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청소꾼 밤에는 소리꾼, 엽기 민박

시사IN 기자들이 희망제작소가 제안한 천개의 직업 중 일부를 직접 체험하고 작성한 기사를 시사IN과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동시에 연재합니다. 본 연재기사는 격주로 소개됩니다.
 

체험, 1000개의 직업 (15) 이색 민박 운영

엉겁결에 채를 건네받았다. 장구는 몰라도 북은 처음이다. 좀 전까지 같이 박수를 치던 투숙객 네 명이 일제히 기자를 바라보았다. “힘을 빼고 치쇼. 잘할라고 욕심내지 말고.” 꽹과리를 든 주인장 국근섭씨(52)가 말했다.

애초부터 욕심은 없었다. 북 치는 고수가 필요하다는 말에, 이것도 직업 체험이려니 충실했을 뿐. 그러는 동안 벌써 소리가 시작됐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진도아리랑 음률에 마음이 급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멋대로 두드렸다. 중모리장단은 몰라도, 두드림에 맞춰 곡은 진행됐다. 신기한 일이었다. 절로 신명난다는 게 이런 거였다.

[##_1C|1398117927.jpg|width=”600″ height=”4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전남 담양군 삼다리에 있는 한옥 민박집 명가혜. 민박집 일의 대부분은 청소다. ⓒ시사IN 백승기_##]
 방문 열면 사방이 대나무 숲

1000개의 직업 시리즈 마지막이다. 서울에서 4시간 거리, 먼 거리라 미뤄두었던 전남 담양을 다녀왔다. 명가혜(茗可蹊). 차에 이르는 지혜로운 길을 뜻한다. 국씨가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담양읍 삼다리의 한옥집, 명가혜는 방문만 열어도 사방이 대나무 숲이다. 마당의 장독과 봉숭아 텃밭이 정갈하다.

민박집이라기에 청소나 요리를 상상했다. 몸으로 때울 심산이었다. 그런데 시작이 다도였다. 이곳에 묵는 손님은 누구나 죽로차(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란 차)로 시작한다. 8월23일 저녁, 한 자매와 연인이 숙소에서 200여m 떨어진 찻집부터 찾았다. 생활한복과 두건 차림의 국씨가 손님을 맞이했다. 수제로 직접 만든 차를 우리기 전, 예열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기자도 팽주(차를 따르는 사람)가 되어 손님에게 차를 대접했다. 생각보다 까다로웠지만 주인 된 마음가짐을 배우는 자리다.

차로 손님을 대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정을 나누기 위해, 손님의 여독을 풀기 위해서다. 차를 마시는 동안 담양이 고향인 국씨가 둘러볼 만한 곳을 추천했다. 널리 알려진 소쇄원,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었다는 석영정 말고도 명옥헌을 추천했다. 아는 사람이 적어 한적하다는 말을 곁들였다.

그새 날이 깜깜해졌다. 한옥집 옆 별채, 주인장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에 이은 대나무 막걸리다. 고장에 하나 남은 양조장 막걸리를 마시며 손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이혼하지 않고 사는 지혜에 대한 조언이 오갔다. 휴가라 함께 여행을 온 자매는 막걸리 두 잔에 얼굴이 벌게졌다. 모두 이렇게 오지랖 넓은 주인장이 있는 민박집은 처음 겪는다는 표정이다.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분위기가 익자, 국씨가 본격적으로 판을 열었다. “새 중 가장 아름다운 새가 뭐요?”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정답은 추임새. 그것부터 배웠다. 춘향가 중 ‘사랑가’를 따라 했다. 코앞에서 소리를 들으니 애타는 이도령의 마음이 더 가깝다. 사람들과 소리를 메기고 받는 시간이 돌아왔다. 각자 소감을 말하는 객들, 기자 차례였다. “북을 쳐보니, 별거 아니네.” 초짜의 허세에 웃음이 쏟아졌다.

일본의 료칸처럼 전통 잇는 민박집 만들고파

명가혜는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남도의 소리와 문화를 체험하는 곳이다. 출판사, 공장 등 객지 생활을 하던 국근섭씨가 부인과 민박을 시작한 건 10년 전이다. 미대 재학 시절부터 차와 소리를 좋아했다. 유명한 소리꾼을 찾아 배우고 민박과 ‘접목’했다. 모텔도 많지만 민박을 들르는 이유는 정이고, 지역만의 문화이고, 소통이라는 생각에서다. 소문을 타고 박원순 변호사, 신달자 시인이 묵고 갔다. 꼭 소리가 아니더라도 특색 있는 문화를 곁들이는 민박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료칸처럼 대대로 잇는 전통 있는 집으로 만들고 싶다.

사람을 좋아해야 가능한 직업이었다. 워낙 난장판으로 해놓고 떠나는 손님도 있다. 외제차를 타고 와서 콧방귀를 뀌는 손님을 공손히 돌려보내기도 했다. 지역 문화에 대한 애착도 필요하다. 칠순 잔치를 하러 명가혜 전체를 빌린 가족, 손님의 인연으로 주례까지 서게 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낮은 곳에서 함께해부러.” 국씨의 철학이다.

[##_1C|1235403070.jpg|width=”600″ height=”4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명가혜 주인 국근섭씨(서 있는 이)가 투숙객과 함께 판소리 한판을 벌였다. ⓒ시사IN 백승기 _##]
일행은 잠들기 전, ‘별 헤는 시간’을 가졌다. 날이 맑은 날엔 쏟아질 것같이 별이 많단다. 잠자는 법도 따로 있다. 텔레비전은 켜지 말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들기. 일러주는 대로 잠을 청했다. 풀벌레 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옆방에서 들리는 도란도란 얘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이곳의 체크아웃 시각은 다소 이른 오전 10시다. 모두 그보다 이른 시각에 떠났다. 전날 일러준 담양의 명소를 일찍부터 둘러보기 위해서다. 본격적인 일의 시작이다. 방 안의 이불과 베개를 뜯어 빨았다. 청소기와 물걸레질, 화장실 청소가 이어졌다. 주인장만의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다. 화장지 접는 법까지 세세하다. 일러준 대로 세면대부터 변기까지 구석구석 세제를 뿌리고 닦아냈지만, 주인의 마음에 찰 리 없다. 싫은 내색 못하는 주인이 말없이 다시 마무리를 했다. 민박집 일의 절반 이상은 ‘청소’. 낮에는 청소꾼, 밤에는 소리꾼이다.

수요일은 마침 전체 유리창을 닦는 날이다. 국씨는 “도가 따로 있지 않다. 일상에서 청소를 하면서 마음을 닦아낼 수 있다”라며 노동가를 한 구절 뽑아냈다. 기자는 점점 말을 잃었다. 보통 오후 3시쯤 일이 끝나지만 함께 부지런을 떨어 1시에 끝냈다. 남은 시간, 찻집에서 차를 만들거나 책을 읽는다.

아무 간섭 없이 쉬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명가혜 같은 민박집은 ‘비추’다. 인근엔 사람이 없는 ‘무인텔’도 있다. 다만, 담양 어디에나 있는 대나무와 분홍색 백일홍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하는지 알고 싶다거나, 무엇보다 사람이 궁금하다면 들러봐도 좋을 것 같다. 민박집 주인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이 직업은 사람을 좋아해야 할 수 있다. 소리나 차가 아니더라도 클래식 · 천연염색 · 텃밭 상추 등 본인만의 비기(秘技)를 개발해야 한다. 한옥을 짓는 데 1억원 이상이 든다. 방학과 여름철이 성수기이고 3·6·9월이 비수기로, 수입이 일정치 않다.

더 궁금하다면 일단 한번 명가혜에서 자보기를 권한다. 국씨는 민박집 주인일 뿐만 아니라, 무용가 · 강연자이기도 하다. 최근 민박집의 성공에 힘입어, 대학·기업 등으로 초청 강연을 가기도 한다. 문의 061-381-6015


글_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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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을 끝으로 ‘체험 1000개의 직업’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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