 수 있습니다.”

스님은 “자기시간을 갖는 것이 곧 순례”라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문제의 혼란 속에 계속 휘말리는 이유는 결국 성찰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찰의 삶을 살아야만 자기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양심의 소리는 그게 아닌데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소리를 따라 돈의 노예가 되고 돈 앞에 비굴해진다”고 아쉬워했다.

스님은 또한 획일적인 현대사회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너무 끔찍한 상황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며 “모양과 색깔은 다양한 개성과 가치가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배가치는 하나로 획일화되어 다양성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무조건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만을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물코처럼 엮인 관계, 어울림의 삶 살아야

도법스님은 자기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인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따져보면 내 생명이라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며 “내 생명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가치는 사실 없다. 세상을 엎고 뒤집고 다 따져봐도 그 결론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러한 가치에 소홀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생명, 평화를 얘기하면 대부분 고상한 얘기를 한다는 반응이다. 이것은 생명을 관념적, 추상적으로만 다루고 구체적, 사실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스님은 내 생명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내 생명이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답은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을 대표하는 그림 속에 있었다. “제일 밑이 사람이고 오른쪽에 네 발 달린 짐승이 있습니다. 왼편에 날짐승과 물짐승이 있고 머리 위에 나무, 숲, 식물이, 그 다음 해와 달이 위에 있습니다. 본인 생명과 좀 닮았습니까?”

모든 것이 서로의 의지 속에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스님은 “사실적으로 확인해보면 나란 존재는 다른 것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마치 그물의 그물코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돈보다 물, 태양, 산소가 중요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 삶의 방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생명, 인간의 가치를 돈보다 뒷전으로 취급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범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을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도법스님은 “당연히 우리는 자연, 이웃, 상대와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 잘 어울리면 아름답지 않은가. 어울림이 편하고 아름답다”며 어울림의 삶을 답으로 제시했다.

스님은 “자기자신에 대한 무지 또는 왜곡된 인식 때문에 현재와 같은 결과에 빠졌다. 자연을 함부로 취급한 결과 생태적 재앙이 생겼고, 이웃을 함부로 취급한 결과 양극화가 생겼다”고 말하며 어울림이 없는 현대의 도시, 특히 서울의 모습에 큰 회의를 느끼는 듯했다.

[##_1L|1331974684.jpg|width=”400″ height=”260″ alt=”?”|_##]길 위에서 찾은 생명과 평화

스님은 어울리는 삶이란“자연과 어울리고 이웃과 어울리는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이 단순소박한 삶”이라며 이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 지역과 농촌임을 역설했다. 스님이 귀농운동이나 지역농촌공동체의 일을 맡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농촌에 교육과 의료 등 사회안전망에 대한 뒷받침이 부족한 것에 큰 아쉬움을 보였다.

도법스님은 순례를 통해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돈으로만 해결하겠다는 비인간적 사고방식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불신을 낳고 있다”며 “경제만이 희망이고 살 길이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스님은 10가구 정도가 모여 살고 있는 공동체 마을을 예로 들었다. “그곳에 70세 정도 되신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함께 하는 이웃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잘 살고 있다. 좋고, 고맙고, 사는 게 편하다’고 말하더군요”

“정말로 희망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희망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자기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인식을 확립해야 합니다. 잘못 끼워진 단추에 대한 자각 그리고 제대로 끼워서 가려고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정체성에 맞게 자연, 이웃,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고마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그런 삶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내고, 이럴 때 우리는 생명, 인간으로서 희망적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강연 이후 많은 참가자가 진솔한 자신의 경험의 이야기를 비롯해 국가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순례하면서 인상적인 에피소드에 어떤 것이 있었냐는 질문에 스님은 “다른 것은 없고 ‘사람에 대한 신뢰, 애정’이더라구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이 얼마나 비경제적인지 모른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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