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2009년 한국사회, 희망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희망제작소는 우리사회 희망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이런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발랄하고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자본경쟁에 지친 우리의 사고를 한 뼘 더 넓혀줄 수 있는 사람들, 의미 있는 실험을 계속하는 사람들. 그 연속 인터뷰의 첫 타자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입니다. 또 한번 새로운 미디어를 실험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김 총수를 4월 6일, 생명이 본격적으로 움트기 시작하는 봄날, 인사동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두 번에 나누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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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관광객과 직장인으로 북적대는 인사동 입구, 점심시간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그는, 인사를 건네자 멀뚱 쳐다봤다. ‘내 앞에 서 있는 얘는 뭔가’, 자신을 둘러싼 현실세계를 파악하는 듯 동공은 고정됐고, 아무말 없이 2~3초가 흘렀다. “식사하러 가시죠~”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섞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은 미사일을 쏘지만 우리는 나무를 심는다, 고 말한 건 자연보호, 나무심기 뭐 딱 그런 수준인 거다. 흐흐”
초면이지만 스스럼 없이 얘기를 시작하면서 서로의 상태와 신상에 대한 약간씩의 정보를 주고 받았다. 아, 그냥 속사포일 줄 알았는데, 상대에게 템포를 맞춰준다. 딴지 총수 김어준씨는 생각만큼 거침없이 ‘동물적’이고, 생각보다는 훨씬 ‘공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건방’진 이미지를 추구하기에 공손이라는 체제순응적인 듯한 인상을 주는 표현은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밤을 새우고 나왔으면서도 성의있게 인터뷰에 응해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일문일답을 옮겨본다.

#1. 진화생물학과 이명박

정송정아(이하 정송) : 다들 어렵고 힘들 때여서, 희망은 어떻게 가능할까,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희망으로 사나 싶어서 만나자 했다. 희망은 어떻게 가능한가. 좀 질문이 어렵나.
김어준(이하 김) : 하하하. 어렵다. 알면 다 했겠지….

정송 : 사람들이 그런다. 요새 사는 게 영 재미가 없다고. 요새 무슨 재미로 사나.
: 사적인 관심사는 우선, 최근 1~2년간 꽂힌 분야가 동물이야기다. 어느 순간부터 내 속에 동물의 일부가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동물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요새는 우리 친척들은 어떻게 사나(웃음) 궁금해서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갔다. 근데 침팬지 연구한 제인 구달, 고릴라 연구한 다이안 포시, 오랑우탄 연구한 비루테 갈디카스 등 그 분야를 연구해 결정적인 사실을 밝혀낸 사람들이 다 여자다. 유인원이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지 결정적인 증거를 밝혀냈다. 도구를 사용한다든가, 전쟁을 한다든가, 영아살해를 한다든가.

정송 : 그거랑 무슨 상관성이 있나?
: 있지. 남자들은 통제된 환경에서 하는 실험데이터를 중시했다. 통제하고 실험하는 거지. 그래서 여자들을 비난했다. 동물 안에 들어가서 사는 건, 과학적 객관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동물애호가에 불과한 거라고. 그런데 실제로 결과를 낸 건 여자들이다. 여자들이 남자들과 달랐던 건, 동물들한테 감정이입하고 통제를 그만둔 것이다. 동물이 자기를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렸다. 여자여서 가능했던 것이다.

정송 : 그래서 종국의 관심은 그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건가.
: 아니. 그런 생각하다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명박을 보다보면 정치는 여자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웃음). 결국 이명박이 수컷처럼 하는 거거든. 통제하고, 국민들한테 감정이입할 줄 모르고. 사람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사회생물학인데, 이게 참 흥미롭다.

”?”#2. 모바일딴지 왜 해? 재밌잖아!

정송 : 그 연구 말고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하는 게 있나?
: <딴지일보>다. 사실, 딴지일보 역할은 끝난 줄 알았다. 시대가 바뀌었고, 설혹 보수정권이 된다 하더라도, 전두환 박정희 시절로 돌아가겠냐는 판단도 있긴 있었다. 근데 아니더라고. 그렇게 돌아갈 수도 있더라고(웃음). 역할이 끝난 게 아니라면 이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까. 하다가 모바일 딴지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있다. 목표로는 7~8월 사이 런칭하는 거다. 모바일 베이스 미디어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정송 : 다른 인터뷰를 보니 실시간 동영상 기사가 올라오는 것을 구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참여, 공유, 개방정신, 소위 웹2.0 정신으로 아주 많은 양의 실시간 기사를 받는다고 할 때, 콘텐츠 질을 어떻게 유지할 건가. 위키 방식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오류가 있어도 집단지성으로 금방 수정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표본집단이 굉장히 크거나 초기에 센세이션을 일으켜 많이 모일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 그런 마케팅 단계가 필요하겠지. 근데 미디어가 탄생, 성장하는 과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게 모바일이라 더 어렵다고 생각지 않는다. 딴지일보는 운이 좋았다. 시대에 맞아 떨어졌고, 당시의 요구와 욕망에 맞아떨어졌다. 모바일도 시대적, 정치적, 기술적 요구를 갖추고 있다. 인터넷에 있던 걸 모바일로 볼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에 특화된, 여기서만 가능한 미디어를 만들겠다는 거다. 유튜브는 미디어가 아니라 동영상 DB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 만들어낸 뉴스다. 뉴스의 정의도 좀 달라질 거다.

정송 : 좀더 설명이 필요하다.
: 훈련된, 수준 있는 콘텐츠가 있을까 이런 우려에 대해서는 예를 들면, 개똥녀 같은 게 과거 뉴스에 관점에서는 뉴스가 아니다. 그냥 30초짜리 동영상이다. 지하철에서 똥치우지 않고 여자가 내린 게 전부다. 9시 뉴스에 실릴 수가 없지.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9시 뉴스를 능가하는 반응을 얻어 실제 뉴스처럼 유통됐다. 그러니까 뉴스의 속성이 완전히 다른 거다. 그런 게 모이면 뉴스의 롱테일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런 걸 만들어볼 예정이다. 안 되면 할 수 없고(웃음).

정송 : 이번에 오프라인으로 호외 낸 걸 봤다. 모바일 딴지를 상상해보자면, 발설하고 배설하고 풍자하는 컨셉이 있었는데 모바일에서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 아, 우리만의 컨셉을 어떻게 만들 거냐고? 우리가 작은 뉴스를 모아서 9시 뉴스를 만들 거다. 개별의 뉴스는 그 뉴스대로 지역별, 시간대별로 있겠지만, 우리가 그걸 모아서 오늘의 뉴스를 만들 거다. 하루 한 번이든, 오전, 오후든. 우리 뉴스를 할 거다. 그리고 텍스트 딴지일보도 유지될 것이다.

정송 : 콘텐츠 생산하는 미디어는 수익성 면에서는 늘 고민이지 않나.
: 그게 텍스트 베이스 미디어에서는 어려웠다. 특히 우리는…. 오마이뉴스는 점잖지 않나. 우리는 욕도 막 하거든. 광고를 안 줘(웃음). 근데 유튜브나 아프리카에서 이미 입증한 수익모델이 있다. 때로는 마침 사건 현장에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떤 기자보다 사고현장에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우연히 거기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된다면 엄청난 양의 동영상이 쌓일 텐데, 그 영상물을 판매할 루트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발한 기술이 있을 것이고 그걸 팔아먹을 생각도 있다.

정송 : 끊임없이 미디어를 시도하는 이유는 뭔가?
: 재밌잖아!(웃음). 사실 최근 몇 년은 별로 재미없었다. 근데 이명박이 나와서 다시 재밌어졌다(웃음).
정송 : 다행이다.
: 씨바, 하고 싶은 얘기가 막 생긴다(웃음).

#3. 여자들이 즐길 수 있는 <딴지일보>를 상상해본다

정송 : 딴지일보의 표현이 마초적이라는 비판이 많았고, 디씨인사이드나 딴지일보 특유의 정서가 있는데, 전복적 의도로 쓰이는 표현 중 여성을 인용하는 언사들이 여성들을 밀어낸다. 여성 수용적이지 못한 언어에 대한 고민은 없는가.
: 여성단체들이 포르노에 대해 기겁한다. 남성의 판타지를 영상으로 여성을 상품화. 대상화한 것이고. 다 맞는 얘기다. 그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애초에 영국에서 처음 검열이란 것이 나올 때 논리랑 비슷하다. 검열이란 건, 우리는 괜찮은데 국민들이 이걸 보면 충격을 받고. 그걸 보고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거다. 근데 포르노가 남성중심적인 것은 맞는데, 그럼 여성중심의 포르노를 만들어서 여성들도 즐기자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정송 : 그래서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만드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까뜨린느 브레야 같은 영화감독 등. 사실, 그 잣대를 집행하는 자들이 지배자들이고, 그 잣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반정부 단체를 억압하기 위해 더 잘 활용된다는 건 맞는 얘기다. 타인의 판단력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현실에서 입증되는 효과들이 있다. 광고의 메커니즘도 반복해서 각인시킴으로써 물건을 파는 것이고, 범죄도 그렇다.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전이다’ 라는 표어가 100% 확률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입증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 권력의 문제인데, 여성이 불리한 것이 맞다. 수천 년간 가부장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들 입장에서 방어적으로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성에 있어서. 남자의 피해는 뺨 맞는 정도라면, 여성 임신. 1년 이상 연애시장에서 퇴출되고, 아이양육까지 10년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상대를 조심스럽게 간을 보고 검증하려고 노력하고 방어적으로 나오는 건 당연하다. 힘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거지. 당연하고 이해는 가는데, 적어도 담론의 영역에서는 포르노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여성포르노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게 옳은 게 아니냐 이거다. 현실적 한계가 이러하니 포르노를 다 없애자? 아니면 포르노를 순화시키자? 그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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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 : 딴지와 관련해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공적인 영역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매체가 한 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인데, 패러디를 하더라도 여성친화적인 언어를 만들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 딴지의 기자들이 대부분 남자들이라서 그런 것도 있다(웃음). 그 사람들의 생물학적 한계와, 남성으로서의 한계를 다 극복하라고 요구할 수 없는 일인 거다. 이거는 여성 총수가 나와서 해결해야 할 문제 아닌가?(웃음) 딴지일보에게 모든 걸 요구해선 안 된다는 거지. 딴지일보는 그냥 일개 작은 매체, 자기역할, 얘네가 완전무결, 보편타당, 공평무사하게 중립적이고 진공과 같은 상태에서 정의롭길 기대하면 안된단 이야기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 어딨어, 세상에? 그게 필요하면 지가 그걸 만들어야 되는 거야.

정송 : 그럼, 딴지는 해당사항이 없고, 하지만 대통령은 보편타당한 의무를 행할 의무가 있는 건가?
: 아니다. 딴지에게 그런 걸 요구하는 건 기대가 있기 때문. 그 기대는 고마워. 근데 기대가 고맙다고 해서, 부당한 걸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거야. 예전에 욕먹던 거, 욕 너무 많고 가볍고 천박하고 대안이 없고 등등등. x나게 많이 들었어. 근데, 그건 마치 양반전 보고 “넌 왜 그렇게 진지하지 않냐”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역할이 다른 거지. 딴지일보는 왜 동학혁명과 같이 실천력이 없냐고 하면 잘못된 거다. 우리는 가볍게 팔랑팔랑거리고, 모두가 모든 일에 관심 가질 수 없는 세상에서, 적어도 이 정도는 관심을 기울여줘야 돼, 하고 광대짓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딴지일보의 역할이었다. 당신이 아쉬우면 당신이 그거 해(웃음).

#4. 시민단체, ‘죄의식 마케팅’을 넘어

정송 : 희망제작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에 출간한 <건투를 빈다>를 보면, 사람들이 ‘꿈’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변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희망도 굉장히 추상적인 단어다. 희망제작소가 생긴 지 이제 3년이 되었다.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 일부에 참여하거나 구경한 적 밖에 없어서, 일반론밖에 말할 수 없다. 희망제작소와 이전의 시민단체는 다르다. 시민단체의 속성을 가졌을지언정 기본은 정책을 팔아먹는 기업이다. 시민단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죄의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죄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건 종교의 영역이다. 종교는 그런 마케팅을 해도 되는 게, 보상이 크잖아. 항구적인 영혼의 구원.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믿는 사람에게. 그런데 시민단체나 운동이 제시하는 세상으로 인한 보상은 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내가 사는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논리에 동의해도. 그런 가운데서 죄의식만 요구하는 부분이 너무 크니까 다가가기 싫은 거다. 그냥 나 좀 죄짓더라도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기부하면 되지, 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희망제작소가 실제 그렇게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으나(웃음), 애초에 기획의 원리와 정신은 그게 아니었다는 거, 긍정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판매하고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정신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게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큰 점수를 줬다. 3년 동안 잘 했는지 안 했는지 난 알 바 아니지(웃음).

정송 : 시민사회가 그런 면에서 고민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 월드컵 때 축구붐이 금방 꺼진 거랑 비슷한 거다. 월드컵 끝나고 즉시 일어난 운동이 서포터즈 되기다. 축구가 큰 즐거움을 줬는데, 너는 이제 운동장 가서 보상해줘야 한다는 거였다. 축구장에 안 가면 죄인이 되는 분위기지. 그래서 축구붐이 금방 죽었잖아. 정작 해야 할 일은 카메라 수를 늘리는 거였다. 근육질의 남자들이 땀 뻘뻘 흘리면서 엉키고 자빠지니까, 아줌마들이 뿅 가거든. 섹시해서. 욕망이 자극되는 거지. 죄책감 마케팅의 한계는 월드컵처럼 거대한 에너지도 단시간 내에 죽일 만큼 나쁜 거다, 한 마디로(웃음).

정송 : 왜 그랬다고 보나?
: 그게 우리한테 익숙한 거다. 아주, 오래전부터. 개인이 탄생한 근대를 겪지 못하다보니까. 자율적 개인에 대한 개념이 없고 훈육, 계몽, 다그치는 것밖에 지금도 없잖나? 그 방법밖에 모르니까 상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해서 죄인을 만드는 거거든. 왜냐? 간단하니까. 즉각적이고. 그런 면들이 시민단체를 보면서 느끼는 답답함과 불편함의 정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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