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로 희망을 나눕니다

“고기를 먼저 볶아야 하나요? 김치는 나중에 볶나요?”

꽃무늬 앞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원순씨가 동분서주합니다. 이를 쳐다보는 참가자들은 ‘도와야하나, 지켜보아야하나’ 갈등하며 뭔가 도우려고 소매를 접어봅니다. 오늘은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을 위한 ‘김치찌개 DAY’입니다. 일찍 도착한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순씨는 큰 들통에 김치와 고기를 익숙하게 볶고 국물을 붓습니다.

“이제 한참 끓으면 되죠? 간이 맞을까? 맛있어야 하는데…”

자원 활동가 강숙희씨가 만든 들깨 탕과 낙지볶음 내음이 식당 안에 고소하게 퍼집니다. 원순씨가 직접 만든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고이는군요. 원순씨가 김치찌개와 씨름하는 동안 회원재정팀 한순웅 팀장이 참가자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안내합니다. 3층에 있는 각 부서와 4층 희망모울을 소개하고 복도에 걸린 짝꿍명함도 설명합니다. 한 구석에 “원순씨, 뭥미?”하는 사진이 눈길을 끄는군요. 자세히 보니 ‘원고 대한민국, 피고 박원순’ 하고 써 있네요. 계단 벽에는 희망릴레이 사진과 사회창안물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어디서나 사람을 중시 여겨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시키고자하는 연구 결과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연구한 보고서, 일반 시민들과 인터뷰해서 엮은 책, 지역 살리기를 주제로 다룬 책, 희망을 살리는 사람들 시리즈, 내셔널한 어젠더를 다루고 있는 책들이죠. 저희 출판물은 실제로 현장에서 부딪치며 연구한 책자들입니다. 한 예로, 골목 시리즈는 사라져가는 골목에 의미를 두고 기록을 남기고 있죠. 각 사업 파트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유시주 소장이 연구보고물 100여 권을 소상히 설명하십니다. 어디를 가도 구석구석까지 예쁜 색으로 단장하고 책장도 초록색이나 주황색으로 맞이하니 방문객의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군요. 겉에서는 우중충한 사무실 건물이 Social Designer답게 변신한 것에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김치찌개는 바닥을 드러내고

이제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식탁 가운데에 아름다운 꽃케잌이 놓여있네요. 환경재단 이현진 팀장이 원순씨 힘내라고 밤새 만들었습니다. 김치찌개가 놓이고 들깨탕, 낙지볶음이 놓였습니다. 원순씨가 직접 그릇마다 밥을 퍼서 나르시네요. 아까 사무실 투어때 원순씨 사무실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대표 방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180도 다르네요. 좁고 소박해서 놀랐어요”고 말하던 태원준(국민일보기자)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밥은 못 드시고 가셨나 봅니다. 내내 후회하실 텐데…

원순씨는 연신 바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는군요.
“사실 저는 주방 보조였습니다. 여기 강선생님이 만드셨어요. 어! 거기 조심하세요. 부딪칩니다. 찌개 더 드릴까요?”와 연신 “맛있나요?”라며 참가자들의 반응을 살피십니다. 반응이 없으니 불안하신가 봅니다. ‘음~, 이 맛이야~. 김치찌개맛이 훌륭한데~!’ 모두들 음미하며 먹느라 반응이 없는 것을 채 깨닫지 못하신 거죠.

때맞추어 모녀지간인 두 분이 도착하셨습니다. 어머님이 성균관대에서 한국예절과 음식, 관혼상제를 가르치신답니다.
“아이고, 음식 전문가가 오셨네요” 하며 원순씨가 쑥쓰러워하여 웃음이 번졌습니다.
“이 공간은 한 건축인테리어회사에서 만들어줬어요. 주방과 식당이 있으니 사람들끼리 더 친근해지고요. 또 저희들이 식당이 있다는 걸 알고 식재료를 보내주셔요. 저번에도 회원분 일산 농장에서 잔뜩 가져왔어요. 감자, 고구마, 배추…. 배추는 얼어있었는데 와서 해 먹으니 맛있더라고요.”
원순씨가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탈하게 나누자 처음 만난 분위기답지 않게 다들 밥도 더 먹고 김치찌개도 더 먹었습니다. 호기심 반, 우려 반으로 김치찌개 끓이시는 것을 쳐다보던 처음과 달리 국물까지 바닥을 드러냅니다. 연구원님들이 맨 밥으로 점심을 드시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자신의 꿈을 향한 자료를 모아

점심을 맛있게 먹고 모두들 원순씨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좁은 방에 빽빽이 들어 찬 책이며 자료집과 더불어 서로 포개어 섰습니다. “사실 우리 집에도 이런 자료가 수천 개 있어요. 37살에 처음 외국에 갔는데요. 영국에 가보니 배울 점이 너무 많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단어가 뭘까요. ‘Check Enclosed’에요. 여기 이 기사에 나와 있어요. 이것이 아름다운 재단 기초가 되었고요. 90년, 91년 그때 자료를 다 모아놓았어요.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을 향한 자료를 모으는 게 중요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꿈이 필요해요. 여기 맨하턴 도시 자료, 런던 템즈 강변자료를 보면 주민이 주인이 되어 창고를 주민센터로 만든다던가 건물을 개방하면서 세미나를 연다던가 다 주민이 중심이 되어있어요. 사람이 중심이죠. 이것은 독일의 어느 고등학교인데요. 복도에 기성 작가들 그림이 쫙 걸려 있더라고요. 꼭 인사동 화랑에서만 할 필요가 있나요? 우리 사회가 굴뚝 산업으로 이만큼 왔으면 이제는 창의적 생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야해요.”

원순씨가 책장에서 파일을 하나씩 꺼내들며 ‘할 일이 무지 많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보내오는데요. 제 아이디어도 못하고 있어요. 무슨 일을 하려면 초기 자본이 필요하거든요. 일본자본은 ‘은퇴 후 마을 만들기’에 출자하고 싶어 해요. 사회적기업을 다루는 일본 출판사도 있고요. 일본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어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타가 일본에 진출해있어 다행이지요.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설치미술하는 분이 뉴욕에서 보내주었어요. 여기는 공정무역 히말라야커피 안내고요.”

원순씨 방에는 이야깃거리가 끝이 없습니다. 원순씨는 일이 많아 보통 밤 9시 10시되어야 여기에 출근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정리할 시간이 없어 이렇게 늘어놓게 되었다네요. 한쪽 함을 여니 침구와 침낭이 나옵니다. 여름에는 여기에서 문 열어놓고 북한산 바람을 쐬며 침낭깔고 주무신다는군요.

“지난 번 한 대학에 가서 선거공약 출판물을 보았어요. 사회적인 고민은 흔적도 없고 개인이 잘 먹고 잘 살 이야기만 해요. 여기 이 자료집은 전 세계 지하철을 다니며 찍은 사진이에요. 배차시간, 막차시간, 출구번호를 알려주는 시스템이 역 구내에 잘 정비되어 있어 지하철 공사에 우리도 이렇게 하자고 제안했어요.”

‘44번’ 번호

원순씨 방 문 앞에 ‘1004클럽’ 안내가 붙어있습니다. 어떤 분이 여행비를 아껴서 천만 원을 보내주어 일상비로 쓰지 않고 1004명을 목표로 ‘천사클럽’을 만들었다는군요. ‘천사클럽’은 초등학생이 저금통에 모아서 가져오고, 블러거가 독자들에게 콩기부를 받아 가져오고 매장에다 모금함을 놓고 모으고 있답니다. 원순씨도 아무도 원치 않을 ‘44번’ 번호를 선택하여 열심히 모금중이십니다. 옆 방 회의실에 모여 앉았습니다. 먼저 ‘원순씨의 하루’ 영상을 본 뒤, 각자 소개를 하고 여기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말하였지요.

제자리만의 모금통을 만들어야겠어요

“희망제작소에 사회적기업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아름다운재단 ‘최저 생계비로 살기’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제가 가진 것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해서 집안일하면서도 한국문화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한국음식과 관혼상제에 관해 전시회를 하면서 이것을 외국에 알리고 싶은데 아이디어가 부족해요. 오늘 와서 보니 제가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을 거 같고 젊은 분들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학생들에게 교육학을 가르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점점 사치가 심해지고 개인 이기적으로 변해 안타깝습니다.
오늘 젊은 분들이 참석한 것을 보니 희망이 보입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이곳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헤어샵 대표이신 원진희씨는 어머니 김소애씨와 함께 참여하여 어떻게 살고 싶은지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미용사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희망제작소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고객들과 환경이슈도 이야기하고 직원들과 짝꿍명함도 만들고 천사 모금함을 만들어 활동할 계획입니다.”

원순씨가 ‘굿뉴스’ 이야기를 꺼냅니다. “‘굿뉴스’에서 식당 하나를 운영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요. 공간 하나가 얼마나 큰일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보통의 식당을 그 지역사회를 바꾸는 공간으로 만드는 거예요.” 오늘 ?헤어디자이너 네 분이 참가하셨습니다. 희망제작소와 뷰티살롱은 전혀 관계가 없는 듯하지만, 그 공간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사회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짝꿍명함의 회원이어요. 고객님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갑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제 자리만의 모금통을 만들어 기여를 해야겠어요.” 젊은 헤어디자이너 분들은 원순씨를 직접 대하니 양심이 뛰고 이기적으로 산 것을 반성한다고 하시네요. 젊음이 더 한층 빛을 발하여 격려 박수를 받았습니다. 미용실 큰언니 분은 젊은 미용사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하는지 고민했는데 여기 와서 ‘이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으셨다는군요. “‘혼내는 중’이 영혼을 불러일으키는 중이 아니냐, 트위터로 원순씨와 교신을 하고 있다”며 이야기가 갈수록 심오해지고 재미있어집니다. 김치찌개를 매개로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하니 서로 아이디어도 교환하고 고민도 나누며 돌아가 할 일도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아갑니다.

자유롭게 질의 응답하는 중에 “ ‘소셜디자이너’란 직함을 어떻게 만드셨나”는 질문에 원순씨의 아이디어가 쏟아집니다. “외국에 가서 좋은 걸 보면 우리 사회에 가져가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마침 사회를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강연 부탁이 많이 들어와서 제가 그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이걸 계기로 디자인 진흥원에서 홍보대사로 임명하였어요. 디자인이 옷, 물건, 상품만이 아니라, 사회도 디자인할 수 있다는 거죠. 핀란드에서 헌 자전거포가 문을 열어 실업자들에게 자전거 고치는 기술을 가르쳤어요. 유럽에선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니 자연히 일자리가 생겼지요. 수익의 일정부분은 기증하고요. 기업 만들고 일자리 창출하고 자원고갈을 해소하는 … 바로 사회적기업이에요. 아름다운가게는 전형적인 사회적기업이지요. 조금만 창의적으로 생각하면 사방에 아이템이 널려있습니다. 마을에서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면 살아있는 박물관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은퇴하면 쓸모없다는 의식이 바뀌어야죠. 시니어 세대와 주니어 세대가 결합이 아주 중요해요”

회의실 안이 열기로 후끈거립니다. 낯선 사람들이 두세 시간 전에 만나 이렇게 뜨겁게 토론이 이루어지다니요. 오늘의 소중한 자리에 또 하나의 선물이 보태어집니다. 원순씨가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책에 직접 서명을 하십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365인의 희망을 담은 사진가 김용호의 포토다큐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희망씨~ HOPE>도 받아들었습니다. 빈손으로 덥석 방문하여 정성으로 한가득 채우고 나갑니다. 오늘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희망이 스며들어 사람들의 주름살이 펴지고 웃음이 넘나들기를 바랍니다.

글_ 민들레사업단 정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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