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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김해창 희망제작소 부소장은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 주최로 아시아 7개국 7인의 공공리더를 초청하는 ‘2008 아시아 리더십 펠로우 프로그램’의 한국인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그는 앞으로 9월부터 약 2개월 동안 ‘다양성 속의 일치’를 주제로 일본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일본리포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구 및 현장 소식을 전한다.



객지에 떨어져 있다 보면 먹는 게 정말 신경 쓰인다. 나는 주로 도쿄 롯폰기에 있는 국제문화회관에 머물렀기에 아침은 늘 이곳 레스토랑에서 먹는다. 원래 아침을 가볍게 먹어왔기때문에 양식이어도 부담 없이 맛있게 잘 먹었는데 오래 먹다보니 그만 질려버렸다. 문제는 레스토랑의 식단이 너무 똑같다는 것이다.

주로 먹는 게 오렌지 복숭아 파인애플 등 통조림 과일, 식빵, 우유, 계란, 치즈, 햄, 오렌지 키위 등 주스류, 두유, 캐비지 샐러드류이다. 변화가 있다면 하루는 계란이 말이로 나오고 하루는 으깬 걸로 나온다는 것이 다른 정도이다. 그냥 며칠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면 몰라도 한두 달을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함께 생활해온 동료 펠로우들도 불만이다. 그 중 몇몇이 개인적으로 레스토랑이나 국제문화회관 프론트에다 얘기를 했지만 첫날 먹었던 것에서 단 한 가지도 바뀐 게 없다. 정말 이렇게 사계절로 가는 것일까. 밖은 단풍이 들었는데. 우리끼리 서명운동이라도 할까, 진담 섞인 농담을 할 정도도 불만이 있었는데 레스토랑이 손님 마음을 잘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특급호텔급인 이곳 숙식비를 대주니까 참지 그렇지 않다면 아침 식사때문에 숙소를 바꾸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호사를 누리면서 하는 불만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 똑 같은 밥반찬’. 이건 아니잖아~.

펠로우들은 오전에 모임이나 발표가 있는 날이면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국제문화회관에서 왼쪽 길로 가면 롯폰기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아자부주반 거리이다.

펠로우 7명 중에 2명이 채식주의자다. 인도의 샤르마 교수와 네팔의 칼럼니스트인 찬드라(찬드라 키쇼랄, 줄여서 우리는 씨케이라고 부른다)씨가 그렇다. 채식 전문 레스토랑은 주로 아자부주반 거리에 있다. 채식주의자인 이들을 따라 다른 펠로우들도 자주 가는 식당이 채식전문 레스토랑인 ‘eat more greens’이다. 영문이름이다. 이곳은 주로 제철 야채를 사용한 ’가을메뉴‘를 내놓는다.

손수 만든 빵이나 쌀밥, 현미밥, 버섯, 호박, 토란을 활용한 야채요리가 주된 메뉴이다. 이곳은 동물성 소재나 계란, 우유도 일절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로 치면 완전 보리밥집 분위기이다. 나는 ’빵과 샐러드‘를 주문했다. 샤르마와 씨케이씨는 ’라이스와 곡물 세트‘를 주문했다. 차는 따로 시키기도 하지만 간단한 녹차 정도는 따라 나온다. 전체적으로 점심값은 1000~1200엔 정도. 채식이라 먹을 것은 푸짐하지 않지만 점심식사 비용으로는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샤르마씨. 채식주의자이지만 담배와 술은 한다. 그래서 내가 샤르마 교수를 보고 ’음주 끽연 채식주의자(a Drinking & Smoking Vegetarian)’라고 놀려댔더니 다들 웃었다. 우리는 채식 전문 식당에 함께 가도 야외 테이블에서 주로 먹는데 샤르마 교수가 줄담배를 피워대 옆자리에 앉아 사실 괴로웠다.

하루는 밖에 비가 오길래 점심식사를 좀 미루고 호텔 로비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데 샤르마와 씨케이씨가 식사하러 가자고 해서 같이 나섰다. 간 곳은 다름 아닌 ‘eat more greens’. 이곳은 보통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입구에 적혀 있었다. 이날은 점심 스페셜 메뉴로 야채 카레 수프를 시켰다. 그런데 종업원이 샤르마씨에게 차 메뉴를 갖다 주며 주문을 하라는 시늉을 한다. 샤르마가 차는 따로 안 해도 된다고 하는데도 자꾸 권하기에 내가 일본어로 점원에게 물어보니 오늘같이 비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신데 고맙다는 뜻에서 500엔에서 700엔 정도 하는 커피나 홍차 등의 차 메뉴에서 하나 선택하면 서비스로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커피 홍차를 주문했다. 경영마인드가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샤르마 교수에게 인도의 하이드라바드대학 학생들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약 1만8천명 된다고 했다. 특히 생명공학과 테크놀로지 분야 그리고 사회과학 분야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언론사 기자생활을 한 적도 있어 대학교수인 지금도 여기저기에 칼럼을 많이 쓴다고 했다. 그러자 씨케이씨가 샤르마 교수는 대학 월급 보다 고료 수입이 더 많다고 했다. 씨케이씨는 자신은 칼럼니스트를 하면서 오랫동안 대학 겸임교수를 해왔는데 너무 바쁜 것이 싫어 몇 년 전에는 그만 뒀다고 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을 때 나라별 음식을 돌아가면서 먹었다. 하루는 한국식, 다른 날은 일식, 또 하루는 중국식, 가끔 태국식, 인도식 이런 식이다. 하루는 태국 레스토랑으로 갔다. 식당 이름은 ‘사로무 타이레스토랑’이다. 사실 태국 레스토랑은 별로 익숙하지 않다. 한국에서 베트남 음식점은 가끔 가본 적이 있지만 태국음식점은 본 적도 가본 적도 없었다. 태국 방콕타임스 기자인 아티야씨를 따라 갔다. 그곳에서 아티야씨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래서 나온 게 한국으로 치면 ‘감자탕’같은 것이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향이 강하고 독특했다. 가볍게 태국 술 한 잔도 시켜마셨다. 아티야, 이수임, 구이안, 나 이렇게 네 사람이 점심을 먹었는데 1인당 1700엔 정도씩 냈다. 그런데 태국식당에는 그 뒤에는 선뜻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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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부주반 거리에서 우리가 자주 가던 식당인 ‘레스토랑 몬순’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이곳은 채식주의자도 별도의 메뉴가 있어 함께 가기도 좋고, 무엇보다 공간이 넓고 천장이 오픈돼있어 햇빛이 바로 들어올 정도로 채광이 좋은데다 자유롭게 바깥 테이블을 사용할 수 있어 좋았다. 나중에 도쿄에 사는 우리나라 지인들을 만나 점심이나 저녁을 할 때 이곳에서 만났는데 다들 평점을 잘 줬다. 이곳은 우리 펠로우들이 처음에 자기소개를 하고 다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 곳이어서 더 좋은 느낌이 있다. 레스토랑 몬순은‘아시아 레스토랑’이자 ‘다국적 레스토랑’이다. 1000엔 정도면 점심식사와 차를 할 수 있어 가격도 시설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보통 일본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를 할 때, 간단히 하려면 500엔에서 1000엔 정도 든다. 주로 쇠고기나 돼지고기 구이를 밥 위에 얹은 ‘돈부리’형 정식, 소바, 우동, 돈카스, 카레라이스류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대학 구내식당식당처럼 가게 안에 식권 발매기가 있고, 주방을 중심으로 긴 테이블이 있고 그 앞에 손님이 의자 하나씩 놓고 먹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식당들은 체인이 많은데 바쁜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저녁 때 혼자 식사를 하다가 발견한 중국집이 하나 있는데 좀 특이했다. 식당 이름이 ‘고라쿠엔(幸樂苑)’인데 ‘고라쿠엔’보다 더 크게 ‘중화소바 290엔(세금 포함 304엔) 쇼와 29년 창업’을 아예 간판으로 내걸어 놓았다. 쇼와 29년이면 서기로 1954년이다. 290엔 짜리 소바가 어떤 지 궁금해 한번 먹어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볶음밥 작은 것 시켜 함께 시켜 먹으니 딱 좋았다. 이집은 늘 손님이 넘쳤다. ‘고라쿠엔’ 입구 벽에는 나름대로 전통을 자랑하는 글귀를 적어놓은 액자가 걸려있었다.
”?”
“소바 그릇을 만지고 있으면 손이 따뜻해진다. 후후 불며 면을 먹으면 아 맛있다. 국물을 한 모금 두 모금 들이키다 보면 아버지도 누나도 말이 없다. 축제날 밤의 작은 사치. 그것이 중화 소바였다.…”. 이런 식으로 점주가 손님들에게 고라쿠엔의 정성과 전래된 기술 등을 잔잔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는 일본의 행정부처가 모여 있는 가세미가세키에 있는 농림수산성의 구내식당을 찾아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다. 환경단체인 AMR 사무국장인 다카하시 가츠히코씨와 다른 곳에 가던 길에 잠시 들렀는데 이곳 식당은 농림수산성답게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카하시 국장은 이 식당을 일부러 내게 보여주려고 이곳을 들러보자고 한 것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농림수산성 ‘북별관점 카페테리아’인데 입구에 줄을 서 들어가면서 보니 ‘오늘의 식재산지(食材産地)’라고 해서 점심 메뉴에 쓰인 식재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화이트보드에 매직으로 써놓았다. 가령 쌀은 이시가와현, 배추는 나가노현, 토마토는 이바라기현, 시금치는 지바현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니 완전 주문식단제로 운영됐는데 돈까스, 닭튀김, 고등어구이, 연어구이, 김치절임, 밥, 된장 등에 하나하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그 중에 특히 놀라운 게 밥 공기도 대(180엔) 중(160엔) 소(130엔)로 나눠져 있었다는 것. 그리고 된장국도 100엔으로 철저하게 가격을 붙여놓았다. 이런 게 일본인가 입이 딱 벌어졌다. 닭튀김하고 연어구이 밥 된장 등 대충 담으니까 계산대에서 800엔 정도 나왔다. 식사를 하고 나서 찌꺼기가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완전 절에서 발우공양처럼 남은 것은 빈 그릇뿐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우리나라 농림수산부 식당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번 가보고 싶다.
”?”
식당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다. 그리고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술밥’을 먹을 때도 있지. 이때는 주로 선술집인 ‘이자카야’를 가는데 이자카야는 두세 명이 가서 이래저래 저녁 겸 술을 먹다보면 보통 8000~10,000엔은 족히 나온다. 그러다보니 대체로 1인당 3,000~4000엔씩 나눠 내게 돼있다. 일본에서는 회식 모임을 하면 특별 초대된 사람을 빼고는 참석한 사람은 1인+당 2000엔~4000엔 정도씩은 낸다. 우리나라에선 술 한잔하자고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선배라면 대개 그 선배가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본에서는 술 한 잔 하자고 해 따라 갔다 하더라도 술값은 거의 반반 나눠 내는 게 일반적이다.

내 경우는 주로 AMR 다카하시 사무국장과 자주 만나 함께 방문하는 곳도 많고 해서 저녁 겸해서 술 한 잔 할 경우가 많았다. 다카하시 사무국장은 한국인을 너무 잘 이해하고 내게는 맏형 같은 분이다. 10년 전에 내가 도쿄 AMR에서 1년간 연수활동을 할 땐 늘 내게 술밥을 사줬다. 올 초 그가 공직에서 은퇴해 시간이 자유로워져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술밥은 가능한 내가 산다고 선언했다. 그래도 형님인 자기가 내겠다는 ‘이상한 일본인’과 계산대 앞에서 자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일본에 와서 제일 싸게 마신 선술집한 한 곳을 소개한다. 이자카야 ‘야마토(やまと)’라는 곳인데 신주쿠역 근처에 있다. 이곳은 내가 잘 아는 한국 선생님이 미리 터를 닦아 놓으신 곳이었다. 생맥주 한잔이 180엔. 그것도 소비세를 포함해서 말이다. 다른 이자카야의 절반 수준이다. 물론 이곳도 금요일이나 공휴일 전날은 180엔이 아니라 290엔이라고 한다. 아마토찌개 980엔. 소주 큰잔 한잔 460엔. 매실주 한잔 380엔. 평일에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단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밤 11시30분까지만 한다고 했다. 한번은 8명 정도가 함께 들어가 회식을 했는데 나름대로 먹고 나서 계산서를 보니 8000엔 정도가 나왔다. 1인당 1000엔 정도였으니 아주 싼 편이다.

덧 : 혹시 일본 도쿄 그것도 신주쿠에서 단체로 한잔 할 일이 있을 땐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세요. 소개시켜 드릴 테니까요. 물론 신주쿠의 쇼쿠안(職安) 도리 일대에는 서울 인사동 식당가 분위기가 날 정도로 멋진 한국식당도 너무 너무 많지요.






[김해창의 일본리포트 바로가기]


첫 번째 이야기- 도쿄에 짐을 풀다
두 번째 이야기- 국제문화회관, 도서실부터 접수하다
세 번째 이야기(1) – ALFP 2008 참가자들을 만나다 – ‘일곱 빛깔 무지개’ 아시아 친구들
세 번째 이야기(2) – 환영 리셉션, 소박하지만 알차게
네 번째 이야기-일본 교수가 보는 ‘침몰하는 일본’
다섯 번째 이야기 – ‘ 서던 아일랜드’-오키나와, 필리핀 기지문제 다룬 연극을 보다
여섯 번째 이야기 – 일본 따오기 27년 만에 자연 품으로
일곱 번째 이야기 – 방콕 포스트 기자가 말하는 ‘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여덟 번째 이야기 – ‘필리핀 정치의 현주소’와 ‘일본의 정체성’을 묻다
아홉 번째 이야기 – ‘제3의 길’을 말하는 네팔 인도 중국 펠로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