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의 일본 리포트 – 다섯 번째 이야기

편집자 주 / 김해창 희망제작소 부소장은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 주최로 아시아 7개국 7인의 공공리더를 초청하는 ‘2008 아시아 리더십 펠로우 프로그램’의 한국인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그는 앞으로 9월부터 약 2개월 동안 ‘다양성 속의 일치’를 주제로 일본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일본리포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구 및 현장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도쿄도 세타가야구 우메오카에 있는 ‘극단 이와토’에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연극 공연이 있어 서둘러 갔다. ‘(유)린코군(燐光群)’이 운영하는 이 극단에선 지난 8월30일부터 9월 9일까지 ‘서던 아일랜드(Southern Islands)’라는 연극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날이 마지막 공연이었다. 이 작품은 린코군이 필리핀국제교류프로그램으로 기획한 것으로 이날 공연은 이미 국제문화회관 재단 측으로부터 일본에 오기 전에 펠로우 전원이 관람할 수 있도록 예약을 해놓았던 것이다.

‘서던 아일랜드’는 필리핀과 오키나와의 섬을 지칭하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이란 관점을 바탕에 깔고 미군기지가 이들 섬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 그리고 군사적 유산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세 작가의 작품을 엮어서 하나의 연극으로


특이한 것은 ‘서던 아일랜드’라는 작품은 실제로는 ‘호장근(虎杖根: Baston ng Tigre)’, ‘눈을 본 적이 없어(Never seen the Snow)’, ‘코레기도(Corregidor)’ 라고 하는 3개의 각각 다른 사람의 작품을 동시에 하나의 작품으로 한 무대에 올린 것이었다. 이번 일본 연수의 스태프인 이케다 준코 씨로부터 사전에 영어로 된 대본을 한 부씩 받았다. 그런데 대본 중 상당 부분이 타갈로그어로 돼 있어 겉보기엔 영어 같았지만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말이 많았다.



[##_1C|1122045510.jpg|width=”369″ height=”492″ alt=”?”|팸플릿으로 만나는 연극 서던 아일랜드_##]’호장근’이란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약초 이름으로 주로 이뇨제나 완화제로 쓰인다고 한다. 이 ‘호장근’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다케우치 이치로 감독은 문화관련 기관에 있으면서 필리핀에 산 적이 있고 ‘사람은 말이지 얼굴이 90%야’라는 밀리언셀러를 쓴 저자로 유명하다고 한다. ‘호장근’은 오키나와와 필리핀의 수빅 해군기지를 잇는 이야기로 가족 찾기, 사랑, 경제 그리고 차별 등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놓은 것이라고 팸플릿에 간략히 소개가 돼 있었다.

‘코레기도’는 야마모토 기요카즈라는 작가 겸 연출가가 쓴 작품인데 이 연극은 한 때 치열한 격전지였다가 지금은 관광지로 변한 마닐라만 입구에 떠있는 유명한 코레기도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꾸몄다고 한다.

그리고 ‘눈을 본 적이 없어’를 쓴 작가 사카테 요지(坂手洋二)씨는 수년간 ‘바다의 비등점’ ‘오키나와 낙농농원의 귀한 마님’ ‘원폭 농부 미나’ 등의 작품을 통해 오키나와와 관련된 희곡을 많이 써왔다고 한다. ‘눈을 본 적이 없어’는 그의 최신작인데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환락가에서 일하는 필리핀여성의 인물 설정을 통해 오키나와와 필리핀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보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연출은 ‘코레기도’를 쓴 야마모토 키요카즈씨가 맡았다.

리코군의 필리핀 국제교류프로그램은 지난 수년간 PBS(Phillipine Bedtime Stories)와 함께 해왔는데 2007년 2월 마닐라공연 후에 현지 신문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필리핀인과 일본인이 상호주의 관점에서 예술적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 극단은 또한 필리핀에서 좋은 배우를 많이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티켓을 보니 입장료는 어른은 예매할 경우 3,300엔, 당일 구입 3,600엔. 2인 동시구매는 6,000엔. 대학생 3,000엔. 고교생 이하는 2,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우리는 공짜. 국제문화회관측에서 제공했다.


‘마닐라만과 오키나와 주변 기지촌을 무대로


극단 이와토는 우리나라로 치면 소극장이었는데 30평정도 되는 콘크리트 공사장 같은 공간 가운데에 무대가 설치돼 있었다.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우선 ‘호장근’이 시작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정신이 쏠려 있던 시기 방송마다 온통 축구얘기뿐이다. 이때 오키나와 나하시의 한 신문 기자가 고교 신문 동아리 여자 후배와 만나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폐쇄로 앞으로 실업문제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며 이를 어떻게 기사화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한편 한 미군기지의 술집에는 누가 초청했는지는 모르지만 10년 전 미군기지에 있었던 사람들이 초청장을 받고 와서 서로 옛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에이미라는 젊은 여자와 메리사라는 여자는 필리핀에서 오키나와까지 와서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다. 술집 장면은 모두 타갈로그어로 진행됐는데 소극장 벽면에 일본어로 자막을 비춰주었다. 그나마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데 점심을 너무 잘 먹었는지 어제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연극 초반엔 잠이 막 내리쏟아져 참느라고 혼났다. 그리고 ‘일본 리포트’에 그래도 공연 사진 한두 장은 보내야 하지 않겠나 싶어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고 공연장면을 2장정도 찍었다. 그런데 1시간 정도 뒤 잠시 쉬는 틈이 있었는데 화장실 가는 길에 만난 제작자가 나에게 공연 중에는 어떤 형식이든 촬영을 해선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내 욕심이 과해서 그랬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명함을 주고받고 보니 그는 후루모토 미치히로라고 린코군의 제작자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연극이 좀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코레기도’라는 작품이다. 코레기도는 마닐라만에 떠있는 작은 섬이다. 1836년 스페인이 이 섬을 군사요새화 했고 1922년 미군이 다시 이곳에 지하요새 ‘마린타 터널’을 건설했다. 1942년 미군 웨인라이트 중장이 일본군 혼마 중장이 이끈 일본군에 항복했고 케손 필리핀 대통령과 맥아더 미 최고사령관조차 최후엔 이 섬을 탈출할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지금은 매일 마닐라만에서 관광선이 다니는 관광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_1C|1155685088.jpg|width=”400″ height=”300″ alt=”?”|서덜 아일랜드 중 한 장면 오른쪽은 멜리사역을 한 메이 바키린, 왼쪽이 에이미 역을 한 마이레스 카나피_##]
무대는 1940년대의 미군과 일본군간의 치열한 전투 장면을 보여 준다. 미란타 터널에서 벌어진 과거 전투 장면이 나오는 한편, 이 터널에서 지금 관광을 하고 있는 일본인의 모습이 포개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전개된다. 그리고는 이 과정에 미군과 일본군이 여성을 강간하고 죽이는 잔혹한 장면도 나온다.

마지막엔 이러한 것이 마치 ‘트루먼 쇼’처럼 하나의 기획된 관광 상품으로 소개되는 장면으로 끝났다. 무대에 사회자가 나와 이러한 전투 자체를 하나의 볼거리로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오늘 터널 관광에 오신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면서 전 출연진이 다시 무대로 다 나오면서 끝을 맺는다.

‘코레기도’라는 작품 중간에 ‘눈을 본 적이 없어’라는 작품이 나온다. ‘눈을 본 적이 없어’는 필리핀에서 건너 와 오키나와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필리핀에서 자기를 찾아 온 여동생을 만나는 얘기로 시작한다. 처음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여동생을 냉정히 대하다가 차츰 여동생과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눈다. 끝에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그동안의 회한을 털어놓고 눈물로 화해한다.

‘서던 아일랜드’는 오키나와와 필리핀 기지촌 이야기였지만 우리나라의 동두천이자 매향리이기도 했다. 연극 중간에 필리핀의 대나무춤을 추는 장면도 나오고, 나중에 필리핀에서 미군과 일본군 간의 치열한 전투 장면에서는 강간장면이 나왔을 땐 갑자기 종군위안부 문제가 뇌리를 스쳤다. 마지막엔 그래도 기지촌에 있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삶을 부둥켜안고 울고 웃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었다. 아픈 과거까지도 함께 부둥켜안으면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불평등 조약으로 시작된 아시아 미군기지의 역사


이 연극의 주 무대인 오키나와섬은 현재 주일미군기지의 75% 정도가 자리 잡고 있는 ‘군사기지의 섬’이기도 하다. 나중에 자료를 보니 오키나와의 역사는 정말 기구하다.
1571년 류큐왕국이 번성하고 있었는데 스페인군이 마닐라를 점령해 성벽도시를 구축, 필리핀의 통치거점으로 삼는다. 1871년 류큐왕국이 망하고 1879년 일본의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된다. 1898년 필리핀에서 미국과 스페인 전쟁 결과 그 해 12월에 미국 지배하에 들어간다.

1941년 일본군 진주만을 공격해 태평양전쟁이 일어난다. 1942년 일본군이 마닐라를 점령해 필리핀 케손대통령과 미국 극동군 최고사령관 맥아더가 코레기도섬을 탈출한다. 1944년 일본군 야마시타 대장과 미군 맥아더 대장이 레이테섬에서 전투를 해 1945년 오키나와전에서 전 섬이 미군 점령 하에 들어간다. 필리핀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 사령관 야마시타 대장은 결국 바기오에서 미군에 항복한다.

1946년 미군기지 설치를 조건으로 필리핀공화국이 독립을 한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1951년 오키나와는 미군군사기지로 접수돼 미일안전보장조약에 의해 미국신탁통치에 들어가 한국의 파병기지화 된다. 그 뒤 1972년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로 복귀한다.

또 하나의 무대인 필리핀의 클라크기지는 루손섬 북서부에 위치한 아시아 최대의 미공군기지로 75년 베트남전쟁 때는 전진기지였다. 그런데 1991년 피나투보화산 분화로 활주로에 큰 타격을 입어 철수했다. 그 후 화학물질에 의한 환경오염이 눈에 띄게 뚜렷해 피나투보 피난센터의 지하수오염이나 지역주민 특히 아이들 수백 명이 백혈병에 걸리는 등 건강장애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져 큰 문제가 됐다.

수빅기지 또한 1984년에 스페인이 루손섬 바타안반도에 위치하는 수빅만을 해군기지로 사용 개시한 뒤 아시아 최대의 미 해군기지가 된다. 1991년 미국과 필리핀 정부는 우호협력방위조약을 비준해 기지사용을 10년간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으나 필리핀 상원이 부결해 기지철수를 하게 됐다.

이러한 미군기지의 문제는 무엇보다 불평등한 조약체결에 있다. 미국과 필리핀이 1947년에 체결한 협정으로 ‘군사기지협정(MBA)’이란 것이 있다. 그런데 이는 클라크공군기지 및 수빅 해군기지 등의 보유와 시설의 사용권, 미군 병사의 치외법권 인정 등 미국 우위의 불평등조약으로, 1991년 기지 철폐까지 끊임없이 필리핀의 반미 민족주의를 낳는 큰 요인이 됐다.

또한 ‘미일지위협정’도 그렇다. 미일안전보장조약 제6조에 바탕을 두고, 1960년에 체결된 주일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인데 여기서도 계약갱신이 없는 부지 제공, 시설 내의 특권 제공, 세금 면제, 재판권 문제 등의 불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키나와에서 반미감정이 폭발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1995년의 미군 병사의 초등학생 강간사건이다. 1995년 미 해병 3명이 12살짜리 초등학교 여학생을 납치 해 집단 강간했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기소에는 이르지 않으면 미 해병의 신병을 일본 측에 넘기지 않는다고 하는 미일지위협정을 둘러싸고, 오키나와 현민의 반미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해, 이 협정의 개정 및 미군기지 축소, 폐쇄 요구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_1C|1389438333.jpg|width=”450″ height=”338″ alt=”?”|필리핀 펠로우 치토 변호사와 잘 아는 사이인 필리핀인 여배우 메이 바키린(멜리사 역)_##][##_1C|1010103997.jpg|width=”450″ height=”338″ alt=”?”|공연을 마치고 연극 배우들과 극단 이와토 앞 길에서 잠시 포즈. 왼쪽 맨 아래가 기획자이자 연출가인 사카테 요지씨._##]하기야 우리나라도 2006년 7월에 15개의 주한미군 기지 반환에 합의했는데 나중에 보니 미군기지 오염 실태가 심각해 충격을 준 적이 있지 않는가. 또한 미 공군 폭격장이 있던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인근 주민들에 대해 화성매향리주민대책위와 환경운동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951년부터 지난 2005년까지 54년간 매향리 인근주민의 자살률이 우리나라 평균 보다 2~7배나 높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인터넷에 떴다.

그리고 필리핀 일대에서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새삼 자료를 보고 알았다. ‘바타안 죽음의 행진’이라는 게 있는데 루손섬 바타안 반도에서 벌어진 양측의 공방전은 1941년 미 극동군이 일본군에 항복해 끝났지만 당시 일본군이 필리핀군인 7만 명, 민간인 4만 명, 미군 1만 명에게 포로수용소까지 112킬로미터 거리를 도보로 행군시켜, 다수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 그 뒤 미군은 극동재판과는 별도로 마닐라재판이란 것을 열어 당시 야마시타 총사령관을 마닐라에서의 학살행위로, 혼마 제14군 사령관을 ‘바타안 죽음의 행진’ 등 잔학행위 죄로 80명을 처형했다고 한다.


연극 관람 후에 따끈한 라멘 한 그릇


공연이 끝나고 나서 극장 입구까지 배우들이 나왔다. 그 중 ‘호장근’에서 에이미 역을 한 여배우가 밝은 표정으로 일일이 관객에게 인사를 했다. 마일레스 카나피라는 이 여배우는 필리핀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일본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봉 카브레라, 파울로 오하라 등 필리핀 출신 배우들과 우리 펠로우인 필리핀의 치토 변호사가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마일레스 카나피라와 치토 변호사는 서로 아는 사이라고 했다. 우리도 덩달아 이들 배우와 명함을 주고받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그리고 재단 측에서는 사카테 감독과 의논해 9월 22일 국제문화회관에 초청해 특강을 듣기로 했다.

사카테 감독은 1983년 ‘린코군’이란 깃발을 내건 설립자라고 한다. 각종 희극상, 요미우리문학상, 기노쿠니아연극상, 아사히무대예술상, 요미우리연극대상 최우수연출가상 등 상이란 상은 죄다 수상했다. 현재 일본극작가협회 회장이라고 한다. 근작으로는 ‘세계무역센터’가 있고, 평론집으로 ‘우리들은 이렇게 20세기를 보냈다’ 등 매우 시사적이고 의식을 지닌 그런 극작가이자 연출가라고 한다. 그의 강의가 기대된다.

갈 때는 택시를 나눠 타고 갔는데 돌아오는 길은 지하철이다. 근래에 생긴 동서남북선을 타고 아자부주만역에서 내렸다. 잠시 호텔 방에 들어가 쉬다가 오후 7시에 중국의 구이안 교수, 필리핀의 치토 변호사와 셋이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자부주만 거리를 이곳저곳 걸었다. 중국식 아니면 한국식 둘 중에 하나를 하자고 했다. 치토 변호사는 일본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회는 못 먹는다고. 그런데 나는 회가 좋은데….이래저래 다니다가 중국식 한국식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마면(馬麵)’이란 상호를 내건 일본 라면집에 들어갔다. 마면? 설마 말고기를 육수로 쓰지는 않겠지. 라면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치토 변호사는 기름진 걸 좋아했다. 향신료를 많이 넣은 라면을 시켰는데 거기다 또 향신료를 담뿍 넣어 먹었다. 그리고 만두 2접시도 따로 추가를 했다. 맛있게 먹고 나서 대략 돈을 어떻게 낼까 생각하고 있는데 치토 변호사가 혼자 계산을 한다. 오늘은 자기가 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두 사람에게 “보통 더치페이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가까운 사람들과 먹을 때는 둘 다 ‘더치페이’를 안 하고 돌아가며 낸다고 했다. 참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는 길에 치토 씨가 슈퍼에 들르자고 한다. 치토 씨는 과일에다 치즈 빵 음료수 같은 걸 제법 한 바구니 샀다. 나는 원래 밤에는 잘 안 먹는 체질인데다 당장은 별로 살 게 없어 우유 중간 것 한 통하고 사과 한 개만 샀다. 구이안 씨는 보니까 우유도 큰 통으로 사고 다른 것도 좀 더 사 넣는 것 같았다. 물건 산 것도 나중에 보니 덩치와 비례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지상 명령 살 좀 찌우라고 했는데…..그렇다고 잘 밤에 뭘 더 먹겠노.


[김해창의 일본리포트 바로가기]


첫 번째 이야기- 도쿄에 짐을 풀다
두 번째 이야기- 국제문화회관, 도서실부터 접수하다
세 번째 이야기(1) – ALFP 2008 참가자들을 만나다 – ‘일곱 빛깔 무지개’ 아시아 친구들
세 번째 이야기(2) – 환영 리셉션, 소박하지만 알차게
네 번째 이야기-일본 교수가 보는 ‘침몰하는 일본’
여섯 번째 이야기 – 일본 따오기 27년 만에 자연 품으로



Comments

“김해창의 일본 리포트 – 다섯 번째 이야기” 에 하나의 답글

  1. 정용재 아바타
    정용재

    글 재미있게 읽고있습니다.기자끼는 역시 못 말려! SDS 18일에 모여 인사동 부르스를 불렀지요. 연극내용을 읽으며 옛날 한용운문학상을 받았던 천승세의 ‘황구의 비명’을 보는것 같습니다. 건강에 조심 또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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