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편집자 주 / 김해창 희망제작소 부소장은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 주최로 아시아 7개국 7인의 공공리더를 초청하는 ‘2008 아시아 리더십 펠로우 프로그램’의 한국인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그는 앞으로 9월부터 약 2개월 동안 ‘다양성 속의 일치’를 주제로 일본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일본리포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구 및 현장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10일 새벽에 놀라서 눈을 떴다. 어젯밤 10시쯤 침대에 잠시 누웠다가 그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새벽 3시 10분. 오전 9시 반부터 펠로우들의 ‘자기 나라 소개 시간’이 있는데 막바지 파워포인트 작업을 하다 그만 잠이 들었던 것이다. 형식은 자유롭지만 대체로 현재 자기 나라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주로 이야기하기로 돼 있다. 오늘은 태국의 아티야 씨와 내가 발표하기로 돼 있다.

주제는 ‘한국 사회에서 촛불집회의 의미 찾기’를 통해 한국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소개하기로 하고, 희망제작소의 김연희 팀장이 지난 7월말 스페인 ‘사회창안 프로그램’ 참가 때 준비해놓은 희망제작소 영문 소개 자료에 덧손질을 해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희망제작소가 한국지역진흥재단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지역홍보센터(한국프레스센터 1층)에서 챙겨온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홍보DVD도 챙기고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서 ‘Facts about Korea’라는 영문판 책 내용도 PDF 파일 자체를 다운받아 두었다. 6시 좀 넘어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가 오전 9시 조금 못돼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에는 네팔의 칼럼니스트인 CK(찬드라 키쇼랄) 씨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간단히 빵과 치즈 그리고 우유 등으로 식사를 했다. 그가 네팔어, 마이티리어, 힌두어, 영어 이렇게 4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들었기에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네팔 사람의 경우 보통은 2개 국어, 좀 더 공부하면 3개 국어 정도는 한단다. 시간이 없어 대충 말 정리를 하고 다시 방으로 다시 왔다. 혹시 필요할지 몰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편집한 영어책 ‘Korea’s Future Vision and Strategy'(2008), 이원복 교수의 한국소개 영어만화책인 ‘Korea Unmasked'(2002), 그리고 ‘한국의 음식’ ‘템플 스테이’ ‘한국의 축제’ 등 간단한 한국 홍보 팸플릿 등도 챙겨 종이가방에 담아 1층 회의실로 갔다.


태국의 현 정세 – 방콕 포스트 편집자 아티야씨의 발표

먼저 태국의 아티야 씨가 발표했다. 태국의 유력 일간지 ‘방콕 포스트(The Bangkok Post)’의 오피니언 페이지 담당 편집자인 그녀는 태국의 현 정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파워포인트를 사용해 간결하게 태국의 상황을 잘 정리해 설명해 주었다. 제목은 ‘Politically Divided, Socially Torn-The Political Strife and Stalemate in Thailand(정치적 및 사회적 분열: 태국의 정치적 투쟁과 교착상태’이다.

그는 크게 태국의 현 상황을 4개 국면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치적, 법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에서 짚어보고 향후 사태를 전망했다.

”?”아티야 기자는 먼저 최근 9월 2일 태국 수도 방콕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접했을 것이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친정부와 반정부 세력 간의 충돌로 최소한 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한 폭력사태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반정부 세력의 중심에는 2년 전 쿠데타로 추방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막 순다라벳(Samak Sundaravej) 총리도 겸직 금지조항 위반으로 총리직 박탈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태국 정국의 혼란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집권 정당연합의 중심당인 ‘PPP(People’s Power Party: 국민의 힘 당)’는 사막을 총리 후보로 재추대하기로 사실상 결정한 데다 지난 5월 25일 이후 집권세력 퇴진을 목표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시민단체 연대체인 PAD(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국민민주주의연대)는 사막 총리 재추대 움직임은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는 일이라며 맞불을 놓고 있어 앞으로 태국의 정국은 쉽게 전망하기 어렵다며 그간의 경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면 1 – 탁신 정권의 탄생
태국 최대의 통신 재벌로 성공한 탁신은 1998년 7월 14일 TPT(Thai Rak Thai Party: 타이락타이)당을 창당해 당 대표가 되고, 2001년 2월에는 총리로 지명된다. TRT는 농촌을 기반으로 ‘보건비 인하’,‘일촌일품’운동그리고 지역기금 마련 등의 정책을 펴 태국 북부 및 북동부 지역에 매우 인기를 얻었으나 반면에 포퓰리즘이란 비난도 받아왔다.

2004년 1월에는 태국 남부지역에서 이슬람 폭동이 일어나자 탁신은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강경조치를 취했다. 그 뒤 2005년 2월 TRT는 총선에서는 500석 중 무려 377석을 얻는 등 왕정폐지 이후 73년 만에 단일 정당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2번째 사례가 될 정도로 대승해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해 11월 탁신에 대한 비판이 고조된다. 탁신이 국가 독립기관을 무시하고 ‘견제와 균형’을 깼고 그의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묵살하는데 대한 반발이었다.

2005년 11월에는 반 탁신 데모가 일어나 수천 명이 탁신의 부패, 권력 남용, 검열 그리고 무슬림 폭동에 대한 강경대응 등에 대해 항의했다. 게다가 2006년 1월 통신재벌인 탁신 일가가 보유한 핵심기업인 ‘신 코프(Shin Corp)를 싱가포르 정부 투자회사인 ’테마세크 홀딩스(Temasek Holings)’에 미화 19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세금도 한 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공분을 샀다.

국면 2 – 쿠데타 발발
2006년 9월 19일 손티(Sonthi Boonyaratkalim) 장군이 일으킨 쿠데타로 탁신은 추방된다. 쿠데타 세력의 최고권력기관인 CNS(국가안보평의회)는 재산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탁신 일가의 부패에 대해 조사에 들어가기로 하고, 탁신에 대해 부패 혐의 조사를 승인한다. 또한 수라유드(Surayud Chulanont)를 내세워 임시내각을 구성한다. 2007년 5월 태국 최고재판소는 TRT의 해산을 명하고, 선거 부정 혐의가 있던 탁신 등 110명의 당 간부를 선거법 위반으로 5년간 정치활동 금지 조치를 내린다. 이에 탁신은 영국으로 망명한다.

그러나 수라유드 정부는 정치 경제는 물론 국민들의 바람인 ‘국민화합’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한다. 아티야 기자는 도대체 국민화합이란 게 뭔가 하고 묻는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이념에 동의하는 걸 의미하는지 아니면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게 국민화합인지 말이다.

국면 3 – 탁신의 귀환
2007년 7월 탁신 지지파들이 PPP(국민의 힘 당)을 만들어 해체된 TRT의 대체정당으로 활동한다. 그 해 12월 23일 총선에서 PPP는 최다 득표를 얻어 2008년 2월 연정으로 새 정부를 구성한다. 이 때 사막이 총리가 된다. 이에 힘입어 2008년 2월 28일 탁신은 태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지난 7월 30일 탁신 부인인 쿠닝(Khunying Potjaman)이 세금 포탈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는다.

국면 4 – PAD(국민민주주의연대)의 귀환
지난 8월 26일 시민단체 연합모임인 PAD는 정부의 바람막이 격인 NBT(태국국영방송)과 사막 총리가 있는 정부청사를 급습한다. 이러한 과정에 친정부, 반정부 군중이 충돌해 1명 사망했다. 이에 사막 총리가 9월 2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영화 같은 태국의 국면 전환에 대해 아티야 기자는 이렇게 원인을 분석했다.
첫째, 정치적 차원이다. 금권정치가 불평등을 야기해 국민의 불만을 낳았다는 것이다. TRT는 농촌 정서에 바탕을 두었지만 농촌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대신 기대만 잔뜩 심어주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내놓을 뿐 엄청난 부패로 도농 빈부 격차를 더 심화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법적 차원이다. 쿠데타 세력에 의해 기초된 2007년 헌법은 금권정치와 매표 행위의 방지를 위해 심한 경우 정당해체와 당직자의 정치 참여 금지 등 엄중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새로운 논란거리 만들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정치 관련 사건에 전례 없이 엄중 처벌을 하고 있다.

셋째, 경제적 차원이다. 1997년 버블 경제 붕괴는 전통 엘리트로 하여금 글로벌 경제를 불신의 눈으로 보게 했다. 탁신은 태국 역사상 가장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진 리더였고 태국에 이런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자 했기에 옛 엘리트와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넷째로, 사회적 분열이다. 태국 정부는 투표로 선출돼 외형성 정당성은 있으나 강력하고 넓은 기반을 지닌 시민운동단체에 비해 도덕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태국의 문제는 ‘정직하지만 비효율적인 정부’와 ‘효율적이지만 부패한 정부’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중앙집권적 접근을 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힘과 참여를 중시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쿠데타 발생 방지를 위해 이념과 실질 사이의 타협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들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출구는 없는가? 아티야 기자는 단기 시나리오로 군부가 현 시국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암묵적으로 정치 안정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PAD 리더들은 체포영장 발부에 직면해있다. 결국 정치 위기의 돌파 수단으로 국민투표를 택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또한 명문 규정이 없어 논란이 확산되고 국내 불안을 야기할 측면이 크다.

장기 시나리오로는 헌법 수정을 통해 매표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철회하게 되면 금권정치로 회귀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70년, 80년대의 타협정치가 되살아나 책임 정치를 구현하기 어려워 질 것이라는 점 또한 지적했다. 현행 헌법을 유지해 매표 행위 처벌에 대한 강력한 규정은 두되 교육 홍보를 강화해 투표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대체로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책 차원에서는 진통제 같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복지국가정책을 시행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아티야 기자는 말했다. 그러나 현재 태국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비용이나 시간이 드는 만큼 결과가 빨리 나오는 일이 아니어서 정치인들에겐 그다지 인기가 없기에 아직 정책 강령으로 충분히 채택되지도 않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아티야는 끝으로 향후 법의 지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거리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의 이의제기가 국회에 쉽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하며, 정부 또한 국민들의 불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앞으로 당분간은 교착상태가 계속될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었다.



최근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물결: 촛불집회를 넘어서

이어서 내 차례가 됐다. 사실 영어로 1시간 이상 설명하고 토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로서도 이런 기회는 처음이었다. 태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 현 정세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우리나라의 다이나믹한 면을 보여주는 동영상 DVD(‘Korea Sparkling’)를 5분 정도 감상하게 한 뒤 ‘Facts about Korea’라는 책의 PDF파일을 비춰주며 우리나라의 지리,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기본 지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는 준비한 ’최근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물결: 촛불집회를 넘어서(A New Wave of Democracy in recent Korea; Beyon Candlelit Vigils)‘라는 주제로 파워포인트를 보여주면서 얘기를 했다. 우선 광우병 우려 미국 쇠고기 수입 결정을 계기로 일어나게 된 촛불집회의 배경과 진행상황 그리고 그것이 낳은 결과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으로 나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촛불집회가 오히려 현 정부에 의해 역풍을 맞고 있는 사실 그리고 촛불집회가 문제는 제기했지만 새로운 대안 만들기에는 부족했던 한국의 현실도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 주체의 대안사회 만들기의 필요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에는 희망제작소와 같은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희망제작소가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창안센터, 대안센터를 비롯한 각종 센터의 역할 등을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끝을 맺었다.

이어서 펠로우들의 코멘트가 있었다. 먼저 인도의 샤르마 교수는 태국의 언론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했다. 대부분의 태국 언론이 친정부 일변도라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나 중국 입장에서 이러한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는 우선 이념을 먼저 표방하게 돼 있는데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념이 뭔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실용적인 것이 담보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면서 “포퓰리즘이나 세계화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은 어떤 이념이 어떻게 표현되고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필리핀의 치토 변호사는 내게 질문을 했다. 한국에서 시위가 더 심해지면 태국에서처럼 군이 개입할 소지가 없느냐는 것이다. 또한 지난 촛불집회 때 한국 야당의 입장이나 역할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세계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샤르마 교수는 또한 자기는 시민의 생각을 믿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했다. 그는 J.S.밀의 얘기를 꺼내면서 ‘수 백 명의 바보가 옳다고 말하면 또 다른 수 백 명의 바보가 그것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히틀러까지도 대중인기 정책을 폈고, 대중들은 포퓰리즘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이어서 태국도 농촌 사람들이 탁신 전 총리에게 빠지게 된 것도 문제이며, 혹시 한국의 경우 촛불집회를 계기로 일어난 시민들의 각종 행위가 혹 파퓰리즘과는 관계가 없는가 하고 나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소위 6.10 민주항쟁이라는 시민항쟁을 통해 군부독재정권을 몰아낸 경험이 있어 이제는 더 이상 군이 개입해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갖고 있고, 군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성숙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촛불시위가 자칫 중우정치같이 비칠 수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한국의 경우 인터넷이 매우 발달한 상태에서 시민들이 인터넷이 소통의 수단이며, 자기 의사를 효과적으로 발신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인식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의 촛불집회의 궁극목표는 정권 타도가 아니라 현 정부에 국민의 뜻을 존중할 것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촛불집회가 일부 불법적인 면이 있었다고 해도 참여자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모아갔다는 점에서 새로운 참여 민주주의의 한 방법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한편, 현재 이정박 정부가 오히려 시민단체를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 또는 반정부단체로 보고 잘못 대응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에 진정 귀 기울이여 기존의 민주주의의 성과를 인정하는 위에 새로운 자기 스타일의 정치를 펴나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초과돼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다. 허기가 진다. 오늘은 각자 알아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방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잠을 잤다. CNN에서는 어제 9월 9일 북한의 건국절 행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오지 않아 중병설이 사실인 것 같다며 그의 소재가 궁금하다고 거의 톱뉴스로 전한다. 앞으로 북한의 국면은 어떻게 전개될 지 정말 궁금하다. 아니 걱정이다. 한반도가.




* 참고로 이글을 쓰는 10월 1일 현재 일본 언론을 검색해보니 9월30일자 아사히신문에 사막 전 태국 총리가 PPP(국민의 힘) 당 대표 사임서를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알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유가 재미있다. 지난 9월 9일 태국 헌법재판소가 사막 총리가 정규 텔레비전 방송프로에 출현하는 것이 ‘부업’으로 헌법에 금하는 ‘겸직금지’에 해당된다고 판단돼 총리직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아시히신문은 또한 지난 18일 현 총리 대행 겸 국방부장관을 맡고 있는 솜차이 당 부대표가 머지않아 새 당 대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솜차이 총리도 실직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솜차이 총리의 재산 보고에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태국 헌법은 총리 각료 의원 등의 재산보고가 의무화돼 있는데 취임 때, 취임 1년 후, 이직 후 30일 이내로 모두 3차례 하기로 돼 있다고 한다. 자신 외에 배우자, 미성년 자식의 자산 및 채무를 ‘국가오직(汚職)방지위원회’에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솜차이 총리가 사막 전 내각 때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지냈는데 ‘CS록스인포’ 주식 10만주를 보유했다고 신고한 것이 헌법 규정에 저촉된다며 야당 의원이 중앙선관위에 이의를 제기해 조사를 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현재 탁신 전 총리는 지난 8월 베이징올림픽 참관 등을 이유로 출국한 뒤 부인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자칭 망명중이라고 한다.





[김해창의 일본리포트 바로가기]

첫 번째 이야기- 도쿄에 짐을 풀다
두 번째 이야기- 국제문화회관, 도서실부터 접수하다
세 번째 이야기(1) – ALFP 2008 참가자들을 만나다 – ‘일곱 빛깔 무지개’ 아시아 친구들
세 번째 이야기(2) – 환영 리셉션, 소박하지만 알차게
네 번째 이야기 – 일본 교수가 보는 ‘침몰하는 일본’
다섯 번째 이야기 – ‘ 서던 아일랜드’-오키나와, 필리핀 기지문제 다룬 연극을 보다
여섯 번째 이야기 – 일본 따오기 27년 만에 자연 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